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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마키아벨리:정치 그리고 폭력의 경제학
1. 정치 이론의 자율성 2. 정치 이론가의 헌신 3. 정치의 본성과 새로운 학문의 범주 4. 정치적 공간과 정치적 행위 5. 폭력의 경제학 6. 윤리:정치적 윤리와 사적 윤리 7. 대중의 발견 8. 정치와 영혼 제8장 홉스:규칙의 체계로서 정치사회 1. 정치적 창의성의 부활 2. 정치철학과 과학혁명 3. 정치철학의 약속 4. 정치적 언어:참여자의 범위 문제 5. 정치적 엔트로피:자연 상태 6. 주권적 규정자 7. 공동체(성)를 결여한 권력 8. 이익과 대표 9. 힘의 영역으로서의 정치 제9장 자유주의 그리고 정치철학의 쇠락 1.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2. 자유주의 그리고 차분함의 철학 3. 경제 이론의 정치적 주장 4. 정치적 권위의 실추:사회의 발견 5. 사회와 정부:자발성 대 강제 6. 자유주의와 불안 7. 쾌락 원칙을 넘어서:고통의 문제 8. 자유주의와 도덕적 판단:양심에서 이익으로 9. 자유주의와 순응성:사회화된 양심 제10장 조직화의 시대 그리고 정치의 승화 1. 조직화의 시대 2. 담론의 전통을 확인하기 3. 조직과 공동체 4. 루소:공동체의 관념 5. 자유와 비인격적 의존 6. 생시몽:조직화의 관념 7. 조직 이론과 방법론:일정한 유사성 8. 조직, 방법 그리고 헌정주의 이론 9. 조직에 내재한 공동체적 가치 10. 경제적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 11. 조직 이론:합리론 대 유기체론 12. 정치적인 것에 대한 공격 13. 엘리트와 대중:조직화 시대의 행위 14.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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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마키아벨리:정치 그리고 폭력의 경제학
월린은 마키아벨리를 근대에 들어와 ‘정치사상의 자율성’을 선구적으로 확립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역설적인(?) 사실은 통상 우리는 유럽의 ‘종교개혁’(‘기독교 개혁’이 탈서구 중심적인 용어일 것이다)이 종국적으로 서구 문명의 세속화, 정치의 세속화를 초래한 주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바, 만약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종교나 도덕으로부터) 자율적인 정치사상의 전개가 ‘기독교 개혁’으로 인해 종교적·신학적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던 곳에서 일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할 법한데, 실상 미래 예시豫示적인 자율적인 정치사상의 전개는 장차 일어날 ‘기독교 개혁’의 격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면제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월린은 역사적으로는 마키아벨리보다 다소 후대 인물인 루터와 칼빈의 정치사상을 『정치와 비전』의 제5~6장에서 논하고,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제7장에서 논하고 있다. 월린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집필되기 거의 1세기 전에 생동력 있는 전통으로서 ‘현실주의’가 이탈리아 정치사상에서 이미 발전하고 있었으며, 종교적 논쟁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이 시기에 이론가들은 ‘질서’나 ‘권력’의 문제들을 매우 엄밀하게 정치적인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었다고 서술한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이런 잠재적인 가능성들을 포착했고, 이를 기반으로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자율적인) ‘순수한’ 정치 이론에 관한 최초의 위대한 실험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월린은 마키아벨리를 최초의 진정한 근대적인 정치사상가로 만든 그의 사상적 특징을, 중세적 사고방식과의 결별, 자연법과 같은 전통적인 규범의 거부, 거의 전적으로 권력의 문제만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의 모색, 나아가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정치 이론으로부터 배제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 등에서 구한다. 나아가 월린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적 야심가인 새로운 인간, 곧 ‘신생 군주’를 근대 정치를 사로잡게 될 특징적인 인물로 그려냈다고 해석한다. 그 새로운 인간은 끊임없는 야망의 시대의 산물이며 급격한 제도의 변화와 엘리트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무상한 부침의 소산으로서 정치가 지닌 변전무상變轉無常, 비영구성 및 끝없는 진행형의 속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흔히 ‘폭력과 기만’의 화신 또는 악의 교사로 알려져 왔는데, 제5절 “폭력의 경제학”에서 월린은 그런 해석이 잘못된 것 또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격동기가 아니라도 기득권과 기대, 특권과 권리, 야망과 희망 같은 이 모든 것이 희소한 재화에 대한 우선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정치적 갈등의 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자는 불가피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월린은 마키아벨리가 이런 정치적 상황의 절박성을 십분 이해하면서 강제력의 통제된 사용에 관한 학문(월린의 표현에 따르면, 폭력의 경제학)을 창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는 폭력의 사용 목적과 관련하여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창조와 정치적 파괴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내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폭력에 대한 통제는 새로운 학문이 특정한 상황에 적합한 정확한 폭력의 양을 처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할 것을 요구하는 바, 마키아벨리는 극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심정으로 폭력에 대한 적절한 통제에 부심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월린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정치적 윤리와 사적인 윤리를 구분하고자 했고, 인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권력 유지에 가장 긴요하다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근대의 도래와 함께 정치의 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될 ‘대중의 출현’을 예상했으며, 마지막으로 인간의 선한 내면bona interiora과 정치적 행위가 추구하는 선善 사이의 증대하는 소외를 예리하게 인식함으로써 서양정치사상사에서 “국가 통치술”statecraft과 “영혼 통치술”soul-craft 간에 형성되어 온 오래된 동맹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8장 홉스 : 규칙의 체계로서의 정치사회 월린은 홉스가 주권자에게 부여한 ‘절대 권력’이 통념적 해석과 달리 사실상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는 참신한 해석론을 전개한다. 월린은 이런 해석을 철학에 대한 홉스의 개념에 내재하는 고유한 한계로부터 도출한다. 홉스에게 철학적 지식은 언어적인 진리와 동일시되었으며, 또한 그것은 정의定義와 의미의 명료함을 통해 추구되는 것이었다. 그 정치적인 변형에서, 철학은 과학적 진보보다는 평화를 목표로 삼았으며, 평화는 사람들이 규칙들을 따르는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규칙이란, 행위에 대한 명료하고 권위적인 정의定義의 집합체로서, 수학자가 수학자로서 행한 모든 냈동이 수학에서 받아들인 그 용례에 의해 지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이 시민으로서 행하는 모든 활동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치철학의 연구 주제는 정치적 규칙들과 그것에 적합한 언어 및 개념 정의로 국한되었는바, 언어와 규칙의 중요성은, 자연 상태의 개념, 신의계약의 형식, 주권자와 신민의 지위, 법과 도덕의 위상 및 정치에서의 이성의 역할을 채색하면서, 홉스 정치철학에 각인되었다. 홉스 정치철학의 이런 특징은 결국 정치질서의 역할을 매우 협소한 차원으로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홉스의 자연 상태의 개념을 논하면서 월린은 대부분의 해석자들처럼 이 개념을 주권의 기원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연 상태의 개념이 정치적 지식의 문제에 대한 홉스의 접근법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곧 자연 상태는 단순히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할 수 없는 권력의 창조에 동의하게 하는 인간관계의 극단적인 무질서뿐만이 아니라, 의미의 무질서로 인해 혼란에 빠진 상태 역시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홉스의 자연 상태를 단순한 주권의 부재로서보다 주관성의 상태로서 묘사하는 것은, 통상적 해석처럼 주권의 해체가 사회적 붕괴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고 월린은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공통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들에 관한 불일치의 점진적인 증가가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홉스에게 있어서 자연 상태와 시민사회의 구별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그리고 그의 사상 속에 당대의 상황들이 얼마나 깊게 각인되어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점에서 홉스의 자연 상태는 영국 내전기에 장로교파의 근엄함에서부터 천년왕국파의 황홀경에 이르기까지 당시 존재하던 수많은 종파들과 수평파Levellers, 개간파開墾派, Diggers 등 정치 세력들이 모두 사적인 판단과 사적인 양심에 근거하여 종교적 사안은 물론 정치적 사안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던 상황을 상징한다. 월린에 따르면 사적인 판단에 대한 이 같은 공격은 홉스의 가장 독창적이지만 정치 이론에 대한 그 기여가 가장 적게 주목을 받아 온 인식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것은 정치 질서가 권력, 권위, 법 그리고 제도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식, 즉 정치 질서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언어적인 기호나 행동 그리고 몸짓 등으로 구성된 체계에 의존하고 있는 민감한 의사소통의 체계였다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정치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공통된 정치적 언어였다. 특히 홉스는 정치적 언어가 다른 영역의 언어와 달리 그 의미의 공통성이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예를 들어, 어떤 권리의 정확한 의미를 선언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지배적 권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지배적 권위에 의한 강제적 개념 정의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자연권을 주권자에게 양도하는 계약 행위는 단순히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 이상으로서 명료한 의미로 구성된 정치적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행위였다. 자연 상태에서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각자의 독특하고 진실된 추론”이 “최고 통치자의 이성”으로 대체되는 변화를 그 특징으로 했다. 따라서 사회계약에서 주권자에 대한 동의는 주권자가 내린 공적인 개념 정의를 받아들인다는 약속을 당연히 수반했다. 이처럼 주권자에게 절대적인 입법권을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은 ‘위대한 개념 규정자’a Great Definer, 공통된 의미를 주권적으로 분배하는 자, 곧 ‘공적 이성’을 확립했다. 그런데 월린은 규칙의 체계로서 정치사회를 개념화한 홉스의 정치철학이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가 규칙의 해석, 위반에 대한 판정, 심판의 최종성과 관련된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홉스의 주권자의 권력은 인위적인 그리고 언어적으로 결정된 기호와 정의定義의 체계라는 영역으로 제한되고 말았는데, 이는 정치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 근거한 것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결정이란 상충하고 있는 정당한 주장들을 취급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으며, 이런 어려움은 분배되어야 하는 재화의 희소성과 그 재화가 지닌 상대적인 가치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데 홉스의 주권자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무력하다는 것이다. 또한 월린은 홉스의 정치철학을 ‘공동체(성)’을 결여한 권력이라고 비판한다. 홉스에 의해 정치 질서는 그 강력한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낯선 존재로 남아서 인간의 ‘외부’에 작용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이 점에서 홉스적 인간은 서구 정치사상사에서 많은 사상가들이 결코 등한시한 적이 없는 ‘공동체(성)’을 결여하게 되었다. 즉, 홉스는 권력의 재료가 수동적으로 묵묵히 따르는 유순한 신민이 아니라, ‘활동적인’ 시민, 곧 공적인 관여에 대한 능력과 적극적인 지지를 통하여 통치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시민에서 발견된다는 인식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월린은 정치권력에 대한 홉스의 개념화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고 심지어 공허하기까지 한 것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홉스의 주권자에게 부여된 권력 개념이 시민들의 사적인 권력과 지지를 적극적으로 동원하기보다는 단순히 방해물의 제거를 요청할 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시민의 역할은 권력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단지 옆으로 비켜서서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점에서 홉스는 주권자의 효과적인 권력이 사적인 권력의 지지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과 함께, 월린은 자유주의의 출현과 함께 진행된 정치철학의 쇠락을 논하는 제9장에서 홉스의 정치철학이 기여한 바를 지적한다. 홉스에게 한 사회 내의 정치적인 것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바, 그것은 전체를 감독하며 다른 형태의 활동을 직접 통제하는 것을 그 특유한 직분으로 하는 권위, 자신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 기초하는 의무, 그리고 공적으로 중요한 행동을 다스리는 공통된 규칙의 체계를 말한다. 이 점에서 홉스는 정치철학의 기본적인 과제가 진정으로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규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월린은 주장한다. 제9장 자유주의 그리고 정치철학의 쇠락 월린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발전과 더불어, 특히 로크의 정치철학을 필두로 하여,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화가 상실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월린에 따르면 고대 이래로 “정치적인 것은 공적이고 전全 공동체에 공통되며, 일반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고, 사적인 영역과 명확하게 대조되며, 독특하고 자율적인 것으로 정립되어 왔다.” 그런데 로크 등 자유주의 사상의 대두와 함께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화는 “로크의 자연 상태에서처럼 ‘사회적인 것’의 영역이 사실상 자기 규제적인self-regulating 영역으로 개념화됨에 따라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적인 것의 정체성이 모호하게 되고 그 지위를 잠식당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은 “단지 잔여적인 중요성만을 지니게 되었고……정치 참여는 방어적인 활동으로 가치가 저하되었”으며, 정치적인 것은 “사회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는 대신에……단순히 ‘상부구조’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월린은 정치적인 것의 잠식과 사회적인 것의 부상이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교의, 곧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반동주의reaction, 무정부주의, 관리주의managerialism 등에 공통된 근본 주제였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론들에서 정치는 ‘강제’를, 사회는 ‘자유’를 표상하면서 사회가 정치적인 것을 대체했고, 그 결과 사회과학이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월린은 이런 사상사적 경로를 주로 로크, 고전 경제학자들, 프랑스 자유주의자들과 영국 공리주의자들의 저작에 대한 분석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먼저 자유주의 경제학자에 의해 제시된 자유로운 시장에 의해 규율되는 자율적인 사회에 대한 비전은 사회를 비정치적으로 개념화하게 했으며, 이에 따라 정치적 범주들의 쇠락과 사회적인 것의 상승이라는 현상이 발생했다.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관심의 결여 및 경제학이 인류에 대한 진정한 연구이며 경제적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이라는 확신이 널리 확산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점차 경제학이야말로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가장 유용한 지식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이 본연의 임무라고 자임했던) 사회의 공통 업무를 다루는 데 필수적인 지침도 제공해 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정치 이론의 쇠락은 가속화되었고, 정치철학은 다른 형태의 지식에 압도되게 되었다. 정치사상은 이렇다 할 목표 없는 막연한 활동이 되고 그 전통적인 역할이 유사한 분과 학문에 흡수되어 버리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월린은 자유주의에 대한 통념을 무너뜨리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독특한 해석론을 전개한다. 월린은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도전하여 자유주의가 승승장구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신조로서 인간의 이성이 지식과 행위를 위한 유일한 지침이자 권위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당당한 신념을 펼쳤으며, 좀 더 나은 진보를 향해서 끝없이 전진하는 낙관적인 역사관을 전개했고, 인간과 사회를 전체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신과 같은 능력을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부여했다는 자유주의에 대한 통념화된 해석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통념화된 해석과 달리 월린은 자유주의자 및 고전 경?학자의 저술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유주의가 이성에는 한계가 있으? 비합리적 요소가 인간과 사회의 저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월린은 먼저 18~19세기 서구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혼재되어 있던 민주적 급진주의의 전통과 자유주의의 전통을 구별하고, 이어서 자유주의가 차분함의 철학philosophy of sobriety이라는 점, 곧 두려움에서 태어나고, 환멸에 의해 숙성되며, 인간의 조건이란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성향을 지닌, 일종의 소심함을 내면화한 철학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월린은 자유주의의 부상에 따른 정치철학의 쇠락 과정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통념적 해석에 도전하는 독특한 해석을 로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이론가들의 저작에 대한 분석을 통해 치밀하게 밝혀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로크 이후 2세기 동안 전개된 정치사상은 세 가지 주제, 곧 정부와 물리적 강제의 동일시,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사회의 등장 및 비인격적인 원천에서 비롯하는 강제의 자발적인 수용에 대한 하나의 긴 주석이었다고 서술한다. 제10장 조직화의 시대 그리고 정치의 승화 월린은 수정자본주의와 미국 경제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960년의 시점에서 당시 서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정치적인 관심의 쇠퇴를 지적하면서 그 주된 원인을 조직화 그리고 정치의 ‘승화’sublimation라는 관념을 통해 포착하고자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승화’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적 용어로서 ‘성적인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비성적(非性的)인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한 열렬한 짝사랑을 고된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은 ‘승화’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독특하고 자율적인 개념의 승화는 현대 정치 이론이 전통적인 정치 구조의 외부에서, 곧 이전에 사적이거나 비정치적이라고 여겨졌던 사회적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견하고, 그런 영역에 정치(학)적 개념과 이론을 적용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치의 승화는 시민들이 전통적인 정치의 영역 밖에서 정치적인 만족을 구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그렇게 본다면 문제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라든가 정치적인 것의 쇠퇴가 아니라 비정치적인 제도나 활동에 의한 정치적인 것의 흡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월린은 “인간 존재의 조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 정치적인 것의 이런 전환이 초래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10장에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월린은 제10장의 제목이 이미 시사하고 있듯이 그 답변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직화와 관료화에서 찾고 있다. 오늘날 개인은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이 압도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시민은 ‘거대 정부’에, 노동자는 거대 노동조합에,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거대 기업에, 학생은 관료화된 대학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월린은 19세기 이후 이런 조직화와 관료화를 예언하고, 설명하고, 찬양하고, 비판한 이론가들―대표적으로 막스 베버, 생시몽, 레닌, 뒤르켐, 드 메스트르, 드 보날드 및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현대의 경제?행정?조직 이론가 등―을 분석하면서 그 이론적?사상적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월린은 19세기 이론가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정치를 경멸했고, 대신 사회를 찬양하면서 이전에 정치 질서에 부여되던 특징적인 지위를 사회에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사회’에 대한 몰입은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이론적 경향을 야기했는데, 하나는 공동체의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화의 우월성에 대한 몰입이었다. 그리고 이 두 경향은 소박한 공동체가 지닌 따사로움에 대한 향수와 대규모 조직의 효율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상호 모순적 성격을 띠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이론적 긴장을 야기했다. 월린은 조직화 및 정치의 승화와 함께 수반된 이론화 경향이 정치적인 것의 파편화와 해체를 초래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전체 공동체의 선善을 추구하는 정치 질서의 최고성, 우월성 및 포괄성 그리고 시민됨의 통합적 기능, 곧 정의의 관점에서 공동체의 삶을 조망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능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제10장을 마무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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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적인 것 그리고 ‘전도된 전체주의’
전통적으로 ‘정치적인 것’은 사회의 존재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정치 참여와 시민권은 독특한 자기 완성적 활동으로 제시되었다(“인간은 정치적인 동물”). 하지만, 18세기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런 전통적인 개념화는 상실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것’은 ‘강제적’이고 ‘비자발적인 것’을 표상하는 반면 사회는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모임’을 상징한다는 믿음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인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공동체의 구성원됨의 의미는 주기적으로 투표하는 유권자로 축소되었으며, 정치 참여는 방어적인 활동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서, 월린은 정치적인 것을 실증주의적 정치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 정치를 윤리적 판단에 종속시키고자 하는 규범적 정치학(예컨대, 레오 스트라우스와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 정치철학), 정치를 부정하고, 이를 이윤 극대화의 원칙화 효율성의 논리로 축소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접근들과 맞서,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논리를 보존하고, 이를 부단히 새롭게 재정의하고자 시도한다. 정치적인 것의 재활성화와에 대한 강조는 미국에서 경제적 권력이 정치적 권력을 위험할 정도로 압도하는 ‘전도된 전체주의’inverted totalitarian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된다. 월린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양산되는 것은 이기적이고, 약탈적이고, 경쟁적이며, 불평등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는 것에 대해 심히 두려워하는 인간들, 즉 민주적 시민으로는 부적당한 인간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건전한 민주사회가 성립되기 위한 가장 필요한 조건의 하나는 사적 이익에 못지않게 공적인 것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정신적 능력임을 역설한다. 2. 정치와 ‘비전’ 『정치와 비전』에서 ‘비전’은 사실적인 차원과 상상적인 차원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비전은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기술적記述的인 보고의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 ‘비전’은 미적 비전이나 종교적 비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처럼 상상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 월린은 정치철학에서 첫 번째 의미의 비전이 수행한 역할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두 번째 의미, 곧 상상력이 개입된 비전이 수행한 역할을 훨씬 더 중시한다. 정치철학자가 정치 현상을 개념화할 때 활용하는 비전은 ‘이론가가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월린은 정치적인 것을 개념화하는 이론적 활동에서 비전의 역할이 다음 세 가지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정치철학자는 비전을 통해 공상, 과장, 심지어 기상천외한 환상을 통해 때로 우리에게 만약 그것이 없었더라면 명백하지 않았을 사물들을 보게 해 준다. 곧 이와 같은 공상적인 상像을 통해 그는 일반 사람들이 정치 질서가 기초해 있는 근본적인 가정을 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예를 들어 홉스는 ‘사회계약’이라는 상상적 행위를 설정함으로써 정치질서가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의 동의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밝혔다. 둘째, 정치사상가는 정치현상을 지적으로 일관되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 현상을 이른바 ‘정정된 온전함’corrected fullness으로 그려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상적 감수성이 절실히 요청된다. 또한 정치사상가는 정치적 삶에 대한 축소된 상, 사상가의 목표와 무관한 것들은 삭제된 상을 우리에게 제시해 왔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사상가 역시 직접적으로 모든 정치적 사물들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통해 일정한 현상을 추상화하고 상호 연계성을 제공함으로써 사회를 요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사상사에서 상상력, 곧 비전의 역할은 단지 방법론적 편의 또는 정치 공동체에 대한 이론적 모델 제공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전의 세 번째 기능은 사상가의 근본적인 가치 - 철학적 가치, 종교적 가치 등 - 를 표현하는 매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정치 이론가가 역사적 현실을 초월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3. 탈주하는 민주주의 : 헌정주의 대 민주주의 월린은 현대 서구에서 민주주의로 이해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나 헌정적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적 정신을 질식시키고, 시민됨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에 지극히 비판적인 급진 민주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의 민주주의 개념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활기에 넘친 참여와 숙의를 중시하는 참여 민주주의다. 이 점에서 월린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하기 이전까지 실현된, 기원전 5세기경의 아테네 민주정과 17세기 영국 내전 당시 민주적 반란기의 경험, 19벼기 미국 민중주의자들의 경험, 그리고 1960년대 미국 신좌파의 경험 등을 진정한 민주적 경험으로 중시한다. 월린에게는 아마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 기간 동안 시민들이 구성한 자치적 공동체, 곧 단명에 그친 ‘광주 공화국’의 경험 역시 1871년의 파리 코뮌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민주적 체험으로 이해될 법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월린의 비전은 제도화된 정치권 내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참여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민중들(빈민, 노동자, 농민, 흑인, 여성 등) 또는 시민들이 기성의 제도 밖에서 자신들의 집단적인 생존을 타개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겪는 (단편적인?) 체험에 기초한 것이다. 즉 그 비전은 그들이 투쟁하면서 정치공동체에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것에 관해 숙의하고, 그 숙의의 결과를 다시 집단적인 정치적 행위action로 옮길 때 일어나는 탈제도적 경험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월린에게 미국은 물론 현대 서구의 선진국가에서 실천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가 만족스러울 리 없다. 따라서 고대부터 근대 정치사상까지를 주로 다룬 『정치와 비전』의 초판(1960년)에서는 당대의 정치에 관해 비교적 초연한 태도를 취하면서 비판적 언급을 삼갔던 반면, 2004년에 출간된 증보판의 16장과 17장에서는 현대 미국 민주주의의 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월린의 평가에 따르면 미국은 ‘초강대국 민주주의’superpower democracy라는 형용 모순적 실체로 변모하고 있으며, 신보수주의 정책 결정자들은 미국을 ‘전도된 전체주의’ 국가 - 파시즘이 내포하는 많은 함의와 더불어 - 로 전환시키고 있다. 월린에게 전도된 전체주의는 상호 대조적인, 그러나 반드시 대립적이지 않은 두 가지 경향의 특이한 조합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이다. 2차대전 이후 많은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시민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고, 측정하고, 지시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능력이 증대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같은 통제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자유민주적 변화들, 예를 들어 인종, 젠더, 종족 또는 성적 취향에 근거한 차별적인 관행을 폐지하고자 하는 조치들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들 및 다른 개혁들이 시민들의 권력 강화를 가져오는 데 이바지했다면, 그것들은 또한 민주적인 반대 진영을 분열시키고 파편화시키는 데도 이바지했고, 이로 말미암아 효과적인 다수를 형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분할을 통해 통치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런 비판으로 인해 미국 정치학계에서 월린은 강경 좌파hard-Left 또는 좌파 자유주의자left-liberal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처럼 월린의 급진 민주주의적 비전은 민주주의를 정부 형태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의 형태로 개념화하는데, 그 정치적 판단은 우리의 판단이 자유주의적 거대 국가의 포획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는 국가의 정치제도 바깥에 소재하는 존재양식이며, 이러한 인식은 민주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의 결박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 점에서 월린은 자신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상을 ‘탈주적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로 명명한다. 월린은 ’탈주적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재형성적 능력, 국지(지방)적이고 특수한 정치참여 양식을 고무하고자 한다. 그는 이러한 정치참여를 고무하는 탈주적 민주주의를 국가의 밖과 옆에서 활성화시킴으로써 국가주의적 권력의 전체주의적 경향에 저항할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