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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9편의 이야기 형제 플라이셔 대위를 위한 기념사 딸 첫 시간 예수왕두취케 바닷가의 오전 더 아름답게 살기 바람 부는 섬들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 옮긴이 해설·'자유를 향한 도주'의 작가, 안더쉬 작가 연보 기획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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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에 도착해야 했다. 아버지처럼 해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는 떠나려 했으나, 그저 목표 없이 대양에서 떠돌았을 뿐이었다. 누군가 대양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냥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 대양을 넘어 어딘가 다른 나라에 도착을 한 후에야, 떠났다고 할 수 있는 거야, 소년은 생각했다. --- p.12
내가 도주할 수 있을지, 그것은 바다에 달려 있지 않아. 바다는 짊어질 뿐이다. 그것은 항해사와 선장에,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뱃사람들에게 달려 있고, 그들의 용기나 돈에 대한 욕심에 달려 있고, 만약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뱃사람들이 없다면, 레리크에 있는 당의 동무에게 달려 있고, 동무가 가진 어선에 달려 있다. 그들의 시선과 생각, 그들의 시선이 어떤 모험을 겨냥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가볍게 돛을 올릴 수 있게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인간보다는 바다에 의해 결정되는 게 쉬우리라고 그레고어는 생각했다. --- p.13 단지 우리 셋만 떠나려 한다. 나, 수도원생, 저 처녀. 그러나 차이가 있다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나와 저 둘 사이에는. 나는 떠나고 싶은 것이지만, 그들은 떠나야만 한다. 나는 집단수용소의,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머무를지 또는 떠나야 할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도주냐 순교냐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할 수 없다. 그들은 버림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 p.72 그 순간 목사는 왜 자신이 총을 쏘기로 결심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권총을 발사함으로써 이 세계의 경직과 황량함을 폭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권총에서 불꽃이 튀는 동안 세계는 단지 몇 초 동안이라도 생생하게 살아 있으리라.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목사는 생각했다. 내가 신을 징계하기 위해 총을 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신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총을 쏘도록 허락한 것이다. --- pp.177~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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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소설 속에서 “다른 자”들로 표현된 나치 정권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1937년의 가을, 독일 북쪽 발트 해의 작은 항구 레리크에서 우연히 여섯 인물이?그중 하나는 목각상?만나 ‘자유로의 도주’를 이루어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 유대인에 대한 체계적?조직적 말살 계획이 진행되고, 공산당 활동을 비롯하여 나치에 비판적인 모든 활동이 금지되고 박해받고 있던 그 때, 이 여섯 인물은 “다른 자”들의 정권 밑에서 모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소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매일 똑같은 생각만 하며, 증명서라는 장치로 소년의 세계를 통제하는 '어른들'의 늪인 작은 포구와, 그곳의 지루하며 확정된 삶을 견딜 수 없다. 그는 바로 그런 현실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했다고 생각하며, 방치되어 있는 낡은 제혁공장에 작은 비밀장소를 마련해놓고 『허클베리 핀』 『보물섬』 『모비 딕』 등의 책을 읽으며, 그곳을 벗어나 대양을 거쳐 미지의 땅, 잔지바르로 떠나는 모험을 꿈꾸고 있다. 소년을 견습생으로 두고 있는 늙은 공산당원인 어부 크누트센. 그는 “총을 들어 쏘지” 않는, 패배한 자신의 당과 결별하고, 그의 아내가 정신병자라며 수용소로 끌어가려는 “다른 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물고기나 잡으며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의 지령을 전달할 자가 나타날 것이란 소식은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늙은 어부에게 당의 지령을 전달하기 위해 레리크를 찾아오는 공산당 청년연맹의 지도원인 그레고어. 그는 독일 내 공산당의 실패 후 소련에서 기관원으로 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되기도 하지만, 공산당 잔인한 숙청 방법을 체험하면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레리크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에 회의를 느끼며 공산당과 “다른 자”들의 나라를 벗어나 명령이 없는 자유로운 세계로 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도주 외에는 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유대인 처녀 유디트. 그녀는 집단수용소에 끌려가기 직전, 독약을 마시며 딸에게 도주의 길을 열어준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레리크의 부두에서 외국으로 도주할 배를 찾아야 한다. 목사 헬란더는 오랫동안 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지만, 신은 교회마저 “다른 자”들에게 점령당한 그 가공할 현실에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멀리 ‘오리온 좌에서나 서성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자”들에 의해 퇴폐적 예술로 낙인찍힌 조각상 「책 읽는 수도원생」이 교회에서 압수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조각상 「책 읽는 수도원생」. 이 목각상은 조각가 에른스트 바르라하Ernst Barlach의 작품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바르라하는 나치에 의해 작품 활동이 금지되었던 조각가이다. 이 소설에서 조각상은 사고와 행위의 자유를 상징하며, 조각상의 구출이란 목표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연결고리가 형성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 「형제」 2차대전의 발발을 알리는 1939년 가을의 어느 일요일, 엘베 강가를 산책하는 형제의 이야기다. 이 형제가 강가를 산책하며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대부분 형제들이 나눌 수 있는 일상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날씨, 직업적인 미래, 하고 싶은 일들과 형제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작은 갈등 등이 이어지고, 항구에 비행편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전쟁이 일어날 것인지, 그렇게 되면 그들은 징집이 될 것인지에 대한 대화도 특별한 무게가 실리지 않은 채 진행된다. 「플라이셔 대위를 위한 기념사」 2차대전에서 포로가 되어 미국으로 이송된 독일군 키인을 중심으로 독일군들의 포로생활과, 미국에 정착한 독일계 유대인임을 이름으로 암시하는 군의관 플라이셔와의 만남을 기술하고 있다. 「딸」 스위스 의사 벵거가 열여섯 살의 어린 딸을 영국의 옥스퍼드에 있는 언어기숙학교에 데려다주는 여행을 기술하고 있는데, 딸과의 서먹한 관계, 아버지로서의 몰이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 등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무능함을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간」 실수로 살인을 하게 된 엘러스가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다음 출소하는 첫날의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이날을 준비해온 그가 시내로 들어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킹두취케」 1968년 4월 학생운동의 지도적 역할은 해 온 두취케가 총격을 당하자, 학생들은 그동안 학생운동을 좌익불순세력의 폭력운동이라면서 주동자들의 타도를 외쳐온 우익언론 악셀―슈프링거의 사주라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는데, 이 작품은 이 시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의 곤봉에 의해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친구를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중심이 되어 있다. 「바닷가의 오전」 도르트문트 건설국의 관리인 ‘그’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의 바닷가에서 휴가여행을 하고 있다. 공무원으로 안정된 수입을 가지고, 소시민이 꿈꾸는 집과 자동차 등 모든 것을 소유하고 휴가여행까지도 즐길 수 있는 그는 자신이 도달한 것이 만족을 느끼고 있는데, 수영금지의 깃발이 올라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에 휘말리게 된다. 「더 아름답게 살기」 2차대전 후, 경제복구의 시기에 냄비와 주방기구를 생산하는 회사를 창업하여 부를 축적한 법학박사 린스는 회사의 운영에서 물러나, 방금 사들인 아일랜드의 집에서 칩거를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칩거의 목적은 오로지 그동안 수집한 미술품들과 함께 자신의 문화적 욕구에 따라 살기 위함으로, 그것을 위해 어떻게 집을 개조할 것인지 등 세밀한 계획을 세우는데, 과연 그가 그것을 실천하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바람 부는 섬들」 공산당 청년연맹에서 활동하다가 나치에 의해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풀려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놀고 있던 키인은 우연히 영국 신사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뮌헨 시를 안내하게 된다. 그 신사는 영국 식민지에서 민간 총독까지 지낸 고위 관리다. 그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키인은 다시 자신의 과거와 나치가 지배하는 현재와 대면하게 되는데,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 영국 신사는 나치 정권에 중립적인 자세를 보인다.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 미국의 독문학과에 초대되어 낭독과 독일문학에 대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 서독의 작가 T의 실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 T는 2차대전 당시 미군의 포로로 미국에 수용된 적이 있어, 그곳을 다시 방문해보지만 예상과는 달리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자신이 머물고 있던 프로비던스의 대학 주변의 주택가를 서성이다가 빨간 칠이 된 집에 매료되어 들어간 후, 주인 부부에 의해 납치를 당한다. T는 자신이 납치되어 감금된 상태, 자신을 납치한 그 부부와의 관계 등을 ‘나’라는 1인칭 화자의 소설로 구상하는데,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은 바로 그 구상의 과정과 기술된 문장도 부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작가의 작업 현장을 엿보는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감금된 작가 T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발적으로 감금 상태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작가 T가 구상하는 소설을 끝내게 되는지, 그가 감금 상태에서 풀려나게 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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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으로서의 도주’를 가르치는 지침서
독일 전후 문단의 문제적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의 대표작 독일 전후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의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의 82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안더쉬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Sansibar oder der letzte Grund』(1957)와 중단편소설집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Mein Verschwinden in Providence』(1971)을 한 권으로 묶어 수록하였다. 알프레트 안더쉬는 1914년에 뮌헨에서 태어나 1980년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나치 정권의 물질적?정신적 폐허였던 독일에서 전후 문학이 다시 정립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로, 소설가·시인·방송극작가·잡지 발행인·에세이스트·여행기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산당에 가입하여 나치의 박해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탈영한 뒤 미군의 포로가 되어 미국에 수용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고 독일로 돌아온 그는 독일 내 민주적 시민사회의 실현을 위해 발간한 잡지 때문에 오히려 미군정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당시 젊은 작가의 모임이었던 ‘47그룹’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늘 비판적 지성인의 양심을 지키면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해온 작가로서 독자와 동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고, 존경도 받았다. 안더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는 나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1937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독일 북쪽 발트 해의 작은 항구 레리크에서 나치의 폭압 정권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주해야 하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서로 만나 배신하고 갈등하다 결국 신뢰의 회복을 통해 ‘자유로의 도주’를 이루어내는 37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매일 똑같은 생각만 하는 “어른들”의 늪인 작은 마을 레리크를 벗어나 대양으로, 잔지바르를 향해 떠나는 모험을 꿈꾸고 있다. 소년을 견습생으로 두고 있는 늙은 공산당원인 어부 크누트센은 이제는 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당의 접선자를 만나기 위해 고기잡이의 출범을 늦추고 있는데, 그 부둣가에 유대인 처녀 유디트가 나타난다. 그녀는 집단수용소에 끌려가기 직전, 독약을 마시며 딸에게 도주의 길을 열어준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외국으로 도주할 배를 찾으려 한다. 거의 동일한 시간에, 나치의 추적을 받고 있는 독일 공산당 청년연맹의 지도원인 그레고어는 당의 지령에 따라 어부 크누트센을 만나기 위해 레리크에 나타나지만, 사실은 그도 공산당과 나치를 벗어나 명령이 없는 자유로운 세계로 떠나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나치에 의해 퇴폐적 예술로 낙인된 목각상 「독서하는 수도원생」이 교회에서 압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부 크누크센에게 도움을 청하는 목사 헬란더, 그는 침묵하는 신에게 저항하며 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작품은 이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소리가 죽어버린 빈 공간,’ ‘제복 속의 살덩어리들이 배회하는 무(無)의 공간’에서 어떻게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며, 아름다움과 섬세함으로 상징되는 유디트와, 사고와 학문의 자유·비판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목각상을 구출해내는지를 보여준다. 안더쉬는 절제된 문체과 탄탄한 구성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강렬한 저항을 숨 막히게 그려내고 있다. 195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안더쉬를 단숨에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지금도 독일 김나지움의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현대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모범적 작품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참고로 ‘잔지바르’는 인도양에 보석처럼 떠 있는 탄자니아령 섬으로, 작품 속에서 소년은 ‘잔지바르라는 섬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레리크를 떠나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중 마지막 이유로 꼽고 있다.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은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표제작 「프로비던스에서 나의 실종」을 포함해 안더쉬가 1968~1971년 사이에 쓴 중단편소설 9편을 수록하고 있다. 안더쉬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토마스 만을 계승하는 사실주의 작가라는 평을 받는데, 이 작품집은 현대적 의미의 사실주의적 글쓰기의 여러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