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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서문 제1장 유럽 중심주의적 역사 서술 제2장 막스 베버 : 서구의 합리성 제3장 린 화이트 2세 : 유럽인의 창의성 제4장 로버트 브레너 : 시간의 터널 제5장 에릭 L. 존스 : 유럽의 기적 제6장 마이클 만 : 역사의 서향 전진 제7장 존 A. 홀 : 민주적 유럽 제8장 재레드 다이아몬드 : 유로 환경졀정론 제9장 데이비드 랜디스 : 제국의 역습 제10장 유럽인들이 다른 인간 집단보다 뛰어난 이유 제11장 유럽 중심주의적 범용 모형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James Morris Bla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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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오류: 근대 유럽 사회는 모든 사회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며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관개 농업에 의존해 ‘동양적 전제주의’가 발달한 아시아와 이집트의 주요 문명들은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이었다. 오직 ‘자유로운’ 유럽인들만이 진보와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베버의) “동양적 전제주의” 가설에 맞는 지역은 한 군데도 없다. ……우선 상당수 아시아 문명이 관개에 의존하지 않았고, 관개에 의존했던 문명들에서도 천수농을 같이 짓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 나중에는 아시아 거의 모든 지역에서 관개가 이루어졌는데, 농사를 짓기에 땅이 너무 건조했다기보다는 관개가 식량 생산을 집약화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개는 하나의 문화적 양상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 체제를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라 사회 체제가 낳은 한 결과라는 것이다. --- p.66 중세 유럽 도시들에는 “자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역사를 포개 압축하는 오류를, 다시 말하면 근대 도시들의 특징들을 시간을 거슬러 중세 도시들에 덧씌우는 오류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앞에서도 지적했던 바 유럽적인 모든 것에서는 “자유”를 느끼고 동방적인 모든 것들에서는 “전제”의 냄새를 맡는 조금 더 포괄적 차원의 확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 pp.76~77 린 화이트 2세의 오류: 무거운 쟁기, 말굴레, 삼포식 돌려짓기 등 기술 혁신에 의한 농업 혁명은 오직 중세 유럽에서만 일어났다. 서구 기독교 특유의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유럽인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유럽은 가장 먼저 봉건주의로 진입했고, 다시 자본주의와 근대로 전진했다. 화이트에게 쟁기는 원인이었고 사회 변화는 그 결과였다. ……중세 초의 쟁기에서 지금(“우리 자신”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로까지 거대한 도약이 일어나고 있다. ……(1) 무거운 쟁기는 유럽에서(아니면 유럽에서만) 발명되지는 않았으며 (2) 북유럽에서는 화이트가―어쩔 수 없이―제시했던 시기보다 훨씬 전에 무거운 쟁기를 사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 한 유럽 학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화이트의 논거는 “역사적 검증을 해봐야 할 필요도 잊어먹는 지경까지 나아간 ‘진보’를 향한 열망”을 드러낼 뿐이다. --- pp.86~90 “서방 문화”의 “거대한 전변”을 이 하나의 도구에 끌어다 매는 것은―우선 이런 식의 인과 관계를 제시했기 때문에, 또 동방 문화를 무시했기 때문에―분명히 잘못이다. ……한마디로, 이제 린 화이트 2세는 중세는 “콩으로 시작해 콩으로 끝났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포제의 채택은 농민들이 충분한 땅을 갖지 못하고 지주들은 언제나 더 많은 잉여를 짜내려 하는 농업 체제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농업 집약화 과정의 전형적인 한 사례였을 뿐이다. 농부들은 어디서나 창의적인 것이다. …… 기술결정론은 언제나 해체돼 다른 논거로, 곧 기술이 설명 주체가 아니라 설명 대상이 되는 논거로 변해야만 한다. --- pp.92~98 사실 착상들 대부분은 공유되었다. 중세에는 동반구 전역에서 새로운 착상이나 산물, 발명품, 기술, 기술 보유자들이 종횡으로, 그것도 대규모로 확산되었으며, 이에 따라 문화에서 과학이라는 측면만을 놓고 보면 모든 주요 문명들은 공동의 진화 과정을 거쳤다. ……중세 유럽인들이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근대적 믿음을 가졌다고 몰고 가는 것은 어떻게 봐도 옳지 않다. 이 믿음은 어디까지나 진보 자체의―자본주의 성장의, 유럽인들의 생활수준 향상의, 그리고 근대에 생겨난 다른 속성들의―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 p.104 로베트 브레너의 오류: 유럽 바깥 세계는 인간 사회의 발전에 전혀 이바지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근대화는 전적으로 유럽 안에서 시작되었다. 계급투쟁에서 패한 잉글랜드 농민들이 토지를 임차해 이윤을 내면서 ‘느닷없이’ 합리성을 갖추고 기술이 발전한 결과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가장 평등을 강조하는 학설에 속해 있으면서도…… 유럽인들이…… 우월했다고 보는 입장…… 유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대의 식민지 해방 투쟁들은 확고하게 지지하면서도 세계 체제의 중심부, 곧 유럽 세계에서 일어나는 투쟁과 변화들만이 세계 역사 변화의 실질적 결정 인자라고 언제나처럼 주장했다. --- pp.111~114 (브레너의) 계획이란…… 상업과 교역은 중세 동안은 물론 그 이후 기간에도 자본주의에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비유럽 세계가 자본주의의 저 1492년 이후 등장에서 어떤 중요한 구실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는 중세 말에 유럽과 두 대륙 사이에 이루어진 교역은 무시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등장은 전적으로 유럽이…… 사실은 북서유럽이…… 잉글랜드가…… 잉글랜드의 농촌이 이루어낸 일이 된다. --- pp.122~133 우리가 알기로는 15세기가 아닌 14, 16, 17세기에 속했던 과정들이 이 혁명적인 전화 동안 모두 일어났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바로 브레너의 가설이 전적으로 경험적 가설은 아니며, 오히려 신비주의를 꽤 많이 포함한다는 사실. ……자본주의를 미리 정해진 모양이 있는 실체로, 어떤 결정체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등장할 때는 완전한 상태로 한번에, 마치 인간사를 관장하려고 신이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오듯 홀연히 등장하는 것이다. …… 자본주의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은 합리성을 갖추게 된다. 갑자기 기술적으로 창의성과 혁신성이 발휘되는데, 브레너는 봉건주의 시대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갑자기 노동하는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데, 다시 말하면, 자유로운 노동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정들을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 pp.139~140 재레드 다이아몬드 오류: 빙하기 이래 모든 역사는 사람이 진보하기에 유리한, 유라시아의 온대 중위도 지역에서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지형적으로 단일한 국가(제국)가 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이 아니라, 여러 국가로 나뉘어 경쟁했던 유럽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다이아몬드의 다음 정식에 깔려 있는 막무가내 과학주의를 기억해두고 넘어갈 일이다. 곧, 어느 한 지역에서 수천 년에 걸쳐 문화적 진보가 일어나봤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저 신석기 시대에 자연 환경이 이 지역에 남긴 것으로 돼 있는 자국들은 지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에서 문화는 보잘것없는 작용력일 뿐이다. --- p.315 다이아몬드의 핵심 논지는 유라시아 온대에 들어가는 환경들은 상대적으로 서로 비슷하며, 거의 이 때문에 세계 나머지 지역과는 아주 다르게 이 지역 전체에 걸쳐 식량 생산이 추정으로는 빠르게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이 온대에서 농업 생산성이 높은 지역들은 사막이나 높은 산맥 따위가 가운데 끼여 사실 완전히 따로따로라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온대를 하나의 연속체로 보려면 다이아몬드로서는 이 지역 한가운데는 결코 온대가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무시해야만 한다. 이 한가운데가 열대 인도다. --- pp.321~322 작물화의 핵심은 한 지역의 인간 거주자들에게 더 잘 맞도록 인위 선택을 비롯한 다른 수단을 써서 작물들을 바꾸는 과정에 있다. 언제나 이 과정에는 다른 재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몇몇 변화들이 수반된다. 진짜 생태상의 한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 가능한 적응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거의 어느 열대 지역이든 온대 유라시아에서 작물화된 대다수 주요 곡물에 잠재적으로는 적합하다. …… 다이아몬드의 잘못은 식물 생태의 자연 결정자들을 은근슬쩍 인간 생태의 결정자들로 취급하는 데 있다. 이건 제대로 된 과학은 아니다. --- p.323 왜 하나의 전체로서 유라시아나, 유럽과 중국이 함께가 아니라, 유럽이 일어나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 중국은 지형적으로 고립된 지역들로 나뉘어 있지 않은데…… 유럽은 반면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통일될 수가 없었는데, 들쭉날쭉한 해안선 때문이고, 또 뚜렷이 구분되는 지형상의 높낮이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단일성은 다시 중국이 단일 국가, 곧 제국이 되도록 이끌었고, 그리고 제국이라고 하면 속성상 반드시 전제적일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여기서 다이아몬드가 다루는 역사상의 흐름들은 지난 마지막 500년의 역사에 속하고, 이 기간에 일어난 굵직굵직한 변화들 중에서 그의 논증과 관련이 있는 대부분은 평평한 북서유럽에서 주로 일어났다. …… 북유럽의 잗다란 봉건적 정체들…… 대부분의 국경은 지형상의 장벽을 따르지 않으며, 이 국가들의 문화적 핵심지 대부분도 생태상의 핵심지들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 하나하나는 중국만큼 전제적이었고…… 전쟁을 벌이는 국가들일 때가 많았다. --- pp.339~343 그는 확산이 너무 적어도 발전이 더뎌지지만 반대로 확산이 너무 많아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복잡한 가설을 내놓는다. ……유럽은 지형에 따른 구별이 너무 약하지도 너무 심하지도 않아 딱 균형이 맞았고, 이 때문에 신비스럽게도 유럽에서는 중국에서보다 혁신들이 더 집약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나는 다이아몬드의 논증을 “과학주의적”이라고 묘사했는데…… 그가 이런 문제들에 믿을 만한 과학적 해답들을 내놓았노라고, 실제로는 과학적 해답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주장하기 때문이고, 낡은 데다 틀렸다고 결론 난 환경결정주의적 가설들은 끼워 넣으면서도 정작 사회과학 쪽에서 나온 발견들은 통째로 제쳐놓기 때문이다. 그건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다. --- pp.344~346 에릭 L. 존스의 오류: 유럽인들은 ‘적당한’ 기후에서 관개 농경이 아닌 천수농경을 하며 ‘자유롭게’ 흩어져 살았고, 출산을 조절하여 핵가족을 유지했다. 그들은 이상할 정도로 창의적이었고, 팽창 본능을 가졌으며, 타고난 자본가들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이와 정반대였다. 마이클 만의 오류: 모든 문화적 성취의 ‘전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북서쪽으로만 움직였다. 인도유럽어족을 쓰는 철기 시대 농민 특유의 ‘자본주의적’ 특성과 기독교의 합작품인 ‘유럽의 합리적 조급성’이 이 전위를 줄곧 북서쪽으로 밀어 올렸다. 존 A. 홀의 오류: ‘적당히’ 자유로운 정치 체제, 비옥한 토양, 합리적이고 금욕적인 주민 그리고 기독교를 가졌던 중세 유럽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로 이행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제국, 카스트, 목축이라는 방해물이 발전을 가로막았다. 데이비드 랜디스의 오류: 유럽 중심주의가 나쁘다고 하지만 나는 ‘바른생각’보다는 진실이 더 소중하다. 유럽은 진실로 고대부터 환경, 문화, 정치, 경제, 기술, 사고방식 등 모든 영역에서 우월했다. 유럽의 제국주의는 인간적 충동의 발현으로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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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대가 블로트, 유럽 중심적인 주류 역사학계에 도전장을 내밀다
『역사학의 함정,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는 오직 유럽만이 부단한 진보의 과정을 거쳐 왔고, 여타 지역은 유럽인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전파되어 발전했다는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 서술에 날 선 비판을 가하는 책이다. 우리 시대 역사학과 지리학의 탈식민화에 학술 활동의 대부분을 바쳤던 저자 제임스 M. 블로트는 사회학의 시조인 막스 베버에서 시작해 린 화이트, 마이클 만,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저명한 역사학자 여덟 명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종교 사회학, 기술결정론, 유로 마르크스주의, 환경결정론 등 좌우를 막론한 다양한 관점에 서 있는 인물들로, 현대 유럽 중심주의 논의의 전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평생 비판과 논쟁을 몰고 다녔던 블로트는 이 책을 통해 주류 역사학이 우리의 세계사 이해를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왔는지를 가감 없이 폭로하고 있다. 유럽 중심적 세계사 서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명쾌하게 정리 블로트는 1500년 이전까지 유럽과 비유럽 세계는 비슷한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고, 16세기 이후 유럽이 급속히 발전한 것은 식민지의 부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독 유럽인들만이 식민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아메리카와의 지리적 근접성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여덟 학자의 저작에 숨어 있는 억지 논리와 방법론적 결함을 조목조목 논파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이 여덟 학자가 유럽의 우월성을 증명한다며 내놓은 논거들을 30가지로 정리하고,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 서술의 범용 모형을 제시하며 우리 시대 역사가의 대부분이 이 모형의 어딘가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비판한다. 블로트의 명쾌한 정리에 힘입어 독자는 과거의 역사 이해를 반성하고 근대의 기원과 이후의 역사 전개에 관한 대안적 이해를 모색해볼 수 있다. 논리와 해석의 싸움을 읽는 묘미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히 주눅이 들고 명쾌하게 반박하지 못했던 유럽의 우월함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는 통쾌함과 세계적 석학들의 논리에 이렇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역사를 읽는 방법과 태도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독자에게 역사 해석을 위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출간 의의 다원적 근대, 새로운 세계사를 위한 ‘연구자 운동’의 전형 2007년 한국서양사학회에서는 창립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며 ‘근대성의 인식과 유럽 중심주의의 극복’을 주제로 삼았다. 그 자리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서양사 연구에서 나타났던 서구 근대를 보편화하는 태도를 반성하고, 유럽 중심주의를 탈피한 새로운 세계사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소개된 이후 국내에서도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이어졌지만, 당위적 인식에 그칠 뿐 실제 연구나 역사 서술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에 역사학자들 스스로가 이를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골랐던 것이다. 유럽 중심주의의 극복이 여전히 가장 큰 화두인 역사학계에 블로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대단히 강렬하다. 그는 미국의 일류 학자이면서도 제3세계에서의 ‘참여 연구’를 통해 근대화 이론, 유럽 중심주의, 식민주의 등을 비판하며 세계사의 탈식민화에 평생을 바쳤다. 반성과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제3세계의 해방 투쟁이나 사회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물론 서구 학계의 뿌리 깊은 모순을 드러내는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구미의 지식인들은 선의나 동기의 순수함 또는 진지한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열강이나 특히 미국인의 경우 미국의 국가 이익에 봉사하기 십상인 것이 20세기 후반기의 국제 현실이었다. 하지만 블로트는 달랐다. 그는 ‘연구자 운동가’의 귀감이라고 할 만한 자세를 일생 동안 일관해서 보여주었다. - 추천사(최갑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중에서 자신의 이와 같은 학문 활동을 종합하고, 탈식민화된 세계사 서술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블로트는 ‘식민주의자들의 세계 이해’라는 3부작 저술을 계획했다. 첫째 권인 『식민주의자들의 세계 이해: 지리적 확산주의와 유럽 중심적 역사 서술』에서는 유럽 중심적 확산주의의 핵심 주장과 변천사를 소개하고 유럽인들이 지적 능력이나 문화,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믿음들을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2권인 이 책 『역사학의 함정,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에서는 현재 서구 교양층의 지적 자산을 구성해온 대가들의 주저를 중심으로 그들의 억지 논리와 오류를 대놓고 비판했다. 블로트의 ‘논쟁의 대가’다운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이 책은 유럽 중심주의 비판의 주요 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유럽 중심주의가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강화되어온 ‘그릇된 확산의 경로’를 한눈에 파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블로트는 이 책이 출간된 직후 사망하여 이 연구의 완결편이 되었을 제3권은 안타깝게도 출간되지 못했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유럽 혹은 서구 중심주의는 역사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의, 그리고 여타 비서구 지역의 역사학계가 서구 역사학을 그대로 수입하면서 그들의 세계관까지 그대로 흡수했듯이, 또 그들의 저술로 역사를 공부한 대중들이 서구의 가치관을 하나의 표준으로 내면화했듯이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체계와 심성을 규정하는 ‘권력’에 관한 문제다. 유럽 중심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은 곧 서구 우월주의, 미국 패권주의를 극복하려는 의지일 수 있다. 연구자이자 운동가였던 블로트의 이 논쟁적이고 야심 찬 저술은 그런 의지와 학문적 실천이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보다는 논증 과정에 초점, 유럽 중심주의 극복의 튼튼한 발판 1990년대 중반 이후, 『오리엔탈리즘』 이외에도 『리오리엔트』『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블랙 아테나』『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등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세계사를 지향하는 여러 저작들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런 책들이 유럽 중심적 역사관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과 그 대안으로서의 역사를 제시한다면, 이 책은 유럽 중심주의의 대표 격인 학자들의 저작을 차례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논증 과정상의 오류를 적나라하게 끄집어낸다. 우리의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에 수시로 등장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거나 목적한 바를 위해 논리적 비약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블로트의 편집증적이기까지 한 치밀함 덕분에 독자는 유럽 중심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고, ‘아프리카나 중동은 더운 날씨 때문에 발전할 수 없었다’는 따위의 상식을 가장한 이데올로기를 논파할 근거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유럽 중심주의의 결론 또는 주장보다는 결론에 이르는 논증 과정을 문제 삼는다. …… 기왕의 저서나 논의들에서 ‘유럽 중심주의는 바람직하지 (혹은 정확하지) 않다’라는 것은 굳이 검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종의 공리였다.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국내의 대응은 역사 인식론적 논의로 흐르거나, 대안적 역사 서술 제시라는 다른 한 갈래뾔 흘러오지 않았나 한다. ……그리하여 유럽 중심주의에서 결론은 빼고 논증 구조나 논거들만 채용한 주장들에는 상대적으로 속수무책인 상황이 펼쳐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미처 완성하지 못했지만, 저자 블로트는 이 책의 다음 작업으로 유럽 중심주의에 의지하지 않은 채 유럽의 대두와 세계화를 설명하는 저술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다원적 근대와 새로운 세계사의 구상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한 발판이었던 것이다. 이 책이 우리의 역사학계와 독자들에게도 유럽 중심주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이 실천에까지 옮겨지는 데 자극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