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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미래의 융합학문과 대학 이야기를 시작하며 1장 창조사회의 학문 21세기의 학문체계―미래의 지적 산책을 어디서 어떻게 할까 : 김광웅 창조사회의 지식융합―지식의 융합, 과거로부터 배운다 : 홍성욱 창조사회의 논리―통합적 학문은 어떻게 가능한가 : 장회익 2장 창조사회로 가는 길―융합의 실재를 본다 인지로 모인다―인지과학의 전개와 미래 융합학문 : 이정모 바이오로 모인다―모든 학문의 길은 생물학으로 통한다 : 최재천 나노로 모인다―나노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 : 문대원 인미로 모인다―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가 미래를 연다 : 김춘미 문예와 기술이 만난다―문화기술, 그 새로운 미래 : 이규연 3장 창조사회의 대학 미래 융합대학의 모습 : 오세정 미래 대학의 교수방법―Teaching 2.0 시대, ‘가르침’의 본질에 대한 성찰 : 유영만 미래 대학 캠퍼스―미래의 앎과 삶을 창조하는 대학 : 이순종 4장 창조사회의 리더십 창조사회의 리더십―창조사회를 이끄는 리더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 김광웅?김형준 |
Kim, Kwang-Woong,金光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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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통합, 융합 따위의 말이 오간 지는 오래되었지만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통섭’이 회자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뉴턴과학이나 뉴턴주의 때부터 전문화의 길을 재촉하긴 했어도 학문은 원래 복합적 상태에서 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시 짓기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문학과 음악의 복합이었다. 음체계가 수학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장르는 피타고라스에 용해되었다. 르네상스 황금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연상하면 한 인간에게 과학이나 기술이 얼마나 용해되고 융합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철학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연극을 하며 금융컨설턴트를 하는 일이 현대에도 있다. 한 인간 자체에게 융합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융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말하는 융합은 사람 안에서가 아니라 사람 밖에서 사람끼리, 또 무리끼리, 그것도 다른 무리끼리 합치고 섞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창조의 혜안이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안에서 밖으로다. ‘위드인(Within)’이 아니라 ‘비트윈(Between)’이다. --- pp. 4`5「머리말 : 미래의 융합학문과 대학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에서 21세기의 특징이 ‘인지시대’의 떠오름인데, 서구에서 인지주의, 인지과학이 출발된 지 이미 50여 년이 경과되었음에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인지과학이 무엇인지, 어떠한 학문들이 이에 관여되는지, 인문, 사회, 자연과학 및 공학의 여러 분야 등에 어떠한 영향, 변화, 시사를 가져오는지 등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 10여 개가 넘는 주요 대학(공대를 포함하여)에 인지과학학과 또는 인지과학과정이 개설되어 있고, 유명한 해외 연구기관에서는 인지과학이 주요 분야로서 인정돼 많은 연구, 교육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한국은(2008년 현재) 대학 학부에 이지과학학과가 있는 대학이 없고, 5개의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도 지원과 육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며, 한국의 공대에서는 그 어디에도 아직 인지과학학과나 과정이 없다. --- p.157 「2부 1. 인지과학의 전개와 미래 융합학문 : 이정모」 중에서 이제 파리학과 교수는 보다 세분화된 전공을 선택해야 교수사회로 입문할 수 있다. 교수가 전공하는 파리 부위는 ‘파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다. 파리발톱에 낀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도 까만 때를 전공하는 교수, 누런 때를 전공하는 교수, 30년산 때나 21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 18년산이나 15년산 또는 12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로 나뉘어서 전공분야가 선택된다. 동일한 파리 뒷다리의 때를 전공하지만 전공영역이 달라서 파리 뒷다리의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끼리도 사용하는 전공용어상의 차이로 인하여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교수가 되면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우겨야 되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파리는 파리 전체를 이해한 다음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먼저 보라는 말이 여기에서 통용된다. 파리의 특정부위가 파리 몸통 전체와 어떤 구조적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 없이 파리를 이해할 수 없다. …… 이제 대학의 교육과정은 전공간 벽을 넘어 동일 전공은 물론 타전공 간에도 가로지르는 융합교과목이 생기는 추세로 급진전되고 있다. --- pp. 330 ~ 331「3부 2. Teaching 2.0 시대, ‘가르침’의 본질에 대한 성찰 : 유영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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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학문은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미래에 필요한 인물은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입니다” 바벨탑의 언어로 자기만의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린 우리 학문세계에 융합학문의 현주소와, 인문과 과학의 충돌이 아닌 만남을 선명히 조명한다 ‘통섭’은 우리 학문과 대학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어떤 과제를 주었나? 2005년 4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1998)가 『통섭 : 지식의 대통합』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되어 학계를 비롯한 우리 지식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윌슨은 21세기의 학문은 크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으로 양분될 것이며, 사회과학은 상당부분 생물학과 연계되거나 인문학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윌슨의 책을 우리글로 번역한 최재천과 장대익은 일 년여의 숙고 끝에 ‘함께 넘나듦’을 의미하는 ‘Consilience’를 ‘큰 줄기를 잡다’란 의미의 ‘통섭’으로 옮기면서, 최근 학문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대통합의 큰 줄기를 이루는 학문체계의 세계적 흐름을 우리 사회에 소개했다. 이후 그동안 과학과 인문학 등과 같은 학문 분야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통합, 복합, 융합이란 이름으로 교류하던 지식과 기술이 ‘통섭’이란 개념의 등장과 함께 좀 더 구체화되고 본격화되었다. 각종 언론매체가 ‘통섭’을 끊임없이 언급 및 소개했음은 물론이고,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을 주제로 한 책들이 출간되고 강연이 이루어졌다. 또한 이화여자대학교에 통섭원이, 국가정책개발을 위한 민간연구소 통섭정경연구원이 설립되었으며, 서울대학교에서는 연합전공제가 더욱 확장되었다. 여러 대학에서 통섭을 주제로 한 강의가 개설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통섭의 열풍은 과연 우리의 학문과 학문체계 그리고 대학을 어떻게 변화시켜왔을까? 학문과 학문체계의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의 대학은 뒤처지지 않게 변화하고 있는가? 한창 뜨거운 통섭의 열풍 가운데 출간된 신간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는 이제는 대세가 된 우리 융합학문과 대학이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조명하고 그 과제를 점검해보는 의미 있는 책이다. 융합학문을 선도하는 국내 석학들이 대중 앞에 내놓은 ‘공부 나침반’ 애초에 이 책의 출발은 ‘미래 융합학문과 대학’을 주제로 열린 2006년 10월 13일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였다. 이후 김광웅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의 주도와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지원으로 2007년 3월 ‘미래 학문과 대학을 위한 범대학 콜로키엄’이 발족했다. 구성원은 이 책의 열두 필자를 비롯하여 서울대 이장무 총장, 김남두?박은정?김하석?황준연?최우정 교수 외, 연세대 민경찬 교수 외, 이화여대 전길자·?채현경 교수 외, 고려대 서지문 교수 외, 카이스트 이광형?정재승 교수 외, 서강대 이덕환 교수 외, 서울여대 문영빈 교수 외, 국립암센터 김인후 등 현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30여 명의 면면이 화려한 연구가들이다. 이들은 미래의 학문이 융합학문으로 더욱 확대, 발전할 것이며 대학 또한 그에 발맞춰 변하리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미래 콜로키엄’에서는 분기별로 두세 명의 주제발표와 자유로운 토론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책은 이렇게 행해진 연구를 김광웅 교수가 중심이 되어 다시 구성하고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김광웅 교수는 미래의 융합학문과 대학이 어떻게 변하고 또 변해야 할지를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대학에 들어와 공부할 차세대가 체계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간한다고 밝힌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보편화되어가는 융합학문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부에서는 인류의 학문체계가 어떻게 융합학문으로 진화했으며 학문 간의 만남이 가능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김광웅 교수는 오늘 우리가 전일주의시대, 복잡계 과학시대, 융합학문시대, 제2의 계몽시대, 디지그노 시대, 인지문명시대로 들어섰음을 설명하고, 미래의 학문체계가 분과학문체계와 종합학문체계로 양대 산맥을 이룬 가운데 ‘관계과학’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21세기 지식의 지도를 통해 각 학문의 흐름이 결국 융합과 통섭과학으로 모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홍성욱 교수는 창조성의 근원이 융합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19세기 독일 과학의 부상과 빌헬름 분트, 미국의 연구소 래드랩, 특수상대성이론과 베른의 시계의 관계, 동양을 앞지른 서양의 지적 혁명 등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며, 지식 융합의 조건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장회익 교수는 조각난 오늘의 학문 현실 속에궼 융합학문이 가능한 논리를 대생(對生)지식, 대인(對人)지식, ??(對物)지식 등 인식의 기본 구도를 통해 설명하고, 통합지식의 방편을 모샙한다. 인지, 바이오, 나노, 디지그노, 문화기술 등 오늘의 융합학문과 기술 어디까지 왔나? 2부에서는 실제로 오늘날 대학과 연구소, 산업현장, 예술 분야에서 인지과학과 바이오과학, 나노과학, 인미(디지그노), 문화기술 등 융합학문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우선 이정모 교수는 인지과학의 등장과 함께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인지과학으로 인해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구체적으로는 시고전경제학이 행동경제학과 인지경제학의 등의 등장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으며, 인지법학, 인지문학, 인지미학, 인지종교학, 인지신학, 신경신학, 그리고 인지?바이오?정보?사회기술의 융합을 소개한다. 최재천 교수는 환원주의에 섰던 20세기 생물학이 통합주의에 설 수밖에 없는 21세기 진화생물학으로 변화된 과정을 설명하며, 나아가 생물학과 공학의 만남으로 탄생한 의생학과 에코과학을 소개한다. 문대원 교수는 나노과학이 학문과 사회의 지형을 바꾼다고 주장하며, 나노과학을 통한 바이오의료 분야의 변화와 환경 에너지 문제, 정보통신기술의 문제를 다룬다. 김춘미 교수는 만물의 근원인 수를 소리로 설계해 아름다움으로 묶어야 불확실성에 좀 더 다가가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역설하면서, 수와 음체계를 하나로 연결할 피타고라스의 예를 통해 디지그노의 개념을 설명하며, 디지그노가 예술 분야에 적용된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이규연 기자는 문예와 기술이 만나 창조성과 상상력을 발휘한 현장을 돌아보며 융합의 실재와 조건을 확인한다. 구체적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기술센터, MIT 미디어랩, 일본 야마구치 시 예술미디어센터, 일본 인터커뮤니케이션센터를 소개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융합학문이 가져온 대학과 교수법의 변화 3부에서는 융합학문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대학의 변화, 즉 학제와 교수방법과 캠퍼스 등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의 현실을 비판하며 그 대안을 모색한다. 우선 오세정 교수는 현 대학의 학제가 미래에도 남아 잇을 것인가라는 중대한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한다. 그는 대학에서 얻는 지식보다 만난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물리적 공간으로서는 엘리트 대학만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유영만 교수는 전공간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저공의 벽을 도전하는 창조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10가지 교수법 원리를 소개한다. 나아가 융합대학의 교수법은 참여와 대화를 지향하는 Teaching 2.0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순종 교수는 창조적 교육을 위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래 대학교육을 위한 공간을 재구성해본다. 즉 주거와 산업, 연구, 공공기관, 예술 및 디자인 타운을 아우르는 새로운 캠퍼스를 제시한다. 창조사회의 리더는 과하기술과 아름다움을 알아야 한다. 4부에서는 융합학문이 활발히 전개되는 창조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의 변화된 의미와 방법을 설명한다. 김광웅 교수와 김형준 교수는 21세기 후반을 창조사회라 규정하며 미래를 위해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할 리더십을 설명한다. 여기서 ‘창조사회’란 ‘Foresight 2100’이 1900년에서 2100년까지를 생산사회(1900~40), 소비사회(1940~80), 쇼비즈니스 사회(1980~2020), 교육사회(2020~60), 창조사회(2060~2100)로 구분했던 데서 차용하였으며, 이 창조사회는 1980년대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구분한 지본사회-자본사회-뇌본사회에서 흐름상 뇌본사회와 일치한다. en 필자는 창조사회에 걸맞는 리더가 되려면 우선 미래를 바꾸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아름답게 꾸밀 줄 알아야 한다며 그 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투트번스타인의 ‘생각도구’와 다빈치의 ‘7가지 창조의 힘’, 그리고 줄리아 카메론을 언급하면서 창조사회의 리더십의 정리하였다. 만능인 ‘르네상스맨’이 아니라 관계에 능숙한 ‘통섭형 인간’이 필요하다 오늘날 학문의 전 세계적 추세는 ‘만남’에 있다. 르네상스와 데카르트의 시대, 18세기 과학혁명을 지나면서 분과학문이 수천수만으로 갈라져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학문이 잉태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본래 학문은 하나에서 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시 짓기 기술’에서 문학과 음악은 하나였으며, 피타고라스는 음체계와 수학의 원리를 하나로 보았다. 이후 쪼개지고 또 쪼개지는 학문의 분화과정을 거치면서도 이른바 ‘르네상스맨’이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들은 인문학, 과학, 예술 등을 자유자재로 섞으며 창조성을 발휘했다. 한 인물이 화가이자 과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작가인 셈이다. 이 같은 르네상스맨이 오늘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것은 개인적 능력으로 여러 분야에 만능이 되는 천재가 아니다. 지식과 정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 시대에 과거와 같이 한 사람의 두뇌가 모든 것을 종합하고 판단하고 창조성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세계경제 위기, 환경과 에너지 문제, 민족과 국가와 문명권 간 갈등, 과학과 종교와 윤리 문제, 그리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서 파생된(인류가 처음 직면하는) 문제와 같이 사회 각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들은 개인 안에서가 아닌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의 만남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창조적인 혜안이 생기며, 세계의 여러 국가들과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융합학문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는 통섭의 시대에 국내 학계의 책임감 있고 미래를 선도하는 석학들이 대중 앞에 내놓는 ‘공부 나침반’이다. 강단에 선 교수와 대학의 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산업현장 인력, 정책과 방법을 내놓는 정부와 연구기관의 리더와 연구자 모두에게 배움의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무수한 정보와 지식이 난무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분화된 학문의 거미줄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