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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겨울밤 0시 5분
어느 초밤 화성시 궁평항 이런 고요 늦가을 저녁비 11월의 벼랑 삶을 살아낸다는 건 무(無)추억을 향하여/ 초겨울 아침 겨울밤 0시 5분 냉(冷)한 상처 허공에 한 덩이 태양 눈의 물 삶의 맛 낯선 외로움 깊고 길게 바라보았다 몸의 맛 축대 앞에서 제2부. 꿈이 사라지는 곳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갈 준비돼 있다 섬진강의 추억 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무릇 밤꽃 냄새 낙엽송 맨 가을 겨울 빗소리 잘 쓸어논 마당 겨울 산책 얼음꽃 하늘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잠깐 동안 겨울의 아이콘 늦추위 속 기쁨 꿈이 사라지는 곳 제3부. 밝은 낙엽 안성 석남사 뒤뜰 사라지는 것들 오월동주(吳越同舟) 장가계에서 잘 만들어진 풍경 구도나루 포구 태안 두웅 습지 밝은 낙엽 겨울 통영에서 젖은 손 대상포진 추억은 깨진 색유리 조각이니 저 흔하고 환한! 삶에 한번 되게 빠져 삶은 아직 멍청합니다―편지 제4부. 무굴일기(無窟日記) 무굴일기(無窟日記) 1 무굴일기 2 무굴일기 3 박새의 노래 쓸쓸한 민화(民畵) 빈센트 사당동패 한여름 밤의 끝 헛헛한 웃음 해바라기 가을날, 다행이다 외딴섬 시인의 가을 또 한번 낯선 얼굴 다시 한 번! |
黃東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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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책
쥐똥나무 울타리 밑에서 주워 든 얼어 죽은 참새의 별난 가벼움, 빈 뜰에서 싸락눈 맞고 있던 철없이 핀 장미의 전신 추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의 살짝 들린 둔부 를 내리누르던 바위 같은 얼굴의 어둠, 이들 때문에 하루를 흐리게 한 죄 없느냐 묻는다면, 물으시는 분과 함께 골목길을 오르겠습니다. 아파트 뒷문을 나와 물건만 잔뜩 문밖에 내논 쓸쓸한 가게들을 지나 힘없이 싸우고 있는 두 여자를 지나 줄기는 말랐어도 늙은 호박 하나 늠름히 앉아 있던 지금은 비어 있는 슬래브 대문 지붕을 지나 시든 줄기 두셋 꽂고 있는 장미꽃 자리들을 지나 쥐똥나무 울타리까지 가겠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것이 마음 설레게 하는군요. 쥐똥나무에는 주저하듯 까만 열매들이 영롱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 p.54 쓸쓸한 민화(民畵) 골목길 언덕배기 목덜미 페인트 벗겨진 세발자전거 싸락눈을 맞고 있다. 언덕 아래선 연탄 리어카 한 채 아낙이 끌고 사내가 뒤에서 밀며 오르고 있다. 하늘이 언덕 아래로 잔뜩 접혀 있고 그 위로 싸락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땀 젖은 사람 둘과 까맣게 안면 굳힌 연탄들이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누군가 허리 펴고 숨 한번 크게 내쉬자 하늘이 다시 위로 제켜졌다. 세발자전거 뒤에 개 하나 검은 안경 낀 사내 하나 뵈지 않는 얼굴에서 뵈는 얼굴로 바뀌며 싸락눈을 맞고 있었다. 개 얼굴이 먼저 움직였다. 강아지와 붓통만 남은 민화의 쓸쓸함. --- p.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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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펴내는 황동규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팽팽한 시적 긴장이 벼리어낸 새로운 진경의 수순(隨順), 삶에 대한 생생한 감각들로 직조된 황홀한 시편들! 황동규 시인의 신작 시집 『겨울밤 0시 5분』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2006년 출간한 『꽃의 고요』 이후 3년 만이다.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시인은 그동안 열세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의 열네 번째 시집 『겨울밤 0시 5분』에는 총 63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에 대한 열정과 관록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황동규 시인은 시집을 출간할 때마다 늘 변화와 변모를 모색해왔던 시인으로 유명하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의 ‘변화’를 향한 욕망은 끊임없이 현재진행형이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날카로운 감각과 상상력으로 정갈하게 짜여진 시편들을 선보인다. 특히 시인의 감각은 여느 젊은 시인 못지않은 열정으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그의 시선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구석진 부분까지도 환하게 꿰뚫어보는 예리함을 과시한다. 그리고 삶에 대해, 자연에 대해, 인간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과 관심을 던지며, 이를 통해 비로소 ‘환한 살아있음’이라는 새로운 실존의 풍경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아름답고 현명한 통찰의 힘을 지닌 시인의 감각은 그가 꿈꾸어왔던 변화의 욕망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내면으로부터 벗어난 그의 의식과 상상력은 거침없이 변화와 자유를 꿈꾼다. 그렇게 감각을 통한 세상과의 교감, 변화를 꿈꾸는 자유로운 상상력은 새로운 진경의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생을 시와 동행한 황동규 시인에게 시작詩作 과정은 곧 그의 삶 자체이다. 날마다 시를 생각하고, 시와 대화한다는 시인의 삶이 이번 시집에는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정갈하게 짜여진 그만의 언어들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렇게 삶에 대한 생동하는 감각, 변화를 향한 끊임없는 욕망으로 직조된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황홀함을 선사한다. 그의 시는 자연스럽다. 쏠림이나 과장이 없다. 다양한 경험과 ‘추억력’(‘기억에 상상력이 가미되어 더 간절해지는 회상’을 의미하는 황동규 시인의 사전에만 있는 언어!)을 근간으로 하는 시?공간적인 연장 혹은 연속의 논리 속에서 시의 서술은 유연하게 흐른다. 유연한 흐름 속에서 시인은 ‘깊고 길게 바라보는 법’(「깊고 길게 바라보았다」)을 즐겨 구현한다. 넓게 보여주는 롱숏과 오래 보여주는 롱테이크를 연상시키는 시의 시선은 우리 삶의 단면들을 자유롭게 펼쳐보이곤 한다. 실제로 그의 시에서 다채로운 문장부호들은 얼마나 자유자재로 사용되고 있는지! 그러나 그 자유로운 호흡은 절제된 시적 긴장을 기반으로 한다. 단어와 조사, 문장과 통사, 어조와 화법은 분방한 듯하나 한껏 절제와 균형을 견지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통찰, 세련된 이미지, 섬세한 감정을 아우르고 있다. - 정끝별, <해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