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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서울의 환상
2. 사진과 삶의 지속
3. 천변시대
4. 나만의 북한산
5. 세속도시의 심리지리
6. 서울의 나이테, 후암동 - 해방촌
7. 가투
8.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9. 서울 인사동의 자영업자들
10. 인사동 기억들 인사동 자영업자 인터뷰

저자 소개 1

등저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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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 미술비평가. 동덕여대 회화과 서양미술이론 교수. 발터 벤야민 미학, 현대미술 비평, 역사철학적 예술 이론이 주요 연구 분야다. 대표 저서로 『포스트크리에이터: 현대미술, 올드 앤 나우』(2019),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2017), 『비평의 이미지』(2013),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2011),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2009), 『서울생활의 재발견』(2003)이 있다. 기획 공저로 『비평 페스티벌× 2 : 비평가의 기능·역량과 역학』(2016), 『비평 페스티벌× 1: 비평의 육체를 찾아』(2015), 『서울
미학자. 미술비평가. 동덕여대 회화과 서양미술이론 교수. 발터 벤야민 미학, 현대미술 비평, 역사철학적 예술 이론이 주요 연구 분야다. 대표 저서로 『포스트크리에이터: 현대미술, 올드 앤 나우』(2019),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2017), 『비평의 이미지』(2013),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2011),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2009), 『서울생활의 재발견』(2003)이 있다. 기획 공저로 『비평 페스티벌× 2 : 비평가의 기능·역량과 역학』(2016), 『비평 페스티벌× 1: 비평의 육체를 찾아』(2015), 『서울생활의 발견』(2003)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읽기와 먹기: 벤야민 미학에서 학제적 의미의 ‘수용’」(2019), 「다른 미적 수행성: 현대미술의 포스트온라인 조건」(2018), 「유동하는 예술: 비엔날레 문화와 현대미술의 미학적 특수성」(2016), 「컨템포러리 아트의 융합 과/또는 상호학제성 비판」(2015), 「헤테로토피아의 질서: 발터 벤야민과 아카이브 경향의 현대미술」(2014), 「인공보철의 미: 현대미술에서 ‘테크노스트레스’와 ‘테크노쾌락’의 경향성」(2013)이 있다. 2020~2021년 풀브라이트 중견연구자 연구 지원Fulbright Mid-Career Research Award 에 선정되어 뉴욕대 방문교수로서 연구 과제 “Art Practice and Aesthetic Experience in the Age of Post-Creation”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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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628g | 165*225*20mm
ISBN13
9788987057637

책 속으로

황학동이란 동명은, 지금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과거 논밭이었던 이곳에 황학이 자주 날아들어 유래했다고 한다. 대부분 지명들의 연원이 그렇듯 언제부터 이 지역이 황학동이란 지명으로 불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일제 강점 초기 서울 지도에 황학동이란 지명으로 출현하는 것으로 볼 때 최소한 조선시대 동안에는 - 훨씬 이전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 이곳을 황학과 관련된 이름, 즉 황학리, 황학마을 등으로 불러왔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황학동의 역사적 맥락을 한번에 모두 꿰기는 꽤 복잡다단해서 왕십리의 연접지역으로서 왕십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던 시기(왕십리 시기 : 조선시대 ~6.25)와 왕십리와 결별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키워나가는 시기(중고품시장 시기 : 6.25~현재)의 둘로 나누기로 한다. 왕십리 시기는 조선시대 부터 6.25 때 까지를, 중고품시장 시기는 6.25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른다.

조선시대 성저십리 같은 성 밖 인접지역은 대개는 성안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고 운반해서 그 물품들을 성안 사람들에게 매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거주했다. 신촌, 용산, 마포 등지와 더불어 왕십리도 한양 천도 이후 대표적인 성저십리 지역이었다. 사실상 고고학자들은 황십리 일대의 취락이 조선시대 훨씬 이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이미 나타났음을 확인하고 있다. 한강을 끼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다른 지역보다 생산성이 높은 퇴적층의 토질이 일찍부터 왕십리 지역에 취락이 발달할 소지를 제공했던 것이다.

---pp. 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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