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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실의 비밀
《삼국사기》에 없는 왕위 계승 미스터리
김종성
역사의아침 201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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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신라 왕실은 누가 지배했는가
특이한 정치체제의 나라 | 신라는 3성제 국가였나 | 역성혁명론이 부합하지 않는 신라사 | 신라는 몇 번을 멸망했는가 | 삼국사기 기록의 오류

제2장 고대사회와 성씨의 의미
성씨 없는 사람들 | 성과 씨의 구분 | 성씨의 복합적인 기능

제3장 왕실 수장이 된 사위
이방인의 출현 | 석탈해, 박성 왕실의 사위가 되다 | 사위에게도 부여한 왕위 계승권 | 왕권 제안을 고사한 석탈해 | 차후를 노린 선택 | 사위와 공주의 독특한 지위 | 석탈해 계통의 왕권 승계

제4장 또 다른 이방인의 등장
신라에 도래한 두 번째 외래인 | 박성의 일원이 되다 | 양자의 태자 지위를 인정하다 | 김알지의 진짜 정체 | 외세로부터 신라를 보호하는 비결 | 왕위를 양보한 김알지 | 김알지 혈통의 왕위 계승

제5장 왕비족의 공존
고허촌의 협력을 업은 박혁거세 | 초대 왕비 알영의 등장 | 고대사회에서 왕비의 위상 | 알영 혈통의 지위 세습 | 왕비족의 형성과정 | 필사본 화랑세기, 신라사를 푸는 열쇠 | 마복녀 마복자 풍습

제6장 고대 일본과 신라 왕실의 유사성
멀지만 가까운 나라, 왜국 | 일본 천황가에 나타나는 관념 | 왜국 황후의 지위 세습 | 변화를 거듭한 일본 왕비족 | 천황가가 장수한 비결

제7장 왕비족의 변화
신라의 국운을 세운, 조문국 침공 | 신라에 시집온 조문국 공주 | 진골정통의 생성 | 박제상의 충성심 | 고구려의 위협과 대원신통의 출현

제8장 김춘추와 성골 진골 문제
백제 의자왕의 도발과 신라의 고비 | 신라의 위기, 김춘추의 위기 | 만명과 김서현의 극적인 연애 | 신라 왕실의 신기원이 된 김춘추

나오는 말
참고문헌 해설

저자 소개 1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과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으며,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과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으며,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강사로 삼성 신입사원들에게 역사를 강의했고 기독교방송(CBS), 교통방송(TBS), 불교방송(BBS) 등 여러 방송의 역사 코너에도 고정 출연했다. 지금은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논쟁 한국사』, 반일 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세종이다』,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조선 노비들』, 『왕의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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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59g | 145*210*15mm
ISBN13
9791187493006

책 속으로

신라에서 역성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신라 왕실의 성씨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라 왕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씨, 즉 박성이었다. 그렇다면 석탈해나 김춘추처럼, 신라 역사에 숱하게 등장하는 석씨 왕과 김씨 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 역시 간단하다. 우리가 석씨 왕이나 김씨 왕으로 알고 있는 인물들이 실은 석씨나 김씨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다 박성 가문의 일원이었다. --- p.39「제1장_신라는 누가 지배했는가」중에서

박씨는 단순히 박혁거세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표지에 그치지 않았다. 신라 사회에서는 박씨 집단의 소속이라는 사실이 개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최고의 지표였다. 그런데 김부식은 《삼국사기》〈신라 본기〉를 편찬하면서 이와 같은 고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았다. 그는 신라 사회에서 박씨가 지니는 무게를 무시했다. --- p.56「제2장_고대사회와 성씨의 의미」중에서

신라 왕실은 외래 세력의 왕위 계승을 허용하되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자 했다. 외래 세력이 기존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박성 왕실의 일원이 되어 신라 왕권을 획득하는 것만 인정했던 것이다. 외부 세력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체면을 유지하는, 나름의 유연성을 발휘했다. 그래서 사위에게 왕위를 넘기고 양자를 태자에 책봉하는 사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긴 관행은 석씨, 김씨를 박성이라는 커다란 테두리에 묶어두는 효과를 산출했다. --- p.133「제4장_또 다른 이방인의 등장」중에서

중국대륙의 정세 변화로 고구려가 한반도를 압박하는 위기 상황에서 신라에 대원신통이 출현했다. 고구려 출신 보미의 후손이 왕비 자리를 차지하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대원신통이라는 새로운 왕비족이 등장했던 것이다. 진골정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격변하는 국제정세가 대원신통을 출현시킨 배경이었다. 진골정통이 신라가 대외 팽창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의 상황이 낳은 산물이었다면, 대원신통은 신라가 외부 침략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의 상황이 낳은 산물이었다. --- p.222「제7장_왕비족의 변화」중에서

성골과 진골의 분류 기준이 무엇이었는가는 오늘날의 학자들이 해석에 의해 결정할 것이 아니라, 당대 신라인의 관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신라인들은 본인은 왕족이지만 배우자는 왕비족이 아니었던 김춘추를 진골의 시작으로 보았다. 김춘추의 등극은 왕족과 왕비족의 결합을 통해 왕권을 유지하는 종래의 체제를 뒤엎는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김춘추 이후의 왕들은 왕비족과의 결혼이라는 제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점에서 김춘추는 신기원의 출발점이었다.

--- p.240「제8장_김춘추와 성골 진골 문제」중에서

출판사 리뷰

신라 천 년 권력의 비밀, 신라를 통솔한 이방인 왕들

신라는 991년의 역사를 가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왕조를 유지했던 나라다. 조선과 고려의 수명은 500년 남짓에 불과했으며, 신라와 경쟁 관계였던 백제와 고구려 또한 신라보다 300년 일찍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신라는 고구려만큼의 군사력을 갖추지도, 백제만큼 지리적인 이점을 누리지도 못했다. 여러모로 국력이 미약했던 신라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신라 건국 초기, 가야 김수로와의 경쟁에서 패한 석탈해가 함선 500척을 거느리고 신라에 등장했다. 경주에서 출발한 소국이었던 신라로서는 그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신라 왕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석탈해를 왕실 일원으로 맞이한 것이다. 석탈해는 제2대 남해왕의 장녀인 아효와 혼인했고, 나아가 제4대 왕에 올랐다. 김씨 왕의 시조가 된 김알지의 신라 진입 과정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이처럼 신라 왕실은 혼인과 입양 등을 통해 위협 세력을 포섭함으로써 외부와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한편, 박성 왕실의 정체성은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것이 바로 신라가 천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신라 왕실의 숨은 주역, 왕비족의 존재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으나 신라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존재가 있다. 바로 왕비족이다. 신라에서는 왕의 혈통뿐 아니라 왕비의 혈통도 세습되었다.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 등의 사료에 따르면, 초기 신라의 왕비 자리는 제1대 왕비 알영의 후손이나 가까운 혈족으로 채워졌다. 아울러 신라 왕실은 외래 세력을 포섭해 왕실을 보전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왕비의 혈통에 변화를 줌으로써 대외 환경의 변화에 대응했다. 2세기경 신라가 북방으로 영토를 팽창하는 데 조력한 조문국의 공주를 왕실로 받아들여 진골정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고, 5세기경 고구려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때에는 고구려 여성 보미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원신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던 것이다. 왕비족은 신라의 국운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높았음을 시사한다.

박, 석, 김의 나라는 없다? 《삼국사기》가 감춘 진실

김부식은 《삼국사기》〈신라 본기〉를 서술하면서 신라 왕실에 박씨, 석씨, 김씨 3대 왕족이 공존했던 것처럼 묘사했고, 왕비족의 역할을 축소했다. 그의 서술은 우리 머릿속에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신라를 ‘통치’한 것은 어디까지나 박성 단일 왕족이며, 석씨와 김씨는 신라 왕실이 포섭한 외부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김부식은 그러한 사실을 감추었을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김부식은 철저한 유교주의자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신라 왕실의 왕위 계승 체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에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 왕실이 외부 혈통을 박성의 일원으로 수용한 사실은 드러내지 않은 채, 마치 신라가 3성제 국가였던 것처럼 서술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려 시대 유교 사관에 입각해 서술된 역사서에 의존해 신라를 왜곡해왔다. 이제 해묵은 통념과 상식을 벗겨내고, 신라의 진면목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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