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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4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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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일러두기

39 동로마 황제 제논과 아나스타시우스·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의 출생과 교육, 초기 업적들·그의 이탈리아 침략과 정복·이탈리아의 고트 왕국·서방 세계의 상황·군사 정권과 시민 정권·원로원 의원 보이티우스·심마쿠스의 죽음·테오도리크의 회한과 죽음

40 유스티누스 1세의 등극·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 1. 황후 테오도라·2. 원형경기장에 모인 분파들과 콘스탄티노플의 소요·3. 비단의 교역과 생산·4. 재정과 조세·5. 유스티니아누스가 세운 건축물·성 소피아 성당·동로마 제국의 요새와 변경 지대·유스티니아누스의 아테네 학교와 로마 집정관직 폐지

41 유스티니아누스의 서방 정복·벨리사리우스의 성품과 최초의 출정·벨리사리우스의 아프리카 반달 왕국 침공과 정복·벨리사리우스의 승리·고트 전쟁·시칠리아, 나폴리, 로마 수복·고트족의 로마 포위 공격·고트족의 퇴각과 패배·라벤나의 항복·벨리사리우스의 영광·그의 가정의 수치와 불행·그의 아내 안토니나

42 야만 세계의 정세·롬바르드족의 도나우 강 연안 정착·슬라브 종족과 침략·투르크족의 기원, 제국, 외교 사절·아바르족의 패주·페르시아 왕 호스로우 1세(누시르반)·그의 치세와 대(對)로마전·콜키스 또는 라지카 전쟁·에티오피아족

43 아프리카의 반란·토틸라에 의한 고트족 왕국의 부활·로마의 함락과 탈환·나르세스의 이탈리아 최종 정복·동고트족의 멸망·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의 패배·벨리사리우스의 최후의 승리, 불명예, 죽음·유스티니아누스의 죽음과 그의 품성·혜성, 지진, 역병

44 로마 법학의 개념·왕정기의 법·10인위원회의 12표법·민중의 법·원로원의 포고·정무관의 고시와 황제의 칙령·로마 법학자의 권위·유스티니아누스의 칙법휘찬, 학설휘찬, 신칙법, 법학제요: 1. 개인권·2. 물권·3. 위법행위와 소송·4. 범죄와 형벌

45 유스티누스 2세의 치세·아바르족의 사절·그들의 도나우 강 연안 정착·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정복·티베리우스의 즉위와 치세·마우리키우스의 즉위와 치세·롬바르드족과 라벤나 총독 지배하의 이탈리아 정세·로마의 고난·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성품과 정책·로마의 구원자

46 호스로우(누시르반) 사후의 페르시아 혁명·그의 아들 압제자 호르모우즈의 폐위·바흐람의 찬탈·호스로우 2세의 도주와 복위·로마에 대한 그의 사의(謝意)·아바르족의 왕·마우리키우스 황제에 대한 군사 반란·그의 죽음·포카스의 전제 정치·헤라클리우스의 즉위·페르시아 전쟁·호스로우의 시리아, 이집트, 소아시아 정복·페르시아와 아바르족의 콘스탄티노플 포위·헤라클리우스의 승리와 개선

47 성육신 교리의 신학사·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들의 대립·성 키릴루스와 네스토리우스·제3차 에페수스 공의회·에우티케스의 이단·제4차 칼케돈 공의회·민정과 교권의 불화·유스티니아누스의 편협함·3장 논쟁·단의론 논쟁·동방 종파의 상황·1. 네스토리우스파·2. 야고보파·3. 마론파·4. 아르메니아파·5. 콥트파

저자 소개 2

에드워드 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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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Gibbon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피톨륨의 폐허를 본 순간 《로마제국 쇠망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다. 1776년 2월에 출간된 《쇠망사》 제1권은 빅 히트를 쳤다. 1781년 3월에 《쇠망사》 제2권과 제3권이 나왔고, 이어 1788년 5월에 제4~6권이 출간되었다. 말년에 지병인 음낭 수종으로 고생하다가 1794년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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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한계를 뛰어 넘는 삶』『Believe in What You Do : 성공을 부르는 50가지 감동』, 『포옹 - 마음을 열어주는 힘, 어머니』, 『헌터 부인의 죽음』, 『더치쉬츠의 회복』, 『다시 찾아간 나니아』, 『구원의 사랑』, 『로마제국 쇠망사』, 『스웨터』『디지털 기업의 4가지 코드』,『디스럽트』,『데일 카네기 인간관계의 기술』,『최강 팀장의 조건』등이 있고, 기획 집필한 책으로 『성공한 학원들의 학원 경영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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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1월 0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80쪽 | 999g | 160*235*35mm
ISBN13
9788937426346

출판사 리뷰

『로마 제국 쇠망사』의 제4권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서기 476년) 난 후부터 서기 628년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에 평화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제일 주목할 만한 점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치세(527~565년)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법 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로마 민법의 편찬 사업을 주도하였고, 성 소피아 대성당을 비롯하여 많은 교회와 성채, 요새의 건립, 페르시아 왕 호스로우(누시르반)와의 대치,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방 세계와 아프리카 정복에 따른 제국 통치의 행정 개혁, 로마 가톨릭 교회와 긴밀하게 제휴하면서 제국 내의 강력한 신앙 통합과 이교도 억압 등을 통해 로마 제국의 부흥을 목표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의 통산 38년에 걸친 통치 업적은 기번이 전(全) 다섯 개 장(章)에 걸쳐 기술하고 있는데, 다만 고대의 전통적인 로마 제국의 중흥을 시종일관 겨냥한 그의 통치 행위들은 지금까지 주로 유스티니아누스의 야심에 찬 개인적 시도로 간주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로마 법전 편찬과 같이 고대 로마의 지적 유산의 획기적인 집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극으로 끝난 시대착오적인 외정(外征)으로 부정적인 역사적 평가를 받아 온 것이다. 하지만 변경 지방의 이름 없는 가문 출신의 이 황제가 원대한 야심과 웅대한 계획,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과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비롯하여 뛰어난 문무 양면의 인재를 발굴하여 국내외 정책에 등용한 높은 안목과 식견은 이 시기의 역사 상황과 맞물려 빛을 발했다. 이후의 무기력하고 허약한 황제들도 본질적으로는 유스티니아누스의 통치 원리를 모범으로 삼게 되면서 그의 치적은 동로마 제국 1000년 역사의 골격을 이루게 된다.
한편 이 시기 로마와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방 세계는 야만족들의 계속되는 침입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원래의 로마 제국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 버리면서 간혹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45장에 ‘로마의 고난(Distress of Rome)’이라는 제목이 나오는데 이것이 당시 로마와 서방 세계의 정황을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이후 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입, 페르시아 왕 호스로우 2세의 침공, 이슬람 세력의 등장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부 세력 압박의 와중에서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교의 논쟁, 성상 숭배의 가부를 둘러싼 정치적, 교권적 불화와 대립으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특히 아주 오래전부터 세력 다툼을 벌여 온 페르시아 제국에는 호스로우(일명 누시르반)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동로마 제국과 패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결국 서기 628년 3월 동로마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제와 페르시아의 시로에스 사이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동로마 제국은 이제 또 다른 거대 세력인 이슬람교도들과 곧 맞닥뜨려야 하는 결과를 맞게 된다. 7세기 비잔티움 중흥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는 이사우리아 왕조, 마케도니아 왕조, 두카스 왕조 들을 거치면서 제국의 번영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번은 그리스도교계의 상황을 정리한다. 이교 신앙이 소멸하고 자신들의 승리를 단독으로 누려도 좋았을 그리스도교도들의 가슴 속에는 불화의 원리가 있었는데, 삼위일체 논쟁에 이어 성육신(成肉身) 논쟁이 일어나 교회에는 불명예스럽고 국가에도 해로운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의 기원은 더 복잡했고, 후세에 끼친 영향은 훨씬 지속적이고 파괴적이어서 피비린내 나는 분쟁을 불러일으키는데, 기번은 이후 250년간의 종교 전쟁을 원시교회의 교의를 신중하게 검토하면서 동방 여러 종파의 교권과 정치 분리를 논하면서 요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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