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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들어가는 말 제 1 부 살피어라 1. 존귀하여라 2. 흙에 생기를 3. 남자와 여자 4. 더불어 살도록 5. 목적이 있기에 6. 아담아 7. 얻어진 것인데 8. 불안해서 9. 두 얼굴로 10. 생각이 있는지 11. 아직 길을 가기에 12. 씻으라 제 2 부 복되어라 1. 마음이 가난한 자 2. 애통하는 자 3. 온유한 자 4. 의에 주린 자 5. 긍휼히 여기는 자 6. 마음이 청결한 자 7. 화평케 하는 자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 제 3 부 멋있어라 1. 도망치지 않는 자 2. 기도하는 자 3. 기뻐하며 사는 자 4. 염려하지 않는 자 5. 처음 사랑으로 사는 자 6. 쉼을 누리는 자 7. 용서하는 자 8. 드리는 자 9. 버리는 자 10. 되찾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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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막측하게 지어 놓고는 하루 아침에 자기 작품을 허물어 뜨리는 작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일수록 작품을 남에게 팔지 않습니다. 저는 예술 세계에 대해서 문외한이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글 쓰는 사람들이 작품이 잘 나왔을 경우,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에게나 존경하는 스승에게 헌정하는 글을 책 머리에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심혈을 기울여 지으시고는 함부로 이 세상에 팽개치겠습니까? 지어 주었으니, 이제는 알아서 살라고 함부로 버려 두시겠습니까? 19세기 유럽 교회와 사회는 이신론(理神論, Deism)에 빠져 있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우세해지면서 교회와 기독교 사회는 진화론과의 타협점을 이렇게 엉뚱한 관점에서 모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후, 이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진화법칙에 맡겨 놓아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 관점은, 하나님의 창조만 인정하고 피조세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사상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찬양하는 문구에 앞서, 지으신 피조 세계를 감찰하시고 통촉하시고 함께 하심을 믿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만드신 목적을 우리에게 짐으로 남겨 놓은 채, 멀리 어디론가 달아난 하나님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고장난 피조물이었다가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고침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만드신 하나님의 사용법을 어기고 살면 또 고장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장나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고, 또한 고장이 났을 때는 오셔서 친히 고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조물주이신 주님의 뜻대로 삽시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우리 집에는 딸이 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그리 예쁜 딸들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낳은 제 눈에 보기에는 `최고'입니다. 저는 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들, 아무하고나 연애하면 안 된다. 네 신랑감들은 내 눈에 쏙 들어야 한다." 두 딸의 아비된 제 마음이 이럴진대, 하물며 만유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내가 지금 어떠한 형편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우리 자신을 멸시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 속에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어린 양이며, 최고로 멋있는 자녀들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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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는 고대 희랍신화의 한 토막을 들어 인간을 규명한다. 시지프스는 산 밑에서부터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까지 올려다 놓는 형벌을 받았다. 그런데 온갖 고생 끝에 바위를 올려놓고 “다 되었다.”고 하며 손을 놓아 버렸더니, 그 바위는 저쪽 산 너머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작가는 이러한 모습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친히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놀라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는가”라는 절규에 가까운 고백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가난한 가문에, 불우한 환경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아브라함아, 네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애타는 음성으로 친히 찾아 주시고 돌보시는 존귀한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