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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플레이아데스성단을 발견한 원시 시대의 지성인들 2. 프톨레마이오스를 위한 변명 3. 암흑의 시대에 별처럼 빛났던 중세인들 4. 코페르니쿠스와 무명의 천재들 5. 천문학사 최초의 대중 저술가 페터 아피안 6. 달력을 개혁한 그레고리우스 교황 7. 태양 중심 우주관을 진보시킨 케플러와 갈릴레이 8. 과학사에서 사라진 여성들, 그리고 뉴턴 물리학의 승리 9. 천문학의 지평을 넓힌 아마추어 허셜과 베셀 10. 진화하는 우주를 그린 칸트와 쵤르너 11.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 |
Jurgen Hamel
杜幸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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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반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일까? 플레이아데스성단이 보인다. 플레이아데스성단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오른쪽에는 초승달이 보이고 왼편에는 태양이 표현돼 있다. 양쪽 가장자리에는 궁형이 배치돼 있는데, 이것은 태양이 계절의 흐름 속에서 떠올랐다가 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겨울이 시작될 때와 여름이 시작될 때 태양이 지평선에서 떠올랐다가 지는 현상을 나타낸 것인데, 위치는 북위 83도에 해당한다. 밑에 있는 작은 금색 궁형은 성스러운 태양선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1장 「플레이아데스성단을 발견한 원시 시대의 지성인들」 중세 사람들이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무시해 해 온 것이 매우 이상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보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게 알려져 있던 많은 지식들이 이 시대에 와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것만이 판단의 기준이라면 중세가 퇴보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카롤링거 왕조가 프랑크 왕국을 다스리던 8세기와 12세기에 학문의 부흥이 일어났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처음에는 고대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지만 결국 중세 사람들은 고대의 사상가들을 뛰어넘게 됐다. -3장 「암흑의 시대에 별처럼 빛났던 중세인들」 코페르니쿠스는 직접 수행한 60여 가지의 관측들 중에서 27가지만 자신의 책 안에 기록했다. 그리고 1543년 발표된 《천체들의 회전 운동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에서 그는 태양이 중심이 되는 우주 체계를 규명했다. 그로써 그는 과학 혁명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사고에 지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이것은 긴 인류의 문화사 속에서 어떤 학자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천문학 분야를 넘어서는 변화들이었으며 철학, 신학, 그리고 세계관의 영역으로까지 파고들어가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도록 자극했다. 코페르니쿠스는 무슨 혁명을 일으키거나 무엇을 전복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시종일관 고대의 기본 원리들을 재고함으로써 ‘혼란’에 빠진 천문학에 질서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4장 「코페르니쿠스와 무명의 천재들」 갈릴레이는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 그 자신은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도전적으로 세상에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지구의 자전에 의해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을 해명하려던 그의 노력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업무적으로는 유능하고 냉정했다. 그는 목성의 위성들과 달의 변화 형태, 그리고 은하수에 있는 별들을 관측한 후 1610년 《별들의 사자Sidereus Nuncius》를 발표했다. 이 저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대중의 인기를 얻었으며 극찬과 동시에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7장 「태양 중심 우주관을 진보시킨 케플러와 갈릴레이」 인간의 학문들 중 가장 고차원적인 이 학문(천문학)을 연구하려는 나의 시도에 대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여성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중요한 일은 무시하고 불필요한 일에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괜한 짓이라면서 비난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의 학문 연구를 잘못된 명예욕에서 나온 행동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을 해소하고 비난을 물리치고자 한다. 마리아 쿠니티아가 한 말은 그녀의 학문적인 성과와는 관계없이 여성 해방의 역사에서 중요한 기록문이 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여성임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적개심 어린 주장들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8장 「과학사에서 사라진 여성들, 그리고 뉴턴 물리학의 승리」 베셀의 발견 중은 중요한 사안은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의 미세 운동을 발견한 일이다. 베셀은 밝은 별들인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의 고유 운동이 특이하게 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아주 가는 선 속에서 파형 경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셀은 그것을 해명하려고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다 이런 효과가 어떤 질량의 영향 때문에 나타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이 각각 쌍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베셀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천체도 중력 작용을 통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천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9장 「천문학의 지평을 넓힌 아마추어 허셜과 베셀」 1920년대 이후 천문학자들의 시선은 수십 억 광년이나 떨어진 곳으로 나아갔으며 결국 우주의 맨 가장자리, 160억 광년이나 떨어진 은하들에서 나오는 빛을 포착해 냈다. 이로써 우주가 확장돼 가고 있음이 증명됐고 인간은 우주 속에서 차지해 온 위치를 상실해 갔다. 처음에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가 수십억 개의 은하들이 있는 우주 속으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 우주에서 인류란 존재는 거의 의미가 없다. 우리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다는 것, 더 깊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에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10장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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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마추어, 철학자…… 숨은 주인공들이 만들어 내는 색다른 천문학의 모자이크!”
국내 최초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천문학의 역사 세계사를 뒤흔든 11가지 천문학 이야기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과거의 천문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코페르니쿠스 : 시대를 초월해서 여러 선배님과 후배님들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동안 천문학이 거쳐 온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프톨레마이오스님께서 천문학의 기원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프톨레마이오스 : 인류는 이미 만 년 전, 아니 그보다 오래 전부터 하늘을 관찰해 왔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신성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숭배했지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네브라의 천문 원반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천문 원반에는 해와 달, 그리고 플레이아데스성단이 표현돼 있지요. 이미 선사시대부터 천문 관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흔히 지동설 이전의 천문학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제가 주장한 천동설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천동설이 제기될 만한 충분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해와 달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말이었지요. 고대와 중세에도 많은 학자들이 천체들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다양한 학설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님의 지동설 역시 수십 세기 이전에 그리스의 아리타르고스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고 저 역시도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큰 이상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페터 아피안 : 동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를 원반 형태로 생각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중세 문헌들을 뒤져 보면 대부분 지구가 공처럼 둥근 형태로 묘사돼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도 지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저는 천문학사상 최초의 대중 저술가로서 그때까지 라틴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의 학문이었던 천문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독일어를 사용해 천문학 저서를 썼습니다. 보통 사람들 중에서도 천문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에는 천문학이 점성술과 관련돼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스타의 뒤에 가려진 여성과 아마추어,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코페르니쿠스 : 저의 경우에는 지동설을 제기하면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과 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는 생각이 너무 확고했기 때문에 저의 생각은 단지 가설로서만 인정됐지요. 갈릴레이 : 맞습니다. 저 역시 지동설을 지지했지만 교회 측의 압력에 의해 주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학문적인 한계도 있었습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것은 훗날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후에야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동설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교회 측에서 저와 케플러, 그리고 코페르니쿠스님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사람들에 의해 계속 읽혀졌고 나중에 가서는 결국 시대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행성들이 타원형의 궤도를 돈다는 것을 밝힌 케플러의 노력이 있었고, 정밀한 관측 기기로 천문학적 데이터를 제시한 크리스토프 로트만이나 티코 브라헤처럼 무명의 사람들의 땀방울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마리아 쿠니티아 : 천문학의 역사는 몇몇 대중 스타들의 역사로만 각인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티코 브라헤의 연구를 도왔던 여동생 소피 브라헤 같은 경우는 독자적인 노력을 통해 혜성을 발견했지요. 저는 천문학 사상 저작물을 낸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입니다. 불멸의 저서로 평가받고 있는 케플러의 '루돌프 표'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한 저서였지요. 그리고 맨 앞에다 독일어로 서문을 덧붙였습니다. 당시 라틴어에서 소외되어 있던 여성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허셜 : 여성들뿐만 아니라 저나 프리드리히 빌헬름 베셀 같은 아마추어 학자들의 노력도 재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평범한 음악가에 불과했지만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는 관측 기기들보다 더 뛰어난 망원경을 만들게 되었고 결국 천왕성을 발견했습니다. 태고 적부터 알려진 적이 없는 태양계의 새로운 별을 발견해 낸 것입니다. 또한 우주가 진화하고 있다는 이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베셀의 업적도 주목할 만한 하지요. 그는 아마추어였지만 나중에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의 책임자가 되었고 연주시차 측정을 통해 우주의 넓이를 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가 임종을 맞았을 때 천문학이 맞게 된 상실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지요. 우주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임마누엘 칸트 : 천문학은 과학자들만이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비판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이만 원래 관심을 두었던 분야는 자연과학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최초로 우주 진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미세한 물질과 가스 구름들이 중력 때문에 한 곳으로 모여 별을 이루고 이러한 별들이 서로를 끌어당김으로써 행성계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었지요. 이러한 이론은 과학적인 연구가 아니라 우주가 철학적인 숙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론이 나온 지 100년 후에 쵤르너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별로부터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사실로 입증이 되었던 것이지요. 쵤르너는 말년에 신비주의로 기울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과학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도 정확히 평가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스티븐 호킹 : 우주 진화 이론은 저에게도 큰 테마였습니다. 저는 우주의 탄생 시점인 빅뱅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빅뱅이 일어난 순간에 대해 우리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능하지요. 입자 가속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연출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빅뱅 이전에 대해서는 지금도 추측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넓고 넓은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님께서 지동설을 주장한 이래 일어난 인간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 변화이지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인간 역시 우주에서 제일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를 상대화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합니다. 코페르니쿠스 : 결국 천문학의 역사는 인간 존재의 역사와 불가분에 관계가 있겠군요. 광활한 우주를 탐색함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천재들의 역사'는 바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나라는 존재를 즐겁게 성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여러분들을 모시고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인류에게 남긴 업적과 공헌은 은하수의 별들처럼 영원히 빛을 발할 것입니다. 안녕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