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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든 마루에 앉아
고마운 봄비 오시네 초록들이 신명 나게 자라네요 가을빛에 눈멀면 마음 열릴까 |
이철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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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저도 체면도 없이 폭주하는 현실입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거추장스러워하는 판입니다. 견제 없이 무도한 시장판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변방이라 하고 돌아앉았기가 힘이 듭니다. 마음이 무겁고, 조용해지지 않습니다. 저녁마다 그 마음과 씨름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시장과 시장의 요구를 따라 거칠게 변해 가더라도 우리만은 자유로울 수 있기를 꿈꾸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지만, 살아도 살아남아도 부끄러움을 벗기 어렵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꽃들은 죽자고 꽃대를 밀어 올리고, 그 끝에 마음인 듯 피워내는 화사한 얼굴로 흔히 제 이름을 삼지요. 궂은 비 이어지는 계절에는 그 화사함이 빛바래기도 합니다. 좋은 날 못 보고 스러지는 거지요. 그렇다고 꽃이 아니라 할 수 있나요? 꽃이 그러하듯 우리 삶도, 비 오시고 눈 내리고 궂은 날 갠 날 있지만 엄연한 한 생애일 겁니다. 쉽게 마음 접지 마시고, 힘내시기를. --- 「궂은 날도 죽기 살기로 화사한 꽃처럼」 중에서 눈이 내려 뜰에 가득 쌓인 날은 집안이 유난히 밝습니다. 해가 들지 않는 자리에도 눈빛은 드는가 봅니다. 그 밝은 기운이 마루를 명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덩달아 명랑해지는 걸 짐짓 눌러두었습니다. 눈싸움하러 갈 것도 아니고, 눈사람 만들자 할 것도 아니고, 나가서 썰매를 지치자 할 것도 아니어서 그랬을까? 그래도 은근한 설렘이 남아 있었지요. 눈이 다 녹지 않은 채 날이 어두웠습니다. 아이들 있으면, 어린 아이들 있으면 이런 날 놓치지 마세요! 아까우니까! --- 「눈빛 든 마루」 중에서 흙에서 참 작고 여린 순이 솟아오를 때, 작은 풀씨가 귀여운 악마처럼 새순을 내밀 때, 콩 싹이 산비둘기 무서워하면서 두 잎 조심스레 들고 흙 밖으로 나올 때, 비 오고 나서 습기 촉촉해지면 콩나물보다 더 여린 잎과 줄기를 벋는, 그 뭐더라……, 하여튼 생명들이 기적 같이 존재를 드러낼 때, 늘 행복했습니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순환과 만나는 일은 사계절 공부방이기도 하지요. 가끔, 아주 가끔 흙 묻은 장화를 씻을 때, 삽날을 씻을 때는, 어린 시절 학용품 정리하는 기분이 그랬을 거라 싶기도 했습니다. --- 「여린 순이 솟아오를 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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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가 이철수가 흙냄새, 사람 냄새 새겨 보낸 나뭇잎 편지
판화가 이철수가 제천 외곽의 농촌 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며 지낸 지 22년이 되었다. 그가 ‘이철수의 집(www.mokpan.com)’을 통해 매일 사는 이야기를 엽서로 쓰고 그려 부친 지 7년이 되었다. 이 책에는 최근 2년 동안 쓴 엽서 가운데 140통을 골라 엮었다. 엽서는 일 년 열두 달, 그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소식, 집 안팎에서 만난 생명과 생명 아닌 것들을 보며 느낀 단상들,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세상의 진창길과 그 길에 희망이 되는 징검다리 이야기들을 듣고 느끼는 바를 드로잉과 판화 그림 여백에 적었다. 농사를 짓다 보면 비바람에 애써 키운 작물이 쓰러지고 논밭이 쓸려 내려갈 때도 있고, 가뭄 끝 불어 닥치는 바람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그럴 때 속상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쩌겠는가?’ 하며 겸손하게 받아들일 따름이다. 이렇듯 사계절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야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기꺼워할 터이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식을 접하면 ‘세상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밤눈 밝아 어두운 일에 능통한 야행성 짐승들의 횡포, 끈기 있게 민심을 보여 주어도 폭력으로만 대답하려는 오만한 권력, 산이 아프다, 아프다 하는데도 못 들은 척 길을 뚫더니 이젠 물길까지 내겠다는 사람들……. 사람이 지은 죄의 값을 자연이 대신 치르는 모습도 본다. 그만두어야 할 삶의 방식과 버려야 할 관념이 많이 있어 자연과 온전히 다시 만나려면 무진 애를 써야 할 시대다. 아름다운 세상 그리면 아름다운 세상 열릴 거라 너무 많은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생명의 가치를 초라하게 하는 세상이지만, 살아 있다면 딛고 일어서야 할 세상이기도 하다. 겨울 들머리에 남루해진 나무들의 숲에 가서도 나무들의 고된 삶을 만나기 어렵지 않듯, 사람들의 숲인 세상에서도 상처 있으면 있는 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다. 거짓 없이 키 크고 작은 이것들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살고자 온 힘으로 세상을 버티는 초록들도 그렇지만, 살다 보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존재가 온통 봄 햇살 같아 그 곁에 오래 있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많아도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햇살을 손님으로 맞이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오늘처럼 어둠 끝에 밝음이 오는 것도 정해진 일이다. 이철수는 “궂은 날에도 죽기 살기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꽃”처럼, “거칠 것 없는 푸름 한 장인 하늘”처럼, 존재 자체로 자신의 생명을 긍정하는 것들에 시선을 두면서 그 마음 닮아 가자고 한다. 아름다운 세상 그리면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 거라고 믿으며 같이 힘내 살자고 어깨를 다독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