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세계와 바지
장애의 화가들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
Samuel Beckett
사무엘 베케트의 다른 상품
|
유동하는 이 평면들, 떨리는 이 윤곽선들, 안개 속에서 재단된 듯한 이 몸들, 아무것도 끊어낼 수 없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스스로 끊겼다 다시 형성되기를 거듭하는 이 균형들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호흡하고 헐떡이는 이 색채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들끓는 듯한 정지 상태에 대해서는? 이 무게도, 힘도, 그림자도 갖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모든 것이 움직이고, 헤엄치고, 빠져 달아나고, 되돌아오고, 해리되었다가, 재형성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끊어진다. 분자들의 반란, 풍화되기 1천분의 1초 직전인 돌의 내부라고 하면 될까. 그거다, 문학은. ---「세계와 바지」중에서 A. 판 펠더는 펼쳐진 것(l’etendue)을 그린다. G. 판 펠더는 연속을 그린다.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으려면, 더구나 재현할 수 있으려면 우선 그것을 움직이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하기에, 전자는 자연 그대로의 펼쳐진 것, 태양의 채찍질 아래 마치 팽이처럼 도는 그것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는 그것을 이상화하고 하나의 내적 감각으로 만든다. 그리고 정확히 그와 같은 이상화의 방편을 통해 그는 예의 객관성, 그 선례 없는 선명함을 확보하며 이 자연 그대로의 펼쳐진 것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A. 판 펠더의 독창적 발견은 그 점에 있다. 명료하게 보고자 하는 필요를 극단적으로 팽팽하게 밀고 간 덕분의 결과다. 반면 후자는 고스란히 바깥을 향해, 빛 아래 사물들의 소란을 향해, 시간을 향해 돌려져 있다.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갖는 일은 오직 시간이 뒤흔드는 사물들을 통해서만, 그것이 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사물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그렇다. 스스로를 온전히 바깥에 제공함으로써, 시간의 전율에 의해 요동하는 대우주를 가리켜 보임으로써 G. 판 펠더는 자신을, 혹은 인간을 그가 보유한 가장 확고부동한 사실 속에, 즉 현재도 휴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확신 속에 실현해낸다.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겸허한 산법을 따르자면, 아무도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저 강물의 재현이다. ---「세계와 바지」중에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대상을 볼 수 없다. 대상은 그저 그것 자체일 뿐이니까.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대상을 볼 수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일 뿐이니까. 이 두 종류의 예술가들, 또는 대상-장애(empechement -objet)와 시선-장애(empechement-oeil)라는 두 종류의 장애는 항상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장애를, 사람들은 셈에 넣어왔다. 그에 대한 조절이 가해져왔다. 그럼으로써 이들 장애의 문제는 재현의 범위로 귀속되지 않았다. 혹은 거의 귀속되지 않았다. 반면, 판 펠더 형제에게서 이 장애들은 재현의 일부이다. 심지어 그들에게선 그것들이야말로 재현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되리라. 그리는 행위를 저애(沮?)하는 어떤 것, 바로 그것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헤르 판 펠더는 (나의 취약한 견해에 의하면) 첫 번째 부류의 예술가이며, 브람 판 펠더는 두 번째에 속한다. ---「장애의 화가들」중에서 |
|
말 못 함을 말하기
「세계와 바지」는 1945년 초, 각기 M. A. I 갤러리과 마그 갤러리에서 열린 판 펠더 형제의 전시회를 계기로 쓰였으며, 『카이에 다르(Cahiers d’Art)』지, 20/21권, 1945?6년에 처음 실렸다. 당시 제목은 ‘판 펠더 형제의 회화 혹은 세계와 바지’였고, 두 화가의 작품 일부가 흑백으로 함께 실렸다. 「장애의 화가들」은 마그 갤러리에서 발행한 미술 비평지 『데리에르 르 미르와르(Derriere le Miroir)』지, 11/12호(1948년 6월)에 처음 실렸다. 전형적인 비평가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미술에 대한 베케트의 관심은 평생 지속되며 창작에 영향을 미쳤다. 젊은 날 베케트는 이탈리아와 독일 등을 떠돌며 미술 작품을 감상했다. 브람 판 펠더에 따르면, 그가 베케트와 처음 만난 것은 1936년이며,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던 1940년대를 베케트 덕분에 버텨냈다고 한다. 극도의 고독과 침묵, 가난 속에서 그림을 그렸던 브람 판 펠더에게 베케트는 자신의 예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단 한 명의 친구이자 원조자였다. 베케트가 주선하고 평론을 쓴 1945년의 전시회는 브람 판 펠더 생애 첫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38년 런던에서 역시 베케트의 주선으로 열렸던 헤르 판 펠더의 개인전이 그러했듯, 전시는 주목받지 못한다. 판 펠더 형제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후, 즉 이들이 70세에 가까워서의 일이다. 베케트가 바라보기에, 판 펠더 형제의 작품들은 “한 지점에서 출발해 서로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며 진전하는 두 갈래 회화, 그토록 다르면서도 그토록 닮은 회화의 두 가지 미래”였다. 같고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이들의 세계를 베케트는 상당히 과도한 언변으로 그려낸다. 형 브람은 특히 여러 면에서 베케트의 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말 없음, 수동성의 힘, 어둠 속에서 감지되는 약동을 내면의 눈으로 더듬는 그림. 베케트는 ‘말 못 하는 자’의 예술의 정수를 대신 밝혀낸다. 그리고 이는 베케트 자신의 글이 향하는 방향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작품은 실패하기를 받아들여버린, 그리하여 ‘표현의 불가능성’에서 해방되고 만 것들이다. “사유와 지식 바깥으로부터 홀로 떠오르는 회화의 고독에 바쳐진 이 두 편의 글에서, 베케트의 문체와 논의 전개 방식은 읽는 이를 당황케한다. 비약하는 명제들과 박식, 반어적 유머들이 현란하게 교차하는 이 난감한 텍스트들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것들은 스스로의 빛나는 현학 속에서 진저리 치고 있는 건가, 검은 웃음이 그 반증이듯? ‘나는 결코 철학자들의 책을 읽지 않습니다 (…) 그들이 쓴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 나는 지식인이 아니오. 나는 그저 감각(sensibilite)일 뿐입니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날 『몰로이』와 그 후속작의 착상을 얻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가 느끼는 것들을 쓰기 시작했지요.’ 지성과 박학이 쌓여 막다른 골목을 형성하면, 무지가 그 틈새로 어둠 속 길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이른바 ‘M 3부작’ 의 착상과 집필에 맞물리는 이 텍스트들의 기이한 탐조(探照)는 거대한 인간의 지식 체계들을, 요컨대 그 허영을 차례로 잃고 털어내면서, 뱉어가면서, 어리석음의 들판으로, 도살장 방향으로, 제 한없는 질척거림 속에 연거푸 벌어지며 기어코 도래하는 순음 [m]의 웅얼거림으로 기어갈 몰로이/모랑의 종적이자, 묘연하여라, 글쓰기가 자기 발생을 위해, 마침내 두개골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에 가하는 즐거운 기형학(teratologie)의 시연(試演)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해설」 60~6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