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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서론 - 그리스 문명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1장 알파벳 문자 2장 호메로스의 오리엔트적 특징 3장 오리엔트의 지혜문학과 우주론 4장 오르페우스의 이집트 5장 마기의 시대 해제 부록 참고문헌 약자 고대 문헌의 다양한 번역서들 참고문헌 주 찾아보기 |
Walter Burkert
남상일(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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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의도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서는 국내에서도 여러 책이 소개되어 있다. 부르케르트의 이 책은 유럽 중심주의 학자들의 이론이나 주장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유럽 중심주의의 탄생과 확산에 여전히 기여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 문명 독창론’에 대해 신중하게 짚어본다. 고대(청동기시대) 지중해 세계에서 벌어진 문화 상호작용과 변형에 대한 논의는 『블랙 아테나』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문고본 분량의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가 보여주는 고전문헌에 대한 해박함을 기본으로 한 논증과 설명,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와 한계 등은 아무리 유연하고 온건한 주장이 핍박받는 요즘이라 해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인 고전문헌학자의 평생 연구의 핵심이 담겨 있어 이 책은 기원전 6~5세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 지중해 세계의 문화 교류,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에 미친 동방의 영향을 연구한 독일학자 발터 부르케르트의 저작이다. 그는 고전기의 문헌학, 역사, 철학을 공부한 후 1955년 독일 에를랑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친절한 톤으로 아이디어와 해석에 강조를 둔 이 얇은 책은, 저자가 취리히 대학 고전문헌학과를 정년퇴직할 무렵인 1996년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 대학교에서 행한 ‘고대 오리엔트-그리스의 관계’라는 인기 있는 주제에 대한 강연에서 비롯되었다. 그 강연들은 1999년 『호메로스에서 마기까지』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기원에 충실하겠다는 저자의 약속대로 그 책의 여러 군데를 수정하고 알파벳에 관한 장과 새로운 자료와 견해를 추가해서 영어판으로 재출간되었다. 버널 훨씬 전에 부르케르트가 있었다 부르케르트는 한때는 별로 인기가 없던 인류학, 진화심리학, 그리고 근동과 고전 그리스와의 상호작용이라는 연구에 일생을 바친 사람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이 책에서 논지를 펼치고 있다. 버널과 달리, 부르케르트의 흠 없는 고전에 관한 경력을 보면 그를 단순한 매버릭(독립적 입장을 취하는 지식인)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인내심을 가진 대부분의 독립적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영향과 상호작용에 대한 논쟁’에서 분별 있고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버널의 논쟁에 대해서 부르케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열띤 논쟁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버널과 그의 추종자들이 전개한 이론은 구체적인 면에서 쟁점이 될 수 있지만 그 논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증거를 더 찾아내고 새로운 관점을 개발해 더 적합한 이론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p.14-15) 품격 있게 쓰이고 꼼꼼한 논리를 펴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주로 고전 시대에 근동, 이집트, 그리고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가 어떤 문화적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요약하고, 독자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는 올바른 방법 또한 보여주고 있다. 달리 말해, 이 책은 이 주제를 파고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방법론적인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이루어진 문화 전달의 역사적, 지리적 맥락 밝혀 이 책의 가장 가치 있는 공헌은 문화 전달의 역사적, 지리적 문맥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스와 근동 간의 무역(광물을 찾고자 하는 그리스의 분투), 정치(외교, 전쟁 그리고 정복), 물론 도로, 도서 관, 학교 그리고 쓰기 도구들(writing materials, 예를 들면, 셈족의 알파벳을 수입한 그리스에 의해 진흙판에서 사라지기 쉬운 재료로 전환이 이루어진 것) 같은 요소들. 부르케르트는 문화 전달 과정을 결코 단순한 원인-결과의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평화적인 이동이나 침략, 착취를 통해 유입되는 긍정적, 부정적 요소뿐만 아니라 오해로 인한 진보까지 포함한 복잡한 대응들로 정리한다. “여기서는 문화적 상호작용의 역학을 초점으로 삼을 것이다. 주고받은 영향을 단순하게 서술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다. 문화적 영향에 대해 반응의 다양한 양태, 그리고 오해가 빚 어낼 수 있는 현상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변화를 찾아야 한다.”(p.15) 특히나 페르시아에 대한 자료들의 성격과 한계에 대한 자세한 토론들은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이집트, 이란 그리고 페르시아 문헌들의 영어 번역을 망라하는 “고대 문헌의 다양한 번역들”이라는 부록까지 포함하면 더욱 그렇다. 각 장은 그 주제에 대한 지식(scholarship)의 현재까지의 역사와 수준에 대한 개론으로 시작하고 있다. 독자가 흥미로운 제안과 압도적인(권위 있는) 증거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그리스가 받은 문화적 영향에 대한 가설들이 지닌 개연성의 정도를 저자가 꼼꼼하게 나누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셈족의 Tit으로부터 그리스의 Titans이 궁극적으로 유래되었다는 것에 대한 박식하고 매혹적이며 대단히 설득적인 어원학적인 논의는 최종적으로는 온건한 부인으로 결론을 짓는다. 반면에, ??일리아스??(15.190-193)의 구절과 유사한 아카드 서사시에 대해서는 “호메로스의 작품 가운데 특히 이 대목은 아카드 서사시의 번역이나 다름없다. …… 하지만 ‘제우스의 유혹’의 맥락에서 볼 때 많은 단서들이 하나같이 오리엔트 전통을 가리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p.56)라고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주요 내용 이 책은 서론과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르케르트의 저작물을 관통하는 주제인 ‘고전 그리스와 오리엔트와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을 개설하고, 그것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해석과 논증을 다루고 있다. 1장 알파벳 문자 간결한 첫째 장에서는 알파벳의 발명과 확산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동방에서 그리스로 수입된 것들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파벳’을 든다. 그것은 문자가 문명 발달의 증거이자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10세기 이후 갑자기 알파벳은 널리 확산되어 페니키아-가나안인, 히브리인, 아람인이 사용했고 아시리아 제국에도 보급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00년 직후에 알파벳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되며, 페니키아인들이 사용하던 알파벳이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는 알파벳의 순서와 철자의 형태, 발음 등으로 전환이 일어난 장소로 키프로스가 제시된다. 2장 호메로스의 오리엔트적 특징 이 장에서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에 나타난 동양적인 요소들을 다룬다. 이 작업은 호메로스의 시와 유사한 메소포타미아의 시들을 광범위하게 다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둘 간의 공통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해석도 제공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메소포타미아 문학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것의 상당수는 『에누마 엘리시』와 『아트라하시스』의 도입부에서 나왔다는 그의 관찰은 특히 흥미롭다. 부르케르트는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화자들(speakers)이 계속적으로 접촉 가능하게 한 루트로 설형문자로 쓰인 문학을 든다. 이들의 접촉은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는 또한 흥미로운 패러독스를 제기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들과 호메로스의 시들은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 놀라운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전자는 글쓰기라는 고정된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후자는 구전을 통해 구성되고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2장의 중심은 ‘제우스의 유혹(Dios Apate)’에 대한 상세한 토론이다. 여기에서 그는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시』 그리고 『에누마 엘리시』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에 바탕을 두고, 오랫동안 논평가들을 괴롭혀왔던 언어와 내용상의 많은 특수성들을 설명하고 있다. “고전학자들은 오리엔트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시와 매우 유사하고 부분적으로 선례가 되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 (p.68) 3장 오리엔트의 지혜문학과 우주론 이 장에서는 동양으로부터 온 가장 초기의 명상문학을 구성하는 창조 이야기와 지혜문학을 생기게 하고 모양을 갖추게 한 아이디어들에 대한 재미있는 분류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 우주 창조설을 낳게 한 사고의 양식들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오르페우스교의 저술에서도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부르케르트는 그리스인들의 신화적 우주창조설들과 이것에 상응하는 동양의 우주창조설들을 분리시킬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스의 신화적 천지창조론―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오르페우스―은 동양의 천지창조론과 구별되지 않는다. 양자는 명백히 같은 계통에 속하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동양의 영향을 받았음이 명백해진다.”(p.89) 동양과의 끊임없고 광범위한 접촉에 그리스가 의존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수학과 천문학과 같은 더욱 이성적인 분야에서 잘 나타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당대 오리엔트 철학자들처럼 자연 세계에서 관찰한 사실들과 기존의 신학들을 짜맞추려 애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동양 문명이 단지 합리성 이전의 신화적 단계에만 머문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스 세계만 미토스(신화)에서 로고스(이성)로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가 받은 영향은 천문학 같은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p.90)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철학의 기초를 그리스가 쌓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르케르트는 동양의 지혜를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변형시킨 것을, 동양의 뼈대 위에 건물을 짓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다. 또 그리스인들의 철학적 성취들을 그들만의 사회적 구조(더 많은 자유, 유동성, 그리고 모험을 감수하는 것)와 유연한 매체였던 그들 ?어를 가지고 설명한다. 이 요소들은 “존재(being)” 또는 이성적 논쟁을 통해서, 그리고 플라톤 이후에는 수학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는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진리”라는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카테고리를 그리스 철학자들이 형성하는 데 공헌했다.(p.94 참조) 이런 진리관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철학은 대체로 그런 진리관을 추구해왔다. 최근 들어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상대성과 해체를 향한 추세가 강화됨에 따라 그런 철학은 시대에 뒤처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유산이 송두리째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 ‘그대로 되니라’를 핵심으로 하는 지혜의 권위는 힘을 잃고 있다. 계속 살아남을 것은 철학적 문제와 논증이다.” (p.94-95) 4장 오르페우스와 이집트 이 장에서는 그리스-이집트의 종교적 접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접촉은 기원전 6세기 이집트에 그리스인들의 정착과 용병 활동이 광범위하게 늘어난 것과 함께 강화되었고, 고대 그리스 시절의 예술과 사원 건축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이집트의 영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종교적 융합의 예들을 몇몇 남아 있는 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를 오시리스와 동일시한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더없이 행복한 사후의 삶을 약속하는 비밀스런 의식들은 두 신의 결합에 가장 강력한 토대를 제공한다. 이것은 디오니소스로부터 오르페우스에게로의 짧은 여행이다. 4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부르케르트는 오르페우스교에 끼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영향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르페우스교는 의식을 수행함으로써 사후에 새로운 삶을 보장받는다고 하는 일군의 가르침들 속에 위치한다. 그런 의식(rituals) 또는 비밀의식은 디오니소스뿐만 아니라 오르페우스와 연관되어 있으며 떠돌아다니는 선생들에 의해 전수되어왔다. 기원전 6세기 이집트의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미케네 문명의 디오니소스를 비밀의식의 디오니소스로 바뀌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그리스 오르페우스교에 이집트가 영향력을 끼쳤다고 본다. 그 주요한 증거로 오르페우스 신통기에 대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논평과 함께, 데르베니 파피루스가 제시된다.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최초로 하늘의 광휘를 분출시킨 신(Uranus)”의 이야기는 주신 아툼(Atum)이 자위를 하고 쌍둥이를 만들어낸다는 이집트 우주창조론에서 주류를 이루는 전통이다. 데르베니 문서에서 제우스는 남근을 삼키고 그 안에 가지고 다니다 모든 신과 여신들, 강과 봄, 그리고 그 나머지 생명체들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존재(the only one)”가 된다. 부르케르트는 이 주제가 여러 신들이 하나의 합성된 신의 모습으로 결합되는 것을 보여주는 기원전 6세기 이집트에서 유행했던 도상학의 주제와 유사하다고 한다. “오르페우스 문서는 합성된 신의 이집트적 관념을 표현”(p.125)했다는 것이다. 또한 프타가 ‘생각과 말’로 모든 신들을 만들었다고 기록된 멤피스 신학 기념비에서처럼, 생각을 통해서 세상을 만들어내는 신이라는 오르페우스교의 아이디어(이는 또한 파르메니데스에게서도 발견된다)와 이집트 우주창조론 사이에서도 유사성을 발견한다. 결국 부르케르트는 “공기의 사정, 합성된 신, 생각에 의한 창조―섬뜩하리만큼 이집트와 닮은 데가 많다. 증거는 명백하다.”(p.126)라고 결론짓는다. 5장 마기의 시대 이 장에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 문화에 끼친 페르시아의 영향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에 고전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한다. 페르시아 출처들은 다루기가 무척 어려운데, 아마도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의 영향에 관심을 덜 기울이게 된 원인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p.135-136참조) 이 주제가 낯선 독자들은 이 장 앞부분에서 출처와 그것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그의 명쾌한 설명을 읽어 보라. 부르케르트는 문서를 남긴 조로아스터교를 통해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화적 영향을 살펴본다. 조로아스터교 경전은 지역에 따라(이란에서 인도), 시대에 따라(기원전 6세기의 다리우스 시대 베히스툰 비문에서부터 서기 9세기 이슬람 지배하에서 쓰인 조로아스터교 경전까지), 방언과 필사본에 따라(설형문자 문서, 구/신 『아베스타』, 팔레비 문헌) 상당히 다르고, 게다가 단편적이고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저자가 페르시아 전쟁 이전의 문화적 영향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의 상태를 두 단어로 요약하는 것은 놀라울 게 없다: 메가빅소스(Megabyxos, 페르시아 사제의 칭호)와 마구스(Magos, 마기, 그리스어 맥락에서 사제나 떠돌이 사기꾼들을 가리키는 말로 다양하게 쓰인 페르시아어). 이 장의 제목이 ‘마기의 시대’가 된 이유다. 페르시아 전쟁 후 시기에 대해서 부르케르트는 명백하게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로 수입된 두 가지 종교적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는 천국에서의 더 나은 삶을 향해 성스럽게 죽은 몸이 승천한다는 생각이다. 이 아이디어는 최초의 천년 동안 그리스인들, 메소포타미아인들, 시리아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사후 삶에 대한 황량한 그림을 대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생각이 최초로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 나타나지만 (아마도 피타고라스 학파를 통해서) 이보다 먼저 조로아스터교와 그 이전 출처에서 광범위하게 문서화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적인 구체적 증거에 대해서는 패배를 인정한다.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이집트의 패러다임보다는 이란의 패러다임에 가깝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통 피타고라스가 주장한 것으로 간주되는 윤회의 가르침은 헤로도토스 때문에 이집트의 것으로 잘못 전해졌다. 윤회 사상의 발원지는 아마 인도일 것이다. …… 그 반면에 소크라테스 이전에 생겨난 아이테르의 개념과 기원으로의 복귀는 전형적인 그리스적 요소이다. 어쨌든 이란, 이집트, 피타고라스의 요소들은 비슷한 모티프와 경향이 긴밀하게 혼합되어 있다. 결정적인 접촉은 현존하는 그리스 문헌으로 증명할 수 없으므로 어떤 것이 어떻게 전이되었는지를 완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p.149-150) 부르케르트는 이원론의 원리에 대해서는 더 단단한 기반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의 지속적인 싸움이 그리스어 텍스트(플루타르코스, 아리스토크세노스, 에우데모스)에 수입되어 정교하게 문서화되어 있으며,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세기에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것은 자연의 과정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으로서 ‘사랑과 미움의 대립’을 묘사한 엠페도클레스에서 찾을 수 있다. 고전 그리스 문명은 고립되지도 예외적이지도 않았다 부르케르트는 문화의 변형에 대해서만큼이나 문화 전달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이다. 문화적 혼합은 하나의 사실이다: “그리스 문명을 비롯해 모든 문명은 다른 문명과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p.11) “고립된(isolated)” 그리스의 기적이라는 생각은 역사적 우연에서 기인한 망상일 뿐이다: “그리스 문화는 후대에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계승하고 보존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웃 문명들은 무자비한 시간의 제물이 되었으며,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에게 정복당했다.”(p.161) 순수한 고전문화라는 생각의 소멸은 유럽인들에게는 사망기사와 다름없다: “ ‘고전적’이라는 말은 기준이나 규범의 재편을 전제하고 추인한다. 그러나 우리의 다문화적 세계에서는 그런 기준이나 규범이 사라지고 있으면, 쉽게 복구되지도 않는다.”(p.11-12) “누구도 그리스인들이 만든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들 역시 혼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았다.” 부르케르트의 권위 있는 서문은 200년에 걸친 패러다임의 변천을 따라간다: 홀로 근원으로서 여겨지던 고전 시대 그리스로부터 그리스 사서에 대한 오늘날의 지적 패러다임으로의 이동. 그러나 그는 그 이후의 그리스가 지니는 문화적 우월성과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그리스가 동양의 현인들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이다: “세계 문명의 형태를 결정한 것은 그리스였다.”(p.27) “그리스인들은 야만인들에게서 받은 모든 것을 더 낫게 만든다.” 플라톤의 ??에피노미스??(987d)에 나오는 이 말은 매우 자주 인용된다. …… 물론 문화 변용의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다. 그리스는 오랫동안 문화를 받아들이는 측이었지만 그 결과는 명백히 그리스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스의 예술과 건축은 고전이 될 수 있었고, 그리스 문학은 세계 문학이 될 수 있었다. …… 그리스 양식은 예술적 솜씨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시적 표현에서 지중해 세계 전역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동양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 문화는 군사력이나 정치권력을 이용하지 않고도 세계 문명을 지배하고 있었다. (p.23-24) 서문의 후반부는 동양에서 그리스 해안과 본토의 도시로 문화적 지주가 옮겨갔다는, 동양의 (아시리아 시대부터 페르시아 전쟁까지) 지리-정치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청동기시대 에게문명의 몰락은 작은 해안 도시들에서 접촉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해운업의 발달, 아시리아인들의 정치적 파워 성장, 그리고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의 증대 등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이 문화전달의 추진력으로서 작용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자유, 그들의 다원성, 그들의 “경쟁의 개방성”(p.26)과 더불어 바뀐 세상의 질서를 이용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동양의 고도한 문명이 성립하는 데는 왕권과 국가 통제력이 필수적인 조건이었지만, 더 이상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가 물러나고 소집단과 개인에게 무제한적으로 기회가 개방되어야 했다.”(p.26) 거대한 동양의 제국들이 잇달아 몰락함으로써 그 주변에 있던 지역들이 혜택을 입게 되었다. 에게 문명의 중심은 근동에서 ?리스로 이동했다. 가장 가까운 “서양인들”이었기에 그리스인들은 운이 좋았다: “서방에서 근동에 가장 가까운 지역은 그리스였으므로 그리스인들이 즉각 그 혜택을 입고 기회를 얻어 ‘기적’을 일구었다.” (p.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