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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펄프픽션
이강훈
웅진윙스 200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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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살찐 고양이의 푸념
상상도둑
그녀를 찾습니다
시모키타자와의 아나키스트
시간을 빌려드립니다
웨스트게이트파크의 외계인
무라카미 코쿤이라면
다시 상상도둑
room 506
_에필로그

저자 소개 1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주학교》 《독립운동가, 난민이 되다》 《미래가 온다, 바이러스》 《한국 괴물 백과》 등 지금까지 단행본 400여 권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서울 어느 조용한 동네에서 말이 많은 고양이, 말수 적은 사람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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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8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1097688

책 속으로

“뭐야, 이제야 놀라는 척하는 거야? 아님 지독한 형광등인 건가?”
고양이의 입은 무척 자그마해서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 소리는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정말로 있었군, 말하는 고양이가.”
나는 감탄했다. 진심 어린 감탄인데도 내 입에서 튀어나온 탄성은 마치 과장된 한숨 소리처럼 들렸다. 고양이는 그런 나를 뭐 이런 바보 같은 놈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정말 바보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거 뭐가 뭔지 통 모르겠군. 이렇게 한심한 반응은 처음이라 내가 더 당황스럽네. 아무튼 커피 고마웠어. 우리 통성명이라도 하자. 난 가츠오라고 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 이름이기도 하지.”
나카메구로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나는 가츠오와 처음 만났다. --- 「살찐 고양이의 푸념」 중에서

나는 작업하는 중간 중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사람들이 모두 정지하거나 하는 일도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 머무르거나 흘러갔다. 다만 나는 만 하루 동안 세 번의 짧은 잠(시계에 표시된 시간대로라면)을 잤고, 열 번의 허기를 느끼고 그중 여덟 번의 식사를 했으면, 예정대로 모든 일을 무사히 끝마쳤다. 작업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시간이 늘어난 탓인지, 나의 손과 머리의 숙련도가 향상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변화는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아마 나의 둔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일정대로 작업을 끝마친 나는 다이칸야마에 있는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무사히 결과물을 받았다는 담당자의 들뜬 목소리를 확인한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꿀보다 더 진하고 달콤한 잠이었다. --- 「시간을 빌려드립니다」 중에서

아침의 웨스트게이트파크는 분주했다. 직장인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바삐 역이나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고, 동심원을 그리며 번져가는 물결 모양으로 새겨진 광장의 타일들은 서로 다른 모습과 크기로 울어대는 구두 소리들의 불협화음을 숨 가쁘게 토해냈다. 아침의 공원은 주로 지난밤을 그곳에서 보낸 노숙자들 차지였다. (……) 한번은 공원을 지나가는 직장인 여성을 몰래 훔쳐보며 반쯤 바지를 내리고 자위행위를 하는 노숙자를 본 적도 있었다. 꽤 이른 아침의 일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물건을 꺼내놓고는 흐릿하게 풀린 눈으로 자위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놀라서 시선을 피해버린 쪽은 오히려 나였다. 잠시 손 운동을 멈춘 그는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하던 일에 열중했다. 그리 유쾌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왠지 어색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곳이 웨스트게이트파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살인을 제외한다면 어떠한 행위도 용인될 것 같은 장소, 어쩌면 그것조차도 부자연스럽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하자면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는 그런 곳이었다. --- 「웨스트게이트파크의 외계인」 중에서

책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나이 먹은 책들은 대게 품고 있는 종잇조각들보다
스무 배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죠.
시간을 머금은 이야기들은 종이와 잉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라서
책의 속삭임을 직접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답니다.
오래된 책에 영혼이 깃든다는 이야기는 괜한 말이 아니거든요.
물론 그 책들을 만나려면 당연히 고서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아 참,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빠뜨릴 뻔했군요.
책들은 주로 세상이 모두 잠든 한밤에만 속삭입니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고서점의 밤은 그래서 언제나 속삭이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달이 깨어나는 시각에 시작되는 이야기는 별들이 모두 잠들고
어슴새벽을 지나 다시 해가 눈을 뜰 때까지 그치지 않는답니다.
고서점들이 차분한 듯하면서도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만일 책들의 속삭임을 듣고 싶다면 오늘 밤 몰래 그곳을 찾으면 됩니다.
어쩌면 당신은 어떤 책에서도 읽을 수 없었던
진기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지도 몰라요.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죠.

--- 「tokyo scene 20」 중에서

출판사 리뷰

도쿄의 골목길에서 만난 조금 수상한 이야기 속으로!
도쿄는 수상하다. 더 이상 놀라운 것도 특별히 이국적일 것도 없는데 너댓 번을 가도 여전히 새롭고, 아쉬움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가진 도시, 바로 그 ‘도쿄’를 무대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10년 차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풋내기 이야기꾼인 저자는 이 책을 위해 도쿄를 네 차례 방문했다.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40여 일, 얼추 석 달 남짓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며 여러 삶들을 만났고 여러 사연들을 만났다. 그리고 주연 ‘도쿄’, 연출 ‘공상’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은 9편의 짧은 도쿄 이야기를 『도쿄 펄프픽션』으로 묶어냈다. 특히 저자가 책에 직접 그려 넣은 기발한 일러스트들은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게 한다. 서울과 도쿄, 사실과 허구, 소설과 여행기,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일상과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호접몽처럼 겹쳐지는 그의 독특한 시선은 “너무도 천연덕스럽게”(소설가 윤이형) 기존 이야기 형식의 경계를 깨부순다. 감상 위주의 나래이션 구조에서 탈피한 이 책은 소설과 여행기, 이야기와 그림의 경계에서 자유로움이 무한리필된다. 이 신기한 시공간에서 무엇을 얻어갈지, 어디까지 믿을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도 반한 9가지 판타스틱 로드픽션
「그녀를 찾습니다」는 나카메구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친구가 된 말하는 고양이 가츠오와 함께, 우연히 지나친 주인공의 ‘100퍼센트 그녀’를 찾으러 ‘고양이 탐정단’을 방문하는 사건을 의뭉스러운 문체로 빚어낸 아기자기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야나카레이엔의 카페 란포에서 드디어 탐정단의 일원 료스케를 만난다. “시험 삼아 속삭였다. 행여나 할아버지가 들을까 봐 작은 소리로, 사바, 사바, 사바, 사바, 사바. (……) “절 찾아오셨나요?” 세상에, 료스케가 나에게 속삭였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조근조근 말을 걸어오는 다정한 묘사로 마치 봄날의 햇살 속에서 꿈이라도 꾼 것 같은 행복한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시간을 빌려드립니다」는 도쿄여행 중 저자가 ‘시간대여회사’를 통해 5일의 시간을 빌려 쓴 일화를 몽환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한국에서 의뢰받아 넘기고 온 그림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는다. 급하게 그림을 수정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전긍긍하던 주인공은 신오쿠보 어느 인터넷카페에서 시간을 빌려준다는 광고전단지를 발견하고 반쯤은 호기심으로, 반쯤은 절박한 심정으로 지유가오카의 시간대여회사를 찾아간다. 돈을 빌리듯 시간을 빌려쓴다는 기발한 상상이 돋보이는 이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혹시 빌린 시간은 아닐지, 시간이 더디 간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물리적으로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 건 아닐지, 자신의 일상을 한번쯤 돌아보게 해준다.
이밖에도 직장인들이 숨 고를 틈도 없이 지나쳐가는 이케부쿠로의 한 공원에서 만난, 일상에서 잠시 비켜나 있는 ‘외계인 노숙자’와의 쓸쓸한 대화를 그린 「웨스트게이트파크의 외계인」, ‘숍드로핑(shop dropping, 상점에 무언가를 몰래 떨어뜨리고 가는 행위)’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세상에 전달하는 시모키타자와의 유쾌한 아나키스트들과의 조우를 담은 「시모키타자와의 아나키스트」등 “아아 도쿄에 가고 싶다, 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지는(소설가 정이현) 소소하고 기발한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이 도쿄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을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다!
이 수상한 이야기책 『도쿄 펄프픽션』을 읽다보면 어느새 도쿄에 가고 싶어진다.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그 도시의 작은 모퉁이들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고 싶어”(소설가 정이현)지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장소나 인물들은 대부분 실재하기 때문에 독자의 여행로망을 더욱 자극하한다. 읽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이야기의 무대가 된 실제 장소들, 즉 책 속에 등장하는 카페와 고서점 등의 위치는 저자의 블로그(kokoon.egloos.com)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이 책을 읽고 이야기 속 실제 장소들을 찾아가는 도쿄여행을 계획하든, 아담하고 시원한 카페에 앉아 머릿속으로 ‘상상 도쿄여행’을 떠나든 그건 당신에게 달렸다. 다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이 먹은 책들은 대게 품고 있는 종잇조각들보다 스무 배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와 같은 다정한 문체에서 읽는 재미와, 동시에 특별한 가이드북을 본 것처럼 도쿄의 색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이강훈의 글과 그림은 정체불명의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도쿄 펄프픽션』을 읽으며, 아아 도쿄에 가고 싶다, 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진다. 여기, 그가 쓰는 곳이 진짜 도쿄인가? 그렇다면 또 다른 여기, 내가 사는 곳은 진짜 서울인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깨어 있는 채로 꿈이라도 꾼 것 같은’ 기분이다. 책을 덮으며, 아아 그래도 도쿄에 가야겠다, 고 마음먹는다.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그 도시의 작은 모퉁이들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고 싶어진 것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문득 길을 막아서며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정이현 (소설가)
이런 형식의 이야기가 가능할까? 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강훈은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모든 경계를 깨부순다. 말하는 고양이와 능청스러운 아나키스트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며 텍스트와 이미지로 조근조근 말을 건다. 서울과 도쿄, 사실과 허구, 소설과 여행기,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일상과 문화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호접몽처럼 겹쳐지는 이야기들. 이 신기한 시공간엔 무한리필되는 자유로움이 있다. 어디까지 믿을지,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자유다.
윤이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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