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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제1부 근대 사상과 불교 1. 일본의 근대는 왜 불교를 필요로 했는가 일본 근대의 중층성│나쓰메 소세키의 경우│‘개체’와 ‘개체를 초월한 존재’│ 근대 불교가 담당했던 것│니시다철학의 과제 2. 안으로의 침잠은 타자에게 향할 수 있는가─메이지 후기 불교 사상이 제기한 문제 근대불교에 대한 시각│절대천황제하의 불교│무한책임과 무책임─기요자와 만시의 경우│스즈키 다이세쓰는 호전적인가│다양한 가능성 3. 교토학파와 불교 전쟁과 교토학파│교토학파관의 변모│조금 다른 형태로│아시아라는 시각에서 4. 아사세 콤플렉스론을 둘러싸고 아사세 콤플렉스란│아사세 이야기의 전개│아사세 콤플렉스 재고 제2부 해석의 지평 1. 와쓰지 데쓰로의 원시불교론 와쓰지 데쓰로의 고전 연구│와쓰지 데쓰로의 원시불교론│와쓰지의 불교 해석의 문제점 2. 마루야마 마사오의 불교론─‘원형=고층’에서 세계종교로 ‘전통’의 형성을 향하여│마루야마 사상사의 형성│원형=고층론의 문제│고대 사상의 전개와 불교│고대불교론│가마쿠라 불교론│결어가 될 수 없는 결어 3.『탄이초』의 현대─야마오리 데쓰오의『악과 왕생』에 붙여 야마오리 데쓰오가 제기한 문제│악과 악인│유이엔은 유다인가│신란에서 조몬으로│또하나의 신란상│보충과 전망 제3부 불교 연구에 대한 비판적 시점 1. 불교사를 넘어서 역사와 가치│‘일본적’인 것을 넘어서 2. 비판불교가 제기하는 문제 비판불교란 무엇인가│비판불교의 논점│비판불교의 파문│이후의 과제 3. 일본에서 선학의 전개와 전망 근대 선의 형성│스즈키 다이세쓰에서 근대 선학의 형성│교토학파의 선철학│선적의 문헌적 역사적 연구│근년에 있어 비판적 선 연구 4. 아카데미즘 불교학의 전개와 문제점─도쿄제국대학의 경우를 중심으로 제1기─전임 강좌 개설까지│제2기─전임 강좌 개설에서 패전까지│제3기─전후│불교학의 가능성 제4부 아시아와의 관련 1. 근대불교와 아시아─최근의 연구 동향으로부터 『사상』특집호로부터│선구적인 연구│중국인 연구자의 최신 연구│넓은 시야에서 2. 일중 비교로 본 근대불교 중국의 경우│일본의 경우│일중 근대불교 비교 3. 일본 침략하의 중국불교 일본 침략하의 중국불교─잡지를 단서로 하여│타이쉬의 항일 활동과 그 사상│항일불교의 전개─러관의『분신집』을 중심으로 4. 오카와 슈메이와 일본의 아시아주의 아시아주의의 곡절─다케우치 요시미의 논의로부터│아시아주의의 이상과 좌절│오카와 슈메이의 경우│아시아의 가능성 후기│근대 일본불교사 연표 참고문헌│원문출처 옮긴이 후기│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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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부상했던 것이 불교였다. 신도는 논리가 너무나 취약하며, 또한 정치적인 천황숭배를 넘어서지 못한다. 유교는 전근대의 봉건적 위계질서의 연속성이 너무나 강하다. 그 가운데 전통적인 전근대의 사상이며, 게다가 근대적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사상으로 변형 가능하며, 해석 가능한 유일한 사상이 불교였다. 근대의 불교는 실로 일본의 근대 사상에 부과되었던 세 개의 과제 즉, 전근대적?전통적임과 함께 근대적이며 동시에 포스트 근대적이라는 삼중성을 담당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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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통한 새로운 사유는 가능한가·
―근대 일본불교의 사상과 역사적 공과를 분석한 비판적 연구서! 오늘날 불교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사상적·정신적 가치로 읽히고 있다. 반전(反戰)과 생태의 문제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고, 선(禪) 수행을 통한 영성 훈련이 각광받고 있으며, 초기불교와 중관·유식 등의 대승경전 사상뿐 아니라 근대 시기에 대한 연구도 점차 확산되고 있어 학문적인 기반 또한 마련한 시점이다. 이렇게 불교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이 책 ··근대 일본과 불교··를 출간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불교가 어떤 사상적 역량을 갖고 있었기에 근대 시기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 현재에도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특히 일본의 근대는 서구의 학문을 일찍부터 수용하면서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불교 역시 학문적인 체계화를 시도한 시기였다. 근대성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개체성’에 천착할 수 있는 전통사상으로서 인정받으면서도, 오히려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탈근대’의 이념으로까지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제국주의 파시즘에 복무하여 천황제를 옹호하고 침략전쟁을 긍정하며 대동아의 이상을 설파하는 데 이르는 등, 그 문제점 또한 적지 않았다. 한국 근대불교는 이런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친일과 구국 사이를 방황하며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 나갔고, 또한 다른 많은 학문과 문화가 그렇듯 일본의 근대는 한국 근대의 거울상처럼 기능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 일본불교를 바라보는 것은 곧 한국 근대불교의 기원을 되돌아보는 것과 같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각 시기별로 나눠 일본불교가 근대를 헤쳐 가는 과정, 교토학파와 도쿄대학 등 근대 아카데미에서 불교를 수용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양상, 와쓰지 데쓰로·마루야마 마사오·스즈키 다이세쓰 등 일본 지식인들의 불교 사상론, 동아시아 3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일본불교가 행한 역할을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일본 근대불교의 다양한 상을 보여 줌으로써 공과 과를 밝히고 있으며, 무엇보다 근대사상으로 발전한 일본불교의 특이점과, 정치·사회적인 문제와 결부된 이중적 기능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 불교가 유행처럼 일어나는 이 시기에, 이 책은 좀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근대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을 세우게 해주며, 사상적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는 불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막다른 시대가 불교를 부르다 불교는 이미 일본의 전통 사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과거의 사상이란 의미에서의 전통 사상이 아닌 전근대와 근대를, 근대와 포스트 근대를 잇는 전통 사상으로서 그 역할이 재조명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였다. 이 책은 메이지 시대, 일청·일러전쟁기 이후, 태평양전쟁 이후를 그것으로 보고 이 시대의 공통점을 추론해 낸다. 그것은 세 시기가 모두 정치적인 격변이 몰아친 직후로 정치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고 종교 사상에서 시대의 해법을 찾고자 했던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부각된 것이 바로 불교였다. 메이지 시대의 불교(1868~1894) 메이지 초기는 일본불교사 최고의 암흑기였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불교는 토속 신앙인 신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를 일컬어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부로부터 되찾은 천황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는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는 신도를 우선시하고 불교를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서구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자유 민권 등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정치 사상이 유입된 때이기도 했다. 이에 대응하기에 신도로는 논리가 너무나 빈약했다. 서구에 맞서 일본을 지켜낼 만한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사상, 그러면서도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사상, 그것은 불교였다. 메이지 22년(1889) 대일본제국헌법이 제정되고 종교의 자유가 천명되면서 비로소 불교가 국가로부터 종교로 인정받은 데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의 인정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만 허락된다. 철학자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가 교육칙어의 해설서 격인 ··칙어연의··(勅語衍義)를 저술한 뒤 촉발된 ‘교육과 종교의 충돌’ 논쟁에서 그리스도교는 국가도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게 된다. 이노우에가 내세운 근거는 그리스도는 세간문의 도덕이 아닌 출세간의 도덕이며, 내세에 치중하고 있고, 무차별적 사랑을 설하며, 충효를 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상당 부분 불교의 교리와 겹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불교계는 이에 대해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그리스도교 측조차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그리스도교가 국가도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해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근대 일본불교계 역시 국가에 영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찾지는 못하였다. 이로써 일본불교계는 근대기에 불교가 부흥할 수 있었던 첫번째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일청·일러전쟁기 이후의 불교―다이쇼데모크라시의 좌절(1894~1945) 메이지 시대의 절대천황제하에서 직접적인 대응 방법을 찾지 못했던 불교가들에게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견고한 ‘개체의 확립’이었다. 천황제 파시즘의 벽에 부딪혀 사회운동은 좌절되고 있었고, 나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그것이 비록 자국의 승리로 끝난다 해도 개인에게는 생사가 달린 실존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불안한 개체들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은 종교뿐이었다. 일본에서 이를 해결할 전통사상으로서 요청된 것이 바로 불교였다. 정토종의 기요자와 만시(淸澤滿之), 일련주의의 다카야마 조규(高山樗牛), 선의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등 이들은 모두 내면에 집중하여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을 통해 해답을 찾고자 했다. 정신주의운동의 주창자, 기요자와 만시는 종교적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부모와 국가도 버리고 자기 자신까지 버리고 무한대비의 여래에게 의지하라고 했다. 선을 국제화하는 데 기여한 스즈키 다이세쓰는 “개인적 존재의 질곡을 탈각하여 우주의 영기를 호흡하고자 하는 정(情)”이 종교적 감정이라고 설하며 개인의 유한성을 탈피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독립된 개체는 결코 독립되지 못한 채 보다 위대한 존재 속으로 숨어 버리고 만다. 여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 기요자와 만시는 세속의 사회적 책임까지 여래에게 전가하여 “국가에 일이 있을 때는 총을 메고 전쟁에 나가도 좋고, 효행도 좋고, 애국도 좋다”(44쪽)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스즈키 다이세쓰 역시 “국가를 위하는 것이 곧 종교를 위하는 것”(49쪽)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내면으로의 침잠이 결국 자기를 해소시키고 타자를 해소시키며, 자타의 구별, 종교와 국가의 구별도 사라지게 만들어 버려 이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항한 논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로써 기요자와 만시의 문하들과 스즈키 다이세쓰는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것이 근대 일본불교가 경험한 두번째 실패였다. 전후의 불교―전공투의 좌절까지(1945~ )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자연스레 제도적 천황제 파시즘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종전이 사상적 혼란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천황제 파시즘의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던 맑스주의가 진보사관으로 기능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막스 베버의 영향을 받은 근대적 합리주의자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교리의 합리화 면에서 가마쿠라 불교를 일본 최고의 불교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일본불교를 역사상 최초로 ‘원형’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로서 높이 평가한다. 그가 가리키는 원형이란 일본적인 사고방식의 근원으로서, 일본 사회·사상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일본 사회에서 이 원형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보편주의적 세계로 나아가려고 했던 인물을 쇼토쿠 태자(聖德太子)로 보았고, 그것이 제대로 발휘된 것은 가마쿠라 불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쇼토쿠 태자나 가마쿠라 불교기에 활약했던 도겐, 신란, 니치렌 등의 승려들은 일본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야말로 일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적’이라고 여겨지는 원형의 폐쇄적이고 무책임한 시스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불교의 보편성과 토착화의 중층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원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는 가능한가, 원형과의 ‘굴절과 타협’을 거듭하면서도 이상의 실현은 가능한가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전후에서 맑스주의의 붕괴까지 일본적 사유의 문제를 재사유한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불교를 부르다 2009년 8월 30일, 일본 정치계에 이변이 일어났다. 1955년 이래 54년 동안 일본 정치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자민당이 엄청난 표 차이로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만 것이다. 일대 정치변혁이라 할 수 있는 이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정치질서를 원한 일본 국민들의 표심 이면에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상에 대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가 시장을 장악하여 민영화의 바람은 끊이지 않고, 버블경제 붕괴 이후 지금도 여전히 저성장·고실업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일본인들이 택한 건 일당독재에 대한 전복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일본인이 문제제기하는 것은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예컨대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의문일지도 모른다. 현 사회의 문제를 정치 방식의 문제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개인과 공동체에 관한 사유의 빈곤에서 귀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과거에 무자각인 채로, 지니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지”(340쪽) 않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정치가 아니라 과거에 관한 성찰이며, 공동체의 미래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사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아직 불교가 유효한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현재를 말하면서 근대의 불교를 논하는가· 그것은 전통과 근대(현대)는 그리고 근대와 지금의 현실은 결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이며, 전통사상은 근대사상이 갖지 못한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카이 사토시(·飼哲)와 모리 다쓰야(森達也) 같은 현대 사상가들이 사형제도를 논하면서 불교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비’와 ‘불살생’에 기반한 불교사상이 근대제도의 냉혹한 형법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내면(마음의 문제)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깨달음을 설파하며, 전 인류의 관점에서 연기를 설하는 불교의 관점은 딱 떨어지는 ‘개체성’의 논리와 ‘인간중심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근대성의 폐해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렇게 보자면 근대 일본불교가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겪은 좌절은 현재 시점에선 다른 방식으로 계승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근대 이후 반복되고 있는 침략전쟁에 대해서 효과적인 사상적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불교와 일본 파시즘의 관계를 해명하고, 그것을 넘어 다양한 일본 근대불교의 면면을 보여 주는 이 책은, 막다른 시대가 개인을 좌절로 몰아넣고 그 개인들이 사회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 불교를 다시 보게 하는 의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