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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로서의 독립운동사
제1부 방황하는 식민지 청년 불우한 어린 시절 일본인 과자점 점원 용산역 전철수 “거지가 되더라도 이런 일은 싫다” 방황 1년 6개월의 행적 일본에 가면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제2부 ‘신일본인’의 꿈과 좌절 첫 좌절 영양실조로 각기병을 앓다 “조선인이 인간인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유치장 구금 아흐레 나는 누구인가? - 식민지 청년의 자기반성 도쿄에서의 방황 1년 “나는 조선인이다” - 상해로 제3부 상해 1년, 운명을 바꾼 만남 운명을 바꾼 만남 취중진담, “왜, 천황은 못 죽입니까?” ‘왜영감’, 이봉창 운동화만 신고 다녀도 사치 만주사변, 기회가 오다 거사준비1 - 폭탄준비 거사준비2 - 자금마련 ‘한인애국단 1호’ 이봉창 “저를 어떻게 믿고 그런 거액을 주셨습니까?”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읍시다 천황 폭살은 무모한 계획이었나? 제4부 마지막 20일의 기록 오사카에서의 3일 도쿄 도착 “상품은 1월 8일에” 사전답사 마지막 하루 천황의 행렬을 놓치다 “실패했구나!” “범인은 나다!” 왜 천황을 죽여야 하는가? 에필로그 남겨진 이야기 부록1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 부록2 동경작안의 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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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의 삶을 살면서 ‘황국신민’이 되기를 꿈꾸었던 한 식민지청년이 제국의 심장인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된 사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 개요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식 이름이다. 이봉창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일본식 이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 때 자신이 일본으로 데려온 조카딸과의 연락마저 끊을 정도로 진짜 일본인이 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던 식민지 백성이었다. 그런 그가 감히 누구도 상상하거나 실행하지 못했던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은 극적인 인생반전이다. 그 사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봉창은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재산을 잃고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방탕과 사업실패로 가난한 삶을 살았던 노동자이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차별 정책에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면서도 식민지근대의 향락문화를 소비한 ‘모던보이’였다. ‘독립운동의 영웅’과 ‘모던보이’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것이 한 인간의 삶 속에서 모순되지 않고 결합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봉창의 이야기는 독립운동가의 인간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유독 아프다. ‘모던보이’의 삶을 살면서 ‘황국신민’이 되기를 꿈꾸었던 한 식민지청년이 제국의 심장인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된 사연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자 비극의 핵심이다. 지난 7월 ‘백범일지’에 대한 텍스트 분석으로 정본화를 시도한『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를 출간하며 ‘백범일지’ 새로 읽기의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이 책의 저자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이 문제는 분명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는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의 영웅담이 아니라 식민지 사회라는 ‘한국적 근대’를 경험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자기고백이자 삶의 기록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비극적 서사의 결말인 4부 ‘마지막 20일의 기록’을 역사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독립운동가의 긴박한 일상을 재구성했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그동안 서로 별개의 것으로 간주되어온 ‘독립운동사’와 ‘식민지 일상’을 이봉창의 삶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낸 점은 식민지 시대의 재조명의 새로운 시도이다. 두 장의 사진, 역사적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다 - 문제제기 ‘인간 이봉창 이야기’는 두 장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두 장의 사진은 폭탄을 두 손에 들고 선서문을 목에 건 똑같은 포즈를 하고 있다. 다만 앞의 사진은 환하게 웃는 사진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며 이봉창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사진이다. 뒤의 사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사진이다. 과연 어떤 사진이 천황을 폭살할 결심으로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을 하던 밤에 찍은 것일까? 이 책은 앞의 사진이 그날 저녁에 찍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결국 수류탄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찍은 사진은 한인 애국단 선서식 때 찍은 사진도 아니고, 일제시기 발간된 어떤 책자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진이다. 게다가 이 사진은 엄밀히 말하면 사진이 아니다. 수류탄을 든 두 손과 배경의 태극기는 그린 것이다. 그리고 목에 건 선서문도 이봉창의 선서문으로 알려진 그 선서문의 필체와 다른 누군가가 새로 쓴 것이다. 자세히 보면 얼굴의 목선이 없다. 얼굴을 다른 사진에서 오려붙인 사진합성이 분명하다. (중략) 그렇다면 입단식 때 찍은 사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이미지의 이봉창 사진을 ‘창안’하여 유포시켰을까? 이것이 이 책에서 밝혀야 할 첫 번째 주제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마치 죽음을 초월한 듯한 환한 미소, 마치 우리가 상상하는 ‘독립운동 영웅’ 이봉창의 이미지를 상징화한 듯한 강열한 메시지를 던져온 이 사진이 만들어진 사진이라니. 저자는 두 장의 사진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봉창의 사진 문제를 거론하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이봉창의 삶의 진실에 관한 문제이다. 이봉창의 사진이 ‘창안’된 이미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봉창의 삶도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이봉창 사건 재판기록과 압수 증거품을 읽고 관찰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독립운동 영웅의 이야기와는 사뭇 달라서, ‘독립 운동 영웅’이란 이미지를 수정할 만한 인간적인 고뇌를 발견한다. ‘지사 이봉창’이 아닌 ‘인간 이봉창’의 진실은 무엇일까?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자기 고백이자 삶의 기록 - 구성과 내용 - 1부 : 방황하는 식민지 청년 출생에서 일본으로 건너가기까지의 국내생활을 다루고 있다. 이봉창의 삶에서 이 시기는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해명되지 않은 연구사적 공백지대였다. 저자는 치밀한 텍스트 분석을 시도하여 성장기의 삶을 복원한다. 특히 용산역 전철수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가기 전의 1년 6개월 동안의 행적에 대해 규명을 하는데,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주목을 끈다. 첫째는 금정청년회 간사로 일했던 사실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봉창이 청년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 하나로 실증적인 분석도 없이 금정청년회를 ‘항일단체’로 규정하고, 마치 이봉창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항일운동을 했던 것처럼 서술해 왔다. 그러나 당시 이 단체는 유지들 중심으로 조직된 ‘온건한’ 청년단체로 일본인 소유의 큰 건물을 임대하여 쓸 정도로 일제의 정책에도 협조적이었다. 저자는 실증 분석 없이 무조건 항일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근거 없는 성급한 결론이라고 밝힌다. 둘째는 이 시기 이봉창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인구센서스의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놀랍게도 당시 조사위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조선총독부로부터 검증받은 상당한 신분과 지위의 인물들이라고 한다. 이 때 인구센서스 조사위원 가운데 상당수가 나중에 유명한 친일파가 되었다. - 2부 : ‘신일본인’의 꿈과 좌절 일본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던 5년 동안의 삶이다. 일본인에게 차별받지 않고 조선에서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무작정 일본으로 갔지만 5년 동안의 노동자 생활을 통해 그것이 헛된 환상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이때 이봉창은 능숙한 일본어 솜씨로 ‘기노시타 쇼조’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한다. 스스로 ‘신일본인’이라 표현할 정도로 진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여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편견과 차별로 인해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이봉창의 일본생활은 1920년대 후반 일본에서 생활하던 평범한 재일조선인 노동자들의 삶과 내면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특히 새로 밝히는 대목은 오사카에서 도쿄로 옮긴 이봉창이 처음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유명한 친일파 박춘금이 운영하는 ‘상애회’의 무료숙박소에 보름 정도 신세를 진 일이다. 그런데 그 박춘금이 이봉창이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다음날 천황궁성 앞에 자신의 똘마니들(상애회 회원)을 데리고 나와서 천황에게 사죄의 절을 올렸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3부 : 상해 1년, 운명을 바꾼 만남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떳떳한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상해로 간 이봉창이 백범 김구를 만나 천황 폭살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봉창의 생활상 뿐만 아니라 그의 운명을 바꾼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의 생활도 상세히 묘사한다. 천황 폭살을 위해 김구의 지시로 일본인으로 위장생활하는 이봉창을 향해 임시정부 간부들은 ‘왜영감’이라고 놀려댔으나 이봉창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욕조차 달게 받는다. 그 때문에 이봉창은 상해의 독립운동가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았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이 무렵 홍구공원 천장절날 폭탄을 던진 윤봉길도 상해에 와 있었지만 김구의 기밀유지로 서로 만나지 못한 일이다. 3부에서 저자는 이봉창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몇가지 고정관념을 깬다. 첫째는 폭탄을 두 손에 들고 선서문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찍은 사진이 선서식 날 저녁에 찍은 사진이 아니라 해방 후 출간된 『도왜실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합성사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둘째는 이봉창의 선서문이 이봉창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김구에 의해서 사전에 준비된 것이란 사실도 밝힌다. 선서문은 본문 내용과 날짜의 1932년 12월까지는 같은 필체로 쓰여진 것이지만 13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만은 다른 필기도구로 쓰여진 것이다. - 4부 : 마지막 20일의 기록 상해로 출발한 이봉창이 오사카를 거쳐 도쿄에 가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기까지의 20일 동안의 행적이 날짜별로 시간 순으로 치밀하게 재구성되었다. 지금까지의 글은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전사였던만큼 여기서는 다큐멘터리기법에 의해 이봉창의 일상을 세밀히 추적하면서 그의 내면세계와 행위에 대한 심리분석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독립운동 영웅 이봉창’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향유한 ‘모던보이’ 이봉창의 일상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기술은 저자의 주장대로 분명 논쟁을 불러일으킬 부분이지만, 독립운동가의 미덕만 드러내는 기존의 독립운동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이봉창의 행적을 드러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특히 기존의 이봉창을 옹호하는 연구자들이 이봉창이 의거 전날 밤 유곽에서 잔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부인하려는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신화화된 독립운동가의 영웅을 넘어 인간 이봉창의 삶을 재발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 책의 진정한 저술 동기라고 한다. 또한 폭탄을 던지고 난 이봉창이 현장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만세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허구임을 밝힌다. 김구는 이봉창을 일본에 파견할 때 태극기를 건네주지도 않았고, 이봉창의 증거품 목록에도 태극기는 없었다고 한다. 식민지 청년에서 독립운동가로의 극적인 인생 반전의 계기 일본의 식민정책에 순응하던 보통청년 이봉창이 모순된 현실을 깨닫고 마침내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는 극적인 자기반전의 계기는 크게 보면 세 단계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용산역 전철수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조선인이라서 차별을 받은 것이다. 3ㆍ1 운동에도 무관심했던 이봉창은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월급과 상여금,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 현실에 크게 실망하며 식민지정책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는 용산역 전철수를 그만 두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간다. 두 번째는 오사카에서 노동자로 생활할 때 진짜 일본인이 되고 싶어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식을 보러 교토에 갔다가 이유없이 유치장에서 아흐레 동안 구금된 사건이다. 이때 처음으로 이봉창은 조선의 독립을 생각하면서 누구든지 자신을 끌어줄 사람만 있다면 어떤 단체이든지 들어가서 조선독립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상해에서 김구를 만난 것이다. 세 번의 계기 중 김구를 만난 것은 평범한 식민지 청년 이봉창이 독립운동가로의 극적인 전환에 결정적 계기가 된다. 상해로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더 이상 일본인으로 속이고 살지 않고 떳떳한 조선인으로 살고 싶은 것이 최고의 목표였는데, 김구를 만나서 그의 감화를 받으면서 천황을 폭살할 결심을 굳힌 것이다. 이봉창과 김구를 만난 것은 ‘운명을 바꾼 만남’이었다.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 - 3가지 특징 - 특징1 : 역사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마지막 20일의 기록’ ‘마지막 20일의 기록’은 이 책의 가장 핵심이자 저자의 문제의식과 글쓰기 방식이 농축되어 있다. 이봉창이 일본에 도착한 1931년 12월 19일부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1932년 1월 8일까지의 행적은 「신문조서」, 「청취서」, 「상신서」, 「공판조서」 등 각종 재판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시간 순서에 따라 날짜별로 세심하게 추적한다. 특히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진 1932년 1월 8일 하루의 기록은 무려 20여쪽에 걸쳐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도쿄에 머무른 동안 이봉창의 일상의 흔적은 천황을 죽일 방법을 연구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우는데 24시간의 분, 초를 다투었을 것이라는 상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최소한의 거사를 위한 준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고, 카페 가고, 영화 보고, 마작 하고, 음악 듣고, 그리고 유곽 드나드는데 보냈다. 천황을 폭살할 결심으로 가장 긴장된 나날을 보냈던 20여일 동안 이러한 행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봉창이 최후의 순간을 향락문화로 소비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모던보이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이봉창의 삶을 세심하게 추적하면서 중요한 국면마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테러리스트적인 독립운동가의 긴박한 일상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사 서술의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대단히 주목된다. - 특징2 : ‘독립운동사’와 ‘식민지적 근대’의 상반된 이미지의 역사상 이봉창은 천황에게 폭탄을 던져 결과적으로 독립운동의 영웅이 되었지만, 일상의 삶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즐긴 ‘모던보이’였다. 지금까지 식민지 사회를 연구하면서 자본주의 근대문화와 그것의 소비층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지식인이나 도시의 청년들이 중요한 대상이었다. 가난한 삶을 살았던 노동자의 삶에서 그러한 자본주의 근대의 모습을 찾거나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 시도는 거의 없었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삶이나 생활을 밝히는 문제도 최근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 삶이 식민지적 근대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밝힌 연구 성과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사’와 ‘식민지 일상’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의 ‘영웅’과 식민지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간형인 ‘모던보이’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독립운동사도 사람의 이야기이다’는 명제아래 독립운동사에 대한 신화나 성역을 허물고 싶은 것이 이 책을 쓰려고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독립운동사의 가장 큰 폐단은 결과론적 해석의 올가미이다. 한 인물이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거나 포상을 받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책과 경력이다. (중략) 하니만 이런 기준과 잣대로는 독립운동가의 내면의 고민이나 그 아픔까지 드러낼 수는 없다. 평가를 위해 정말 따져봐야 할 것은 임시정부 OO을 역임했다는 경력이 아니라, 임시정부 OO로서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가, 즉 ‘과정’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역사가 서술될 때 비로소 영웅과 지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독립운동사이고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나는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 특징3 : 이봉창의 영웅적 이미지를 창안한 사료에 대한 비판적 분석 지금까지 이봉창에 대한 영웅적 묘사와 오해의 결정적인 원인은 자료의 문제였다. 이봉창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봉창에 관한 자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김구가 쓴 기록이다. 동경의거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의거가 있던 그해에 쓴 「동경작안의 진상」이라는 글이다. 이글은 이봉창에 대한 최초의 전기이자, 독립운동가의 투쟁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김구가 쓴 「도왜실기」와 「백범일지」에는「동경작안의 진상」에 기록된 내용이 좀더 윤색되거나 보충된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이봉창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김구가 기록한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구의 서술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동경작안의 진상」에 기록된 이봉창의 행적이다. 이봉창이 상해에 오기 전부터 투철할 애국자였던 것으로 묘사한 것이라던가, 의거현장에서 체포될 때에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서 흔들었다는 등의 기술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봉창 의거 뒤에 선전용으로 활용하려는 저술동기를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동경작안의 진상」은 이봉창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인간적인 고민을 생략한 박제화된 영웅묘사의 전형적인 서술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봉창에 관한 또 하나의 풍부하고 상세한 기록은 이봉창의 재판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다. 이들 자료는 다시 몇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체포 후 이봉창이 자신의 의거 경위를 검사에게 진술한 「청취서」와 9차례에 걸친 신문조서이다. 이봉창 자신의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된 자료로서 「청취서」와 「상신서」가 있다. 「청취서」는 이봉창이 일본경찰에 집힌 지 이틀 만인 1932년 1월 10일에 토요다마 형무소에서 동경지방 재판소 검사에게 진술한 내용을 재판소 서기가 작성한 것이다. 이 자료는 예심판사의 본격적인 신문이 있기 전에 작성한 자료로서 시기적으로 볼 때 이봉창의 자료 가운데 가장 앞선 것이다. 「상신서」는 2월 13일 제5회 예심판사의 신문이 있던 날 이봉창이 직접 자신의 삶을 간략히 정리한 글이다.「상신서」라는 제목은 형무소에 갇힌 몸으로 판사에게 보내는 글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상신서」는 비록 일본의 감옥 안에서 쓴 글이지만, 이봉창이 자신의 삶을 정리한 유일한 글로서, 이봉창의 삶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