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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류학의 아버지, 마르셀 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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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론
감사의 말

1부 뒤르켐의 조카
1장_ 에피날, 보르도, 파리
“보주” 산맥에서ㅣ유대식 교육ㅣ보르도 대학에서 학생이자 제자로서ㅣ또 다른 영향ㅣ첫 번째 정치 참여ㅣ교수자격시험ㅣ혁명을 추구하는 학생
2장_ 고등연구실천학교 학생
종교 문제ㅣ종교학 분과ㅣ“두 번째 삼촌”: 실뱅 레비ㅣ앙리 위베르, 쌍둥이ㅣ 1896년: 힘들었던 한 해
3장_ 제도권 진입의 관례: 첫 번째 출간과 해외 연수
네덜란드와 영국ㅣ새로운 잡지: 『사회학 연보ㅣ희생ㅣ멀리서 바라본 드레퓌스 사건

2부 터부-토템 씨족
4장_ 학술 동인 모임에서
교육
5장_ 시민 모스
뤼시엥 에르 그리고 샤를르 앙들레르와 함께ㅣ쟈피 회의ㅣ프랑수아 시미앙과 그의 『비평적 주해ㅣ협동조합주의자ㅣ‘라 불랑즈리’
6장_ 생 자크 가(街)
사회학의 옹호ㅣ오성의 범주ㅣ소르본에서의 뒤르켐
7장_ 『뤼마니테』 지의 기자
“협동조합” 란ㅣ급변한 상황ㅣ러시아에서의 임무ㅣ동반자
8장_ 집단적 비이성
마나ㅣ“소중한 스승”ㅣ『종교사 논문집』
9장_ 콜레주 드 프랑스에 입성하기 위한 “열띤 경쟁”: 루 아지 사건
미완의 기도(祈禱)ㅣ한 시대의 종말
10장_ 고통스러운 전쟁
통역병ㅣ큰 불행ㅣ“참으로 긴 전쟁이었다!”

3부 계승자
11장_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이 계속되다
민족들 사이의 전쟁과 평화ㅣ이상향: 국제주의ㅣ폭력에 대한 성찰ㅣ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협동주의를ㅣ외환 위기ㅣ좌파에서
12장_ 부담이 막중한 계승
고등연구실천학교로의 귀환ㅣ심각한 병ㅣ“경계를 존중해야 한다”ㅣ『사회학 연보』 (두 번째 시리즈)
13장_ 민족학의 정립
대학 부속 민족학연구소ㅣ「증여론」
14장_ 사회학의 패배
미국 여행ㅣ『사회학 연보』의 실패ㅣ다른 시련들, 다른 의무들ㅣ야심에 찬 계획: 제6분과ㅣ투사로서의 최소한도의 의무

4부 인정·
15장_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직
이줄레의 후임자ㅣ잠시 동안의 휴식, 모로코ㅣ마침내 얻은 승리!ㅣ지도자
16장_ 교수들이서로경쟁하는곳
다시 살아난 민족학에 대한 관심ㅣ예술과 민족학. 잡지 『도큐망ㅣ오래된 문제, 새로운 연구로의 길ㅣ『사회학 연감ㅣ “삶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
17장_ 정치에대한실망들
좌파의 복귀ㅣ신예들ㅣ국영화하자, 그것이 미래다ㅣ평화, 빵, 자유
18장_ 신화들의시대
파시즘의 부상ㅣ종교학 분과 학장ㅣ사회학 콜레주ㅣ게르만족의 신화

에필로그
전쟁시절 그리고 전쟁 후ㅣ비시 정권ㅣ인종 차별주의에 직면한 민족학ㅣ 조임쇠ㅣ망각ㅣ“모스와 함께, 그리고 모스 저 너머로”

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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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마르셀 푸르니에
Marcel Fournier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고등연구실천학교-소르본대학 연계 교육과정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의 지도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지 『사회학과 사회들 (Sociologie et Sociee)』, 『뒤르켐 연구(Durkheim Studies)』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사회이론과 사회학의 역사, 퀘벡 지역 문화와 예술에 관한 연구 등으로 알려졌다. 모스와 뒤르켐의 평전을 집필했으며, 현재 그들의 미간행 저작과 서간문 편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르셀 모스』(1994) 외에도 『차이를 가꾸자』(1992), 『에밀 뒤르켐』(2007), 『지식사회: 창조성과 소통』(2007), 『직업: 사회학자』(2011) 등이 있다.
역자 : 변광배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같은 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에서 『사르트르의 극작품과 소설에 나타난 폭력의 문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제2의 성 - 여성학 백과사전』, 『나눔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사르트르 평전』, 『변증법적 이성비판』(공역), 『우정과 투쟁 - 사르트르와 카뮈』 등 다수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104쪽 | 1408g | 150*220*60mm
ISBN13
9788976824349

책 속으로

마르셀 모스는 대단한 칭찬을 받는 인물이다. 조르주 콩도미나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모스는 “프랑스 민족지학의 아버지다.” 빅토르 카라디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스는 “프랑스 민족지학자들의 집단 기억 속에서 항상 그들의 선배가 아니라 스승으로 남게 될 것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류학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의 필독 논문인 「증여론」은 “당연히 가장 유명한” 모스의 글이다. 그리고 조르주 귀르비치는 「증여론」을 “진정한 걸작”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론」중에서

모스는 무엇보다도 학자-영국에서 말하는 스칼라(scolar)-였다. 그렇지만 모스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 학자가 결코 아니었다. 삼촌 뒤르켐과는 대조적으로 모스는 대학시절부터 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집산주의 학생 단체의 구성원, 프랑스 노동당 당원, 사회주의 혁명노동당 당원으로서 모스는,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자 에밀 졸라를 지지했으며, 『드브니르 소시알』지와 『무브망 소시알리스트』지에 협조했으며, 『뤼마니테』 지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르 포퓔레르』 와 『라 비 소시알시스트』 등에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 모스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스는 단순한 투사로 남기를 선호했다. 신념과 그의 친구들에게 충실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투사로서 말이다. ---「서론」중에서

에피날고등학교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후에도 모스는 고등사범학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1890년 가을에 보르도에 있는 삼촌에게로 가게 된다. ……
모스는 『현대 영국 심리학』, 『현대 독일 심리학』 등을 완전히 독파했다. 또한 뒤르켐이 1880년 여름 초에 그랬던 것처럼 모스 역시 학문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스는 사회학, 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하지 않았던 학문, 마지막 콩트주의자들의 과도함으로 인해 조소를 받았던 학문, 완벽한 체계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었던 학문에 곧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 1882년 대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다음, 뒤르켐은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장 에피날, 보르도, 파리」중에서

그 당시 프랑스 대학에 ‘사회학’을 도입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1887년 신학기에 뒤르켐은 사회학이 “신생 학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뒤르켐은 계속해서 이 학문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 대상을 규정하고(사회적 사실), 그 방법(관찰과 실험)을 규정하고, 이 학문이 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공헌”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장 에피날, 보르도, 파리」중에서

모스는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은 비교 불가능한 몇몇 후원자들 덕분으로 풍요롭게 되었다.” 그러면서 모스는 “그 자신의 인생 초반부를 위대한 세 사람 곁에서 보냈고” 또 그 자신 “그들에게 헌신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 세 사람이란 뒤르켐, 조레스, 실뱅 레비다. ---「1장 에피날, 보르도, 파리」중에서

모스가 보르도에서 들었던 뒤르켐의 첫 강의는 “권리와 도덕철학의 유형”이었다. 뒤르켐은 이 강의를 통해 “씨족, 대가족 등과 같은 고대 사회의 집단들의 정치적, 가정적 본성과 역할의 사라짐 그리고 가족 집단이 아닌 새로운 하위집단 조직의 필요성”-이것은 뒤르켐 자신의 가장 심오한 사유의 일부이다.-을 제시했다. 요컨대 뒤르켐은 도덕론 및 사법적 사실들에 대한 사회학의 정립을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뒤르켐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었다. 뒤르켐은 “일반적이고 이론적인 문제의 해결책들을 바탕으로 실천 문제에 대한 해결책들을 찾고” 싶어 했으며, 새로운 형태의 행동과 조직 형태를 제시하려 했다. ---「1장 에피날, 보르도, 파리」중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드레퓌스 사건드레퓌스 사건에 드러내놓고 관여하는 것을 망설였다. ……“조국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형을 받은 한 명의 부유한 대위가 관련된 사건과 부당하게 비참함에 처해진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대체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한” 샤를로 라포포르는 드레퓌스와 졸라를 위한 청원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다. ---「3장_ 제도권 진입 관례: 첫 번째 출간과 해외 연수」중에서

하지만 “종교적 현상의 질서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질서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고, 시간과 사회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라고 모스는 설명한다. 이 점에서 ‘마법’은 여러 종교 현상 가운데 “독특한”, “확실하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은 “그 행동 양식과 개념이라는 면에서 종교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계인 마법은 중세의 연금술 혹은 현대 사회 속에서 여전히 활발한 미신 행위만큼이나 원시사회의 마법 제식을 아우른다. 모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모든 시대에 “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분산된 유대교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마법의 효율성을 믿었다.” 더군다나 “『성서』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 마법”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을 할 수 있다. 모스는 이렇게 자문하고 있다. “무슨 권리로 「호세아서」의 치유, 모세의 지팡이, 물의 축제 등이 저주와 마찬가지로 마법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모스 자신이 경험했던 유대교도 옛날에 미신적인 신앙과 대중적인 마법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액운을 경계했고, 액땜을 위해 굿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8장_ 집단적 비이성」중에서

“원시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자연경제와 닮아있거나 물질적인 대상에 대한 개인 상호간의 물물교환과 비슷한 그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전체 집단들 간에 이뤄지는 교환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신앙에 의해 명령되고 뒷받침되는 ‘제식적 증여’라는 형식을 통해 이뤄졌다. 교환은 단순히 재화나 부(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것들(친절, 향연, 예식, 군복무, 여자, 아이들 등)의 유통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진화된 교환의 형태 중의 하나가 바로 ‘포틀래치’였다. 모스가 이미 지적했던 대로, 포틀래치는 북서부 아메리카나 멜라네시아 그리고 파푸아 등지에서 관찰되는 투쟁적인 성격을 지닌 전체적인 급부 체계이다. 인도유럽어 사회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몇몇 과도기적인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처음에 모스는 폴리네시아, 특히 사모아의 경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폴리네시아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생각되어 왔던 바와는 달리, 계약상의 증여 체계가 존재했다. ---「13장_ 민족학의 정립」중에서

모스의 계획은 동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현실의 총화를 분석하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해, 1) 고유한 뜻에서의 경제적 사실들(기간산업, 자본주의자들의 국내 조직, 대기업, 기업 연합, 등), 2) “위로부터 오는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움직임” (자본주의적 무정부주의를 줄이기 위한 입법, 대기업 통제, 근로자 보호), 그리고 끝으로 3) “아래로부터, 시민 대중으로부터 오는 정치-경제적 움직임” (협동조합, 노동조합, 상호보조, 대중적 투쟁, 여론의 압박)을 동시에 다루었다.
모스는 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프랑스 같은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를 통해 현대-전쟁 전후의-자본주의의 도표를 완성하고, “증가하는 사회화와 증감하는 개인화”의 이중적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 움직임은 이미 자본주의자들의 이해관계를 “맹목적이고 무정부적 경쟁에서 점점 더 완전해지고 의식적이고 조절된 집단화의 체제”로 이행토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17장_ 정치에 대한 실망들」중에서

출판사 리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프랑스 지성사의 대 벽화’,
『프랑스 인류학의 아버지, 마르셀 모스』


최근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실시를 계기로 많은 신문 기사와 칼럼에서 언급되었던 프랑스 사회학·인류학의 거두 마르셀 모스(1872-1950)의 평전 『프랑스 인류학의 아버지, 마르셀 모스』(그린비)가 출간되었다.

왜, 마르셀 모스인가?

김영란 법의 시행에 즈음하여 여러 신문 칼럼에서 선물 경제와 관련한 모스의 대표 저서 『증여론』(1925년 작, 2002년 번역 출간됨)을 인용하였다. 이 책은 풍부한 민족지학의 자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교환경제 이전에 증여(선물) 경제가 있었음을 밝혀, 자본주의 형태가 자연적이고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고 일시적인 것임을 주장했다. 이는 바타유, 데리다, 사르트르, 리쾨르, 부르디외, 마리옹 등 프랑스 지성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주창한 칼 폴라니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우리나라에 단 한편의 저서로만 소개된 모스는 우리에게 그다지 널리 알려진 사상가, 학자가 아니다. 이는 우리의 사회학, 인류학 학문 지형이 미국과 독일 위주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켐을 사회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부르는데 이 중에서도 통계를 활용한 사회학 방법론을 제시하여 사회학을 학문으로 확립한 것은 뒤르켐이라고 할 수 있다. 뒤르켐을 프랑스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모스는 그의 조카이며 계승자로 불린다. 그뿐만 아니라 모스는 “프랑스 민족지학의 아버지”, “프랑스 인류학의 아버지”로 호칭되고 있다. 모스는 현대 프랑스 지성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그의 저작은 마르지 않는 저수지처럼 당면한 사회 경제적 문제 해법에 대해 풍부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스의 사상을 위한 훌륭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스의 삶과 사상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유일한 평전

모스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인류학, 민족지학, 사회학, 종교사학 등의 분야에서 혁혁한 성과를 남겼다. 이 책은 그의 삶과 사상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유일한 평전이다. 저자는 모스의 삶의 중요 단계들을 연대기적 방식으로 추적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다. 1부 ‘뒤르켐의 조카’에서는 모스의 출생부터 보르도 대학 시절, 고등연구실천학교 대학원 시절, 프랑스 사회학파를 형성한 『사회학 연보』의 창간, 학생 시절의 사회(민주)주의 운동 등에 대해 다뤘다. 2부 ‘터부-토템 씨족’에서는 민족학의 연구 과정과 성과, 협동조합운동,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등을 싣고 있다. 3부 ‘계승자’에서는 전쟁에서 돌아온 모스가 전쟁 중에 사망한 삼촌 뒤르켐의 계승자로서 사회학을 수호하고 민족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회 참여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 열정적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4부 ‘인정’에서는 마침내 프랑스 최고 지성들이 경쟁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에 선출되는 장면, 프랑스 정치에 대한 그의 식견, 파시즘의 대두, 고뇌하는 참여 지식인의 면모를 담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일들, 사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모스의 주요한 학문 업적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

먼저 그의 학문적 성과는 이 책의 권말에 첨부된 70여 쪽의 작품 목록에 나타나 있다. 모스는 종교의 기원, 종교의 본질에 해당하는 성스러움, 기도(祈禱) 등에 관한 연구, 마법(magie), 마나(mana: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일대에서 초인적 힘을 통칭하는 말) 등에 관한 연구, 고대사회에서 행해졌던 증여의 여러 형태 등에 관한 독보적 업적을 남겼는데, 이 연구의 배경과 내용이 잘 요약되어 설명되고 있어 인류학, 민족학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다.

사회학, 인류학,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계보를 한눈에
또한 뒤르켐, 실뱅 레비 등 모스의 스승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당대의 석학으로 『황금가지』의 저자인 영국의 프레이저, 미국에서 활동하던 말리노프스키 등과의 교류, 후일 프랑스 인류학을 이끄는 뒤메질, 레비스트로스 등 제자들과의 관계, 특히 프랑스 사회학파 형성의 동인이 된 『사회학』 연보의 필진 등 모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사회학, 인류학의 계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정리해놓았다. 또한, 모스는 평생을 학문과 더불어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하였는데, 현 프랑스 사회당의 전신으로 20세기 초 프랑스 사회당을 창설한 장 조레스(1981년,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장 조레스의 무덤이었다고 한다.)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의 계보와 흐름 또한 잘 정리되어 있다. 모스는 조레스가 창간한 프랑스 사회당 기관지 『뤼마니테(인류)』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프랑스 지성사의 대 벽화’

이 책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학문과 사상의 발전 과정,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상가들과 학자들, 특히 민족지학, 인류학, 사회학, 종교사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했던 학자들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 아니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혁혁한 학문적 성과를 이룬 사람들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부인할 수 없는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프랑스 지성사의 대 벽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모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프랑스에서 민족지학, 인류학 등에 대한 고등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학이 철학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학문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모스가 뒤르켐을 도와 했던 역할에 대한 상세한 정보 역시 프랑스 사회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프랑스 참여 지식인의 전형 보여줘

모스는 당대의 참여 지식인이었다. 그는 대학생 시절부터 대학원 시절, 교수 시절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선봉에 섰다. 그는 사회주의가 추구했던 협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했고, 노동조합을 지원했으며,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공동체이론, 협동조합이론 등을 제시했으며, 영국, 독일 등과 같은 나라들로부터 선진 이론과 모델을 배우고 수용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휴머니즘이 짙게 밴 한 지식인의 감동적 삶의 궤적 잘 그려낸 수작

모스는 프랑스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수공업을 하는 랍비 가문에서 태어나 어렵기로 소문난 철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나중에 프랑스 지성의 최고 상징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된다. 그 과정에서 모스가 보여준 지속적인 노력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를 도왔던 가족들의 헌신, 스승들의 가르침, 친구들과의 우정, 그가 추구했던 휴머니즘 등에도 한 권의 평전이 갖는 평균적인 의미, 그러니까 감동과 교훈이 여지없이 묻어나고 있다. 이러한 감동과 더불어 이 책은 학자, 교육자, 사상가로서의 모스 개인의 삶과 사상은 물론, 그가 살았던 동시대의 프랑스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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