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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이야기 / 탱고를 추는 나무
탱고를 추는 나무 아름다운 비행은 꿈이 아니다 모든 것이 쳐져있다 내 집을 나간 말 네모난 세상 여자는 물이다 화분 속, 봄을 키우는 지렁이 가장 중요한 일 귀걸이 고리를 잃어버리다 얼음 만들기 ... 두번째이야기 /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집 배롱나무꽃 연날리기 수박으로 오신 아버지 바람 아닐까 원피스를 위하여 아버지의 외투 어머니에 들어서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엄마의 거대한 손 ... 세번째이야기 / 그 여자 구름과 자고 있네 그 여자 구름과 자고 있네 레드와인 울산바위 연 1 연 2 매미 이오이오, 울다 사람 능소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민들레 나비의 결혼 비행 ... 네번재이야기 / 청둥오리 떼를 보며 청둥오리 떼를 보며 가게를 하다보면 수족관 도다리 겨울 입구에서 봄을 준비하다 앉은키가 같은 사람들 나는 거대한 선물이다 사과를 하고 싶었다, 사과 아무렴, 무서운 소리고 말고 실내포장마차 작품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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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를 추는 나무
콜라텍이라도 다녀왔나, 저 나무 안개비 속에 어룽져 몸의 중심이 기우뚱 굽어지며 기울어지고 빙글빙글 바람에 흔들어대는 저 몸짓 세련된 척 하던 그전 춤이 아니네 제 몸 문질러 질퍽거리는 한 세상과 비벼대며 한 몸으로 섞이고 있네 확 꺾여지고 휘돌고 일어서고 어쩌다 언뜻 비추는 햇살에 찡긋 눈 감기도 하고 다시 고꾸라져도 정교하게 균형 잡고 일어서는 삶으로만 오롯한 저 춤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며 추던 어제의 춤이 아니네 다쳐도 좋다네, 뒤틀다 넘어져도 좋다네 곤두박질치면 한달음에 튕겨 오를 생의 근력도 운명으로만 만들어지는 것 영혼의 뿌리가 엉켜 넘어지면 탱고라지 하나가 다시 둘로 솟구쳐 오르는 --- p.13 아버지의 집 햇빛으로 집을 지으셨다 오십 년을 한 자리에서 우물을 파셨다 날줄과 씨줄로 엮은 바람은 울타리로 쓰셨다 그 집에서 돼지와 오리를 기르셨다 앞마당엔 감나무와 앵두를 뒤 텃밭엔 이슬방울 매달린 토란잎을 가꾸셨다 그 집에서 탯줄을 잘랐던 나는 핀치기로 햇빛을 따내어 유년의 앞마당을 채웠다 여섯 자식이 문 열고 나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나가시고 햇빛만 남았다 --- p.39 그 여자 구름과 자고 있네 그 여자, 슬몃 호수에 발을 담근다 해발 몇 천 미터를 떠도는 구름 한 자락 하늘로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옆으로 돌아누운 반 팔 입은 여자의 어깨 위로 몸을 던진다 어느새 동그랗게 배를 불린 여자 네 계절이 모여 사는 호숫가에서 출렁이는 여자, 잔잔하게도 거칠게도 바람을 호흡하는 여자 내 안에서 빠져나간 구름 같은 여자 --- p.67 청둥오리 떼를 보며 치킨 튀기는 냄새 지겨운 날이었어 휴일도 없는 가게 박차고 여주 신륵사에 갔더랬지 근심일랑 다 털어 버리고 쉬려는데 남한강에 노니는 청둥오리 떼를 보는 순간 너흰 차암 좋겠다아- 이토록 넓은 강변을 다 사용하고도 집세 걱정 안 해도 되니 너희들은 알고 있니? 이자 빚은 비 오고 바람 부는 날도 없다는 것 게다가 쉬는 날은 단 하루도 없고 청둥오리야, 하늘은 편애함이 없다는데 그렇게 유유히 노닐면서도 새끼는 잘 거두고 있니? 하루해는 일수도장처럼 오고 새벽 별을 봐야 마감하는 하루 어느새 은행빚이 나보다 먼저 신륵사에 와 청둥오리 떼를 보고 있었던 거였어 하지만 나도 알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참으로 한가로운 여인네로 볼 거라는 걸 삶은 늘 보이지 않는 아픔을 가지고 평화를 구하는 것이지 내가 청둥오리를 보고 부러워하듯 --- p.91 앉은키가 같은 사람들 신기한 일이다 키가 훌쩍 큰 남자와 보통인 여자가 들어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데 앉은키가 비슷하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신기하게도 앉아서 말할 때는 눈높이도 비슷하다 사람들이 여럿이 들어설 때는 각자 개성이 넘치지만 큰 테이블에 앉으면 신기하게도 고만고만하다 키가 비슷해지고 눈높이가 같아지고 어쩌면 숨소리도 웃음까지도 닮게 되는지 모른다 가끔 벤치에 앉은 남녀의 뒷모습에서 나란함이 주던 다정함을 이제야 알겠다 같은 눈높이에서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사랑은 --- p.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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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이다
키가 훌쩍 큰 남자와 보통인 여자가 들어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데 앉은키가 비슷하다 만약 시인도 삶에 대한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다면 , 허무의 목소리로 “모든 것이 헛되고, 모든 것이 똑같고, 모든 것이 지나간 것이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명덕은 지금 생의 근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세련된 척 하던 가식을 벗고 질퍽거리는 세상과 몸으로 섞이고 부딪치며 삶으로 오롯한 미학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몸을 묶고 있는 지상의 끈과 상승의지 사이의 길항, 그리고 좌절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는 시 중에도 좋은 시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명덕 시의 미덕은 삶의 얼룩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데 있는 것 같다. 앉은뱅이 채송화처럼 제 키보다 낮은 자세로 사는 동안 만나게 되는 따뜻함, 육친에 대한 애틋한 연민, 삶의 뜨거운 온기, 생활의 땀 냄새 묻어나는 시 중에 좋은 시가 많다. -도종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