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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대신해서-엄마의 편지
사막의 중국반점 결혼 이야기 의술로 세상을 구하다? 인형 신부 황야의 밤? 사막의 샘 불나비사랑? 사막의 이웃들? 풋내기 어부? 죽음의 부적?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자수성가 작가의 말-귀향 소감 옮긴이의 말-그리운 싼마오, 그리운 호세 |
三毛,본명 : 천핑(陳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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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광활한 하늘 아래 가득 펼쳐진 금빛 모래 위를 오직 우리 두 사람의 작은 그림자만이 걷고 있었다. 사방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사막, 바로 이 순간의 사막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당신은 아마 걸어서 결혼하러 가는 최초의 신부일 거야.” “나는 낙타를 타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고 싶었다고. 그 기세가 얼마나 웅장하겠어! 으, 너무 안타깝다!” 나는 낙타를 타고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 p.33, 「결혼 이야기」 중에서 “관두자. 쿠카 너한테 먼저 물어볼 테니 너도 이웃 여자들한테 가서 좀 물어볼래? 우리 집 물건 중 칫솔하고 남편 빼고 너희가 빌려 가지 않은 게 뭐가 있니?” 쿠카는 내 말을 듣자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곧바로 물었다. “칫솔이 어떻게 생겼는데요?” 그 말에 울컥해서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야! 나가, 당장 나가!” 쿠카는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말했다. “나는 그냥 칫솔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리고 난 당신 남편은 필요 없다고요, 진짜로…….” 나는 문을 닫았다. 거리에서 쿠카가 이웃 여자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세요, 보세요! 싼마오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요!” 이런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내 사막 생활은 그네들 덕분에 오색찬란해졌다. 외로움을 맛볼 틈도 없었다. --- p.133, 「사막의 이웃들」 중에서 이 가련한 작은 마을에는 낡고 지저분한 영화관 하나밖에 없고, 신문과 잡지는 모두 오래된 것뿐이었다. 텔레비전 방송은 평균 한 달에 두세 번쯤 나오는데 화면 속의 사람들이 꼭 귀신 그림자 같아서 혼자 있을 때는 무서워서 볼 수도 없었다. 수돗물과 전기는 밥 먹듯 끊기고, 산보라도 할라치면 하루 종일 미친 듯이 불어 대는 모래바람을 맞아야 했다. 이런 나날을 사하라 사람들은 유유자적 헤쳐 나갔지만, 유럽인들은 툭하면 술주정이었다. 부부싸움도 잦았고 독신들은 자살하는 일도 빈번했다. 모두 사막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일어나는 비극이었다. 우리는 ‘생활 속의 예술’을 이해하려 애썼기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었다. --- p.138, 「풋내기 어부」 중에서 “당신의 사막이야. 지금 당신은 그의 품에 안겨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메어 왔다. “이방인, 가자고!” 호세는 몇 년 전부터 나를 이렇게 불렀다. 당시 카뮈의 소설이 유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방인’이 나에게 아주 정확한 호칭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줄곧 이 세상의 중생 가운데 하나라고 느끼지 못하고 겉돌았다. 늘 일상의 생활궤도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며 이유도 없는 설명을 지어냈던 것이다. --- p.204, 「자수성가」 중에서 생명은 이렇게 황폐하고 낙후되고 빈곤한 곳에서도 똑같이 무럭무럭 활기차게 자란다. 결코 생존을 위해 안간힘 쓰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로병사란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노라니, 그들의 안온함이 우아하게까지 느껴졌다. 내 관점으로는, 속박이 없는 자유로운 생활이 곧 빛나는 문명이었다. --- p.205, 「자수성가」 중에서 “싼마오,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고 텔레비전도 봐요. 우리가 집에 다시 데려다 줄게요. 혼자 우울해하지 말고…….” 그들의 호의에는 나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거절해 버렸다. 며칠간 나는 마치 상처 입은 야수처럼 아주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분노했다. 심지어 나약해진 나머지 목 놓아 울기도 했다. 사하라 사막은 이토록 아름답건만, 여기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와 끈기를 대가로 지불하며 스스로 적응해 가야 했다. 나는 사막을 미워하지 않았다. 단지 사막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서 작은 좌절을 겪었을 뿐이었다. --- p.216, 「자수성가」 중에서 친구들, 우리는 과거에 서로 알지 못했어요. 지금도 서로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안다고 꼭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만난다고 해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타이베이에 있다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리카에 있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서로를 이해하고 느낀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이나 마찬가지죠! --- p.250쪽, 「귀향 소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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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의 첫사랑!
세상은 나의 연인! 중국인들이 가장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작가, 사막을 사랑한 동방의 집시 싼마오의 대표작 정식계약 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막을 꿈꾸게 만든 이야기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무심코 뒤적이다 사하라 사막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인데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전생에 속한 기억의 향수와도 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낯선 대지에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말괄량이 대만 처녀, 단순무식 스페인 총각과 사하라 사막에서 결혼하다! 고국을 떠나 세계 각국을 떠돌던 호기심 많은 대만 아가씨 싼마오는 잡지에서 우연히 본 기사에 그대로 꽂혀, 사하라 사막행을 결심한다. 싼마오를 사랑한 연인 호세는 그녀의 고집을 꺾고 자기 곁에 잡아두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짐을 챙겨 먼저 사막으로 가서 일자리를 얻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사막의 품에 안긴 싼마오! 싼마오와 호세는 서사하라의 라윤이라는 소도시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사막의 작고 누추한 오막살이에서 아주 특별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독특하고 정겨운 사하라 이웃들과 함께하는 기상천외한 신혼생활!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었으니! 사막은 더없이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그곳에서 사는 것은 힘들고 불편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 곁에 있기 위해 한발 앞서 사막으로 달려갔던 열정적인 남자는 밥 달라는 밥통이 되어가고, 가난하고 소박해 보이는 이웃들은 알고 보니 알부자에 순 얌체가 아닌가. 사막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속박 없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사막에 왔던 싼마오 자신도 문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는커녕 쓰레기장에서 폐품을 주워다 가구 만들고 집 꾸미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싼마오는 “나는 사막을 미워하지 않아. 단지 사막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서 작은 좌절을 겪었을 뿐.”이라고 씩씩하게 외치며, 황량한 사막에서 알콩달콩 티격태격 살아가면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삶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용기에서 샘솟은 상쾌한 이야기를 만나보시라! “세 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선생님의 〈싼마오 유랑기〉랍니다. 제가 커서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싼마오三毛’라는 필명을 가진 것은 선생님께서 창조하신 ‘싼마오’를 기념하고 싶어서였어요. 선생님의 책 덕분에 저는 한평생 힘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즐겨 보게 되었어요. 저의 어린 시절을 풍부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싼마오가 1988년 〈싼마오 유랑기〉의 작가 장러핑 선생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사막과 낭만, 유랑과 모험의 작가 싼마오 싼마오는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본명은 천핑陣平이다. 1943년 중국 쓰촨 성 충칭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이주했다. 싼마오는 어릴 적부터 골치 아픈 아이였다고 한다. 이해심 많은 부모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깊은 열등감에 빠져 반항적이고 난폭하면서도 여리고 섬세하고 우울한, 복잡다단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결국 학교도 그만두고 가정교육을 받았고, 스물네 살이 되자 아예 고국을 떠나 버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싼마오의 부모는 그런 딸 때문에 애태우면서도 늘 딸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었다. 이 세상의 속박에 적응하고 싶지도 않고 적응할 수도 없었던 싼마오는 알 수 없는 갈망을 품은 채 세계 각국을 떠돌았다. 그리고 1973년 북아프리카의 서사하라에서 스페인 남자 호세와 결혼했다. 사실 싼마오로서는 호세와 결혼해 사하라에 정착한 것이 부모를 안심시킨 더없이 큰 효도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된 것은 부모에게 드리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기상천외한 신혼생활을 담백하고 위트있게 그려낸 첫 작품 『사하라 이야기』는 출간 즉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싼마오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자신의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흐느끼는 낙타』 『허수아비의 수기』 『너에게 말 한 필을 보낸다』 등 많은 작품을 썼다. 자유롭고 발랄하고 소탈하면서도 한구석에는 깊은 우수가 어려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커다란 사랑을 받았고, 대만뿐 아니라 중국 대륙의 독자들도 사로잡았다. 서사하라가 전란에 휩싸이자, 싼마오와 호세는 사하라 사막을 떠나 카나리아 군도에 가서 살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호세는 몇 년 후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 후 싼마오는 유랑 생활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와 문화대학에서 문학 창작을 가르쳤고,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해 나갔다. 책뿐만 아니라 대만의 절창 제예와 반월운의 노랫말을 쓰고, 임청하와 장만옥 주연에 금마장 8개부문을 휩쓴 영화 〈곤곤홍진滾滾紅塵〉(역시 대만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장아이링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는 〈홍진〉으로 개봉되었다)의 각본도 썼다. 이 각본을 마지막 작품으로 48세의 나이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싼마오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아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그녀를 그리워하고 추모하며 싼마오와 호세가 하늘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싼마오의 글은 모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산문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또 그녀의 죽음이 자살인지 아닌지를 놓고 아직까지도 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다. 싼마오는 2007년 중국의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에서 조사한 ‘현대 중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00인’에서 루쉰, 조설근, 바진, 진융, 이백에 이어 6위에 오르기도 했다. 대만의 황관출판사에서 27권 의 싼마오 전집이 출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