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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명당
천년 명당, 흥망성쇠의 비밀
이규원
글로세움 200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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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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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전국 50여 명의 풍수 대가와 함께한 우리 산하 풍수답산기

1장. 하늘은 모든 것을 한곳에 내주지 않는다 - 왕가의 묘
금대 국세라 장손보다 지손과 외손이 발복하리니_ 경순왕릉과 산릉제향
백호자락이 왕릉 향해 고개 숙이니 딸들이 발복 받으리_ 공양왕릉과 광중혈토
살찐 생룡 꿈틀거리며 내려오니 천자가 날 자리련만_ 의안대군 이방석 묘
당판 용맥이 큰 바다를 막은 듯 뻗으니 어린 왕에게 큰 위안이 되리_ 단종릉과 독축법
용맥이 지나는 과협이라 후손들 감응 받기 힘드네_ 흥선대원군 이하응 묘
* 풍수비기_ 풍수와 장법

2장. 살아서는 일신영달이요, 죽어서는 조상음덕이라 - 시조 묘
백호가 잘 감싸고 돌아 대대손손 재물 넉넉히 모으리라_ 강릉 김씨 시조 묘와 귀화 성씨
삼합오행과 관계없는 명당이니 놀라운 풍수이치로다_ 흥해 최씨 시조 묘와 신주
옥구슬을 연이어 꿰놓은 듯 솟아 여섯 왕비가 나오니_ 청주 한씨 중시조 묘와 삼합오행
묘로 이어지는 용맥이 끊겨 후손들 간에 분란이_ 파평 윤씨 문중 묘와 보학 예절
* 풍수비기_ 풍수와 수맥

3장. 어찌 내세를 알겠는가 지금 세상도 알지 못하거늘 - 문신의 묘
우백호 듬직하니 살아생전 가난해도 후손은 큰 복 받을지니_ 황희 정승과 조부 황균비 묘
6백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지사들 간 마음을 이어주고 있으니_ 고불 맹사성 묘와 고택
누운 소의 유방 자리니 자손이 발복하는 천하명당이라_ 양촌 권근 삼대 묘와 택일법
너른 우백호 들녘, 문중 대대로 부를 지켜 줄 명당이니_ 눌재 양성지 묘와 사당
태백 정기가 응결된 명당이나 대 이을 후손이 없으니_ 사육신 묘와 나경 보기
왕릉처럼 거대한 혈장에 좌우 사신사 호위도 편안하니_ 아계 이산해 묘와 풍수설화
좌청룡이 혈처를 향해 고개 숙이니 아들이 번성할 터_ 신사임당, 율곡 묘역과 오죽헌
북현무가 중첩으로 둘러싸니 아들 후손들 벼슬이 끊이질 않네_ 송강 정철 묘와 사당
다섯 용이 탐내는 여의주 자리, 그 천하명당에 묻혔으니_ 퇴계 이황 묘와 도산서원
* 풍수비기_ 풍수와 제례의식

4장. 만년 세월, 나라의 큰 복을 도우리라 - 무신과 의인의 묘
힘 있고 우렁찬 청룡맥이 길게 뻗어 큰 인물이 날 명당이라_ 신숭겸 장군 묘와 관직제도
용이 산에서 내려와 숨는 형국이라 후손이 감응 받는 데 세월이 걸리네_ 최영 장군 묘와 무당신
입수와 좌향이 겹쳐 신음하는 곳이라 108년 만에 공功이 빛나네_ 이순신 장군 묘와 현충사
좌청룡, 우백호에 확 트인 앞바다… 큰 인물 겹쳐나고 부 이룰 명당이라_ 이지함 묘와 토정비결
생룡 내려와 꿈틀거리는 길지라 망자가 안식하기에 손색없으니_ 허준 묘와 진맥법
옥녀가 편히 앉아 발을 닦으니 산간에 이만한 명당도 없으리_ 김삿갓 묘와 생장가
* 풍수비기_ 풍수와 주역과 시초점

5장. 가문의 영화가 덧없고 부귀공명이 낙화유수 같네 - 근현대 인물들의 묘
외청룡 밖의 귀봉이 마馬채 형상이라 협객이 태어나리_ 김좌진 장군 묘와 대종교
용맥을 멈춰 서게 하는 큰 바위 있는 길지라_ 김구 묘와 민족정기
좌청룡이 탈진해 친손은 힘드나 딸과 외손은 음덕을 입으니_ 신익희 묘와 생가
현충원 배꼽 자리에 해당하는 명당에 자리하나 역사의 평가는_ 이승만 묘와 사후평가
나눔과 선행에 감복해 하늘이 내려준 명당이라_ 윤보선과 조부 윤득실 묘와 생가
상제와 귀인을 기다리는 형국이라 군왕의 귀를 얻고 당대 발복하니_ 반기문 총장 부친 묘와 생가 터
* 물형론과 제살법

6장. 한 치만 높아도 산이요, 한 치만 낮아도 물이라 - 생가와 집터
토함산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궁현수로 감싸니 재물이 쌓이네_ 경주 최부잣집과 자기풍수
기혈이 뭉친 산등성이 뒤 받치고 한강수가 에워싼 절세 명당이로다_ 다산 정약용 생가와 묘
53칸 시골집에 옹주도 시집오고 당대 학자들의 교유도 이루어졌으니_ 추사 김정희 고택과 묘
좌청룡과 우백호가 다정히 감싸니 누가 살아도 큰 인물 나오는 집터라_ 화서 이항로 생가와 양택풍수
초승달처럼 길게 누운 아미산, 어여쁜 딸 낳아 출세시키려면_ 명성황후 생가와 입태일
호남 제일의 길지, 후손들의 발복이 이어지네_ 인촌 김성수 생가와 호남 명당
* 풍수비기_ 동·서사택과 정순왕후 생가

7장. 사람이 만들어 백 년이면 하늘이 만든 것과 같으니 - 궁과 서원, 관공건물
음양오행이 조화를 이루나 왕실 내우외환이 끊이질 않고_ 경복궁과 궁궐풍수
막 피려는 연꽃이 꽃 순을 여는 절경에 명승혈지라_ 소수서원과 학교의 역사
공덕을 쌓지 않고서는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없으니_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청룡에서 물 흘러 우백호로 나가니 재물이 머물 길 없어라_ 서울역과 사주팔자
물길이 정면으로 치받으니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어라_ 여의도 국회의사당
산 정상 큰 바위 성체마냥 자리해 큰 부자가 나리라_ 진주 지수초등학교와 풍수 지형
살풍을 막아 주는 건물이 있어 큰 불화는 없을 자리라_ 유엔본부와 반기문 총장
사방 건물이 훌륭한 비보라 도심빌딩으로 풍수요건을 갖추니_ 교보빌딩과 양기풍수
* 풍수비기_ 비보풍수와 남연군 묘

8장. 자기 생각을 버리고 욕심을 억누를 때 하늘이 자리를 내주네 - 사찰과 종교 성지
물을 따라가다 보면 머무는 곳, 명당이 아니면 짓지도 않으니_ 계룡산 신흥암과 사찰풍수
사람이 태어난 자리가 산태극, 물태극의 중심점이라니_ 소태산 대종사 생가
봉황의 꼬리에 절을 세우니 길격을 두루 갖춘 절경이라_ 여주 신륵사와 한국풍수
변산반도 지기가 우뚝 멈춰 선 산상 최고의 양택지라_ 부안 월명암과 부설 거사
금원수가 휘감아도니 아무나 얻지 못하는 자리라_ 솔뫼성지와 미리내성지
사방 살풍 맞는 자리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두령 격이라_ 명동대성당과 하느님, 하나님
복이 겹친 땅이라 간절한 기도가 닿았을까_ 새문안교회와 개신교
* 풍수비기_ 음양오행과 육십갑자

*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작가한마디
명당이라도 명당을 알아보는 이가 있어야 하며 명당에 걸맞은 인물의 덕행이 더해져야 한다.

李揆元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홍성중, 예산농고를 거쳐 대학에서는 중국어와 장례풍수학을 전공했다. [종교신문] 취재부장, [세계종교신문] 주필, 월간 [광장] 편집장과 [세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고교시절 유효동 선생과의 인연으로 풍수학에 입문한 뒤 화엄학의 태두 탄허 대종사로부터 주역과 명리를 인가받고 황진경 조실 스님에게서 사찰풍수를 전수받았다. 현역 취재 30여 년간 종교와 풍수전문 대기자로서 다양한 기사와 글을 집필해왔다. 1995년 [문예사조] 시 부문 신인상을 타며 문단에 등단한 후 제6회 부원문학상과 제27회 한국기자상 본상(출판저작 부문), 제34회 한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홍성중, 예산농고를 거쳐 대학에서는 중국어와 장례풍수학을 전공했다. [종교신문] 취재부장, [세계종교신문] 주필, 월간 [광장] 편집장과 [세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고교시절 유효동 선생과의 인연으로 풍수학에 입문한 뒤 화엄학의 태두 탄허 대종사로부터 주역과 명리를 인가받고 황진경 조실 스님에게서 사찰풍수를 전수받았다. 현역 취재 30여 년간 종교와 풍수전문 대기자로서 다양한 기사와 글을 집필해왔다.

1995년 [문예사조] 시 부문 신인상을 타며 문단에 등단한 후 제6회 부원문학상과 제27회 한국기자상 본상(출판저작 부문), 제3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와 제111호 사직대제 전수교육을 이수했다. [온세종교] 신문을 창간해 발행인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사단법인 한국언론인연합회 부회장 및 [조선일보] 789사진클럽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저서로는 『조선왕릉실록』, 『명당은 살아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예인 백 사람』, 『대한민국 명당』, 『풍수로 읽는 인물열전』, 『한국사찰순례』(공저), 『한국의 차세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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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600쪽 | 1072g | 153*224*35mm
ISBN13
9788991010598

책 속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다 간 인물의 묘 앞에 설 때면 묵언의 암시로 다가오는 교훈이 크다. 살아온 사람마다의 궤적을 역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50

“대감! 틀림없는 2대 군왕지지올시다.”
흥선군이 황급히 정만인의 입을 막으며 손사래를 쳤다.
“자네 땅을 좀 보는 줄 알았더니 땅속까지는 못 보는구려. 내가 보기에 재혈만 잘 하면 현감 둘 정도는 나오겠네그려. 함부로 입 놀리지 말고 말조심하게나.”
흥선군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정만인은 간이 벌렁거리도록 떨었다. 왕조시대에는 군왕지지君王之地를 잡는 풍수지관이나 그곳에 묘를 쓰는 사람 모두 역모죄로 몰리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pp.508-509

흥선대원군이 당대 최고 풍수 정만인과 나눈 대화다. 아버지 남연군의 뫼터를 찾아 충청도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예산군 덕산면 지금의 남연군(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뫼터를 발견한 것. 이후 흥선대원군은 아버지의 묘를 이장했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고종황제다. 손자 순종까지 황제로 대를 이었으니 정만인의 풍수예언이 적중했다.
남연군 묘는 명당 풍수의 모범학습장이다. 온갖 법수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이 조성해 놓은 물형까지 두루 갖췄다는 것. 때문에 풍수학인들은 몇 번을 가서 봐도 새로운 공력을 쌓게 해주는 천하제일 명당 대길지란다. 저자 또한 이 남연군 묘만 10여 차례 다녀왔다. 게다가 이 묘는 군왕지지로서 갖출 조건은 거의 완비했으면서도 부족한 방위를 인위적으로 처리한 비보책을 훌륭히 활용한 예가 되기도 한다. 산의 기복이 심하고 평야가 적은 우리 땅에서는 완벽한 터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 풍수 법수에 가깝도록 근접시키는 것이 비보풍수임을 알고 있다면 독자는 여기 남연군 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일국의 명재상이 나올 자리… 묘 쓰고 반드시 타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국사 나옹의 당부에 황희의 아버지는 아버지 묘를 이장하고 개성으로 이사까지 했으니….--- p.124

황희의 아버지 황군서는 아버지의 묘를 쓰고 부인에게 태기가 있자 개성으로 이사를 한다. 훌륭한 재상이면 그만이지 재산이 무슨 상관있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일까 황희는 평생 청백리로 살면서 백성에게 존경받는 명재상으로 이름 떨치게 된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풍수와 역학 등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었어요. 일부에서는 다산이 풍수를 기피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정치, 경제, 문학, 철학, 의학, 조선학, 자연과학 등에 통달했던 대학자가 풍수만 몰랐을 리 없다는 학계의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 pp.508-509

경기도 능내리에 있는 다산의 생가는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명당이다. 거기에 양택(집터)과 음택(뫼터)이 동시에 형성되는 곳만 한 길지도 없다고 하는데 다산은 자신의 생가 뒤 동산에 묻혀 있다. 다산 정약용은 죽기 전 “지사들에게 물어보지 말고 집 뒷동산에 매장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무학은 새로 세운 왕조가 무탈하게 백성을 위하면서 천년사직으로 이어지길 사심 없이 원했다. 삼봉은 우선 장자보다 차자가 왕위를 잇는 궁터를 눈여겨 두었다. 신덕왕후(태조의 계비) 강씨 소생인 방석(태조의 제8남)을 세자로 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안대군도 당장은 장손이 흥성하는 자리를 원치 않았다. 자신이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서열상으로는 용상에 등극할 가망성이 희박했던 이유에서다. 이때 삼봉과 정안대군은 좋은 사이는 아니었으나 이 문제만으로는 하나가 되었다. --- p.430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결심한 후 궁궐(경복궁) 영건을 도모할 당시의 비화다. 이후 무학의 예언대로 왕통은 적자인 대군이 제대로 잇질 못하고, 후궁의 손들이 등극하면서 왕실의 내우외환은 끊일 날이 없게 된다. 역사적으로 큰 변란을 겪은 굴곡의 현장으로 어린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쫓겨나고, 명성황후가 일인 자객에게 시해되는 치욕의 한을 남기게 되는 현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한국풍수지리중앙회 거봉 김혁규 회장의 설명에 모두 놀랐다. 간산 길에서 자미원이란 찾아보기 힘든 명당 중의 명당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생가 터 앞에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명당수(진응수)가 자리하고 있다. 2000년 건립한 숭모재(사당)가 좌청룡으로 비보 구실을 하며 사당을 끼고 내려온 물이 우백호 곤신방(서에서 남으로 37.5도)에서 내려오는 구곡수와 합수된다. 양택 길지로 갖춰야 할 조건은 빠짐없이 갖춘 곳이다.--- p.430

「뉴욕 타임즈」도 심층 분석한 반기문 생가 터. 생가 터는 물론 반 총장의 아버지 부친 묘 또한 명당 중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반기문 총장의 취임에는 중국 가오산진에 있는 반씨 집성촌도 함께 기뻐했고, 세계반씨문화연구회 반젠민 회장은 “반씨 후대에 ‘세계의 대통령’이 출현한다고 믿어 왔는데 바로 반기문 총장이다”라며 반색했다고 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아직도 명당은 남아 있는가?

신라 말 경순왕릉부터 반기문 총장 생가 터까지
명풍수 50인과 4년에 걸쳐 현장 취재한 대한민국 명당 이야기

미국 「뉴욕 타임즈」는 반기문 총장이 취임을 앞둔 2006년 12월 생가 터와 풍수를 연관 지어 르포기사를 연재했다. ‘지난 3세기 동안 이곳에서는 위대한 인물이 나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마침내 위대한 인물이 나왔다’면서 ‘마을 지세가 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 매사추세츠, 오하이오 주와 흡사하다’, ‘천기가 마을로 집중되는 완벽한 형상이다’는 풍수 전문가의 견해까지 함께 실은 것.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이 ‘위대한 한국인’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전통풍수사상을 긍정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또한 홍콩에서는 중국은행과 상하이은행 간에 사옥 신축을 둘러싼 싸움이 법정으로 비화돼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서로 풍수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사생결단하는 이른바 ‘홍콩판 풍수대전쟁’이다. 수년 전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곤욕을 치를 때 중국 풍수대가의 권고로 집무실 배치와 실내 장식을 바꾼 후 진정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화제가 됐던 적도 있다.
사기, 미신쯤으로 치부되던 풍수가 어느덧 풍수 열풍으로 세계적인 추세가 돼버린 것에 대한 반증이다.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풍수, 명당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왕릉 터를 잡는 풍수지관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며 대기업은 물론 관공서 신축에도 명당을 가리고, 풍수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요즘은 뫼터, 주택을 고르는 것은 물론 인테리어풍수다, 돈을 부르는 풍수, 건강해지는 풍수 비결이다 하여 풍수 관련 고서를 직역해 놓은 책부터 풍수 원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적용하는 책까지 출간된 책만 수십 종이 넘는다. 더 이상 풍수가 고리타분한 옛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학문인 까닭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풍수 책이라 하면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상업적인 책들이 대부분이다. 풍수가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첨단화된 과학문명 속에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음에도 지금껏 하나의 사상으로 정립하지 못하고 그 정통성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잡은 천하대길지 명당이 누군가에게 헛공사로 뭉개지기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명당 답산기, 명당으로 읽는 한반도 역사와 문화
『대한민국 명당』(글로세움 刊)은 풍수입문 40년, 종교전문기자 출신의 저자가 전국 풍수 대가 50여 명과 4년에 걸친 명당 답산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이 책에는 신라 말부터 2000년대까지 나라를 세운 왕부터, 백성을 살핀 재상 및 문·무신 관료들,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 국부國富들의 뫼터와 생가 터, 그리고 사찰과 종교 성지 등 전국 53곳의 명당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명당 이야기로 물꼬를 트고 있지만 터와 인물의 내력을 풀어가다 보면 당시의 시대상, 인문학적 정보와 사건, 향토문화까지 자연스레 언급이 된다. 명당을 본다 해서 물형과 지형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시대상과 문화를 바로 알아야 올바른 명당 판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랑방 풍수’ 10년보다 1년 산山 공부한 풍수가 낫다고 한다. 내로라는 풍수들과 수년을 동행취재하며 겪은 현장 경험과 각 풍수지관마다 비장해 오던 내공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명당』은 이 모든 것들을 응축시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대한민국 명당』에는 천년 명당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다. 물형과 지형이 풍수 법수에 딱 맞아떨어져 누가 보아도 명당이라 할 만한 터가 있는가 하면 법수에는 맞지 않으나 지금껏 명당으로 천년 영화를 지탱해 주는 터도 있다. 명당이라도 명당을 알아보는 이가 있어야 하며 명당에 걸맞는 인물의 덕행이 더해져야 한다. 이것이 풍수가 일반 사기, 미신과 다른 점이다. 책 속에 언급된 명당 중, 혹은 책에 언급되지 않은 명당이라도 진정 어디가 명당이고 아닌지, 그 판단은 책을 읽은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본문 중의 한 구절이다. ‘명당인 줄 알고 써도 아닌 법이고, 모르고 써도 명당이라 했으며, 들판의 빈집도 주인이 있다.’

한반도 역사에 새겨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지혜

풍수는 조상이 물려준 전통사상이자 과학

풍수의 역사는 오래다. 중국에서 비롯된 풍수는 곽박(276~324)이 쓴 『장서葬書』에서 기록을 찾는다. 그러나 풍수이론의 태동은 전국시대(기원전 4~5세기)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고대의 천지부모사상에 음양이론이 복합돼 구체적 이론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황제택경黃帝宅經』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는데 황제黃帝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7백여 년 전 사람이다.
이렇듯 오? 역사의 중국풍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건 신라 말과 고려 초 도선 국사에 의해서다. ‘옥룡자비법’으로 불리는 도선의 비보풍수는 고려조와 조선조를 거쳐 현재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도선이 잡은 절터 외에는 절을 짓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도선 이전에도 자생 한국 풍수가 존재했었다는 실증은 전국 도처의 풍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대적으로 2백여 년 앞선 원효 대사가 잡은 절터는 물형이나 법수로 따져도 명당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다.
풍수는 원래 일반인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고급·귀족학문이었다. 조선조 과거제도에서 풍수지리는 책을 보지 않고 암기해야 하는 배강背講 방식으로 얼마나 비중이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무원 시험 과목 중 하나였던 풍수지리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된서리를 맞게 된다. 무서운 땅의 이치인 풍수를 조선 민중이 널리 아는 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미신으로 호도시켜 속설화해버린 것이다.
한국의 풍수는 효孝를 바탕으로 조상을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전통사상이요, 학문이다. 내 자식, 내 권속만 출세하여 부자되려고 이용하던 비술이 아니다. 명당 혈처를 찾아 조상을 잘 모시고 바르게 살아야 명당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명당을 논하며 아전인수 격으로 나만이 잘 되어야 한다는 이기와 자만심은 금물이라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명당도 명당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책에 언급된 명당들의 면면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나라의 왕을 위해, 백성을 위해, 조상과 자손들의 복을 기원하면서 터를 잡고, 그 터에서 살았거나, 죽어 자리를 잡은 인물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남다를 것이다. 저자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다 간 역사적 인물들의 생가와 묘역을 찾을 때마다 후손에게 본이 되게 살아야겠다는 자기성찰이 큰 교훈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명당에 관한 수많은 책들 중 명당과 문화, 역사를 함께 풀어 놓은 책은 드물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실용성을 내세워 사행심을 부추기기보다는 진정한 명당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롭게 조명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난해한 풍수용어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언급된 명당에 가 보고만 와도 좋은 터를 보는 안목과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다.

인물을 낳고 집안을 세운 명당 이야기

반기문 총장은 정녕 집터의 기운으로 세계를 다스리는 인물이 되었나?
- 「뉴욕 타임즈」도 심층분석한 반기문 생가 터의 비밀
한 시골 초등학교에서 대 잇는 거부를 줄지어 배출한 사연은?
- 재벌총수 배출의 산실 진주 지수초등학교와 풍수 지형
여섯 왕비를 배출한 청주 한씨 집안의 비밀은? - 천년 세월에도 끄떡없는 명당의 조건
황희 정승은 청백리로 살 수밖에 없었다? - 국사 나옹이 점지한 땅에 얽힌 사연


이 책에는 전국의 대표적인 음택?양택?양기?사찰?궁궐풍수 외에 주역, 사주 택일법, 제례, 상례, 장법, 진맥법, 수맥, 음양오행 등 동양학과 종교에 관련된 각종 정보들은 물론 뫼터, 생가 터에 얽힌 인물들의 사연과 역사가 망라되어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부터 5장까지는 신라 말부터 근현대 인물들의 뫼터를 6장에서는 생가와 집터, 7장에서는 궁과 서원, 관공건물, 8장에서는 사찰과 종교 성지를 담고 있다. 또한 각 장마다 ‘풍수비기’란을 별도 구성하여 ‘장법’, ‘수맥’, ‘제례의식’, ‘주역과 시초점’, ‘물형론과 제살법’, ‘동서사택’, ‘비보풍수’ ‘음양오행’ 등에 관한 정보를 실었다.

1장 ‘하늘은 모든 것을 한곳에 내주지 않는다(왕가의 묘)’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고려 왕 공양왕, 조선 왕자의 난의 희생양 의안대군 이방석, 어린 왕 단종, 흥선대원군의 뫼터를 담고 있다. 신라 경순왕릉을 이야기하며 망국의 길을 택한 왕의 비애를, 천자가 나는 대길지에 묻힌 세자 방석의 사연, 희대의 풍운아로 어느 양반가 벼슬아치 무덤만도 못한 자리에 묻힌 흥선대원군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천하를 군림했을 법한 왕들의 묘도 모두 명당만은 아니었고, 당시 권력의 이해관계에 의해 허당에 지어지기도 했으니 왕으로 태어났다 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2장 ‘살아서는 일신영달이요, 죽어서는 조상음덕이라(시조 묘)’에는 명주군왕으로 군림한 강릉 김씨 시조 김주원의 묘, 전설적 명당으로 널리 알려진 흥해 최씨 시조 최호 묘, 조선왕조에서만 왕비 6명을 배출한 청주 한씨 중시조 한란의 묘, 한울타리 9촌 간 윤임과 윤원형의 파평 윤씨 문중 묘가 언급된다. 한 집안의 시조 묘, 문중 묘를 통해 집안의 흥망성쇠와 내력을 읽어낼 수 있다.
3장 ‘어찌 내세를 알겠는가 지금 세상도 알지 못하거늘(문신의 묘)’에는 황희 정승을 비롯한, 맹사성, 권근 삼대 묘, 사육신과 신사임당, 율곡의 묘 등을 소개한다. 일국의 명재상과 충얽들의 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의 삶과 고뇌를 펼쳐 보인다.
4장 ‘만년 세월, 나라의 큰 복을 도우리라(무신과 의인의 묘)’에는 왕건이 죽도록 못 잊은 충신 신숭겸 장군, 고려 말의 우국충정 최영 장군,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 토정 이지함, 허준, 방랑시인 김삿갓 등의 묘와 사연을 담아 냈다. 효 사상과 조상을 공경하고 후손의 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풍수, 풍수의 관점에서 읽는 선조들의 역사는 학교 국사 시간에 배우는 바와는 또 다르다.
5장 ‘가문의 영화가 덧없고 부귀공명이 낙화유수 같네(근현대 인물들의 묘)’에는 김좌진 장군과, 백범 김구, 이승만과 신익희, 반기문 총장 부친의 묘, 생가 터 등이 언급된다. 뫼터나 생가 터 주인들의 사연과 함께 굴곡진 근현대사를 읽는 재미가 있다.
6장 ‘한 치만 높아도 산이요, 한 치만 낮아도 물이라(생가와 집터)’에는 경주 최부잣집, 다산 정약용 생가, 추사 김정희 고택, 명성황후 생가, 인촌 김성수 생가 등을 실었다. 당대를 풍미하고 일가를 이룬 이들의 사연과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이들의 생가 터에 가 보고 그와 비슷하게 따라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7장 ‘사람이 만들어 백 년이면 하늘이 만든 것과 같다(궁과 서원, 관공건물)’는 경복궁과 소수서원, 안동 하회마을과 서울역, 국회의사당, 유엔본부, 교보빌딩 등에 관한 장이다. 이 장에서 언급된 궁과 서원, 건물들은 현대인들이 익숙히 보아 넘기고 지나쳐온 곳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궁과 서원, 건물의 배치와 생김생김이 예사로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8장 ‘자기 생각을 버리고 욕심을 억누를 때 하늘이 자리를 내주네(사찰과 종교 성지)’에서는 사찰풍수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계룡산 신흥암과,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 생가, 솔뫼성지와 명동대성당 등이 언급된다. 풍수와는 상관없을 듯한 성당과 교회 등의 역사를 풀어내고 풍수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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