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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오디션
인터뷰의 여왕 바버라 월터스 회고록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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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어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공주 할머니
나의 어린 시절
스키니말링키딩크
63센트의 마법
피스타치오 그린 하우스
뉴욕 뉴욕
마이애미는 전쟁 중
아주 평범한 아이
세라 로렌스
텔레비전 101
잘못된 선택
설상가상
텔레비전 102와 이상한 청혼
인도로 가는 길
장례식과 결혼식
13주에서 13년으로
바버라 월터스가 되다
갈런드, 카포티, 로즈 케네디, 그리고 그레이스 왕비
가슴으로 낳은 딸
딘 러스크, 골다 메이어, 헨리 키신저, 그리고 프린스 필립
서글펐던 플로리다 시절
닉슨의 후원, 시내트라와의 불화
맥기와의 악연
좌초한 결혼
역사적인 여행 : 닉슨의 중국 방문
끝장난 결혼과 사해(死海)
워터게이트와 닉슨의 사임-공동 진행자가 되다
워싱턴에서 만난 남자들
내 인생에서 특별했던 남자들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카스트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악당들의 손에 쓰러지면 안 돼요
나의 구세주 ‘더 스페셜!’
드디어 카스트로와 인터뷰
역사적인 인터뷰 : 안와르 사다트와 메나헴 베긴
해리의 퇴장과 휴의 등장
고통 그리고 새 출발
가장 쓰기 힘든 이야기
9/11과 숱한 우여곡절들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들-백악관 취재 40년
국가원수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리고 미친 자들
비밀스러운 자들과 함께한 모험
살인자들
특별한 범죄자들
미워도 다시 한번
내 삶에 영향을 미친 유명인사들
모니카 르윈스키
더 뷰
정상에 있을 때 떠나다
마지막 오디션
고마운 사람들

저자 소개 2

바버라 월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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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Walters

여성 앵커로서 바버라 월터스가 걸어온 길은 항상 ‘최초’였다. 남성의 왕국이던 텔레비전 뉴스 무대에서 그녀는 최초의 여성 공동진행자, 저녁 메인뉴스 최초의 여성 공동 앵커가 되었다. ‘투데이 Today’의 최초 여성 공동진행자, 최초의 메인뉴스 여성 앵커, 인기 시사 매거진 ‘20/20’의 인기 스타 앵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스페셜 Specials’과 ‘더 뷰 The View’의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 활동했다. 텔레비전 방송 뉴스 사상 최초의 여성 앵커로 40년 이상 활동한 공로로 전국 텔레비전 아츠 앤드 사이언스 아카데미 National Academy of Tele
여성 앵커로서 바버라 월터스가 걸어온 길은 항상 ‘최초’였다. 남성의 왕국이던 텔레비전 뉴스 무대에서 그녀는 최초의 여성 공동진행자, 저녁 메인뉴스 최초의 여성 공동 앵커가 되었다. ‘투데이 Today’의 최초 여성 공동진행자, 최초의 메인뉴스 여성 앵커, 인기 시사 매거진 ‘20/20’의 인기 스타 앵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스페셜 Specials’과 ‘더 뷰 The View’의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 활동했다. 텔레비전 방송 뉴스 사상 최초의 여성 앵커로 40년 이상 활동한 공로로 전국 텔레비전 아츠 앤드 사이언스 아카데미 National Academy of Television Arts and Sciences의 평생 공로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 ABC 뉴스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바버라 월터스의 스페셜과 ABC 데이타임의 ‘더 뷰’를 진행하고 있다.

LEE KEY DONG,李淇東

서울신문에서 초대 모스크바특파원과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경북고, 경북대 철학과, 서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지원으로 미시간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머니 앤드 러브』『팬데믹 이후의 세계-애프터쇼크』『김정은 평전-마지막 계승자』『AI의 미래-생각하는 기계』『블라디미르 푸틴 평전-뉴차르』『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바버라 월터스 회고록-내 인생의 오디션』『미하일 고르바초프 자서전-선택』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기본을 지키는 미디어 글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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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8월 2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751쪽 | 1108g | 160*232*40mm
ISBN13
9788996276319

책 속으로

시스터(Sister). 나는 한동안 내 회고록의 타이틀을 이 ‘시스터’로 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알게 모르게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유일한 자매 재클린(재키) 언니였기 때문이다. 재키 언니는 나보다 세 살 위이지만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내 동생 같았다. 언니는 약간이긴 하지만 정신지체 증세가 있었다. 그래서 정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다. 직업도 가질 수 없었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만큼 지체 장애자였다.

언니의 병은 내 삶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언젠가는 재키 언니를 내가 책임지고 돌봐 주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토록 일에 매달리게 된 주된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니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경제적인 책임감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내가 언니 때문에 속상해하고 언니 때문에 창피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렇게 가진 게 많은데 언니는 왜 저렇게 가진 게 없는지 하는 죄책감에 얼마나 시달려야 했는지도 모른다. 거의 80년 전 재키 언니가 태어나던 때만 해도 정신지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요즘은 ‘지능장애아’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이런 아이들이 가서 무엇이라도 배울 만한 워크숍도 없었고 이런 아이들이 가진 재능과 성실성을 어떻게든 끄집어내어 활용해 보겠다고 나서는 고용주도 없었다.
요즘 같았으면 언니도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단순하지만 생산적인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재키 언니의 삶은 나와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를 빼놓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부모님은 언니를 보호하셨다. 두 분은 가족 이외의 누구한테도 언니 이야기를 꺼내거나 언니의 몸 상태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말해 봐야 남들이 언니를 이해해 줄 리도 없고 기피하고 업신여기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재키 언니의 고독은 나의 고독감을 키우는 데도 한몫했다. 언니가 생일 파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 생일 파티도 없었고 언니가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도 걸스카우트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우리 언니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나도 다른 집 아이들과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아이들이 언니에 대해 쑥덕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톨이가 된 언니를 보면서 마음이 상하신 어머니는 내가 나이가 조금 들면서부터 여자 친구와 함께 놀러 나가거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언니를 같이 데리고 가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나는 언니를 사랑했다. 언니는 착하고 인정이 많았다. 그리고 어찌 됐든 내 언니였다. 언니가 미울 때도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 나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그리고 언니가 나의 삶에 드리운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언니가 미웠다. 물론 언니를 미워하는 감정이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언니를 미워했다는 말을 듣고 놀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같은 감정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나의 말에 함께 죄책감을 가질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형제자매 가운데 오래 앓아누워 있거나, 아니면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이를 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근에 재키 언니가 나의 삶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책 한 권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심리요법사인 지니 세이퍼가 쓴 ‘정상인 : 힘들거나 병든 형제자매와 함께하는 삶(The Normal One : Life with a Difficulty or Damaged Sibling)’이 바로 그 책이다. 저자도 아주 힘든 남동생과 함께 자란 사람이었는데 거의 모든 페이지가 내 경우와 딱 들어맞았다. “너무 일찍 조숙한 아이. 남동생을 내가 돌보고 먹여 살려야 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책임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 보지만 그랬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그래 봐야 재키 언니는 여전히 재키 언니였을 것이고 나는 똑같은 상황에 휘둘리며 지내 왔을 것이다.

성공, 성취, 자기 보호 등 내가 자신을 내몬 욕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이 언니에 대한 나의 감정에 닿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욕구를 남보다 뛰어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혹자는 그것을 야망이라고 부를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또 혹자는 그걸 불안감이라고도 한다. 수줍음이라고 하는 것처럼 상투적이고 따분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전혀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살아오면서 긴 오디션을 한번 받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 오디션을 통해 나는 남보다 뛰어나려고 애썼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언니는 어릴 때 아주 예뻤다. 정신지체가 있었지만 외모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언니는 고운 머리칼, 고운 피부,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몸매는 나보다 더 예뻤다. 나는 검은색 머리에 얼굴은 창백한 편이었다. 말라깽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부모님은 나를 귀여운 말라깽이라는 뜻으로 ‘스키니말링키딩크’라고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곤 하셨다. 재키 언니도 겉으로 보기에는 나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말을 하지 않을 때는 그랬다. 언니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심한 말더듬이였다. 얼마나 심했던지 단어 한마디를 내뱉으려면 혀를 바깥으로 내밀며 온 힘을 들여야 했다. 부모님은 언니를 위해 좋다는 치료법은 다 써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번은 조지 6세 영국 왕의 언어장애를 낫게 했다는 사람한테 언니를 데려간 적도 있다. 그 사람도 언니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되었다. 언니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너무 딱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듣다 말고 놀리기부터 했다. 언니에 대해 제일 먼저 기억나는 일은 내가 세 살 때쯤이고 언니가 여섯 살이었을 때다. 이웃의 남자아이들이 언니가 말하는 것을 보고는 언니 스커트를 잡아당기며 놀려댔다. 우리 둘은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언니가 1985년에 난소암으로 죽을 때까지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 일을 걱정하고 도와주고 중요한 결정을 대신 내렸다. 그리고 나는 언니를 항상 사랑하지는 못했는데 언니는 언제나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언니는 나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두 가지 마음씨는 나중에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내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언니는 의기소침하고 짜증 내고 발끈하기도 잘했지만 그래도 나한테 화를 내거나 나를 시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내 딸아이 이름을 재클린(재키)이라고 지었다. 재키 언니가 내 아이를 자기 친딸처럼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무렵에는 나도 언니가 자기 아이를 가질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듯 언니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지만 사랑이 원망보다 강했으며 언니가 안됐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텔레비전 생활을 갓 시작한 젊은이들이 흔히 나한테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준비해 둔 것처럼 항상 “그건 패키지로 몽땅 가져가야 하는데”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그러면 모두 공손하게 웃지만 내가 말하는 의도는 알 리가 없다. 나도 굳이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 혼자만 간직해 왔다. 언니가 나의 삶을 이끌어온 중심적인 힘이기는 하지만 언니 역시 내가 이 책에서 밝히려고 하는 패키지의 일부였다.

이 패키지에는 언니 외에도 명석하고 빈틈없는 지휘자 역할을 하신 아버지, 사랑스럽지만 힘들게 사신 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텔레비전에서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내가 만난 멋지고 훌륭한 많은 사람들이 들어 있다. 그렇다! 하지만 이 회고록에 담긴 내용 대부분은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거기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쓴 나 자신의 이야기다.
프롤로그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오래전 NBC의 ‘투데이쇼’에 매일 출연하던 60대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7번 애비뉴 57번 스트리트에 살았다. 내 아파트는 길 건너편에 카네기홀이 있는 아주 번잡한 거리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비즈니스맨들이 모여드는 대형 호텔도 여러 곳 있었다. 그 때문에 그 길모퉁이는 아주 매력적인 ‘밤의 여인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매일 새벽 5시면 나는 화장을 안 했기 때문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손에는 보통 쓰레기 봉지를 든 채였다. 그 ‘여인들’ 눈에는 내가 방금 거물 ‘고객’ 집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계는 아니었고 바깥으로 나오면 젊은 여인들을 볼 수 있었고 그 가운데는 십대들도 있었다. “굿모닝”이라고 내가 아침인사를 건네면 그 여인들도 “굿모닝” 하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제복 차림의 운전기사가 모는 긴 검정 리무진에 올라 이른 새벽의 불빛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나의 그런 모습이 그 여인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 책도 여러분에게 그런 희망을 줄지 모른다.
자, 이제 그 패키지를 열어 보이려 한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 「프롤로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텔레비전 저널리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여성이 자기 삶의 이야기를 통째 들려준다. 저자는 40년 넘게 전 세계 국가수반과 정치 지도자, 영화배우, 범죄자, 살인자 등 다양한 뉴스 메이커들과 인터뷰하며 ‘인터뷰의 여왕’으로 불린다. 성공한 여성 바버라 월터스가 혼신을 다한 자신과의 마지막 인터뷰 끝에 내놓은 책이 바로 이 회고록이다.

전설의 쇼 비즈니스맨이었던 아버지의 굴곡으로 점철된 도박과 같은 삶은 어릴 적부터 그녀의 의식을 억누른 불안의 바윗덩어리였다. 운명적인 동반자였던 언니는 지적장애를 앓았다. 언젠가는 자기가 가족의 생계와 언니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은 바버라 월터스의 삶을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 불안감과 성실함, 행운이 그녀를 텔레비전에서 그동안 어떤 여성도 이루지 못한 눈부신 성공으로 이끌었다.

평생 따라다닌 “여성 최초”

텔레비전 저널리즘에서 뛰어난 여성들이 걸어온 길 앞에는 어김없이 그녀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여성 앵커로서 그녀가 걸어온 길은 항상 ‘최초’였다. 남성의 왕국이던 텔레비전 뉴스 무대에서 그녀는 최초의 여성 공동진행자, 저녁 메인뉴스 최초의 여성 공동 앵커가 되었다. ‘투데이’의 최초 여성 공동진행자, 최초의 메인뉴스 여성 앵커였고, 인기 시사 매거진 ‘20/20’의 인기 스타 앵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스페셜’의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 활동했다.

남성들이 텔레비전을 지배하던 시절에 시작해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숱한 좌절과 실패,그리고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상세히 담고 있다. 저자는 일도 사랑도,그리고 실패까지도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자세로 일관했다고 말한다.

여걸의 통쾌한 회고담-“월터 크롱카이트를 뭉개 놓았다.”

“뉴스의 인물 치고 그녀와 인터뷰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저자는 수십 명의 국가원수를 비롯해 정치 지도자,유명 배우,살인자 등 숱한 뉴스 메이커들과 인터뷰를 했다. 안와르 사다트,야세르 아라파트, 메나헴 베긴, 조지 부시 부자, 지미 카터,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 빌 클린턴 부부, 달라이 라마, 다이애나 비, 앤절리나 졸리, 헨리 키신저, 모니카 르윈스키, 리처드 닉슨, 안와르 사다트, 존 웨인 등 수많은 이들이 그녀와 인터뷰하고 그녀의 친구가 되었으며,삶을 함께 나누었다.

70년대 중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 합동 인터뷰를 단독으로 성사시켜 월터 크롱카이트를 따돌린 것은 지금도 언론계에 회자되는 사건이다. 저자는 통쾌했던 순간을 이렇게 썼다. “내가 특종 인터뷰를 한 사실을 뒤늦게 안 CBS는 결사적으로 두 지도자를 추적해서 자기들과도 인터뷰해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런 다음 크롱카이트가 한 인터뷰를 편집도 하지 않고 60 미니츠에 내보냈지만 때는 늦었다... 나는 그때 방송 저널리즘의 최정상에 서 있던 크롱카이트를 완전히 뭉개 놓았다.”

출판 사상 가장 솔직한 회고록

저자는 이 회고록을 통해 기혼인 흑인 상원의원 에드워드 W. 브루크와의 내연관계를 맺은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 ‘창녀 저널리스트’ 라는 등의 혹독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성공의 기록뿐만 아니라 아픈 과거와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도 온전하게 담아내 출판 사상 ‘가장 솔직한 회고록’이란 평가를 받으며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온 다른 여성들보다도 좀 더 수월한 길을 걸어 왔다. 다른 분야의 여성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텔레비전은 더 이상 남자들의 영역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바꾸는 데는 나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다. 어떤 때는 내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오디션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

사료 가치 높은 화보 사진들

사료 가치가 높은 화보 사진을 28쪽에 걸쳐 실었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 때 예루살렘에서 가진 사다트 대통령,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의 합동 인터뷰 사진을 비롯해,이란 국왕 샤,야세르 아라파트,페델 카스트로,무아마르 카다피,달라이 라마 등과 가진 인터뷰 사진들이다.

화려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텔레비전 저널리즘과 관련해 저자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유쾌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 “휴대폰으로 비디오를 찍고, 블로그가 지천에 널려 있어 모든 사람이 리포터가 되는 지금 같은 인스턴트 인터넷 뉴스 시대에서 어떤 한 사람이 나와 같은 경력을 갖기는 매우 ?려울 것이다. 내가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앞서 출발한 이점을 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나 운이 좋았던가! 정말 운이 좋았어!”

추천평

국가원수, 유명 배우, 범죄자, 살인자 할 것 없이 뉴스의 인물치고 그녀와 인터뷰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뉴욕타임스
성공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좌절과 아픔, 가장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출판 사상 최고로 솔직한 회고록
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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