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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서기』의 기년조작으로 인한 가시의 편년 수정 문제
이른바 왜5왕시대가 가지고 있는 의미 천황의 재위년대의 추정 백제와 왜의 관계에 대한 한일양국 사료의 개관 2. 신공기의 대백제관계의 기사의 실체 신공기의 대백제관계 기사를 보는 시각 백제가 왜와 통교를 하게 된 배경 신공기 49년조의 성격 신공기 49년조의 군사활동과 50년조의 '증사다사성'의 의미 근초고왕의 맹약과 신공황후의 '수대은'의 실체 3. 석상신궁의 칠지도와 닌토쿠천황 석상신궁의 칠지도와 신공기 52년조 백제가 칠지도를 왜에게 전한 역사적 의의 여론 참고문헌 부록 : 일본천황의 명칭 대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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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 명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백제의 왕세자와 왜왕은 칠지도를 제작하게 된 동기와 관련하여 기술되어 있을 뿐이며, 그들이 칠지도를 주고 받은 당사자라는 명확한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미야자키氏가 뒷면의 명문에는 칠지도를 '왜왕에게 증정한다"는 문구가 보이지 않으므로, 명문의 형식으로 보면 외교문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백제의 국내관계자의 사적 문서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준외교의 문서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사정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백제의 왕세자와 왜왕이 칠지도를 주고받은 주체라고 전제하고 행한 해석방법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석상신궁의 칠지도가 신공기 52년조의 칠지도와 동일한 실체로 판명된 이상, 칠지도를 만들어 왜왕에게 전해 준 주체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분명하므로, 칠지도 명문의 암묵상의 주어는 백제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백제왕세자'를 백제왕과 세자의 2인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하였던 것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따라서 칠지도를 만들어 수여한 주체가 백제의 근초고왕이라면, 칠지도 명문에 보이는 '백제왕세자'는 단지 칠지도의 제작동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표기된 것으로 생각하여야 합리적이다. ---p. 3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