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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고 나서
책을 펴내며 제1장 어린시절 가네코 후미코의 일본 체험 제2장 가네코 후미코의 조선 체험 제3장 자립의 모색 제4장 기성 가치관과 결별하다 제5장 박열과 만나다 제6장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공동투쟁 제7장 박열의 나카쓰가와조선인학살사건 조사에서 제3차 폭탄입수계획까지 제8장 파국의 서곡 제9장 박열?가네코 후미코와 불령사 동인의 체포 및 기소 제10장 천황제와 대결하다 제11장 죽음을 준비하다 제12장 대심원 법정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제13장 사형판결과 ‘은사(恩赦)’ 제14장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 제15장 일본근대사상사와 가네코 후미코의 위치 부 록 가네코 후미코, 박열 서간집 저자 후기 가네코 후미코, 박열의 연보 박열, 가네코 후미코 사건재판 연보 미주 가네코 후미코, 박열의 관계 문헌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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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제와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일본의 천황제는 일본 근대국가를 형성하고 지탱한 근간이며, 일본은 이를 구심점으로 작동해 왔다. 천황제를 바탕으로 내셔널리즘을 강화했으며 곧바로 제국주의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천황제에 대한 저항은 일본근대 전체에 대한 비판과 대결을 함축하는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사상의 신념으로 삼았던 아나키즘은 일본국가주의에 대한 정면 반대, 일본 천황제에 대한 전면 폐지론이었다.
일본인 무정부주의자로서 천황암살사건으로는, 즉 대역사건의 주인공으로는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오스기 사카에(大杉榮) 부부가 있었는데 이들은 간토대진재 때 국수주의 군벌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이에 비해 박열의 천황폭살사건은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동지로서 그와 뜻을 같이 했으나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라 불리길 원하는 그녀가 박열과 달랐던 것은 천황제 국가에 대한 투쟁이 무엇보다 그녀의 '자율'을 건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았던 여성으로서 생활 속에서 고투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사상형성사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근대 일본제국을 지탱한 천황제와 대결하면서 자기 사상을 펼쳐보인 가네코 후미코의 감동적인 삶과 사상을 만날 수 있다.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사상 가네코 후미코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무적자(無籍者)라 하여 학교에도 못 가며 가난과 설움으로 얼룩진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피식민자로 조선에 살고 있던 고모가 양녀로 입양하려고 조선으로 데려가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친가가 가부장적 서열의식이 강해서 가네코는 무적자-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 속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때 그녀는 식민지에 사는 피식민자의 우월과 권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학대받는 식민지 조선인의 고통을 자신의 처지처럼 이해하게 된다. 훗날 가네코는 '대일본제국의 국민'이었음에도 여기에 편입되지 못한 자신의 삶을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이를 '축복'으로 여긴다. 양녀 입양도 무산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에 의해 외삼촌과 약혼을 하는데 곧 행실을 문제삼은 외삼촌에게 파혼당한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고통스런 자기 삶에 대한 자각은 고학을 해서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여 혼자서 도쿄에 온다. 도쿄에서 그녀는 신문을 팔거나 오뎅집 일을 하며 밤에는 영어학원에 다니는 등 주경야독한다. 그리고 조선인 사회주의자, 민족운동가들과 사귀어, '비국민'이자 가족제도의 희생물로서 내팽개쳐졌던 자신을 발견하여 자기 사상을 형성하게 된다. 이 무렵 <개새끼>라는 시를 우연히 읽고 그 시를 쓴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에게 반한 가네코는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어린시절 7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가네코는 자신이 가족제도의 희생물로서 고통받으며 노예처럼 살아왔다는 것과 식민지 조선이 제국주의 일본의 희생물로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등가로 파악하며 이러한 일본국가 시스템의 정점에 천황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한편 박열은 일본제국주의 타도에 대한 신념이 뿌리깊어서 일본에 건너온 이후에도 '혈권단' '의권단' 등 친일파 조선인을 응징하고 조선인을 모욕하는 일본인을 제재하는 모임을 조직하거나 가입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테러계획을 세워서 폭탄입수를 꾀했다. 1922년에는 흑도회를 조직하여 기관지《흑도》를 가네코와 같이 만들기도 했다. 흑도회는 막스 슈티르너 식의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를 주장하였다.《흑도》이후 두 사람은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불령선인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바로잡고자《뻔뻔스런 조선인》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발행한다. 이후 1923년 3월 무렵에는 '불령사'를 새로 만든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진재가 발생하여 흉흉해진 민심을 다스리려고 일본 관헌은 조선인이 우물에 약을 푸는 등 일본인을 죽인다는 유언비언을 퍼뜨린다. 이에 자경단이 만들어져 공공연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대대적으로 조선인이 학살된다. 이때 보호검속으로 잡혀들어간 박열·가네코의 '불령사' 동지들이 '천황폭살 계획'이 있었다고 발설하여, 조선인대량학살에 대한 구실을 마련하려던 일제는 박열·가네코 후미코에게 대역죄(천황이나 황태자를 죽이려는 죄)를 적용하여 체포한다. 이어지는 신문과 공판. 이들은 성사 여부도 불확실한 '계획' 단계의 천황폭살사건으로 재판정에 서서 죄인 취급을 받지만 이 재판정을 '투쟁의 장'으로 삼기로 하고 자기 사상을 피력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작한 국가권력에 항의하고 죽기로 결심한다. 사형을 언도했지만 주변국의 외교적 비난을 염려한 일본제국은 천황의 은혜로움도 널리 알릴 겸 은사(恩赦)를 내려 두 사람을 무기로 감형하는데, 석 달 후 가네코는 옥중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수수께끼로 남은 그녀의 죽음을 저자는 실증적 자료에 근거해 치밀하게 파헤쳐간다. 그녀가 목을 매죽었던 형무소는 아직도 당시의 기록들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은폐된 역사, 잊혀진 역사 속에서 가네코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당시의 여러 정황을 추적해 전향을 강요한 흔적들을 찾아낸다. 사형이 내려졌을 때를 대비해 박열의 가족이 시신을 처리해 주도록, 박열과 옥중 결혼식을 올렸던 가네코는 무기로 감형되었으나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자 박열의 형 박정식이 도쿄로 와서 시신을 수습하고 박열의 고향인 문경의 팔령에 묻었다. 천황도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일본의 근대 프로젝트에 동원된 천황의 실체를 폭로하려 했던 두 사람! 박열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투철한 전사로서 싸웠다. 그리고 이에 동조한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로서 박열에 대한 사랑을 넘어 천황의 허위성을 법정에서 펼친 근대일본의 주목할 만한 사상가인 것이다. 지금도 천황을 떠받들고 천황 중심으로 작동되고 있으며 전쟁에 대한 사죄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에게 가네코와 그녀의 투쟁은 기억해야 할 인물이며, 사건일 것이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일본인에게 "그녀의 행동은 미래를 향한 일본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461쪽)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