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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첫 번째 풍경 가모가와 (소)호루모 두 번째 풍경 로마풍 휴일 세 번째 풍경 연애편지와 레몬 네 번째 풍경 도시샤대학 황룡진 다섯 번빼 풍경 마루노우치 정상회담 여섯 번째 풍경 나무 궤 사랑 옮긴이의 말 |
Manabu Makime,まきめ まなぶ,万城目 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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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무리 출신 학교와 지역 분위기가 얌전하더라도 여학생 마음속까지 순박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당연히 남자친구를 원했다. 경험이 풍부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는 솔직히 부러웠다. 하지만 안달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남자친구는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실제로 그녀들의 언니나 오빠는 대학에 입학하기 무섭게 애인이 생겼다. 생김새도 평범한 언니 오빠가 별 어려움도 없이 마치 당연한 일처럼 이성교제 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들은 세상이란 그런 거구나, 하고 이해했다. 열여덟 살이 되면 보통면허를 딸 수 있듯 자신에게도 저절로 남자친구가 생기리라고 지극히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다가온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두 사람은 기대에 부풀어 교토산업대학에 입학했지만, 곧 시작된 신입생 환영회 때마다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간단하게 말하자. 그러니까 애인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 pp.30~31, 「가모가와 (소)호루모」 중에서 무엇보다 분한 것은 평소 그토록 말이 없고 좀처럼 마음을 열 줄도 모르던 그녀가 수학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와도 이야기할 줄 모르던 그녀가 수학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물 만난 고기처럼 요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왠지 속았다는 느낌이었다. 점장이 그렇게 신경을 써주며 말을 거느라 애쓴 것이 다 뭐였나 싶었다. 기분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가 더는 맞장구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제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내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구스노키 씨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어? 그녀는 허를 찔린 표정으로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 p.130, 「로마풍 휴일」 중에서 “그러니까 첫눈에 홀딱 반했단 말이지?” 내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경박하게 말하지 마, 이 화상.” 그는 정색을 하고 항의했다. “정말 빼어나게 아름다운 이마를 가진 애였어.” 모짱은 직사각형 모양의 자신의 좁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열심히 설명했다. 정말이지 이마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짱은 이마에 남다른 애착을 품는 듯했다. 참말로 묘한 부위에 매달린다 싶었지만 남 얘기할 처지가 아니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근데 어째서 끝났다는 거야? 다른 남자라도 사귄대?” “그런 건 몰라.” “그럼 왜?” “고백했어.” “오옷!” --- p.155, 「연애편지와 레몬」 중에서 뭘 샀느냐고 묻자 모짱은 작은 물체를 툭 던져올렸다. 노란 점이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당황하며 받아보니 레몬 한 알이 손에 쥐어 있었다. “이걸 어디에 쓰려고?” “어디에 쓰긴, 편지 쓸 때 향기를 맡는 거지. 머릿속이 상쾌하게 깨어나고 머리도 잘 돌아가서 영감이 마구 쏟아질 거다.” 최고의 글을 써야 하니까, 하는 말을 염불처럼 외면서 모짱은 데라마치 거리를 내려갔다. 시청 옆을 지나 오이케 거리를 건넜다. 혼노지 문 앞을 지나 규쿄도 앞을 지나 산조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모짱이 캘리포니아산이라고 말하는 레몬을 종종 코에 대고 냄새를 맡으며 나도 뒤를 따랐다. 레몬을 코에 닿도록 가까이 대자 아주 희미한 향기가 느껴졌다. --- pp.164~165, 「연애편지와 레몬」 중에서 왜 내가 이 녀석이랑 나란히 걷고 있을까. 나와 그는 친구가 아니다. 물론 사귀지도 않는다. 연애가 끝나 친구 사이로 돌아간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와 미쓰루와 친구인던 시절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쓰루가 사귀자고 고백할 때까지는 미쓰루라는 아이가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지금까지 나눈 전화 통화로 배웠는지, 오늘 만난 뒤로 그는 아직 한 번도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 녀석의 애인 이야기는 딱 질색이었다. 질투니 뭐니 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애인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는 모순된 마음도 한구석에는 있었다. 방심해서 애인 이야기를 꺼낸 그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이런 이상한 기분, 이건 또 뭘까?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일까. 자기 잘못으로 헤어진 여자를 불러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가롭게 돌아다니기나 하고. 오늘 나를 만난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분하지만 나는 지난 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잠두콩 껍질을 벗기던 손을 멈추고 불쑥 물었다. “근데 도모에, 애인은 있어?” --- pp.241~242, 「도시샤대학 황룡진」 중에서 당신을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꿈 세상에 있는 것입니까? 꿈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당신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당신이 알아볼 수 있도쾷 표식을 달고 나타나겠습니다. 반드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부디 당신도 나를 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pp.369~370, 「나무 궤 사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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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풍경 가모가와 (소)호루모
대학에 들어가면 남자친구는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고 믿었다. 열여덟 살이 되면 저절로 남자친구가 생기리라고 막연히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다가온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간단하게 말하자. 그러니까 애인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교토산업대학 호루모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난 사다코와 쇼코. 여성전용 아파트에 살며, 변변한 연애 한번 못 해봤다는 공통점 외에도 둘은 놀라울 정도로 죽이 잘 맞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호루모 동아리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이 콤비에게 가혹한 시련이 찾아오는데... 두 번째 풍경 로마풍 휴일 고등학생인 사토시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기타자와 거리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어느 날 그곳에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으로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구스노키 후미가 나타난다. 크게 부풀린 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쓴 그녀는 목소리도 작고 말수도 적다. 하지만 점장이 자리를 비운 어느 날 레스토랑에 위기가 찾아오자 그녀는 매니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이런 구스노키의 새로운 모습에 사토시는 깜짝 놀라는데... 세 번째 풍경 연애편지와 레몬 20세기 초의 교토. 큰 키에 길게 찢어진 눈, 두꺼비처럼 생긴 사나운 인상의 모짱이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전차 안에서 한눈에 반한 여자에게 서툴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모짱. 아베는 안타까운 마음에 연애편지를 쓰라고 하고, 모짱은 레몬을 한 알 사서 향기를 맡아가며 밤새워 정성스레 편지를 쓰는데... 네 번째 풍경 도시샤대학 황룡진 번역가이자 영문과 교수인 가쓰라 선생에게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재수 끝에 도시샤대학에 들어간 도모에. 우연히 가쓰라 선생의 심부름으로 교수 연구실 건물의 서가에 들어간 도모에는 오래된 상자에서 노란 유카타와 영문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에는 ‘horumo’라는 낯선 단어가 적혀 있다. 그리고 ‘호루모 황룡진 부활의 3가지 조건’이라는 쪽지도 나왔다. 도모에는 호기심에 3가지 조건을 실행해보기로 결심하는데... 다섯 번째 풍경 마루노우치 정상회담 도쿄의 패션회사에 다니는 사카친과 나오코는 미팅을 하기로 한다. 상대 남자는 다다얀과 야스시. 주선자인 사카친과 다다얀은 도쿄의 대학 시절 알고 지낸 사이인데, 알고 보니 나오코와 야스시 역시 교토에서 알고 지낸 사이. 이들은 과거 호루모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펼친 전설과도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용맹한 ‘창’ 같던 야스시는 온후한 신사로, 차가운 ‘방패’ 같던 나오코는 부드러운 숙녀로 변해 있었는데... 여섯 번째 풍경 나무 궤 사랑 요리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다마미는 창고에서 오래된 나무 궤를 발견한다. 그 안에서 ‘나베마루’라고 쓰인 판자를 집어든 다마미는 자기도 모르게 매직으로 뒷면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고 마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음 날 창고에 가서 판자를 다시 꺼내보니 놀랍게도 자신이 쓴 글씨는 지워지고 나베마루의 답신이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다마미와 나베마루의 기묘한 편지 교환이 시작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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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이야기를 간직한 낭만 도시 ‘교토’를 무대로 한 사랑연작소설
봄날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순백의 도시 교토가 로맨스와 판타지의 무대로 변신한다. 이 책에는 사랑과 첫고백에 관한 여섯 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날로그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할 것 같은 모짱,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옛 연인에게 또 만날 약속을 받아내려는 미쓰루,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고백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구스노키, 온후한 청년신사 같은 사카키바라, 남자에게 매우 냉정하고 확실한 사카이, 잔인할 정도로 주변에 남자가 없어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자의식 강한 쇼코.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은 서로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 거리, 대학, 음식점, 카페, 가게, 강가에서 그들은 종종 마주친다. 프롤로그의 주인공이 4장에서는 ‘행인1’로, 6장에서는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고, 2장의 주인공이 프롤로그 주인공의 동아리 동기로 등장하는 등 인물과 장소가 서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하나의 비밀스러운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천 년에 걸쳐 이어내려온 수수께끼의 경기를 하는 교토 명문대학들의 ‘호루모’ 동아리 소속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경기 ‘호루모’ ‘호루모’는 일본 교토의 대학 동아리들 간에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수수께끼의 경기. 교토대, 리쓰메이칸대, 교토산업대, 류코쿠대의 4개 호루모 동아리에서 각기 10명의 회원이 출전하여 1인당 귀신 100마리를 부려 경기를 치른다. 귀신을 부릴 때는 귀어(鬼語)를 사용하며, 매 전투는 두 동아리가 맞붙는 형식이다. 특별한 의식을 치른 호루모 동아리 회원들만 귀신을 볼 수 있으며, 일반인들은 볼 수 없다. 매년 아오이마쓰리(5월 15일) 거리 행렬에서 전체 회원이 귀신 총 4000마리를 이끌고 교토 시내를 도는 것을 신호로 6월부터 호루모 경기가 시작된다. 수십억 엔 세트장 같은 고도古都 교토, 소설 속 살아있는 캐릭터로 대변신 ‘호루모'라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일본에서 열띤 호응을 얻어낸 이유는 캐릭터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청춘소설이 철저히 일본의 전통에 밀착된 판타지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라면 '다른 세계' '꾸며진 세계'가 기본적으로 설정되게 마련이고, 작가는 그 세계를 정교하게 구축하여 리얼리티를 부여하느라 많은 공을 들이게 마련이지만, 마키메 마나부는 유서 깊은 도시 교토를 고스란히 이용한다. 작가 스스로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명도가 뛰어난 고도는 수십억 엔을 투자한 세트장 같아서, 그것을 잠깐 빌려서 글을 쓰고 있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교토라는 배경은 ‘꾸며낸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교토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고도라도 나라나 오사카로 대체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일본 전통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도시인만큼 역사와 설화가 풍부하게 깃든 곳이어서 전통과 판타지를 결합하는 데 알맞은 무대가 되는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들은 여권도 가방도 필요 없는, 그 어떤 여행보다 알찬 교토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교토를 다녀온 이들에게는 추억을, 교토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정보를!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로 만나는 교토의 거리와 책 속 인물들 이 소설을 읽고 당장 교토로 떠나고픈 독자들을 위해 마련된 깜짝 선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면지’에 숨어 있는 교토 지도. 일본어로 된 교토 지도가 그려진 양장본 표지를 한 장 넘기면 꼼꼼히 그려진 한글로 된 교토 지도가 펼쳐져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교토의 골목골목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당장 교토로 떠나고픈 충동이 들지도 모른다. 교토의 봄, 교토의 석양, 가모가와 강물, 기온거리, 시조, 햐쿠만벤 교차로, 교토대학교, 교토타워..... 교토를 다녀온 이들에게는 추억을, 교토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정보가 될 ‘교토 일러스트 지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소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알고 읽으면 더욱 재미있는 세 번째 이야기 「연애편지와 레몬」 실존 작가인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을 패러디한 가슴 저릿한 이야기 “가지이 모토지로는 평생 단 한 권의 책밖에 펴내지 않았어.” “그래?” “작품의 무대가 된 마루젠 교토 가와라마치 분점이 문을 닫기로 결정했을 때 모두 가지이 모토지로의 책을 사러 오는 통에 폐점 직전 일주일 동안 문고본이 무려 천 권이나 팔렸다더군.” “호오, 거참 대단하네.” “마지막 날 영업시간이 끝나고 점원이 정리 작업을 시작하자 매장 여기저기에서 손님들이 몰래 놓고 간 레몬들이 발견되었대. 하나같이 계산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 살짝 놓고 갔다는 거야. 몇 개나 있었을 것 같아? 전부 100개가 넘었다더군.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나, 아베?” - 세 번째 풍경 「연애편지와 레몬」 중에서 187p 이 소설의 세 번째 장인 「연애편지와 레몬」은 실존 작가인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결핵을 앓는 ‘나’는 내내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 탓에 예전에 관심이 많던 음악이나 시, 문구점 마루젠에 대한 흥미를 잃은 채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가 평소 자주 찾던 데라마치 거리의 청과물 가게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그 가게에 드물게도 레몬이 진열돼 있었던 것이다. ‘나’는 레몬을 하나 산다. 결핵으로 미열을 띤 손바닥에 그 과일의 차디찬 기운이 매우 흡족하게 느껴져 그때까지 시달려온 불안감도 얼마간 완화되는 듯했다. 그리고 그동안 멀리해 온 마루젠에 들렀지만 ‘나’는 다시 불안감에 빠진다. 평소 아끼던 화집을 들춰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데 불만을 느낀 ‘나’는 화집을 쌓아올린 책더미 위에 시한폭탄처럼 레몬을 올려놓고 마루젠을 나선다. 그리고 ‘나’를 불안에 빠뜨린 다양한 것들이 폭탄으로 상정한 레몬에 의해 폭파되는 모습을 떠올리며 홀로 흥분한다(옮긴이 이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