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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논쟁과 임금의 벌주 _ 7
한자는 백성의 문자가 아니다 _ 22 천민은 법을 몰라야 한다 _ 39 강상의 죄를 막아라 _ 54 파저강의 여간자(女間者) _ 67 오랑캐 문자를 연구하라 _ 82 오랑캐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 _ 95 혈로를 뚫는 여장수 _ 109 명신인가, 허명인가 _ 124 형제 중에 숨은 칼날이 있다 _ 138 세자빈 치마 속 뱀 두 마리 _ 153 생명과 바꾼 가문의 위기 _ 167 여악(女樂)은 음란의 근원인가 _ 182 나랏님도 못하는 음주 단속 _ 195 두만강을 건너는 위장 부부 _ 209 세자의 늦사랑 _ 226 두 번째 폐빈 _ 245 조선의 명궁은 누구냐 _ 259 임금과 천민의 토론 _ 276 조선왕실 가계도와 정부 조직도 _ 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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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득희가 쓴 여진 문자 편지는 임금에게 쉬운 문자에 관한 관심을 더욱 크게 부추겼다.
어느 날 상참이 끝날 무렵, 임금이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어리석은 백성이나 천민들은 법률 조문에 의해 죄의 크고 작음이 정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오. 만약에 백성들이 자신의 행동이 죄가 된다는 것과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안다면 잘못된 행동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것이오. 큰 죄가 되는 조항만이라도 뽑아 이두로 번역하여 민간 남녀가 익히 알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조판서 허조가 아뢰었다. “신은 폐단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폐단이라니요?” 임금이 뜻밖의 말에 대해 되물었다. “백성이 죄의 크고 작음을 샅샅이 알게 되면 법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제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임금은 대단히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알지 못하면서 죄를 짓게 두는 것이 옳단 말이오?” 임금의 목소리가 워낙 크자 허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착한 백성을 두고 아뢴 말씀은 아닙니다.” 임금이 꾸짖듯이 계속 말을 이었다. “백성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숨기고 죄 짓고 난 다음에 처벌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술책에 불과한 것이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께서 모든 사람이 율문을 읽게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법을 알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한 일이 아니겠소?” “황공하옵니다.” 허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들은 어떻게 하면 많은 백성이 경전의 율문을 익히고 알아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시오.” 임금은 비단 이조판서 허조뿐 아니라 조정의 많은 대신이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리라고 짐작했다. --- p.41 “이제 상감마마께서는 더 훌륭한 교지를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말함인가?” “천민을 진실로 백성으로 만드는 교지를 내려 주시옵소서. 형조도 관에 있는 노비의 문서를 모두 폐기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 “아니? 노비를 다 없애라는 말인가?” 임금은 호기심이 잔뜩 어린 표정으로 홍득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없애는 것이 아니오라 진정한 마마의 백성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농사도 짓고 관아에서 일도 보고, 변방에 나가 군졸로도 싸우고, 재인은 백성을 즐겁게 하는 재주를 보이게 하고, 고관이나 양반집에 소속된 자는 다 풀어서 그들이 자유로이 주인을 위 해 일하고 정당하게 대가를 받게 하옵소서.” “홍 처자의 말은 천지를 뒤엎는 말이다.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구나.” --- p.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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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을 성공적으로 마친 세종은 오랫동안 염원해온 북방 정벌에 나선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백성들이 편안히 살게 하기 위해, 임금은 고려시대 윤관 장군이 세운 국경비를 찾아 고토를 회복하고자 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김종서는 여진 말에 능통한 화적 두목 홍득희와 함께 두만강 북쪽 7백 리에 있다는 국경비를 찾아 북방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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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업적 이면에 살아 숨 쉬는 인간 이도의 민낯
소설 속에서 다시 태어난 세종 이도는 눈물 많고 고민 많은 평범한 인간이다. 특히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정치 논리에 휘말려 부인의 친정이 희생되자 소리 내어 울고, 왕이 하는 일이 죄인 처형하고 유배 보내는 것밖에 없냐며 술에 취해 한탄한다. 형 양녕대군이나 아들 임영대군이 온갖 망나니짓을 하고 다녀도 싸고돌기 바쁘다. 일을 진행하는 것도 의외로 감정적이고 고집스럽다. 세상을 뜬 왕후를 위해 시작한 불당 건립에 대소 신료들은 물론 전국의 유생까지 반대해도 귀를 막고 듣지 않고, 지속적으로 금주령을 시행하면서도 왕 자신은 궁궐의 주연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삼강행실도』를 전국에 배포할 정도로 윤리 교육에 고심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그릇된 행실은 슬쩍 눈 감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황희 등 아끼는 신하는 잘못을 저질러도 계속 중임을 맡긴다. 더구나 실제 세종의 치세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 태종이 살아서 상왕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 실권을 갖지 못한 채 왕위에 올랐고, 남에서는 왜구가, 북에서는 여진이 침범하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유학과 양천 신분제도는 장점만큼이나 부작용도 뚜렷했다. 왕은 그 틈바구니에서 아직은 신생 국가인 조선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모든 일은 사람을 중심으로” 위대함을 낳은 평범한 생각 세종은 고민하고 한탄하고 정에 흔들리면서도, “모든 일은 사람을 중심으로”라는 말 한 마디를 가슴에 품고 자신의 고뇌를 하나하나 결실로 바꿔간다. 명재상 황희, 천민 출신 기술자 장영실, 천재 악사 박연 등 그가 반대를 무릅쓰고 기용했던 사람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강력한 군왕이었던 아버지 태종의 입김이 닿지 않는 분야를 찾다가 육성하게 된 집현전이 왕의 길을 든든하게 지원한다. 부인에게 마음을 쓰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다 보니 궁에서 일하는 무수리들의 출산 휴가까지 챙기게 된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벌주어야 하는 입장이 고달파 평민이나 천민이 잘 모르고 죄를 짓거나 억울하게 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교육하고 서로 이해할 방도를 고민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여린 마음이 고통 받는 상민들과 천민들의 삶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 깊고 외로운 고민은 “한글 창제”라는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평등한 과세를 위한 세법 연구, 생활과 농사 편의를 위한 자격루와 측우기의 개발, 왜구 토벌과 북방 영토 개척, 세종의 업적은 한글창제 이외에도 읊기가 민망할 만큼 끝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을 다 같이 잘 살게 하고자 하는 마음,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앞으로도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에 놀랍고 위대한 인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범상치 않은 행적의 시작에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세종대왕 이도』는 알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