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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보며 만가(挽歌) 새에게 쫓기는 소녀 유령 폭풍우 불면 새떼 콩 소 선언 정월 일기 새의 행방 응시 촌장 참회 시Ⅰ 겨울 일기 술병의 노래 타국에서 4월에는 바다 앞에서 고독 보석의 노래 식기를 닦으며 황진이의 노래Ⅰ 사랑은 불이 아님을 편지 어린 사랑에게 비의 사랑 흡혈귀 할미꽃 눈물 찔레 아들에게 곡비(哭婢) 베게 손톱 산불 작은 부엌 노래 마흔 살의 시 이 가을에 이별 이후 남한강을 바라보며 오빠 중년 여자의 노래 손거울 노래 나는 나쁜 시인 잘 가거라, 나비야 딸기를 깎으며 기다리던 답장 신록 초겨울 저녁 유리창을 닦으며 내 사랑은 2 성에 꽃 풀들의 길 창 한계령을 위한 연가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처용 아내의 노래 첫 만남 시간의 몸짓 간통 꽃 한 송이 터키석 반지 채탄 노래 체온의 시 남자를 위하여 학문을 닦으며 마감 뉴스 이동전화기와 쥐떼 다시 남자를 위하여 내 안에 사는 문화인 오라, 거짓 사랑아 통행세 러브호텔 머리 감는 여자 기 큰 남자를 보면 보라색 여름 바지 유방 가을 우체국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알몸 노래 술 아름다운 곳 밤[栗] 이야기 물개의 집에서 평화로운 풍경 분수 농담 축구 할머니와 어머니 콧수염 달린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늙은 여자 우리들의 주말 혹 한 사내를 만들었다 지는 꽃을 위하여 사람의 가을 머플러 새우와의 만남 율포의 기억 문 흙 나무 학교 사랑해야 하는 이유 사랑 신고 물을 만드는 여자 돌아가는 길 다시 알몸에게 풍선 노래 테라스의 여자 시(詩)가 나무에게 공항에서 쓸 편지 성공 시대 남편 꼬리를 흔들며 찬밥 거짓말 군인을 위한 노래 석류 먹는 밤 딸아, 미안하다 동백 치마 먼길 그의 마지막 침대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호대받은 시인 화장을 하며 "응" 내가 한 일 작품 해설 이숭원 독창적 연금술의 세가지 광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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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주년을 맞은 문정희 시인의 시세계를 오롯이 펼쳐 보이는 대표 시선집
등단 40주년을 맞은 문정희 시인의 대표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가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일상의 편린에서 예술성을 포착,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아우르는 시적 정서로 승화해 낸 문정희 시인은, 1969년《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폭넓은 감성과 실존적 의미를 솔직담백하고 예리한 시적 언어로 형상화해 왔다. 여성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섬세하고 당당한 통찰로 평단과 독자 모두의 사랑을 받았고,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번 시선집에는 시인이 기존에 발표한 열 개에 달하는 시집에서 엄선한 대표시 130여 편을 수록하였다. ▣ 활발하고 당당한 시적 사유와 시어에 흐르는 여성적 생명의식 문정희 시인은 작품 세계와 실제 이미지가 일치하는 시인 중 하나이다. 물리적 나이와는 반비례하는 느낌을 줄 정도로 늘 정열적이고 당당한 시인의 시적 사유는 작품 속에서 여전히 펄떡이며 살아 숨 쉰다.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나의 문자”는 “응”이라고 “꽃처럼 피어나”고, 그 “응”은 이 낡지 않는 시인에게 있어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이 된다.(「“응”」) 군인 대통령에게 초대받은 날 “신분증 번호를 대다 말고” 돌아선 시인은 “나 시인이라고 알지 마라/나는 글창녀니라”라는 말로 매문(賣文)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을 스스로 꼬집는다. (「초대받은 시인」) 이러한 여성성은 당당하고 신랄하게 구사되기도 하지만, 혹은 에로티시즘의 경계를 스치며 허망한 실존을 나타내기도 한다. (“깨소금 냄새 나는/몸뚱이 하나만 남아/ 나는 밤새 죽지”―「유령」) 그러나 여성성은 연약하고 음울한 고백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된 최고의 미덕이자 가치인 생명의식으로 이어진다. 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몸을 얽히어/새끼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손을 뻗쳐 저 하늘의 꿈을 감다가/접근해 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이 몽매한 죄/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마른 몸으로 귀가하여/도리깨질을 맞는다/도리깨도 그냥은 때릴 수 없어/허공 한 번 돌다 와 후려 때린다/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딩군다/흙을 다스리는 여자가 딩군다 ―「콩」 부분 이 시의 ‘콩’은 무뚝뚝한 남정네와 몸을 얽히어 새끼들을 주렁주렁 매달지만, 꿈을 탐내다가 도리깨질을 맞는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뒹군다. 즉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늘 새로운 탄생을 낳는다. 사회적, 실존적인 고난을 겪는 여성이지만 그럼에도 생명을 고귀하게 만들어 내는 고귀한 본성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여성성은 때로는 더 부드럽고 우아한 시적 언어를 통해 생명적 사유로 이어진다.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마라/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아름다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오줌을 갈겨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그럴 때일수록/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 올리고/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그러고는 쉬이쉬이 네 몸속의 강물이/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내 귀한 여자야 ― 「물을 만드는 여자」 전문 미당 서정주가 아끼던 제자이기도 한 문정희는 원초적인 ‘오줌 누는 모습’을 평화롭고 푸른 생명이 솟아나는 순간으로 형상화한다. 여성의 아름다운 하초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줄기가 대지에 스며들어 인간과 대지가 한몸이 되고 생명들이 환호하는 이 고귀한 시적 순간은 여성적 생명의식이 완성되는 정점인 것이다. ▣ 섬세하고 대담한 상상,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 시어 한국문학사에서 독보적이라 평가되는 ‘여성적 생명의식’을 일구어 냈다는 이유만으로는 문정희 시가 지닌 예술성과 독창성을 설명할 수 없다. 남성적 인식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선택되는 시적 어법은 반어법과 대담한 발상 전환이다. “운명보다 무서운 이 살”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소를 묘사하면서 시인은 쉽사리 감상에 빠지지 않고 하늘이 소의 “눈에서 떨어지는 누우런 불덩이”만은 “용납하시리”라고 담담히 내뱉는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서 “여기 나는 어떤 모습이냐?”고 소에게 되물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시인의 운명이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반전을 보여 준다. (「소」) 특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연시에는 시인 특유의 비극과 관능을 오가는 유미주의와 생생한 시어가 빛을 발한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제 구명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오오, 눈부신 고립/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니/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부분 폭설에 갇힌 한계령은 연인들에게는 “눈부신 고립”이다. 그림 같은 하얀 눈 속에 갇혀 연인들은 축복과 황홀함을 만끽하고, 그러한 탐닉 앞에 재앙이 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과 고립에 깃든 낭만을 포기할 수 없다. 정열적이고 순수한, 상대방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저버릴 수 있는 사랑만이 비극적이어도 후회 없는 “황홀한 몰락”으로 이어질 자격이 있다는 시인의 반어법은, 사랑이 지닌 낭만적이고 유미주의적인 속성을 극대화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때로는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똑같은 해와 달 아래/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고, “바람에 나뒹굴다가/서로 누군지도 모르는/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똑같이 흩어지는 것”(「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라 말한다. 쓸쓸하지만 진실된 이 고백을 통해, 시간과 고통 속에서 더 웅숭깊게 영그는, 보다 더 숭고한 사랑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성을 무기로 삼은 문정희 시인의 시 속에서 남성들은 종종 비겁하고 폭력적인 적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남편」,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멸종 위기네”―「다시 남자를 위하여」) 결국 시인은 모성애와 그리움을 안고 그들과 화해하며 애처로이 그러안는다.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천 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모두 오빠라 부르기로 했다 //(…)//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헐떡임이 사라지고”―「오빠」, “너와 나 사이에는/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아들에게」) 때로는 밉고 어리석지만 포용해야 하는 남성에 대한 시선은 남녀 구분을 떠나 나약한 인간 존재를 감싸는 박애 정신으로 전환되어 아로새겨진다. ▣ 실존적 자아의식이 일구어 낸 시적 보편성의 미학 창조적인 표현 미학과 여성적 생명의식은 이제 문정희 시인이 지닌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성과 긴밀히 연결된다. 자기 존재에 대한 시인의 민감한 촉수는 곧 여성이라는 사회적이고 실존적인 자기 확인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어머니로, 때로는 청춘을 잃고 늙어가는 여인으로, 때로는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은 “나쁜 시인”으로, 그리고 “오늘밤에도 사랑을 쓸 수 는” 천생 시인으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방출한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바늘 끝처럼 예리하고 아픈 깨달음의 순간, 그 속에 담긴 다양한 감정들은, 많은 이들이 문정희 시인의 시를 되뇌도록 이끄는 마력이다. 이렇게 확보된 시적 보편성은 개별적인 존재들에게 각자가 신이고 별이고 또한 시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내가 나의 신입니다/별과 별 사이/너와 나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자르고 잘라서/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저 자유로이 홀로인 새들/저 잎과 저 새를/언어로 옮기는 일이/시를 쓰는 일이, 이 가을/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저 하나로 완성입니다/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그리고 너 나/이미 한 편의 시입니다/비로소 내가 나의 신입니다. 이 가을날 ― 「사람의 가을」 전문 존재와 사랑의 의미를 거침없이 해부하는 문정희 시인의 시어가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확장되며 생명을 나눌지를 지켜보는 과정은 앞으로도 늘, 흥미진진하고 유의미할 것이다. 문정희가 일찍이 점유한 문학사적 독창성이 그의 시를 이 벼랑으로 몰고 왔다. 그것은 오로지 그가 선택한 길이기에 우리에게는 그를 도울 방도가 없다. 이 난국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나는 문이다”라는 선언적 독백으로는 이 난경의 활로가 열리지 않을 것 같다. 여성적 생명의식, 독창적 표현미학, 실존적 자아의식을 총동원하여 문학사의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에게 남았다. 그의 나이 육십이 넘지 않았느냐고? 어떻게 혼자 그 일을 하겠느냐고? 40년 동안 그의 사유와 언어가 활달하고 당당하였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지금까지 누가 그에게 길을 일러준 바 없으니 앞으로도 “자유로이 홀로” 자신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엘리엇(T. S. Eliot)의 말을 빌리면,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안에 포함되어 있는(Time future contained in time past.-Four Quarters)” 것이기에. ― 문학평론가 이숭원, 「작품 해설」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