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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추천글 | 작가와의 대화 | 프롤로그 | 책, 못 읽는 남자 | 에필로그 | 감사의 말 | 더 읽을거리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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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일상생활로 되돌아오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어떻게 버텨냈으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읽기와 쓰기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어떻게 길을 되돌아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성공담이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으니까. (…) 하지만 이 글을 쓴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게는 그 무엇보다 나를 지금 여기까지 데려다준 그 모든 계단들을 되돌아보며 기억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 길에서 내가 분투했으며 그 험한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나를 도운 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p.29
내가 겪은 혼란을 엿보자면 이렇다. 마운트시나이의 입원실에는 샤워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이 있었다. 나중에 샤워 시설이 없는 재활원에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는 샤워 시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내 기억은 뒤섞어놓은 한 벌의 카드처럼 순서가 어긋났다. 이런 착란 증상을 겪다보면 등장인물의 입 모양이 대사와 맞지 않는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혼란도 있었다. 사물을 혼동한 것이다. 예컨대 더 이상 방문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가족들의 이름조차도 생각하려고만 하면 숭어처럼 내 머릿속에서 미끄러져버렸다. 가끔은 머릿속 주소록에 적힌 모든 고유명사들이 내 혀끝에서 웅얼대며 맴도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낚아챌 수 없었다.--- p.75 실독증은 실어증의 사악한 쌍둥이다. 언어 장애인 실어증은 내 증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듯 대화는 장황하게 할 수 있다. 내 증상은 전적으로 시각적인 문제였다. 훨씬 뒤에야 한 사실이지만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내 머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구조적으로 복잡한 문제였다. 게다가 지금 그런 설명은 너무 성급하게 비약하는 일인 것 같다. 실독증이야말로 내 고통의 핵심이었다. ‘실서증 없는’이란 말은 내 비위를 달래려고 만들어진 사은품과도 같았다. 마치 수술대에 올랐는데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지만 신발과 양말은 간직해도 좋다’고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p.78 신문이나 병문안 카드를 읽으려 애쓰지 않을 때라면 실독증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늘도 푸르게 보였고 태양도 병원 창문에서 빛났으며 갑자기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실독증은 오직 내가 책에 고개를 처박을 때만 존재했다. 내게 실독증을 데려와 ‘그래, 문제가 있지’라고 상기시키는 주범은 인쇄물이었다. (…) 뇌에 들이닥친 돌풍도 나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나는 열혈 독서광이다. 심장을 멈출 수는 있을지언정 독서를 멈출 수는 없다. 독서는 내게 뼈이자 골수, 림프액이자 피다.--- pp.80~81 하늘에 맹새컨대 나는 예전부터 건망증이 있었다. 여기에 기억상실까지 겹친 것이다. 이제부터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는 가장 가깝고도 정겨운 사람들의 이름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 나는 예전부터 호칭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용케도 그 사실을 들키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건망증을 실독증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 이름을 잊어버리거나 다른 사람 소개를 엉망으로 하더라도 한결 느긋해졌다. 병에 걸린 덕분에 고등학교 때부터 앓던 이가 빠진 셈이다!--- pp.85~86 나는 만사를 거의 제쳐두고 일기부터 썼다. 읽을 수 없다 해도 썼다. 이전에 무얼 썼는지가 아무리 흐릿하게 기억난다 해도 그날그날 일들을 글로 자세히 옮겼다. 때로는 글씨도 이상했다. 같은 손으로 적었다고 볼 만한 페이지가 도무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매일같이 글쓰기 연습을 한 것이다.--- p.126 지난 몇 년간 읽기 능력이 느리지만 꾸준히 향상되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덕이기도 하지만 소설가에서 독자로 ‘은퇴’했다는 나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지 않은 덕이 틀림없다. (…) 여전히 책 쓰기를 계속할 가능성도 곰곰이 따져보고 있다. (…) 내 오랜 탐정 친구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가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다시 한 번쯤 기회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pp.146~147 사는 게 그렇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다. 때로는 힘들고 혼란스럽지만 그 다음 날에 일이 쉽게 풀리면 보상이 된다. 열심히 일하면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울 때도 쉬울 때도 모두 같은 것의 부분일 뿐이다. T. S. 엘리엇이 항상 지적하듯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다 같은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혼란스러운 나머지 원고를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싶을 때조차도 나는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며 나의 작품이 나와 서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작품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 p.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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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느 아침처럼 신문을 가지러 갔다가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게 된 작가가 있다. “글자들에 초점을 맞추면 어느 순간 키릴 문자처럼 보였다가 곧 한글처럼 보였다.” 잘나가던 추리소설 작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모든 게 다시금 장밋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났을 때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는 글을 읽지 못하게 된 것이다.”_본문 63쪽 뇌졸중이었다. 작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뇌졸중을 앓은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좌측 후두엽이 손상되어 글을 쓸 줄은 알았으나 읽을 수는 없는 ‘실서증 없는 실독증(알렉시아 사이니 아그라피아alexia sine agraphia)’이 나타났다. 신경언어장애인 실독증은 일반적으로 실어증과 동반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독증을 뜻하는 ‘알렉시아alexia’는 원래 ‘단어 맹증word-blindness’을 뜻하며 신경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19세기 후반부터 줄곧 관심을 끌어온 병이다. 읽기와 쓰기는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하므로 누군가가 글을 쓸 수는 있으나 그 자신이 방금 쓴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은 이상하고 직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란 순전히 시각적인 문제다. 뇌졸중의 여파로 좌뇌에 위치한 시각 피질의 특정 영역이 같은 쪽의 언어 영역과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이로써 지은이 하워드 엥겔은 “글자를 완벽하게 잘 ‘볼’ 수는 있으나 해석하지는 못하게 되었다.”_올리버 색스의 추천글에서 이 낯설고 희귀한 질환이 베스트셀러 추리작가의 인생에 치명타를 날린 것이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20년 넘게 글을 써서 먹고살던 작가에게 이보다 더한 악몽은 없다. 그는 치명타를 맞고 정신을 차릴 즈음 편집자에게 뭐라고 말할지 궁리했다. “난 여전히 글을 쓸 수 있어. 하지만 읽을 수는 없다네. 책을 쓸 수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퇴고는 못한다네.” _본문 72쪽 이어지는 작가의 말은 더 절박하다. “앞으로 나와 제이콥은 어떻게 먹고산단 말인가?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이라도 해야 하나? 《천로역정》 첫머리에 등장하는 가련한 크리스천처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렸다. 문학판에서 유일한 문맹이 된 것 같았다. 1980년부터 공들여 써오던 나의 작품들에 기자들이 즐겨 쓰는 기호가 찍힌 것 같았다. -30- 마지막 맨 아래에 찍힌 종지부. 여기까지. 더 이상 없음.”_같은 쪽 생각해보자. 우리는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하는가. 주저앉아 울기라도 하는가, 절망에 빠져 몸부림치며 세상을 향해 절규라도 하는가. 이도저도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식음을 전폐하는가. ‘더 이상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작가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이 기이한 상황에서 하워드 엥겔이 보인 반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했다. 그는 읽을 수 없는 신문을 눈앞에 두고 ‘누가 장난친 것이 아닌 이상, 난 뇌졸중을 일으켰던 거야’라고 차분히 자신을 진단한다. 하워드 엥겔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실서증에 더해 기억까지 잃어버린 작가는 ‘한동안은 당혹감에 몸부림쳐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자신의 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끊임없이 글자를 읽어내려 애쓴다. 또 설상가상으로 제 병실도 찾아가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마저 기억해내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이를 극복해내려 나름의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삶의 풍파를 겪어온 일흔 살의 작가는 고된 여정에서도 위트와 절제를 잃지 않는다. 절망에 빠졌을 때 펑펑 소리 내어 우는 사람보다 헛헛한 웃음 한 번 짓고는 입을 앙 다물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자신만의 절망에 싸인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거대한 절망에 빠진 작가 하워드 엥겔이 그 절망 속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가 말했듯 이 책은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읽지 못하게 된 작가의 투병기가 아니다.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으로 삶의 전부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되찾아 오롯한 주인이 되기 위한 분투기다. 그의 궤적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삶을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