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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아담한 에배당이 있던 고향 자작 마을 마음의 큰 어른들 구미포 모래사장에서 부르심을 받다 공중의 새를 보라 프린스턴 신학원 시절 폐결핵이 가져다준 깨달음 가난하지만 젊은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복순이의 눈물로 세운 보린원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해방을 맞으니 돌아오지 못할 길, 38선을 넘다 김관주 목사의 순교 피난민 천막 교회에 퍼진 베다니의 향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빌리 그레이엄과의 만남 후임 목사를 세우고 은퇴를 준비하다 아내의 죽음과 교회에 닥친 시련 온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2.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나이 아흔 고개를 넘으며 이 민족을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 압록강 물결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템플턴상을 수상하며 나도 은혜를 갚도록 해주십시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남한산성에 울려퍼지는 찬송 소리 평온하고 따뜻한 가을 햇볕처럼 살았기를 진정한 옥합을 깨뜨린 사람들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영락교회 50주년 그리운 얼굴들, 반가운 얼굴들 한 알의 씨가 땅에 심기어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마지막 성찬을 끝내고 작가의 말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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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17년 동안이나 공부해온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이낙. 서른 살도 안되는 짧은 생을 마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황해도 소래 구미포에서 받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단지 착각에 불과하단 말인가.
경직은 이런 마음을 기도로 토해내며 하나님과 흥정을 하듯이 간구하였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3년만 일하다가 죽어도 좋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 (...) 처음에는 억울하고 허망하다는 생각들이 많았으나, 차츰 경직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자기 자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경직은 그 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는 칭창만 들어왔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원에 와서도 우등생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3학년 때는 학생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졸업 당시에는 설교를 가장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설교상을 동양인 최초로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라고 하여 어디를 가나 독지가들의 도움을 다른 학생들보다는 쉽게 받아낼수 있었다. 물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나름대로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한 고생쯤은 유학생이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경직은 자신이 명민하여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빼어난 하갖가 되어 대학이나 신학교에서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프린스턴 신학원의 연로한 교수들을 능가하는 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경직이 예일 대학에서 교회사를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 모교인 프린스턴 신학원에서 맨 먼저 교수로 모셔가려고 할지도 몰랐다. 물론 민족을 위해 일하리라는 소명은 늘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서 이름을 날린 후에 고국으로 돌아가 봉하새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경직은 그 동안 세상에 대한 이런 야심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줄 알지 못했다. (...) 경직은 미국에 와서 자기도 모르게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진 세상 야심에 대해 회개하기 시작했다. 세상 야심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 pp 6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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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에 일본 사람인 신의주 지사가 황급히 경직에게 사람을 보내어 만나자고 하였다. 그 당시 경직은 여전히 보린원을 돌보고 있었다. 경직이 신의주 지사를 찾아가자 그가 경직에게 말했다.
"지금 일본이 패했는데, 이제는 미군이 들어올 것이오. 그런데 미국이 들어오기 전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 사이에 불상사가 일어날까 걱정이오. 사람들이 크게 다치고 죽을 수도 있소. 이 사태를 막아야겠는데, 누가 이 일을 맡을 만한가 하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당신이 적임자라고 추천하였소. 그러니 이 일을 좀 맡아주시오." 경직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 혼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권한을 주시면 내가 나가서 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일을 맡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신의주 지사가 이 일을 목사인 경직에게 맡긴 것은 사실 일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목사가 설마 일본 사람 때려잡는 일에 앞장서라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직은 일본 사람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서 물러가는 것만 해도 감격스럽기 그지 없는데, 굳이 일본 사람들의 피를 이 땅에 흘릴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 pp 113~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