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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피카소를 이해하기 위하여
1. 푸른색으로 본 슬픔과 가난 예술의 메카, 파리로 가자 나는 보았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청색을 통한 슬픔과 죽음 껴안기 영원한 동지, 막스 자코브 궁핍이 좋은 예술가를 만든다 2. 슬픔을 따뜻하게 껴안기 말라가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세탁선에 정착, 가난과 싸우다 첫 연인 올리비에와 친구들 분홍색시대를 열며 성공을 예감하다 <거투루드 스타인의 초상>, 그리고 고솔 3. 현대미술의 시발점, <아비뇽의 아가씨들> 경쟁자 마티스를 만나다 피카소, 마티스에게 도전장을 던지다 <아비뇽의 아가씨들> 탄생하다 충격. 당혹. 실망. 분노로 아연실색 착한 현자, 루소를 위한 연회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세계로 뛰어들다 4. 브라크와 함께 연 위대한 입체주의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를 시작하다 분석적 입제주의의 길 아폴리네르? 그런 사람 모릅니다 페르낭드와의 결별, 에바를 만나다 종합적 입체주의를 완성하다 경매장에서의 피카소 그림값 입체주의와의 결별, 전쟁이 시작되다 에바의 죽음과 전시의 파리 피카소 연보 수록 작품 목록 |
金源一,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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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빌린 작업실 레클로셰 내부에는 흰 벽면이 있었다. 그는 그 빈 벽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피카소는 곧 벽에 타는 원형의 커다란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그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집주인은 피카소가 벽에 낙서를 했다고 화를 내며,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하니 50프랑을 내놓으라고 했다. 피카소는 50프랑을 물 수밖에 없었다.가을이 되어 파리로 돌아가려던 그는 벽화를 두고 가는 게 아까웠다. 가을이 되어 파리로 돌아가려던 그는 벽화를 두고 가는 게 아까웠지만 그림을 가져가려면 벽을 일부 뜯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피카소가 칸바일러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자, 칸바일러가 소르그로 내려왔다. 칸바일러는 집주인에게 벽을 수리할 보상비를 주기로 하고 벽화를 뜯어내어 파리로 옮겼다. 그리고 화판을 만드는 전문가에게 그림의 액자를 맡겼다. 세월이 흐른 뒤 바로셀로나 시절의 친구 사바르테스가, 피카소의 재산 관리인이 된 후 파리에서 소르그로 내려와 벽화를 뜯어내고 짐을 꾸렸던 마을 사람을 찾아냈다. 그는 그림 속에 만돌린과 '마 졸리'라는 제목이 붙은 악보와 병이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종합적 입체주의의 증거물로서 후세에 남게 되었다. 피카소는 뒷날 레클로셰 벽화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집주인이 바보 같은 작자였어. 나를 구슬려 벽화를 그대로 남겨두었더라면 벽면을 팔아 한재산 챙겼을 텐데 말야." --- pp.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