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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권의 풍경을 열며
1장 나의 미국 민주주의 관찰기 미국 선거 예측에 실패한 이유 | 약자들의 덫이 된 모병제 | ‘이라크 야전 교범’이라는 블랙 코미디 뉴욕발 프리랜서 노동 조합 | 미국 의회의 인재 채용 시스템 | 빅 아이디어가 대통령을 만든다 미국에서 겪은 한국인의 빛과 그림자 | 법률가들의 천국과 법의 지배 | 하버드 공부 벌레들의 공부 비법 스스럼없이 말하게 하는 교육 | 인문 교양 대학을 아십니까1 | 인문 교양 대학을 아십니까2 2장 인권의 창으로 본 미국 가까이에서 본 미국이라는 나라 | 시민 교육의 현장, 공공 도서관 | 다큐멘터리 팬이 되다 케네디 대통령은 스포츠맨이었다 | 월든 호수에서 소로를 만나다 | 맨해튼의 가위손 조반니 씨 일흔여덟 살의 마틴 루서 킹 | 시민 운동가 헬렌 켈러 | 단풍시럽과 지구 온난화 암 환자 엘리자베스의 용기 | 「랩소디 인 블루」를 사랑하는 까닭 3장 인권 담론의 새벽 선거는 운문, 국정은 산문 | 인권 담론의 새벽 | 과학자들이 지킨 인간의 의무 부서지기 쉬운 민주주의 | 시민 사회 활동가를 키우자 | 냉전 잔재에 맞서야 할 시민 사회 국제 연대의 전제 조건 | 인권과 평화 우선의 정치 | 시민 사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방법 작은 실천과 큰 진보 | 민주주의라는 영구 혁명 | 이주자 출신 학자가 나오는 사회 인권이 정치 원리가 될 때 | 인권, 우리 시대의 징표 | 팔레스타인 땅의 아이들 권력의 문턱에 선 시민 사회 |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장애인에게 노동권을 허하라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할 진짜 이유 | 미국 대선과 민주주의의 지구화 | 협력 모델의 허실 과잉 사회, 역동 사회, 첨단 사회 | 전 지구적 재난과 세계 시민 운동 | 우리는 행복한가? 인권은 마지노선이다 | 인권의 눈으로 본 한일 관계 4장 인권을 넘어선 인권 운동 통합·화해·상생의 주체, 시민 사회 | 과학과 사회의 소통 창구, 엔지오 지식인의 사회 참여 방법 | 학생 인권 문제의 뿌리 | 국제적 연대에서 민제적 연대로 과거 청산도 인권의 문제다 | 시민 운동이 세계와 만날 때 | 평화와 안전의 예방약, 인권 아시아 인권 운동에 눈을 돌려라 | 아시아 시민 연대가 사활적인 까닭 헌법이 담지 못한 인권 정신 | 「세계인권선언」 탄생의 드라마 | 황우석 사건의 인권 문제 세계적 박애주의자 이종욱 | 에너지 문제의 딜레마 | 스위스 하회마을에서 학부모를 만나다 사회 기풍이 인권을 결정한다 | 우리 지식계의 인권 연구 5장 인권 시대의 민주주의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 | ‘전범’ 블레어가 주는 교훈 | 한 말씀 민주주의 주민등록증과 스무 개의 지문 | 선교냐, 봉사냐 차원이 아니다 | 버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자 생활 속의 작은 인권 | 왼쪽보다 늦된 오른쪽의 분가 | 정치 프레임의 희생자들 패배를 넘어서 | 이명박 정부의 스타일 | 진보 개혁 담론의 재구성 개인과 집단의 변증법 | 천민 자본주의의 반인권 선언 | 공유지의 비극을 만들 권리가 없다 경이롭고 모순적인 중국의 인권 | 사회 책임 모르는 ‘국민 시이오’ ‘국민 시이오’의 마케팅 전략 | 지켜야 할 최소가 있다 에필로그 상상의 인권 야학 참고 문헌 |
趙孝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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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의 미국 민주주의 관찰기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군에서 배운 기술을 사회에서 써먹을 가능성은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참전용사 노숙자연맹(NCHV)’이라는 단체는 전국의 노숙자 중 약 3분의 1이 참전 용사일 거라고 추산한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다 각종 약물·알코올 중독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가족과 같은 사회적 지지망이 와해되어 쉽게 길거리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군에 갈 젊은이가 많겠는가? 그러니 모병 담당자가 목표로 하는 집단은 따로 있다. 유색 인종, 소수 민족, 빈곤층이다. 실제로 전체 군인 중 흑인과 라티노(라틴아메리카 출신)의 비율이 약 40퍼센트에 달한다. 전체 인구 비율보다 훨씬 높다. 실전에 배치되는 비율은 더 높다고 한다. --- pp.66~67, 「약자들의 덫이 된 모병제」 중에서 미국 의회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 공익 시민 단체의 활동가 및 자원 활동 경험자들에게 공직 진출의 중요한 채널이 되고 있었다. 의원실에서 방학 중 한두 달 자원 활동 하는 것을 빼고도, 학교 졸업 후 정식으로 무급 인턴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길을 통해 입법부의 정책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의원실에서 작년에 무급 인턴직 한 명을 공채했는데 1천 명이 몰렸다는 소문도 있다. 이들은 물가 비싼 워싱턴에 사는 지인들을 수소문해 거실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낮에는 의원실에서 무급 인턴을 한다. 이런 생활을 1, 2년씩 하면서 정식 직원의 길을 찾는 경우도 있다. …… 왜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업체에 비해 대우도 낮고 확실한 보장도 없는 자리에 기를 쓰고 도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공직’에 대한 꿈이다. 자신의 이상을 입법 과정에서 실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꼭 의회 의원이 아니더라도 의회를 둘러싼 전문 집단의 일원이 됨으로써 미국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 p.83, 「미국 의회의 인재 채용 시스템」중에서 2장 인권의 창으로 본 미국 적어도 내가 체험한 미국은 그다지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사회가 아니었다. 단순하지 않고 모순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매한가지였다. 놀라운 유능함과 가소로운 무능함이 공존하는 나라였다. 자유분방한 사고와 유치한 환상이 합쳐져 네오콘과 창조론이 버젓이 지적 시민권을 획득한 나라였다. 법 질서를 존중하는 것과 잘못된 권위에 맹종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라였다. 과시적이면서도 내적으로 공허하고,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에는 무관심한 나라였다. …… 미국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미국 사회를 상대화해서 보지 못하면 한국은 언제까지나 미국 중심형 숭미, 미국 중심형 반미의 오류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계속 비판하면서도 미국 사회 자체는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다양한 세계 사회에 속한 하나의 구성원일 따름이다. 이런 수평적 자세만이 한국인이자 세계인으로서 내 자존심과 주체성을 의연하게 지키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 pp.132~133, 「가까이에서 본 미국이라는 나라」 중에서 선생님이 어떤 책을 읽어 와라 하시고 수업 시간에는 주로 학생들이 책 읽은 소감을 발표하게 한다는 것이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게 교육 목표가 아니라 책 읽고 그것을 분석하고 표현하게 하는 게 목표인 셈이다. 과목당 한 학기에 책 몇 권씩을 반드시 읽게 만드는 이런 교육 풍토의 핵심에 공공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식의 활발한 토론 문화가 시민의 민주 의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자명하다. …… 우리 나라의 세계적인 교육열을 입시열이 아닌 독서열로 전환할 수 있다면 우리 미래는 훨씬 밝아질 것이다. 그런 뜻에서 한국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도서관 운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민들 수준도 올라가고, 학생들도 더 똑똑해지고, 출판계도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이다. 사리사욕과 이기심이 아닌 공공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공공 도서관에서 그 해답을 찾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 pp.137~138, 「시민 교육의 현장, 공공 도서관」중에서 3장 인권 담론의 새벽 민주주의는 보기보다 연약하며 독자 생존력이 낮은 제도이다. 시민 사회, 인권, 정치 문화, 의식 수준, 경제 안정 등의 토양에 의존해야만 한다. 이런 뒷받침이 없을 때 민주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재빨리 퇴행하곤 한다. 반드시 어떤 극적인 계기를 통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은 아니다. 정경 유착의 부영양화 정치 관행이 굳어질 수도 있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보수 세력의 ‘선거 독재’가 도래할 수도 있다. 우리의 현실은 벌써 이런 퇴행의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언어인 권력의 언어만이 통용되는 정치적 문맹의 나라, 민주 정치를 원했는데 이익 집단 정치가 만연해진 나라, 지방 자치를 고대했는데 토호 정치가 활개 치는 나라가 바로 오늘의 한국이 아닌가. --- pp.198~199, 「부서지기 쉬운 민주주의」중에서 며칠 전 서울대 법대에서 완전 실맹 학생을 합격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내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학문 공동체’라는 원칙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생활 세계의 작은 상식 하나가 실현된 사건에 불과하고 거시적 변화와는 거리가 있는 일인데도 이 일이 우리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치와 외치가 온통 뒤숭숭한 현실에서 거대 담론에 열중한 사회 분위기에 주는 어떤 무언의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 정치 개혁만큼이나 힘들었을 학교 내 변화를 이끌어낸 그 성실한 실천이 ‘구조주의자’인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큰 이야기는 혼자서 다 하면서 생활 세계에서는 관성과 인습과 눈치 보기에 매몰되어 비겁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 p.217, 「작은 실천과 큰 진보」중에서 4장 인권을 넘어선 인권 운동 만일 미국의 유색 인종 문제를 시민, 정치, 경제, 사회적 권리의 정신으로 진작 풀었더라면 오늘과 같이 뉴올리언스에서 유독 흑인들만 이재민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을까? 소수 민족의 자기 결정권 문제를 일찌감치 건설적으로 풀었더라면 베슬란의 어머니들이 오늘 저렇게 눈물짓고 있었을까? 후세인의 인권 탄압과 불법적인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떼죽음당한 이라크 민중의 신발과 옷가지가 널려 있는 사진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을까? 이제 우리는 점점 더 인권이 단지 개인의 고통을 막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더 큰 사건, 더 큰 비극, 더 큰 전쟁과 파괴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예방 조치임을 깨닫고 있다. 나는 이런 점을 모든 정치인, 모든 권력자들이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 침해가 일어난 후에 조사와 처벌과 보상을 요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인권의 보장은 평화와 안전과 행복을 위한 예방 백신인 것이다. --- p.314, 「평화와 안전의 예방약, 인권」중에서 나는 한국 시민 사회가 아시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 시민 사회를 위해서라도 아시아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이제 한국 사회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서는 한국 시민 사회 운동의 현실을 포착할 수도 없고, 또 그 미래가 밝지도 않다. 왜 그런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고 이미 아시아로 외연이 확장되어 있는 지역 내의 상호 의존적 사회 관계를 직시해야 우리 시민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아시아에 주목하자는 말은 우리 사회가 어느새 처해 있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현실을 바로 보자는 말이며, 그러한 달라진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시민 사회 운동 본연의 사명과도 부합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 pp.319~320, 「아시아 시민 연대가 사활적인 까닭」중에서 5장 인권 시대의 민주주의 앞으로 여론을 존중하겠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민주적 신념이라기보다 그저 마케팅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대운하를 놓고 대국민 심리전을 벌이는 것이 여론 존중인가?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어쨌든 이명박은 선거에 의해 민주적 정당성을 수임 받고 출발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 와서 그의 사업가적 본성이 변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움직임을 제도 정치권과 공유하는 길밖에 없다. 직접행동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방식이 우리 시대의 독특한 민주적 거버넌스 모델일 수 있다. 시이오 이명박은 자신에게 결여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주는 수많은 익명의 촛불들에게 뼛속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 p.410, 「‘국민 시이오’의 마케팅 전략」중에서 이명박을 찍었던 사람이건 찍지 않았던 사람이건, 딴 건 몰라도 먹거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 문제만큼은 이심전심이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은 좌우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에 속한다. …… 청와대의 고위직 중에「세계인권선언」을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충고한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제대로 채우고 싶으면 현대 국가에서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인정되는 인권 원칙을 제발 수용하라. 이문영 선생의 책 제목대로 ‘지켜야 할 최소’를 무시하니 모든 일이 이렇게 꼬이는 게 아닌가. 보수주의도 정도를 걷는다면 민주 정치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많이 있다. 인권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정치’를 작동하라. 혼란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웠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 pp.412~413, 「지켜야 할 최소가 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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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권 운동의 최전선
조효제 교수가 말하는 ‘인권을 넘어선 인권’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학자 조효제 교수의 새 책 『인권의 풍경』은 지금까지 통용된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는 협소한 ‘인권’ 개념을 폐기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저항’으로 ‘인권’의 외연을 과감히 확장할 것을 제안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정치 권력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억압 권력이 작동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인권’ 개념을 제시하고 인권 운동의 목표를 새롭게 모색하며 인권의 의미를 재천명하는 21세기 인권 선언이다. 저자가 1년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인권 프로그램 펠로로 연구 활동을 하면서 관찰한 미국 사회의 모습은 ‘인권’과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 또한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국가보안법 논란,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들을 ‘인권’의 렌즈로 살피고 분석한 글들은 ‘인권’이야말로 21세기의 진정한 대안 이념임을 보여준다. 인권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다 『인권의 풍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촛불 집회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인하며, 21세기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권’의 정의, 인권 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모색하는 ‘프롤로그’는 정치 권력이 아닌 ‘인권’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현재 보수와 진보 진영의 의식 수준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촛불 집회의 의미를 시민들의 ‘인권’에 대한 갈망이 분출한 것으로 명쾌하게 해석한다. 원고지 160장의 장문으로 쓰여진 이 ‘프롤로그’는 한국 인권학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인권론’의 중간 결산이다. 이어 1장과 2장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이야기는 저자가 2006년 여름부터 1년 동안 하버드대 로스쿨 인권 프로그램에 펠로로 참여하면서 미국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담고 있다. 주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하버드대 연구소에서 만난 이란, 남아프리카, 영국, 미국, 이탈리아 출신 동료 펠로들과 나눈 대화, 그리고 미국의 언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글들은 시종일관 유쾌함과 솔직함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저자는 ‘인권’, ‘민주주의’, ‘시민 사회’라는 3가지 키워드로 미국 사회를 진단한다. ‘1장 나의 미국 민주주의 관찰기’에는 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정책과 제도 차원에서 들여다보는 글이 실려 있다. 소외 계층 젊은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부시 행정부의 반인권적 모병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프리랜서 노동 조합, 법이 아닌 법률가가 지배하는 미국, 시민 사회 운동의 인재를 적극 채용하는 미 의회와 이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정당 민주주의 등의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장 인권의 창으로 본 미국’에는 미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일상적 삶의 지평에서 살펴본다. 미국의 대외 정책과 미국 사회를 분리해서 봐야만 또 다른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마틴 루서 킹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헬렌 켈러의 삶에서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의지와 노력을 새삼 되짚어보고, 시민 교육의 현장으로 충실히 운영되는 공공 도서관을 보며 감탄과 부러움을 느낀다. 미국 사회를 다룬 다음에 실린 3개의 장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성찰하는 글들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시민 사회의 프리즘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의 우리 사회의 변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3장 인권 담론의 새벽’은 이주 노동자의 인권, 장애인의 노동권,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 등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을 보여주는 현안과, 인권과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4장 인권을 넘어서 인권 운동’에서는 인권 운동에서 시민 사회와 엔지오(NGO)의 역할, 인권을 위한 지역적 ? 세계적 연대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신자유주의 전 지구화 시대의 인권 운동은 한 나라, 한 사회에 국한될 수 없으며, 아시아 연대, 나아가 전 세계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5장 인권 시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예를 통해 인권에 무감각한 정치 권력의 실패와, 시장 만능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심각한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권’이야말로 21세기의 유일한 대안 이념이자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을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우리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인권 관련 책들을 안내하고 있다. ‘말하는 촛불들’, 인권의 최전선에 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연이은 선거 패배와 시장 만능주의의 공세로 기존 진보 진영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청소년들이 먼저 저항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청소년들의 촛불 집회는 기성 세대의 무기력을 질타하고 전통적인 시민 사회 운동을 다시 불러 깨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한 절망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희망의 불꽃이 타오른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온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촛불 집회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주었다. 우선 보수파에게는 한국 사회에 건너서는 안 되는 일종의 사회적 마지노선이 존재함을 각인해준 계기가 되었다. 즉,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소수만을 위한 정책을 펴거나, 혹은 그런 식으로 인식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라는 교훈을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선출되기 전부터 신자유주의, 시장 중시, 경쟁 체제를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또 그러한 바탕 위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던 정치 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유권자는 집권 정당의 이념적 색채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거국적(one-national)’ 또는 ‘친 서민적’ 경제·사회 정책을 심정적으로 선호한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한국 보수 정당의 운신의 폭에 관해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촛불 집회가 진보파에게 준 교훈도 있다. 그것은 이제 진보파의 주장도 경제적 이념의 언어보다는 ‘민주주의’라는 일반적 화두를 통해 제기해야 효과적이라는 교훈이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자생적 저항이 발생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가 수도 없이 제창된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말 그대로 해석하는 신세대 시민들은 전통적인 진보파의 구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그런 용어에 거의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때 말하는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경제 영역, 직장, 생활 현장, 더 나아가 사적 인간 관계에까지 적용되는 실천 담론이라 할 것이다. 촛불 집회는 정치 공동체의 운용에 있어 대다수 시민들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overlapping consensus)’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극좌·극우의 양극단을 배제한 사회적 시장 경제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지 않고,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말하는 불꽃들”로 변신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인권을 ‘중첩되는 합의의 영역’으로 본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적어도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인권을 좌우도, 남녀도, 노소도, 민족도, 피부색도 초월한 어떤 공통의 영역, 일종의 신성 불가침 영역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인권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투쟁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에서 “나무는 꽃 피우는 불꽃이며, 인간은 말하는 불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촛불 집회에 모인 수많은 남녀노소, 특히 촛불을 처음으로 주도했던 청소년들의 열정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민 혁명을 이끄는 “말하는 불꽃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슐라르는 또한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 시계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내겐 그 말이 촛불 집회의 “말하는 불꽃들”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주체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우리의 ‘촛불 혁명’은 표면적으로는 시적 상상력과 직접행동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특징을 지녔고, 심층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갈망이 짙게 깔린 거대한 움직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권을 ‘사회적 고통을 야기하는 모든 억압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움직임’이라고 이해한다. 이때 ‘0교시’, ‘우열반’, ‘일제고사’로 상징되는 교육 억압 권력에 대한 자연 발생적인 저항을 배경으로 하여 청소년들이 제일 먼저 촛불을 밝혔던 사실에 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를 이런 각도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광우병 우려’가 구체적인 하나의 사회 이슈임과 동시에, 폭넓은 사회적 고통을 대변하는 강렬한 ‘은유’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촛불 집회는 모든 억압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움직임, 즉 인권의 외침이 현실에서 발현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다가왔다. - [프롤로그]에서 ‘인권’이란 무엇인가? 보릿고개가 있었던 과거와 비교해 살기가 좋아졌다고 해서 인권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 인권 문제나 장애인 인권 문제처럼 과거에는 먹고 사는 문제에 밀려 사치스러운 이야기로 치부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한 인권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지금 우리는 곳곳에서 나와 너의 권리,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의 권리가 서로 충돌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이럴 경우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여러 권리 중에서도 인간의 핵심적 권리인 인권이 가장 중요한 권리이지만, 어떤 권리가 인권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누가 어떻게 판가름하는가? 인간의 핵심적 이익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데 인권을 만고불변의 ‘보편적 권리’라고 해버리면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처럼 인권은 대단히 복잡한 개념이고, 모순과 긴장을 포함한 담론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인권’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권’을 ‘인간의 기본적 권리’ 정도로 해석하는 협소한 정의에 반대한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의 ‘인권’은 인간의 존재와 본질적 이익을 침해하는 모든 요소들(국가, 집단, 개인, 정치 ? 경제 ?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자 ‘대항 담론’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인권에 대한 우리의 사고가 더욱 확장되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이제 인권은 공평하고 좋은 세상의 상징적 등가물, 즉 ‘은유로서 인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치유제로서 인권이다. 그것은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억압 권력을 찾아내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에 맞서는 대항 권력을 조직하는 운동으로서 인권이다. 그렇다면 ‘은유로서 인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한 가지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꿈꾸는 좋은 세상의 그림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 분모로서 그것은 점점 더 민주주의 사상 자체와 비슷한 내용을 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란 ‘민의 평등’과 ‘민의 지배’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오늘날 인권의 목표는 첫째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둘째 모든 의제 설정 영역에서 민주적 원칙을 준수하라, 등 민주주의의 원칙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권의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인간다운 세상이 열린다 인권 운동은 인권 단체의 활동만이 아니라 인권 보호와 인권 신장에 개입하는 모든 움직임을 가리킨다. 인권의 의미가 재발명되고 있는 지금, 인권 운동의 목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오늘날 인권 운동의 ‘목표’는 성문화된 인권법의 준수를 넘어 모든 억압 권력과의 투쟁으로 바뀌고 있다. 인권 운동의 ‘방법’은 국가를 인권 문제 해결의 유일한 주체로 간주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각종 비국가 행위자들(초국적 기업, 무장 반군, 정부 간 기구 등)을 인권의 의무 주체로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인권 침해의 ‘사실’에 관한 새로운 차원들 - 구조적 인과 요인, 맥락적 조건, 인권 침해의 경로, 사실 자체의 부인 - 도 더욱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인권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 역시 개인을 단순히 보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적극적인 자력화와 권리·의무를 함께 지향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인권 운동은 개인의 권리 하나 하나를 일일이 요구하는 1단계를 넘어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활짝 핀 인간’을 지향하는 2단계까지 꿈꿀 필요가 있다. ‘활짝 핀 인간’은 자기 역량이 최대한 고양되어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이다. 그러한 ‘활짝 핀 인간’은 자기 권리를 100퍼센트 요구하는 행위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의무를 다하는 행위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활짝 핀 인간’은 언제라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으면서도 그것을 일일이 쟁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역량을 인간 공동체의 선익을 증진하는 데에 사용할 줄 안다. ‘활짝 핀 인간’은 자기 권리를 얼마든지 지킬 줄 알지만 약자를 위해서라면 그 권리를 양보할 줄도 아는 인간이다. 그러한 ‘활짝 핀 인간’을 지향하는 인권 운동은 인권이 자칫 극단적으로 자유 지상주의적인 어떤 개념, 자기 권리를 찾아먹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어떤 좁은 개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활짝 핀 인간’을 지향하는 인권 운동은 인권 개념이 그 사회의 정치적·도덕적 매트릭스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기심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인권은 자칫 잘못하면 ‘사익’에 가까워지기 쉽고, 연대성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인권은 공동선과 부합되는 인권이 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목격하고 참여했던 촛불 집회가 민주적 연대성을 희구하는 큰 바다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인권을 외치는 ‘활짝 핀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불꽃의 함성이었다고 믿고 있다. ― [프롤로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