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고양이 따라 미술사 산책
1 야생 고양이, 인간 세계로 들어오다 | 고대 이집트 2 좋은 고양이, 나쁜 고양이 | 중세 3 고양이는 고양이다 | 르네상스 4 고양이, 모두의 동물이 되다 | 바로크 5 낭만 고양이, 연애를 탐하다 | 로코코와 낭만주의 6 고양이, 유럽을 거닐다 | 인상주의와 모던 7 고양이는 가족이다 | 현대 에필로그 | 우리 함께 살아요 |
이동섭의 다른 상품
|
고양이를 향한 애정이 대단했던 탓에 고양이 미라와 관이 다른 동물들보다 특히 많이 발견된다. 여기에는 주술적인 목적도 깔려 있었다. 고양이들이 생전에 인간의 곡식을 지켜주었듯이, 후에도 쥐나 해로운 것들에게서 인간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양이 문양은 여왕의 보석이나 왕의 장식품을 비롯하여 각종 화장용품, 금목걸이, 거울 손잡이, 구슬 팔찌 등에 부적처럼 새겨졌다.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 살다가 함께 묻혔다. 생사를 함께하는 영원한 동반자였다. _고대 이집트(p.25)
중세 예술가의 사명은 단순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수많은 문맹자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기독교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각성시키는 것이었다. 고양이와 쥐는 선악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소재였다. 뚱뚱한 쥐는 검은색으로 칠해서 한층 더 부정적으로 보이게 했고, 날씬한 고양이는 금색으로 채색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 고양이의 영광은 쥐에게 크게 기대었다. _중세(p.38) 르네상스의 핵심적 특징은 신앙과 지식의 분리에 있다. 신앙에 갇혀 있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로 자리를 잡아갔다. 고양이도 사실 그대로 바라보니 더 이상 신도 악마도 아니었다. 르네상스인들은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치밀하게 관찰하여 책과 백과사전 등에 특징들을 기록했다. 또한 화가·예술가·지식인 들이 적극적으로 고양이의 개성을 찾고 표현하면서 고양이의 새로운 이미지가 널리 퍼졌다. 선원들이 고양이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고양이의 사회적 위신은 예술가들이 높여줬다. _르네상스(pp.60~61)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고양이는 주로 부엌, 벽난로 근처, 하녀의 방, 생선가게 등에 자리 잡았다. 이때 고양이는 여성들의 친구나 동반자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반대로 냄새나고 자세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멀리해야 할 금기의 동물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애완동물은 고양이가 최초이고 지금까지도 거의 유일하다. _바로크(p.147) 바로크 이후로 행복한 가정의 상징이었던 고양이는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처럼, 인간에게 음악과 고양이는 참 좋은 피난처이자 세상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는 동반자다. _로코코와 낭만주의(p.198) 근대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단절됨을 뜻한다. 인간은 자연을 관람의 대상으로 치부하면서 자연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됐다. 동물이 대자연과 인간 사이에 연결점 역할을 했다. 나무를 없애고 도로를 낸 도시에서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집 안의 화초로 달래듯, 산업사회 이후 고양이는 인간과 감정을 교환하고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됐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현대인들은 더욱 고립되었고, 삶은 삭막해졌다. 생활의 편리함을 얻고 본능적인 축복을 잃었다. 마음을 의탁하는 친구로서 고양이는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동물이 되었다. _인상주의(p.259) 고양이의 매력에 전염된 많은 현대인들은 반려동물에 마음을 의탁한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일상에 만족하는 해피라이프, 느린 삶을 즐기는 슬로라이프의 대명사다. 수천 년 전부터 고양이는 자신이 집중해야 할 대상과 무관심한 상황에 대한 분리를 확실히 할 줄 알았다. 인간이 고양이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행복은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서 줄이는 것에서 비롯된다.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지 말 것을 고양이는 인간에게 전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
|
앗, 저 그림에 고양이가 있었네!
고대 이집트 벽화부터 앤디 워홀까지, 명화 속 고양이를 따라 떠나는 미술 여행 고양이에 관심을 가진 후부터, 갑자기 길고양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관심이 없을 때는 있는지도 몰랐던 존재가 집밖에만 나서면 눈에 밟히곤 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품게 되면서 세상까지 달리 보이는 이치다. 그림도 매한가지다. 고양이의 존재가 그림을 보는 법까지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지은이가 바로 그랬다. 우연히 친구의 고양이를 잠시 돌봐주게 된 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지은이는 고양이를 키워드로 하여 미술의 역사를 다시 훑어보게 된다.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니, 세상만사가 고양이와 관련 있어 보이고” 여러 번 보았던 그림에서 처음으로 고양이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색다른 미술사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 역사에서 고양이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파악하는 한편으로, 미술사의 흐름도 짚어본다. 또 무심코 지나쳤던 그림 속에 고양이가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그림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또 하나 얻게 된다. 신에서 악마의 하수인까지, 고양이의 상반된 역할 고양이를 따라가는 그림 여행의 출발지는 고대 이집트다. 고대 이집트가 서양미술사의 주요 시작점이자 고양이가 인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이니 만큼 당연한 선택이다. 약 70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했다는 고양이는 기원전 2000년경의 묘비에 상형문자 형태로 등장하고 이후 여러 벽화와 조각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이하게도 고양이를 여신 바스테트,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며 추앙했다. 아마도 농경사회에서 식량을 축내는 쥐를 잡는 고양이의 효용 가치가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숭배 문화는 고양이 미라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히 많이 발견되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 남은 고양이들의 모습은 의외로 무척 사실적이다. 동작은 생동감 있고, 생김새도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이후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고양이 이미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런데 중세에 이르러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중세에 세상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기독교의 필터를 통과한 고양이는 숭앙받던 신의 지위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 동물로 그 지위가 급전직하했다. 고양이는 여전히 페스트 등 각종 질병을 옮기고 식량을 몰래 축내는 쥐를 없애는 유익한 동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적으로서 피고석에 끌려오거나 산 채로 불태워지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을 겪어야 했다. 중세에 그림 속에서 고양이는 채색사본에서 악을 상징하는 쥐를 잡아 공손하게 신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성경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에 등장해 현실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본격화되면서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게 된다. 신앙에 갇혀 있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로 자리를 잡아갔고, 이런 시각의 변화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어 놓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그리고, 고양이는 고양이로 대한” 것이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여러 장의 고양이 스케치는 이런 태도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 형상만 띠었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좀체 고양이 같지 않던 중세와 달리, 철저히 관찰에 근거해 그려진 르네상스의 고양이는 마치 현실의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고양이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형성된 부정적인 이미지는 오래 남았다. 그리하여 마녀와 비의에 흠뻑 빠져 있던 독일의 화가 한스 발둥 그린은 악마의 동물로 고양이를 자주 등장시키기도 했다. 유럽에서 17세기 무렵부터 고양이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림도 늘었다. 단순히 많이 키워졌기 때문에 많이 그려진 것이 아니라, 교황에게서 절대왕정으로 권력 중심이 이동하면서 종교화의 위세가 줄어든 반면 일상을 담은 인물화, 풍경화, 풍속화가 더 많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이런 그림들에서 대개는 조연으로, 때로는 주연으로 등장하며 커진 존재감을 과시한다. 특히 풍속화에서 고양이는 그림에 현실감은 물론 재미를 더하는 감초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하녀가 잠든 부엌에서 먹을 것을 훔치거나 시끌벅적한 거실에서 그 틈을 타 새장 속 새를 노리거나 하는 식이다. 이전 시기 고양이 그림과의 큰 차이는 인간의 친구로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점이다. 하녀의 피곤한 일상을 위로하듯 다리에 머리를 부딪쳐 오는 고양이나 가난한 거지의 무릎 위에 가만히 앉은 새끼고양이, 아이들의 놀이 친구로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다정하다. 고양이, 세상을 지배하다 바로크를 지나면 다음은 탐미의 시대, 로코코다. 이때 고양이는 모든 계층과 세대에서 길러지는 가정용 동물로 자리 잡고, 이에 따라 더욱 높아진 위상을 드러내는 그림들이 등장한다.18세기 중반 조반니 레데르가 그린 한 점의 그림은 그 독특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고양이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아르멜리노’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초상화로 그려져 그 이름과 모습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고양이는 이처럼 그림의 유일무이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로코코 시대에는 유난히 여성과 함께 그려진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귀족의 시대이자 유희의 시대였으니, 그림 배경도 이에 걸맞게 식품 저장소를 떠나 살롱의 소파나 은밀한 내실의 화장대 앞으로 변한 것이리라. 19세기에는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고양이교’ 신자들이 대폭 늘었다. 테오필 고티에, 기욤 아폴리네르, 장 콕토 같은 문필가들이 고양이의 매력에 대해 썼고, 쿠르베, 마네,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 쉬잔 발라동 같은 화가들이 고양이를 즐겨 그렸다. 이 시기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목판화 우키요에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우키요에에 흔히 묘사되곤 하던 일상 풍경 속 고양이는 유럽 화가들에게 이 이국적인 풍경을 좀 더 친밀하게 느끼게 했다. 우키요에에 많은 영향을 받은 포스터 아티스트 테오필 스텐렌은 열렬한 고양이 애호가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오늘날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현대인의 삶은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고양이는 특히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전달하는 존재로서 그림 속에 등장한다. 외로움을 온 몸으로 내뿜는 소녀 곁을 지키는 키르히너의 고양이부터, 기계적인 원통형으로 그려진 여성의 무릎 위를 지키고 있는 레제의 고양이까지 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고양이는 사람의 친구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외롭고 불안정한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신경질적으로 한 올 한 올 서 있는 머리털을 한 화가의 부인 키티의 초상화에 루치안 프로이트는 그녀의 손에 목을 잡힌 새끼 고양이를 함께 등장시킨다. 커다란 눈이 서로 닮아, 왠지 그림의 주인공 키티가 제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