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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어 수업을 사수했던 이윤재.
그가 엮은 조선의 문예, 문학, 그리고 행간에 묻어나는 조선어학회의 인맥과 어문 민족주의의 흔적들. 해방 이후까지 성가(聲價)가 드높던 국어교과서의 원형. 독본이라는 근대의 창(窓) 일제강점기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지금처럼 책이 넘쳐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읽을 만한 글들을 모아서 엮은 ‘독본(讀本)’이 지식의 다이제스트로 인기를 끌었다. ‘독본’은 일제가 주도한 공교육 제도에서의 공적 교과서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대중들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편찬된 민간 교과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근대독본총서 시리즈의 1차분으로 발행된 것은 일제강점기 민간에서 발행된 대표적 독본 세 권이다. 최남선의 『時文讀本』, 새벗사의 『어린이讀本』, 이윤재의 『文藝讀本』은,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독자나 담고 있는 글들의 성격이 서로 달라 이 세 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당대의 지식, 교양, 문화, 문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시문독본』은 1916년에 발간되어 1920년대 내내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차지했던 책이다. 현진건의 「타락자」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시문독본』을 통해 시조(時調)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를 접하게 되며, 이태준도 그의 자전소설 『사상의 월야』에서 문학 수업을 위해 『시문독본』을 독서한 경험이 있음을 고백했다. 『문예독본』은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권과 하권 모두 4천부를 넘겨서 곧 재판을 출판할 예정이라는 서적 시장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이 세 권의 독본은 현대의 독자들을 편의를 위해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었을 뿐, 자료적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고자 원본의 표기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연구자들이 자료집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하거니와, 각주와 해제가 함께 달려 있어 일제강점기 사람들이 무엇을 읽었을까에 관심을 가졌던 일반 독자의 호기심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세 권의 대표적인 독본에 실려 있는 글들이 여전히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지식과 교훈을 전달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볼 만하다. 근대문학의 정전(正典) 형성과 『文藝讀本』 어문학자이자 민족운동가였던 이윤재가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의 유명한 문학자, 사학자 등이 쓴 작품, 논문, 해제 등을 엮은 것으로, 중등학교 수준의 읽기 교재로 편찬된 것이다. 상권에는 문학 작품의 비율이 높고, 하권에는 시조나 문학에 대한 이론을 펼치는 글을 싣고 있다. 상권보다 하권의 수준이 높아, 교육 수준을 조절하는 교과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신문학 이후의 우리말과 글로 독본을 구성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에도 국어교과서가 마련되기 직전까지 유력한 문학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현행 국어교과서의 원형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그 편제와 내용의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모범이 될 만한 동화, 시조, 시, 소설, 기행문, 서간문 등과, 사화(史話), 일화, 논문(논설문), 설명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문학 작품의 비중이 높은데, 책의 머리말격인 예언(例言)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그 당시의 유명한 문인 이태준, 변영로, 이은상, 주요한이 선자(選者)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문예독본』은 근대 초기 수신교과서적 성격을 탈피하여 신문학을 대상으로 문종과 제재를 배열하고, 이를 단원으로 구성하였으며,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삽화와 각주를 덧붙인 최초의 문학교과서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정전(正典)이 형성되어간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당시의 독본들에 흔히 수록되었던 번역 작품이나 번안 작품이 없다. 본받을 만한 외국 인물이나 그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일화도 실려 있지 않다. 글의 작자는 모두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1910년대와 1920년대에 중요한 활동을 벌였던 문인이었다. 일제의 교육정책에 따라 조선어 시수가 점차 축소되고, 조선어를 통해 교수할 수 없는 교육환경 속에서 우리의 말과 글만으로 구성된 『문예독본』은 문학을 통해 국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