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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책의 문화사’로 살펴본 『삼강행실도』
서론_ 역사 속의 책, 지식과 관습의 매개물 Ⅰ. 판본의 간행과 유통 1. 들어가며 2. 『삼강행실도』의 편찬과 간행 3. 『삼강행실도』의 현존본과 판본 계통 4. 『삼강행실도』 판본의 확산과 책의 소비 5. 나가며 Ⅱ. 『삼강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조선 초·중기 사회의 변화 1. 들어가며 2. 『삼강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정치성 3. 『삼강행실도』 보급의 영향 4. 나가며 Ⅲ. 지식의 유통에 있어 『삼강행실도』판화의 기능과 특징 1. 들어가며 2. 『삼강행실도』류 서적의 간행과 개찬 3. 『삼강행실도』판화의 형식과 구성 4. 『삼강행실도』판화의 기능과 특징 5. 판화 도상의 변화와 관습화 6. 나가며 Ⅳ. ‘삼강’의 권위적 지식이 판소리 문학에 수용된 양상 1. 삼강에 대한 문학적 성찰로서의 판소리 문학 2. 『삼강행실도』언술이 판소리 문학에 수용된 양상 3. 판소리 문학에서 『삼강행실도』 수용의 긴장성 4. ‘이기적 무지’의 서사적 형상화 5. 나가며 Ⅴ. 근대적 인쇄 기술과 ‘삼강’의 지식 확산 1. ‘모친 병에 단지’라는 신문기사 2. 근대 출판물에 나타난 ‘삼강적’ 인물 3. 근대 신문에 등장하는 단지와 할고 4. 삼강의 관습화와 지고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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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속의 책을 보는 새로운 시선, ‘책의 문화사’
- 이 책의 개요 때 아닌 근현대사 역사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다. 내용의 타당성을 떠나 책의 사회적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일련의 사태이다. 책은 지식을 담지하고 전파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매체이다. 특히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문자와 책이 일종의 권력이었다.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 문자인 한자가 지배층과 지식인의 문자였기 때문이다. 이 지배계층은 신분제 사회를 공고히 하고 지배와 복종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책을 만들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독자층에게 지식을 전달하여 이를 관습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삼강행실도』는 효(孝), 충(忠), 열(烈)로 대표되는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대표적인 책으로 교화서 간행과 보급의 전범이 되었다. 이 책『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효·충·열을 강조한 『삼강행실도』의 내용이 아니라, 이를 만들고 배포한 사람·목적·방법에서부터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편집의 방법과 수용자들의 반응까지 책을 통한 지식의 전파와 관습의 형성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작게는 『삼강행실도』를 둘러싼 이야기지만, 크게는 실제 사례를 통해 ‘책, 지식, 관습의 상관성’을 밝히는 시도이고, 대상과 시기를 확장하며 이 관계의 뒤틀림과 역전 현상 등도 전망해 볼 수 있는 단초라 하겠다. 나는 구미의 학자들이 제시한 연구 시각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구미의 경우, 근대적 인쇄술이 형성된 이후의 시기에만 한정하여 이러한 연구가 가능하였다. 이에 비해 근대 이전부터 목판과 철판으로 인쇄된 다수의 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연구 시기를 근대적 인쇄술 이전으로도 끌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면에서 한자라는 문자로 서술된 ‘역사 속의 책’을 책의 물질적 요소나 그 내용에만 한정하지 말고, 책의 생산과 소비, 저자와 독서 집단의 관계, 그리고 독서 행위의 구체적인 현상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특정한 책을 누가 왜 인쇄본으로 출판을 했고, 어떤 유통 과정을 통해서 사회 문화적으로 소비되었는가에 주목한다면, 기왕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물론이고 지식인과 지적 사유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도 가능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책의 문화사’ 연구를 통해 특정 시기와 특정 지역에서의 책의 출판과 판매,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의 유행에 대한 사상사적 접근도 기왕의 사상가 개인이나 학파 위주의 연구와는 다른 성과를 낼 수 있다. 아울러 특정한 책의 출판과 유통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관습(custom)’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밝힐 수 있다. - 〈서론〉에서(18~19쪽) 2. 세종과 성종, 독자를 고려한 편집과 출판을 시도하다 - 새로운 시선 1 세종 10년(1428) 진주의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세종은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국가 질서와 풍습의 정착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한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세종답게 강력한 처벌보다는 서적의 간행을 통한 백성들의 교화에 중심을 두고, 모범이 될 만한 효자, 충신, 열녀의 행실을 그림과 글로 펴냈다. 이것이 최초의 『삼강행실도』 간행이다. 하지만 아직 한글이 반포되지 않았기에 이때의 『삼강행실도』는 한문본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일반 백성들이 책을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판화를 통한 그림의 활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강행실도』는 매 사례마다 그림을 앞에 넣고 뒷면에 찬문과 시를 붙이는 형식을 취했다. 형식의 측면에서 볼 때 글보다 그림을 중심으로 한 책인 것이다. 그래서 책 이름도 ‘삼강행실록(三綱行實록錄)’이나 ‘삼강행실기(三綱行實記)’가 아닌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이다. 그림 하나에 여러 장면이 들어가는데 찬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림을 보고 내용을 추론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정서적인 감흥으로 이어져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에 대한 이해를 넘어 감화에 이르게 한다. 이는 그림 활용의 주요한 효과인데,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그것을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강력한 기제가 되었다. 이뿐 아니라 세종은 한문을 읽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에게 내용을 알리기 위해 각 지방의 유사(儒士)들을 활용하여 강습을 시도한다. 하지만 사례가 지나치게 많아 교육의 효과가 적었고, 의도했던 교육 활동도 의무가 아니었기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성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며 ‘삼강’의 지식을 알리는 데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한다. 우선 성종 12년(1481) 언해본을 출간하는데, 이는 교화의 대상인 백성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 이어 성종 21년(1490) 내용이 중복되는 사례들을 걸러 기존의 330개(효자, 충신, 열녀 각 110개) 분량을 105개(효자, 충신, 열녀 각 35개)로 줄여 축약본을 만든다. 이를 선정본(選定本)이라 하는데 이전 내용을 그대로 활용하여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묶어냈다는 의미이다. 이제 독자들은 분량의 부담을 덜고 책의 핵심 내용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간행과 반사(頒賜)가 이루어졌고, 특히 중종 6년(1611)에는 근래 풍속이 불미스럽다 하여 무려 2,940질이나 반포했다. 이는 조선시대에 출판된 단일 서책으로서 ‘책력(冊曆)’과 『규장전운(奎章全韻)』 다음가는 인쇄 물량이다. 이렇듯 ‘삼강’의 지식은 국가 주도의 물량 지원과 배포 시스템을 통해 일반 백성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3. 독자들은 『삼강행실도』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새로운 시선 2 삼강의 권위적 지식이 교화의 대상인 일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기득권층의 발언은 정약용의 열부론(烈婦論)이나 임진왜란 이후 쓰인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 같은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실제 교화의 대상이었던 백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민중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조선 후기 판소리 문학은 주목할 만하다. 판소리 문학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에는 이미 『삼강행실도』에 관련한 지식이 일반 민중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심청가〉와 〈춘향가〉에 모두 등장하는 이비(二妃)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은 『삼강행실도』〈열녀도〉에 맨 처음 소개되는 인물이고, 심청이가 언급한 자로(子路)와 제영(?榮), 왕상(王祥)과 곽거(郭巨)도 『삼강행실도』〈효자도〉에 실린 인물들이다. 그런데 판소리는 집단적 적층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기에 다양한 윤리적 지향이 한 텍스트 안에서도 공존한다. 춘향은 텍스트 안에서 열녀로 양육되고 실제 열녀가 되지만, 놀려대는 방자, 현실적인 월매의 태도, 맹인 점쟁이의 성추행 등 춘향을 둘러싼 인물들의 태도에서 열녀의 고결함에 대한 숭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본문 172~177쪽) 삼강의 권위적 지식이 일방적 수용이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판소리 문학에서 독자들의 비판적 수용을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삼강의 권위적 지식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춘향과 심청은 열녀가 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스스로가 열녀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특히 문제가 해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춘향을 시험하는 어사 이몽룡의 태도에 이르면, 이야기에는 ‘인간 춘향’은 없고 ‘열녀 춘향’만 남게 된다. 심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청이가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효를 행해야만 ‘효녀 되기’가 보장하는 현실의 선물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오고 심청이 황후가 되어 돌아오는 장면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야기에서는 삼강의 이념에 기반하여 순종과 보상의 ‘인과적 자동성’만이 강조되고 있다. 삼강이라는 당위적 지식에 순종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단순한 논리가 이야기의 부조리함을 가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실제 『삼강행실도』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가림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허벅지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자르는 아들의 모습과 누워 있는 아버지 사이에 가림막이 있다. 효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지라도, 아들에게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이 아버지에게 불편한 진실이기에 가림막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후속작인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오면 둘 사이에 어떠한 가림막도 없다. 이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최소한의 균형감마저 사라지고 희생의 뻔뻔한 당위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열녀 되기와 효자 되기가 수반하는 고통에 대한 무감각과 그 실천의 당위성만이 만연한 조선 후기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4. 책, 지식, 관습이 만나는 지식 유통의 현장을 가다 - 이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서론. 역사 속의 책, 지식과 관습의 매개물 ‘책의 문화사’를 다룰 때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측면들을 살폈다. 우선 한자로 된 책을 대상으로 할 경우, 동아시아 한자 문명권 안에서 출판되고 유통된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특히 한자문명권의 여러 국가나 지역에서 지식을 장악하고, 그것을 책이라는 물질을 통해 유통시키는 엘리트 집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점은 서유럽의 역사를 다루면서 제기된 ‘책의 문화사’ 연구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시에 한 국가나 지역에서 한자라는 문자를 장악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 각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관습이 책의 출판과 그것을 읽는 독자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도 제기했다. 이로써 한국학 연구에서 ‘책의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Ⅰ. 『삼강행실도』 판본의 간행과 유통 이 글은 『삼강행실도』의 간행과정과 그 실제적 유통을 살피는 데 초점이 두었다. 『삼강행실도』는 간행 이후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국가에 의해 확산되고, 비슷한 형태의 교화서 간행과 보급에 모범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서책 간행 부수, 보급 경로 등에 관한 내용을 살펴 그 의미를 파악했다. 특히 중종 6년(1511)에 무려 2,940질이 인쇄되었는데 이는 책의 확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삼강행실도』의 비중과 역할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다. 현전하는 서책 중 간행한 곳과 간행 시기의 기록이 있거나, 내사본(內賜本)으로 남아 기록이 있는 몇몇 판본들을 중심으로 그 간행의 흐름을 파악했으며, 원간본(原刊本)?선정본(選定本)?중간본(重刊本), 그리고 각종 지방 간본 등도 참고했다. Ⅱ. 『삼강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조선 초·중기 사회의 변화 조선 초기에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게 된 배경과 이 책이 간행된 이후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규명했다. 『삼강행실도』를 편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김화 사건이지만, 그 배경은 당시 조선이 처한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즉 가정과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유교적인 전통을 확립해야 했으며, 국가 차원에서는 신하들의 충성과 절의를 기반으로 한 관료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한 당면과제였다. 그래야만 가정과 사회, 국가가 모두 빠른 시일 내에 안정될 수 있었다. 따라서 세종은 이러한 당시의 여러 문제들을 『삼강행실도』의 편찬과 보급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한편 ‘선정삼강행실도’는 『삼강행실도』에 실린 사례를 3분의 1로 줄인 것으로, 사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만(汗漫)하거나 구차한 것들은 제외했다. 아울러 선정본 츨판 당시의 상황이 『삼강행실도』를 처음 편찬했던 때와는 달랐기 때문에 이 시기의 상황에 맞지 않는 사례들, 즉 극단적이거나 유교의 다른 이념들과 충돌되는 사례들은 대부분 누락시켰다. 조선 초기에 널리 반포된 교화서가 『삼강행실도』 하나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 책으로 인해 사회의 풍속과 관습이 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이 조선인과 조선사회를 유교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Ⅲ. 지식의 유통에 있어 『삼강행실도』 판화의 기능과 특징 조선시대에 왕실로부터 양반층에 이르기까지 가장 폭넓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통된 그림이 『삼강행실도』에 실린 그림이다. 그래서 유교 윤리의 정보를 담은 『삼강행실도』의 유통에서 판화가 지닌 기능에 주목했다. 그동안 미술사에서 『삼강행실도』에 대한 연구가 회화사료적 특성과 양식적인 고찰에 치중했다면, 이 글은 『삼강행실도』 판화의 구조적인 특징과 그 이면의 기능적인 측면까지 포함하여 다루었다. 특히 『삼강행실도』의 판화는 ‘윤리풍속’이라 할 만한 모범적인 모습들을 제시하여 이를 따르고 실천하게 하는데 핵심 기능을 했다. 그 과정에서 판화를 통한 시각적인 장면의 연출은 독자를 감동시켜 감화를 이끌어내고 교화를 촉발시키는 정서적인 체험을 제공해하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판화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의 전달과 체험의 장치들을 찾아 분석했다. 또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는가도 파악하려고 했다. 곧 판화라는 기법은 『삼강행실도』를 대중화하고 유통을 원활히 하는 데 중요한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이 글에서 밝혔다. Ⅳ. ‘삼강’의 권위적 지식이 판소리 문학에 수용된 양상 판소리의 사설에 주목한 이 글에서는 『삼강행실도』가 제시하는 당위적 지식이 민중들에게 어떻게 수렴되었는가를 판소리 문학 텍스트를 통해 살폈다. 공공의 권위를 띠고 자해적 실천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삼강의 지식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춘향가〉나 〈심청가〉 등에서 삼강은 한편으로는 조롱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기적 무지’라는 서사적 형상화의 양상을 촉발시켰다. 판소리 텍스트에서 삼강의 흔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점은 기발하면서도 이 글이 지닌 묘미다. Ⅴ. 근대적 인쇄 기술과 ‘삼강’의 지식 확산 『삼강행실도』에서 제시된 여러 가지 사례 중에서 단지(斷指)와 할고(割股)는 일제시대의 신문기사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관련 신문기사는 단지와 할고를 매우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지와 할고를 행하는 행위자가 효자와 효부로 칭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조선총독부는 조선시대에 형성된 삼강의 이데올로기를 통치 수단으로 적절하게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삼강행실도』가 출판되고 유통되면서 알게 모르게 구축된 삼강의 지식이 극단적으로 단지와 할고로 집약되고, 그것이 근대적인 충효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는 측면에서 발견된다. 더?이 조선시대의 『삼강행실도』와 달리 근대적 인쇄 기술은 폭발적으로 단지와 할고를 삼강의 실천적 양상으로 확대재생산했을 가능성도 많다. 이것이 바로 한국학에서 ‘책의 문화사’를 책과 지식, 그리고 관습의 상관관계 속에서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