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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근대국가를 구상한 사상가들
1. 근대의 선구자들 2. '국민' 형성을 목표로 3. 아시아와 세계 속의 일본 4. 체제 변혁에 뜻을 둔 사람들 2부 근대사회와 투쟁한 사상가들 1. 문화를 열다 2. 생명을 응시하다 3. 존재의 복권을 위하여 4.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
鹿野政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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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운동 90주년, 일제 강점 100년을 앞두고
“새로운 한일 관계의 싹이 움트는 지금, 우리의 시야는 더욱 넓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현재를 같이 호흡하고 싸워 나갈 우군을 찾아냈다면, 이제부터는 과거 속에 스러져 간 우군을 재발견해야 할 일이다.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침략 전쟁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 도전장을 던졌던 우직한 ‘일본인’의 발자취를 망각의 심연에서 건져 올려야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연대와 화해’를 구축하는 새로운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지은이의 문제의식과 전망이 한국에서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지는 향후의 한일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리라 여겨진다.” (하종문옮긴이 후기) 새로운 시대, 일본사회 인식의 나침반 독도,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참배, 과거사 청산 문제……. 가까운 이웃 나라지만 산적한 과거사 문제와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한일관계는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원형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에 나온 사상과 경험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일본 근대의 역사나 철학, 문학 분야에서 다양한 일본 관련 책들이 출간되어 왔다. 요시다 쇼인이나 우치무라 간조, 나카에 초민 같은 사상가의 책이 번역되었지만 일본근대사 인식의 맥락에서 떨어져 출간되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나마 후쿠자와 유키치, 우치무라 간조, 야나기 무네요시처럼 한국근현대사와 거의 직접적으로 연관되거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게도 스승과 같았던 사상가의 책은 그래도 낳은 편이지만, 여전히 서양 근대 사상에 견주어 영양 결핍이 심하다. 우리 출판 현장에는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는 학술서와 대중서 사이를 매울 수 있는 교양서로 일본의 본바탕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책이 드물다. 적어도 메이지유신부터 군국주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의 다양한 사상 조류에 대한 교양 입문서가 필요한 까닭이다. 식민지 경험과 역사를 올바르게 청산하는 작업과 함께, 21세기 일본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뿌리를 냉철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 또한 크다. 50명의 인물을 통해 보는 ‘근대’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한론(조선침략)의 원조’ 요시다 쇼인 ‘윤치호에서 이광수에 이르기까지 친일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 후쿠자와 유키치 ‘박정희가 존경했다는 일본 군국주의 일본육군의 정신적 지주’ 기타 잇키 ‘광화문의 이전과 조선총독부 공사를 온몸으로 반대한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 ‘박열의 동지이자 부인으로 조선에 묻힌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천황제에 돌을 던진 실증사학자이자 이병도, 손진태의 스승’ 쓰다 소우키치 ‘나혜석의 마음을 빼앗은 잡지《세이토》를 발행한 페미니스트’ 히라쓰카 라이초 ‘신채호가 동아시아 아나키즘의 원조’라고 평가한 고토쿠 슈스이 ‘김교신, 함석헌의 스승이자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 ‘일제시대 조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가와카미 하지메 ‘조선의 형평운동에 영향을 준 전국수평사를 창립한’ 마쓰모토 지이치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인물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피면 한일 두 나라 지성사의 고리가 발견된다. 하지만 우리 지성계에 발붙일 수 없는 ‘일본인 장벽’은 현실로 여전히 존재한다. 문학이나 예술 같은 비정치적(실제로는 정치적이지만) 영역을 제외하면 일본 사상가는 현해탄을 넘기 힘들고 앞으로도 요원해 보인다. 과거 동아시아 나라에 진 일본의 역사적 채무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옮긴이도 말했다시피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평화의 연대를 위한 ‘우군’을 발견하는 기쁨은 이 책의 장점이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던 군국주의 일본에서 무정부주의운동(가네코 후미코, 오스기 사카에), 대안교육과 생활글쓰기 운동(노무라 요시베에), 환경운동(다나카 쇼조), 부락해방운동(마쓰모토 지이치로), 중국혁명(미야자키 도텐), 여성해방운동(히라쓰카 라이초, 야마카와 기쿠에), 농촌의료(와카쓰카 도시카즈), 여공의 생활과 위생(이시하라 오사무), 아이누와 오키나와 연구(이하 후유, 지리 마시호), 민중생활사(야나기타 구니오)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회운동의 주제를 붙들고 씨름한 시대의 선각자들이 있었다.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하는 오늘날에 여전히 ‘근대’라는 물음은 우리 사회에서도 절실한 과제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수상이나 내각의 대신에 오른 사람도 있지만, 절반을 훨씬 웃도는 숫자가 옥사하거나 처형되었다. 근대를 뚫고 나온 50가지 스펙트럼은 빛을 잃고 일본은 결국 파시즘과 전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뷀을 보여 준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개화와 양이, 국민 형성, 아시아 연대, 체제 혁명, 문화, 생명, 인권, 반전이라는 8장으로 큰 줄기를 잡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했다. 각 장에는 첫머리에 이끄는 글을 넣어 각 인물들의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젊은 세대와 연대하고 싶다” 지은이 가노 마사나오는 일본의 대표적 사상사학자이다. 한국에서 높이 평가하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국가와 정치사상’에 뚜렷한 성과를 냈다면, 가노 마사나오는 그 대응 지점인 ‘사회와 민중사상’의 영역에서 학문의 세계와 대중을 연결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책이 나오자 ‘주간 아사히’(《週刊朝日》2005년 7월 22일)는 “근래에 유행하는 가벼운 책이 아니라, 근대사상사 일인자의 손으로 완성된 개설서”라고 평가했다. 젊은 세대와 연대하고 싶다는 여든 살을 앞둔 노 역사가는, 50년 역사 연구의 결산을 젊은 세대에게 바치는 책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또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학창시절부터 조선 문제에 얽힌 인연을 소개하면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반성을 표명하고 있다. 한 권으로 합쳐지는 한국어판을 위해 원고지 60매 분량의 1부 맺음말과 ‘한국어판 서문’을 추가로 집필했다. 지은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어판이 내가 애초에 마음먹은 완결편”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전쟁은 당연한 현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끝난다’는 것은 신선한 체험이 되었다. 나도 그런 세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쟁이 과연 ‘끝났다’고 해야 할까 전쟁의 기억이 아득해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전쟁의 진정한 종결을 더디게 하고 있다. 올해(2005년) 2월 일본으로 건너 온 한국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 당국자들과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가장 먼저 관방장관이 공습 직후의 도쿄를 촬영한 사진 패널을 보여 주면서 일본도 그런 상태였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전쟁을 이야기할 때, 왜 일으켰는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를 다루지는 않은 채 왜 졌는가를 생각하려고 하는 자세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졌다는 사실조차 진상 규명을 얼버무리기 위한 자기정당화에 써먹으려는 뻔뻔함이 있다. 정권의 핵심부에서 그런 의식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한 균열은 깊어지기만 할 따름이고 회복은 지난할 뿐인 상황이 우리 눈앞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의 지속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전쟁이 그만둘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게 ‘발견’이었던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균열을 메우는 것이 우리 세대의 책무이며 그 짐이 다음 세대에까지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내심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생이 마지막 모퉁이를 돈 지금, 그 부채의 유산을 어쩌면 세월과 함께 불어난 이자까지 붙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말았다는 느낌만 강하게 든다. 21세기 초인 오늘날에도 또다시 동일한 금기가 교육계를 중심으로 되살아나서, 과거의 불경 사건을 제국헌법·교육칙어 체제 아래에서 발생하는 사태로 파악했던 사람으로서 민망함을 되새기고 있다.” (1부 머리말) 사상가! “꿈을 좆는 사람들”의 생각과 실천 “개인의 일은 역사가 될 수 없는가” “마음의 잔물결을 주시하겠다는 사관(史觀).” 지은이의 이런 문제의식은 자신을 그 범주에 놓고 있는 ‘전후파 역사학’의 한계를 뛰어넘게 했다. ‘사상’으로 구조화되기 전의 일상적인 희노애락에야말로 사상으로 나아가는 싹이 있다고 생각했다. 관념 체계의 고찰에서 출발할 게 아니라 여러 사태에 대한 마음의 반사나 갈등의 축적을 통해 사상으로 체계화되어 가는 과정을 중시하고 있다. 위대한 공적(公的) 영역에서 활약한 훌륭한 사람들로 역사가 채워진다면 개인의 희로애락과 인생은 배제될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역사는 그렇게 쓰여져 왔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사색을 살펴보면, 거대한 국가와 정치의 담론에 맞서는,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세상과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은 심지어 예언과도 같다. “윗사람이 온 세상을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음이 잘못된 거야. 높은 산에서 자라난 나무나 골짜기에서 자라난 나무나 모두 다 같은 것.”(나카야마 미키, 1874) “국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민이 있고 나서 그 뒤에 서는 것이 아닌가. 국가의 헌법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민의 자유 권리를 위하여 제정하는 것이 아닌가.”(우에키 에모리, 1881) “일본의 천직은 무엇이며, 일본은 전 세계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일본은 그저 다른 나라의 문명을 흡수해서 그들이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우리에게 전해준 문명의 아름다운 결실에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본도 다른 강대국과 같이 세계 진보를 위해 할 일이 있는가.”(우치무라 간조, 1892) “아아 제국주의여, 유행하는 그대들 세력은 우리 20세기의 천지를 적광(寂光)의 정토(土)로 만들려고 하는가, 아니면 무간(無間) 지옥으로 떨어뜨리려고 하는가.”(고토쿠 슈스이, 1901) “세상에서 이른바 국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칫 일본이라는 국가를 다른 국가와는 전혀 다른 것처럼 여기고, 특히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서만 특별한 견해를 취하려고 하는 자가 있으니, 이것은 큰 잘못으로, 마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리려고 할 때, 일본인에게만 적용될 정의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미노베 다쓰키치, 1913) “저 같은 사람은 일본에 평민의 역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연대기는 원래 사변(事變)만을 기록합니다. 여기에 귀인과 영웅호걸의 열전을 합쳐놓은 것이 이른바 옛날 역사가 아니겠습니까”(야나기타 구니오, 1914) “조선에서 보고 겪은 일이 저로 하여금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조선인의 모든 반항 운동에 이상하리만치 동정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상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조선의 사회주의자 또는 민족주의자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런 종류의 운동을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고 버릴 수가 없습니다.”(가네코 후미코, 1923) “만주를 포기하고 조선과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고 그 밖에 중국에서 수립하고 있는 수많은 경제적 특권과 무장을 위한 발판 등을 내버려라. 그리고 이들 약소국과 함께 살아가라.”(이시바시 단잔, 1921) “9천 명에서 4천 명을 뺀 5천 명이라는 사람이 여공이 된 탓에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업을 위해 이만큼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입니다. 인간을 이렇게 죽이는 데는 왜 제재가 없는 것일까. (……) 천 명의 귀향자 중 사망자는 그 사인을 보면, (……) 7할은 결핵으로 죽는다.”(이시하라 오사무, 1913) “게다가 한편으로 성을 각성한 시기의 청년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위는 통상적으로는 성적 생활의 진화와 더불어 서서히 사라져서 큰 해가 없는 법인데, 그 해를 극도로 과장해서 보고하여 심적인 퇴폐라고 위협한 결과, 어려움을 스스로 강요하여 자타 모두 상처를 입은 사례가 있다.”(야마모토 센지, 1921) “서로의 생활에 모순이 생기면 어떻게든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즉 우리는 ‘해 보자’며 발견한다. ‘그러자’며 맛을 본다. 마주 보고 이야기한다. 이 세 가지 방식으로 서로의 생활을 통일시켜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친구 만들기에는 글쓰기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 이것이 우리들이 주장하는 글짓기이다.”(노무라 요시베에, 1973) “여성이 목숨을 거는 출산과 남자가 관련될 일도 없으며, 또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세상 부인들이 짊어진 큰 역할로서, 국가가 중요하다느니 또는 학문이 어떠니 전쟁이 어떠니 하지만, 여성이 인간을 낳는 이 역할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요사노 아키코, 1909) “확실히 농사는 남녀가 같이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들은 밭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담배를 한 모금 피우며 술을 한잔 마실 수 있었다. 여성들은 밭일 할 때 입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보살폈다. 저녁을 먹을 때는 집안 잡일을 하고 늘 마지막에 남은 것으로 끼니를 때운다.”(마루오카 히데코, 1981) “나는 인간 이전에 먼저 아이누여야 했다. 아이누에게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측후소 지붕 위의 풍차처럼, 감정도 없고 의지도 없어야 했다. 나는 사람이기 이전에 물건이어야 했다.”(지리 마시호, 1932) “그들은 말한다. 전쟁에서 죽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라고. 국가를 위하는 것은 과연 국가의 어떤 점을 위하는 것인가”(가시와기 기엔, 1903) “일본의 부르조아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만몽(滿蒙)을 점령하여 완전하게 속령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이윽고 미국과 첨예한 대립을 불러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는 발단이 될 것이다.”(구로시마 덴지, 1930) “귀신도 곡할 지경이다’는 식의 영웅은 이제 충분하다. 바라건대 더 이상 ‘육탄’(肉彈)의 미담이 나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작전을 통해 그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는 방도를 취하지 않았으면 한다.”(기요사와 기요시, 1943) “타국을 침략함으로써 주로 이익을 얻는 자는 소수의 지배계급, 권력계급에 한정되어 있고, 그 밖의 일반민중은 고작 그 부스러기를 누리는 데 지나지 않으며, 게다가 언제까지라도 압제정치 하에서 질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 (가와카미 하지메, 19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