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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을 시작하며
국가의 두 얼굴 세종로 '공론'의 거리 태평로 일가 '개화'가 남긴 빚 정동 '성장기계'의 통로 소공로 황혼의 남대문시장과 명동 도심 속의 '휴경지' 회현동 남산 기슭의 '가나안' 해방촌 근대사의 사생아 용산미군부지 주변부와 장소 마케팅 이태원 물막고 돈벌기 강변아파트 강남행 엑소더스 반포동 권위와 권위주의 서초동 문화와 통치 예술의 전당 기행을 마치면서 |
JOO MYUNG DUCK,朱明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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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로를 내기 몇 년 전, 합방으로 남별궁을 접수한 일제는 그 땅을 잘라 조선호텔의 전신인 철도호텔을 만들고, 남은 땅에는 1922년 총독부 도서관을 지어 그나마 남은 원구단마저 시야에서 가려 버린다.
이렇게 하여 일제하 소공동은 금융가, 백화점가와 연결된 상가로 번창한다. 일인 양복점 재벌이 조지야 백화점(지금의 미도파)을 설립한 뒤 이 일대는 남자 패션의 거리가 되었고, 상공회의소에 이어 기독청년회, 빅터레코드 회사, 경성치의학 전문대학 등이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도 겸하게 된다. 철도호텔 옆에는 반도호텔이 세워져 고급 고객들을 풀어 놓았다. 해방 뒤에도 일제가 남긴 이 거리의 성격은 한동안 유지된다. 적산으로 미군정에 접수된 철도호텔은 이승만과 미군정 요원들의 숙소가 되고, 전쟁 중에는 유엔군 고급장교의 숙소와 피엑스로 쓰인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다시 한 번 바뀐다. 이 시절, 서울시청이 먼저 착수한 일이 '태평로 이가, 소공동 일부 현대화' 사업이었다. 1971년, 아직 '재개발'이라는 용어도 법적 근거가 없던 무렵, 서울시는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아래 고층 화교 빌딩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화교 상가를 철거한다. 우여곡절을 거쳐 이 금싸라기 땅을 차지한 한화그룹은 일본 종합상사와 제휴하여 이십이층 플라자호텔(1976)을 짓는다. 서울의 첫 도시재개발 사업이다. 당시 한 고위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양택시 시장이 대만까지 가서 화교 빌딩 건설사계획이 '본이 아니게' 식언이 된 것을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 pp.58~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