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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최악을 향하여 떨림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
Samuel Be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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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누군가에게 와 닿는다. 상상하기. --- p.11
이제 어둠 속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너는 팔 안에 다리를 꽉 끼우고 머리를 최대로 숙이는 앉은 자세로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뒤로 젖혀진 너의 얼굴은 너의 이야기를 위해 헛되이 애를 쓸 것이다. 말들이 어떻게 해서 자신들의 끝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네가 결국 듣게 될 때까지. 매번 마지막에 더 가까워지는 무의미한 말들로. 그리고 말들과 함께 이야기. 너와 함께 어둠 속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너와 함께 어둠 속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너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수포로 돌아간 노력이 어떻게 더 나은 것인지 그리고 언제나 그대로인 네 모습. 혼자. --- p.39~40 어떤 장소가 그녀의 마음을 끈다. 가끔씩. 그곳에 바위가 하나 서 있다. 멀리서 하얗게 보이는. 바로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끈다. 가로보다 세로가 세 배나 되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네 배. 지금 그녀의 키보다. 그녀의 작은 키. 마음이 끌리면 그녀는 그곳에 가야 한다. 그녀의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눈을 감고도 거기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잣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해본 적도 결코 없다. 지금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게 그녀에게는 마치 불행이기라도 한 것처럼. --- p.47 계속. 계속이라고 말하기. 계속이라고 말해지기. 어떻게든 계속. 도저히 안 될 때까지 계속. 말하자면 도저히 계속할 수 없을 때까지. 말하기는 곧 말해지기. 잘못 말해지기. 이제부터 말하기는 잘못 말해지기. --- p.75 이제 그만. 갑자기 그만. 갑자기 아득해진다. 아무 움직임도 없고 갑자기 아득해진다. 모든 게 더 적어진다. 세 개의 핀. 하나의 핀 구멍. 흐릿할 대로 흐릿한 빛 속에서. 드넓은 거리를 두고 떨어진. 경계 없는 빈 공간의 경계에서. 거기서부터 더 멀어지지는 않는. 어떻게든 더 멀어지지는 않는. 더 적어질 도리가 없는. 더 나빠질 도리가 없는. 무(無)가 될 도리가 없는. 계속할 도리가 없는. 계속할 도리가 없다고 말해져버린. --- p.96 그의 소위 정신에서는 일종의 소음 같은 것이 요란하다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점점 희미해지고 점점 멀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 오 끝나버린다. 어떻게든지 어디서든지. 시간과 고통 그리고 소위 자기 자신. 오 모두 끝나버리길. --- p.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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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할 도리 없지만 계속
영어로 쓰인,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어느 정도 갖춘 외적 탐색의 시기. 프랑스어로 쓰인, 1인칭 서술 행위의 과정을 담은 내적 탐색의 시기. 그로부터 약 30년 후 베케트는 『동반자』(1979)와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1981) 그리고 『최악을 향하여』(1983)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발표한다. 이 세 작품은 “서술 행위 자체가 탐색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비소설적인 산문”(옮긴이, 「해설), 109면)들이다. 베케트의 글들은 글쓰기라는 행위를 둘러싼 문제들을 계속 제기해왔다. 이 후기작들에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베케트가 궁극적으로 다다르게 된 지점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담겨 있으며, 나아가 이들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베케트의 문학 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최악을 향하여』에서 줄곧 반복되는 문구처럼, 일견 계속될 도리가 없어 보였지만, 도리가 없더라도 끝내 계속되면서(“nohow on”). 『동반자』 ‘어떤 목소리를 듣는 누군가를 상상하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목소리”, “듣는 자”, (이들을) “상상하는 / 만들어내는 자”가 번갈아 등장한다. 혼자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상상하는, 또 다른 “나”. 그리고 나를 대신하는, 나와 동일하면서도 이질적인 분신들, 즉 나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동반자들”. 나의 동반자가 되어줄 타자는 애초에 없기에, 스스로의 동반자가 되어줄 허구의 존재들을 만들어낸다. “상상하는 자가 상상된 자를 만들어 스스로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모든 걸 상상하게 한다.” 즉, “상상하는 자”가 되어 글쓰기를 통해 “동반자”를 불러내기. 베케트의 이전 소설 3부작(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이 “나”로 시작하여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의 기록이라면, 『동반자』는 “나”의 부재로부터 시작하여 비어 있는 주체의 자리를 찾아가는 글쓰기이다. 그리고 이는 베케트의 마지막 글들의 시작이기도 하다.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제목이 암시하듯, 불확실하고 불충분한 ‘보기’와 ‘말하기’를 통해 그녀를 포착하려는 과정이 전개되는 글이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했던 『동반자』에서와는 달리,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에서는 (보는 자가 아닌) ‘보이는 자’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다. ‘보이는 자’인 그녀와, 그녀 주위에서 보이는 모든 움직임들을 집요하게 쫓는 ‘감시자의 눈’ 사이의 이야기.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본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글쓰기의 기본일 수 있는 이 두 질문에 대해, 이 글은 제목을 통해 미리 결론을 내린 후 전개된다. 결국 모든 것은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질 것이다. 『최악을 향하여』 글쓰기의 실패를 전제로 하고서 그 과정 자체를 점점 더 나쁘게 이끌어가는 글. 온전한 문장은 거의 사라지고, 말과 인물과 이미지는 뼈대만 남는다.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만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구상들의 기록과도 같은 글의 파편들. 이제부터 말하기는 (“잘 못”을 넘어) “잘못” 말해지고, 이제부터 보기는 (“잘 못”을 넘어) “잘못” 보이게 되고, 이렇게 글쓰기는 한계에 이른다. 서툴고 불충분하더라도 보거나 말하려고 애쓰던 때가 있었다면(“잘 못”), 이제 보기와 말하기의 결과는 오류와 거짓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잘못”). 그리하여 베케트는 이러한 실패 자체를, 오직 그것만을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다. “다시 시도하기. 다시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실패 앞에서, 베케트는 오히려 글쓰기를 해부해서 그 최악의 상태를 보여주려 한다. 즉 말들이 정말로 역겨워질 때까지, 말들을 정말로 게워낼 때까지. 말들을 정말로 떠나게 될 때까지. 그때까지 어떻게든 계속. 도저히 안 될 때까지 계속. 말하자면 도저히 계속할 수 없을 때까지 최악을 향해 가기. 더 나빠지기를 기다리며, 다시 실패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