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김삿갓은 살아 있다
서로 다른 운명을 짊어지고, 서로 다른 길로 영월에 들어온 사람 19세기 조선은 선비 문화의 쇠퇴기였다. 집안의 운명을 뒤바꾼 '홍경래의 난' 그는 왜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살았을까? 입신을 꿈꾸며 서울에서 도진 '마음의 병' 조선 선비들에게 금강산이란 무엇이었을까? 과객과 함께 세상을 떠돌다 과체시 <논정가산>은 과연 김병연이 썼을까? 이 좁은 세상에 나를 가두지 마라 한문 문화에서 한글 문화로 이끈 부정의 시학 부록 대표작품 참고 도서 및 논문 연보 김삿갓 관련 시각 자료 |
|
방랑자에게 먹을 것과 하룻밤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것보다 더 큰현실적인 문제는 없다. 그에게 축객이라는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체험은 단순히 야박한 인심에 대한 탄식을 넘어 그 시대의 가난과 고통에 눈뜨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비록 그가 개인적 불운과 울분에서 방랑을 시작했을지언정, 방랑의 행위가 주는 고된 수신은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향해 자연스레 열렸던 것이다. 그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그릇의 밥을 먹고/아버지와 아들이 외출할 때는 서로의 옷을 바꿔 입"는 가난을 목도했으며,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은 걸인의 시신에 파리가 들끓도록 방치하는 메마른 인심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낱 방랑자일 분 이를 지도하고 벌하는 신분은 아니었다. 유리 걸식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형편과 백성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는 재해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고, 부패한 관리의 횡포를 찾아내고, 고탄에 빠진 농민을 구하는 그런 암행어사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시로써 그들의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웃음으로 감싸고, 위선자들을 비꼬았다. 고작해야 거리에 버려진 걸인의 시신을 거두도록 돕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주는 일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현실적인 무제 해결 능력을 줄 사회적 기반을 갖지 못한 그는 대신 해학과 유며, 풍자로 병든 세상을 바라보고 끌어안았던 것이다. --- pp.126~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