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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창덕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
박인하
하늘아래 200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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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아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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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목차

1. 내가 만난 길창덕

2. 정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3. 피난지 서울에서 만화가가 되다

4. 길창덕의 어린이 만화

5. 쿠오레적 경향의 길창덕 만화

6. 길창덕과 성인 만화

7. 다시 명랑 만화로 돌아오다

8. 70년대 어린이의 얼터너티브 문화로서의 길창덕

9. 다시 찾은 거대한 만화의 숲, 길창덕

부록
핵심 작품과 캐릭터/ 길창덕의 캐릭터 노트/ 연보 및 작품 목록/ 길창덕의 대본소 만화/ 관련 자료/ 지은이 약력

저자 소개 1

만화평론가이자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이다. 만화를 보며 자랐다. 《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그리고 《보물섬》까지 한국만화잡지를 탐독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1980년대 만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했고, 이현세와 허영만, 김혜린, 신일숙의 팬이 되었다. 삼촌의 서가에서 고우영의 극화를 봤고, <선데이서울>에서 박수동과 방학기를 만났다. 19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이후 꾸준히 만화평론을 계속해 왔다. 연구, 만화전시기획, 컨설팅, 스토리, 만화교육과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만화평론가이자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이다.
만화를 보며 자랐다. 《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그리고 《보물섬》까지 한국만화잡지를 탐독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1980년대 만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했고, 이현세와 허영만, 김혜린, 신일숙의 팬이 되었다. 삼촌의 서가에서 고우영의 극화를 봤고, <선데이서울>에서 박수동과 방학기를 만났다. 1995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이후 꾸준히 만화평론을 계속해 왔다. 연구, 만화전시기획, 컨설팅, 스토리, 만화교육과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20년까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0년 9월부터 웹툰대안교육기관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만화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내는 일을 스스로 ‘만화금석학’이라 부르며 즐겨 한다. 2023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 (사)한국만화가협회 부설 만화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30여 권의 단독 저서와 공저를 집필했다. 최근 저서로 〈시대를 읽는 만화〉, 〈지금은 이런 만화〉, 〈관계와 계보로 읽는 한국 만화 역사〉가 있고 공저로 〈웹툰 입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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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21쪽 | 28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897064

책 속으로

길창덕의 만화를 즐기거나 즐겼던 독자층은 몇 세대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우리 만화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그 폭이 넓다. 이를테면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아리랑>이나 <실화>, <야담>과 같은 당시의 대중 잡지에 연재하던 만화를 본 세대가 있는가 하면,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재한 어린이를 위한 만화를 본 세대가 있으며, 또 1970년대부터 연재를 시작한 「꺼벙이」와 함께 자라난 세대, 80년대의 「쭉쟁이」, 「재동이」, 「고집세」, 「코메디 홍길동」 등의 만화를 본 세대, 마지막으로 1996년 단행본으로 새롭게 출판된 『내동생 꺼실이랑 우리오빠 꺼벙이』를 본 세대 등, 말하자면,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모든 세대를 독자로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길창덕은 종종 일본의 국민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견준다.

무엇이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세대를 아울러 그의 만화에 그토록 지속적이고 폭넓은 사랑을 주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지금부터 이 글에서 차근차근 풀어야 할 몫이지만, 거꾸로 30대의 내가 다시금 그의 만화에 매료된 점부터 고백하자. 나는 아직도 '꺼벙이'로 대표되는 바보스러울 만큼 엉뚱하고 순진한, 그래서 더없이 친근감을 주는 그의 등장 인물에서 종종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 어리숙하고 순진했던 한 소년이 지금 세상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혹은 우리는) 산업화 시대인 70년대와 80년대를 꾸밈없이, 낄낄거리며, 꿈꾸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시인 오규원의 표현을 빌면, "○표, ×표가 따로 따로 그려진 눈, *표, ◎표가 하나씩만 또는 따로 따로 그려진 얼굴, 엉거주춤하게 드려진 한쪽 다리, 놀람을 강조하려고 거꾸로 씌어진 글자, 굴곡이 얄궂게 휘어지는 입술 따위"로 말이다.

그래서 길창덕의 만화는 단지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규정한다. 그는 나의 동심이 걸어나온 숲이며, 동시에 내가 돌아가야 할 숲이기 때문이다. 그 숲을 때론 멀리서 바라보고, 때론 가깝게 느끼고, 숨쉬는 일은 오늘의 나를 일깨우는 청량한 바람이며, 내 어린 시절의 안식으로 돌아갈 수 있는 노스탤지어다

--- pp. 20~21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만화 「꺼벙이」와 「순악질 여사」로 잘 알려진 원로 만화가 길창덕(73세) 선생의 삶과 만화의 세계를 정리한 국내 최초의 만화가 평전입니다. 따라서 길창덕 선생의 일대기는 물론 한국 만화의 흐름을 살펴보는 재미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길창덕 선생은 우리 만화 역사를 통틀어 가장 폭넒은 독자를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까지 <아리랑>이나 <실화> 같은 성인 대중 만화를 본 세대가 있는가 하면,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재한 어린이 만화를 본 세대, 1970년대부터 연재를 시작한 「꺼벙이」와 함께 자란 세대, 80년대의 「쭉쟁이」, 「재동이」, 「고집세」, 「코메디 홍길동」 등을 보고 자란 세대, 마지막으로 90년대에 단행본으로 새롭게 출간된 「내동생 꺼실이와 우리 오빠 꺼벙이」를 본 세대 등 우리 국민의 거의 모든 세대를 독자로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길창덕은 종종 '아톰'을 그린 일본의 국민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에 견주곤 합니다.

길창덕 선생은 1997년 12월에 건강 문제로 절필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보내는 경의와 애정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2001년에 발행한 '꺼벙이'를 소재로 한 만화 시리즈 우표는 발매 수일 만에 200만 장 전량이 매진되었으며, 그해 「꺼벙이」의 복간 기념 팬 사인회에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된 70년대의 소년 소녀 독자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행사장을 가득 메워 전성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보였습니다. 또 올해에는 이현세 씨를 비롯한 만화가 150여 명의 명의로 길창덕 선생에게 공로패와 순금펜촉을 증정해 길창덕 선생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길창덕 선생은 1929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이 나기 전까지 정주역 역무원으로 근무하다 1·4 후퇴 때 홀몸으로 월남을 했습니다. 1955년에 서울신문 독자 투고에 만화가 실리면서 만화가로 데뷔한 뒤 선생은 성인 만화에서 어린이 만화로, 그리고 시사 만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역시 압권은 어린이 만화였습니다. 길창덕의 어린이 만화는 대표적인 한국의 명랑 만화로 점차 산업화되고 뉴미디어로 확산되는 만화 시장의 변화 속에 만화의 본질과 정신을 일깨우는 숲과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길창덕 선생이 지금까지 그린 만화 주인공들이 정리되어 있으며, 그동안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60년대 그린 만화 가게용 만화책과 별책 부록용 만화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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