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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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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02노벨 문학상 수상작 '운명' 삼부작 그 두 번째 이야기

저자 소개 1

임레 케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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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re Kertesz

1929년 부다페스트에서 목재상을 하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숙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유대인 박해에 의해 열네 살의 나이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악명 높은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와 차이츠 수용소를 거쳐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일간지 편집인, 공장 노동자, 프리랜서 작가, 번역자로 일하면서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등 많은 철학가와 작가의 작품을 독일어에서 헝가리어로 번역, 소개했으며 1973년에는 13년간의 집필 기간을 걸친 첫 소설『운명』을 탈고한다. 이후 의미상 속편에 해당하는『좌절』,『태
1929년 부다페스트에서 목재상을 하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숙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유대인 박해에 의해 열네 살의 나이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악명 높은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와 차이츠 수용소를 거쳐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일간지 편집인, 공장 노동자, 프리랜서 작가, 번역자로 일하면서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등 많은 철학가와 작가의 작품을 독일어에서 헝가리어로 번역, 소개했으며 1973년에는 13년간의 집필 기간을 걸친 첫 소설『운명』을 탈고한다.

이후 의미상 속편에 해당하는『좌절』,『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등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소로스 재단상, 라이프치히 문학상, 헤르더 상에 이어 200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듬해『청산』으로 ‘운명 4부작’을 완성한다. 문학과 인류에 대한 공훈을 인정받아 헝가리 최고의 훈장인 성 이슈트반 훈장을 받았고 2016년 향년 86세의 나이로 부다페스트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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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정진석
경복고, 서울대 사범대 독어과 졸업. 독일 함부르크대학 박사학위 취득 (논문 제목:「“아우슈비츠 이후의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하여: 귄터그라스의 시, 소설“양철북”과 파울첼란의 후기작품 비교연구」) 현 고교교사, 서울대 강사.
저자 : 임레 케르테스 Imre Kertesz
1929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하였고, 1944년 15세 소년으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1975년 나치의 강제수용소 체험을 다룬 소설 『운명』(원제:SORSTALANSAG)을 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어서, 『좌절』(1988)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1990)를 발표함으로써 ‘운명’ 삼부작을 완성하였다. 브란덴브루크 문학상(1995), 라이프치히 서적상(1997), 벨트 문학상(2000)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2002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4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512g | 155*218*20mm
ISBN13
9788989805182

출판사 리뷰

아우슈비츠 이후의 실존에 던지는 독백
여기 한 사람이 있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만행이라는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지금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묻고 있다. 그의 몸 속 세포 하나 하나엔 아우슈비츠의 체험이 지울 수 없는 경악과 충격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세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우슈비츠의 만행을 주도한 나치가 사라졌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왔는가? 인류는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을 때 경악했다. 찬란한 인간 이성의 토대 위에 건설된 문명 세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쉽게 해답을 찾았다. 나치라는 거악(巨惡)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천인공노할 나치 집단의 책임이고, 그 거악을 선의 이름으로 심판하면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리라 믿었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쉬운 답이 어디 있겠는가? 원래 인간은 단순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붙들고 늘어지기보다는 누가 쉽게 설명을 해주길 바라고, 그 설명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싶어한다. 이럴 때 선악의 구분에 따른 해석만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만행은 모두 악의 소행이고, 우린 아무 잘못이 없다. 그 악만 처단하면 세상은 다시 평화로워진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으로 사람들은 인간끼리 저지른 야만을 쉽사리 잊고 쉽사리 위안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케르테스는 『기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만행은 우리에게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로 간’ 것이라고. 그러기에 아우슈비츠에서도 행복을 느꼈다는 말로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왜 불편하게 느끼는지를 스스로 되묻게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주위를 되돌아보자. 선의 이름으로, 선으로 포장된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야만적인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가? 전쟁과 학살과 기아가 끊이질 않고, 이 순간에도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또다시 만행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를 향해 작가는 분명한 목소리로 외친다. 아우슈비츠의 원인은 선악의 이분법적 분석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있고, 현재도 아우슈비츠의 상황은 끝나지 않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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