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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녀 - 국조 단군왕검을 낳은 조선의 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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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임금(진평왕) 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얻어 덕만에게 보였더니 덕만이 말하기를, "이 꽃이 비록 곱기는 하지만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웃으며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고 물었다. 덕만이 대답하기를,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국색(國色)을 갖추면 사내가 따르는 법이요,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까닭입니다. 이 꽃이 매우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 했다. 그 씨를 심었더니 과연 공주가 말한 바와 같았다. 그가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이와 같았다.
두 책의 내용이 다른 점은 <삼국사기>는 이 일이 공주 시절인 진평왕 때에 있었다고 했고, <삼국유사>는 재위시의 일이라고 하여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선덕여왕이 총명한 여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여왕이었든 공주였든 점쟁이가 아닌 다음에야 그림만 보고 함께 보내온 꽃씨가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또한 모란꽃을 그릴 때에는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당 태종이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 그림을 선물로 보내 양국의 우호를 다지려는 의례적인 선물에 불과했던 것인데, 선덕여왕의 재기가 빼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꿰어맞춘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경주의 여근곡은 지형지세가 사서의 기록과는 달리 적군이 매복할 수 없는 곳이고, 실제로 백제군과 충돌했던 곳도 신라 서쪽 뱆게와의 접경지역이었으며, 당시 신라군의 승리도 여왕의 예언에 따라 군사를 보냈기 때문이 아니라 장군 알천의 지휘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설도 있다. 마지막으로 서라벌의 도리천인 낭산에 자신의 묘자리를 미리 잡았다는 설화도 뒷날 문무왕이 그 아래쪽에 사천왕사를 세우면서 여왕을 신라에 현신한 보살로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 --- p.281~2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