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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체 안 목사, 신디 제이콥스 외
서문 하나님은 잡힐 날을 기다리고 계신다! 1장 얼굴을 갈망하라 2장 천국 빵을 얻으라 3장 가까이 나아가라 4장 육체를 버리라 5장 임재로 들어가라 6장 영광을 구하라 7장 땅을 회복하라 8장 영향을 미치라 9장 자신을 깨뜨리라 10장 간절히 기도하라 |
Tommy Ten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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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참된 친밀함에는 헌신이 따르는데 우리에게는 그 헌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우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순결을 요한다. 교회에서 재미있게 장난치던 시절은 끝났다. '재미있게 장난치다'니, 무슨 뜻인가? 여기서 재미란 '짜릿한 흥분은 많고 헌신은 적은' 상태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태까지 원해 온 것은 고작 '하나님과 데이트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과 함께 차 뒷자리에 타면 그걸로 당신은 족했다.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하나님의 헌신의 반지를 끼지 않은 채 그분께 재미만 얻으려 하는 우리 모습에 지치셨다! 영광보다 짜릿한 전율에 더 매혹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기름부음에 중독됐다. 축복 받는 기분을 즐기고, 종교적 '금광'이랄 수 있는 '은사' 받기를 좋아하며, 초콜릿과 꽃다발과 보석에 황홀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애인이 아니라 신부를 찾고 계신다. 그분과 백년해로 할 자를 찾고 계신다.
유감스럽게도 교회에는 내 쪽의 헌신은 전혀 없이 무조건, 그리고 최대한 받으려고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다. "나는 그것이 싫다. 나와 결혼하려거든 똑바로 하자. 서로 서약하자." 우리는 헌신 없는 값싼 쾌감을 찾아다니지만 하나님은 '친밀함'을 말씀하신다. 가는 곳마다 그분의 주제는 친밀함이다. 그 친밀함에서 부흥이 나온다. '부흥'이라는 아기는 신랑에 대한 '신부의 헌신'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아기란 언제나 친밀함에서 태어나게 돼 있다. 지금은 가까이 갈 때다. (...) 오늘날 교회 성장에 대한 책은 셀 수 없이 많은데 때로 그 저변에 깔린 메시지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법'이다. 우리는 '친밀함'에 따라오는 조건들을 피해 갈 지름길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애썼다. 왜? 교회 의자에 '자식들이 많이 앉아 있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다른 주변 교회들을 둘러보며 비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가정이란 자녀들 자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녀란 부부간의 사랑과 친밀한 관계의 자연스런 부산물이다. 솔직히 오늘날 대다수 교회들은 종교 판 역기능 가정이다. '편모'인 사역자들만 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하나로 맺어졌을 때는 자녀가 생길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자녀란 친밀해지는 과정의 당연한 산물이다. --- pp 11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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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제는 진정 갈급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일들로 삶에 만족을 얻고 갈급함을 채웠다. 매년 매주 하나님께 갔지만 그분이 채워주실 곳은 조그만 빈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하나님은 우리 삶의 다른 것들에 밀려 '2순위'가 되는 데 염증 나셨다. 교회 생활과 프로그램에 밀리는 것에도 질리셨다!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임신 상담 센터에서 아기들을 돌보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요 이것이 그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근본적 동기가 돼야 한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는 그분을 위한 일에 너무 빠져 정작 그분은 잊어버릴 수도 있다. '종교 생활' 자체에 너무 빠져 영성과 담을 쌓을 수 있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하라.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구원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기도 생활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경과 그분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분을 알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을 초대 교회들에게 보낸 그분의 옛 연애 편지를 읽는 것으로 채워왔다. 그것도 선하고 거룩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분과 전혀 친하지 않다. 우리는 그분의 임재에 대한 갈급함을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억눌러 왔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진정 사랑하지 않아도 서로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출산 학교를 함께 수료하고 아기를 낳고 융자금을 같이 갚으면서도, 하나님이 부부를 위해 만들고 설계하신 '고차원적 친밀함'은 전혀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보다 낮은 차원의 삶을 살 때가 너무 많다. 그래서 그분이 뜻밖의 능력을 보이시면 충격을 받는다. 우리 대다수는 '성전에 가득한 그분의 옷자락'을 볼 준비가 다 돼 있다. --- pp 33~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