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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야성의 회복
전병욱
규장 200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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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개정판의 프롤로그

1부 거룩한 야성을 무너뜨리는, 가증스러운 악惡
1장 눈앞의 이익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
2장 오만불손한 작태로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다
3장 세속 물결에 휩쓸려 맥없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
4장 음란과 타락의 극치로 정결을 짓밟아 하나님을 진노케 한다
5장 세상 자랑에 취해 하나님 아는 지식을 업신여긴다

2부 하늘의 진리로 이 시대를 평정하는 힘, 믿음의 야성 회복
6장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을 깨고 사랑의 법칙을 실천하라
7장 하나님과 바알을 양다리 걸치는 영적 혼합주의를 배격하라
8장 패역하고 메마른 시대에 복음의 씨를 뿌려라
9장 최후 수단이 아닌 유일무이한 하나님 카드를 붙들라
10장 달콤한 우상숭배의 유혹을 물리쳐 성결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田炳旭

삼일교회의 담임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단순하고도 분명한 삶의 기준이 필요하다는_평소 지론대로 단순명쾌한 글쓰기를 지향해왔으며, 출간한 책마다 수많은 해외 번역서를 제끼고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가 됐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1994년 삼일교회에 부임한 후 청년 부흥 사역에 새 바람을 일으켜왔으며, 발로 뛴 그 생생한 기록들은 속속들이 저서로 출간되어 많은 교회들에 청년 부흥의 열망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새벽무릎』『파워 로마서』『파워 전도서』『주례사 소프트 2』『파워 크리스천』『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마른뼈도 살아날 수 있다』『낙타무릎』
삼일교회의 담임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단순하고도 분명한 삶의 기준이 필요하다는_평소 지론대로 단순명쾌한 글쓰기를 지향해왔으며, 출간한 책마다 수많은 해외 번역서를 제끼고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가 됐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1994년 삼일교회에 부임한 후 청년 부흥 사역에 새 바람을 일으켜왔으며, 발로 뛴 그 생생한 기록들은 속속들이 저서로 출간되어 많은 교회들에 청년 부흥의 열망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새벽무릎』『파워 로마서』『파워 전도서』『주례사 소프트 2』『파워 크리스천』『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마른뼈도 살아날 수 있다』『낙타무릎』『파워인생 1,2,3,4,5』『부흥 com』『비전무릎』『꿈』『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이라』『153 1,2』『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히스기야의 기도』『강점으로 일하라』『GOOD NEWS(굿뉴스)』『어린이 굿뉴스』『영적 강자의 조건』『약해도 쓰임받을 수 있다』『지금 미래를 결정하라』『청년 리더의 조건』『하늘을 감동시킨 일천번제 예배자』『거룩한 야성의 회복』『삼색영성』『울어야 산다』『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삼색기도』『생명력』『집중력』『사랑으로』『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히스기야의 기도』『강점으로 일하라』『영적 강자의 조건』『울어야 산다』『파워 전도서』『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청년 리더의 조건』『다시 시작하는 힘』『돌파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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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06쪽 | 184g | 120*160*20mm
ISBN13
9788960971318

출판사 리뷰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_호 6:1-3

"Come, let us return to the LORD. He has torn us to pieces but he will heal us; he has injured us but he will bind up our wounds. After two days he will revive us; on the third day he will restore us, that we may live in his presence.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_ Hosea 6:1-3


[프롤로그]

광야의 힘으로

믿음의 야성을 회복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지극히 크고 중요한 명령이라는 의미로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고 한다. 이 지상명령은 ‘온 천하’, ‘다니며’, ‘전파하라’라는 주요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온 천하’란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닥치는 대로’ 전하라는 것이다. 복음 전파는 그 대상을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선호도에 관계없이 해야 한다.
둘째, ‘다니며’란 복음의 이동성을 말하는 단어이다. 복음은 움직이는 것이다. 복음은 움직일 때 그 능력이 드러난다. 복음은 머무르면 썩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항상 이사를 다녔다. 움직일 때 그의 믿음이 드러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이동시키며 훈련시키셨다. 특히 범죄한 그들을 회복시키신 방법이 ‘바벨론의 포로’라는 방법이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오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능력도 핍박으로 인해 도망 다닐 때에 드러났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1,4).
셋째, ‘전파하라’라는 단어는 ‘대화하라, 설득하라’는 뜻이 아니다. 상황에 관계없이 ‘외치라, 증거하라’는 뜻이다.

야성 앞에 징크스 없다
그러면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한 절대 조건은 무엇인가? ‘믿음의 야성’이다. 이것 없이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고, 세상의 도전 앞에 결코 온전히 설 수 없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물치고 믿음의 야성이 없던 인물이 있었는가?
나는 자전거를 즐겨 탄다.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분당으로 심방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날씨 때문에 망설였는데 결국 동행한 두 사람과 눈보라를 뚫고 심방을 갔다. 돌아올 때는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도 신나는 기분으로 심방을 다녀왔다. 이 경험 이후에, 자전거를 탈 때 날씨는 내게 더 이상 변수가 될 수 없었다. 어떤 조건도 돌파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것이 야성이다.
“메모를 하고 싶을 때, 메모지가 있으면 필기구가 없고 필기구가 있으면 메모지가 없다. 또 메모지도 있고 필기구도 있을 때는 메모할 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징크스’라고 한다. 그러나 야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메모지만 있을 때, 시계를 풀어 종이 위에 긁어서 자국을 남기는 방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그렇게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또 필기구만 있을 때, 손바닥이나 팔뚝에 메모하는 사람을 보았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들에게 징크스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거룩한 야성의 발원지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야성을 갖춘 사람이다. 야성을 지닌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속한 분야는 다 변화된다. 문제는 신앙인 가운데 야성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의 야성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예배 체험과 광야 체험을 통해서 온다.

첫째, 예배 체험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복음서의 겁쟁이들(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행전의 담대한 증인들이 된 비결은 무엇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핍박자 사울이 복음 증거자 사도 바울로 변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배는 사람들의 가슴에 야성의 불을 지핀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갈 수 있다. 예배의 은혜가 없는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능력은 예배에 있었다. 마가 다락방의 기도회는 예배였다. 10일간의 예배 이후에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다. 예배의 폭발로 온 예루살렘을 뒤집어놓았다.
둘째, 광야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이끌려야 한다.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작은 도전 앞에 흔들린다. 그 이유는 광야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광야는 전혀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다. 보장이 없는 곳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핍절한 곳이다. 그래서 불안, 염려, 두려움이 엄습하는 곳이다. 거기서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내 삶의 보장이라고 외치는 곳이 광야이다. 이 광야는 물질적, 감정적, 영적인 모든 영역에서 존재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물들은 모두 광야 체험을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는 거친 광야성(曠野性)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모세가 애굽의 바로 앞에 서는 담대함과 용기는 어디서 왔는가? 광야가 그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다윗의 인격의 아름다움과 인내는 어디서 왔는가? 광야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내게도 물질적인 광야가 있었다. 교회 초창기에는 재정이 없어서 복사기도 못 샀다. 재정의 압박으로 인해 선교도 어려웠다. 그때 부르짖었다. 광야의 외침이었다.
“하나님, 선교는 가야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그때 책의 인세, 외부 강사, 뜻하지 않은 헌금 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다시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다. 바닥의 힘을 알아야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광야를 체험할 수 있다. 모든 관계가 다 무너져버린다. 밀려오는 외로움이 있다. 엘리야를 보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850 대 1의 싸움을 벌인다. 우리는 세 명만 힘을 합쳐서 공격해와도 왕따의식으로 괴로워하고 의기소침해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광야 체험을 한 사람은 대적을 향해 외치며 물리친다. 시편기자의 표현을 보라.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시 3:6,7).
의기소침이 아니라 오히려 악인의 이를 꺾는 것을 상상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는 나, 진리와 함께하는 나는 결코 약하지 않다.

영적 전쟁을 거쳐야 한다
광야를 통해 야성을 회복하려면 우리는 영적 전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영적 전쟁에는 ‘방어적 전쟁’과 ‘공격적 전쟁’이 있다.

첫째, 방어적 전쟁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싸움이다.
이 싸움의 영역은 질병, 빈곤, 실패의 경험과 같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종종 가정이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승리의 길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배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 싸움은 예배만 잘 드려도 승리한다. 그냥 자기 자리를 지키면 이긴다. 신앙을 유지하면 이긴다. 버티면 이긴다. 이미 이긴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그러나 이 싸움에는 위기가 있다. 싸움의 선택권이 내게 없다는 것이다. 마귀는 내가 컨디션이 나쁠 때도 공격한다. 그래서 일상의 신앙이 중요하다. 넘어져도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넘어지기 때문에 회복의 기회가 주어진다.

둘째, 공격적 전쟁은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우리가 먼저 거는 싸움이다. 성도는 이 싸움에 주력해야 한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나라를 위한 전쟁이다. 초자연적인 싸움이다. 이 싸움의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예를 들어 목포에 간다고 한다면 그냥 관광만 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회 먹고 세발 낙지 먹고, 유달산 돌고 오면 된다. 그러나 복음을 들고 선교의 목적으로 목포에 가면, 영적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하면 마귀를 멸하게 된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영적 이기주의는 무서운 것이다. 이것은 영적 위축을 낳는다. 영(쿧)은 바람이나 불과 같다. 움직여야 퍼진다. 움직여야 힘이 생긴다. 언제까지 방어적 전쟁만 할 것인가? 밤낮 병들고, 시험 들고, 문제만을 부르짖으며 살 것인가? 성도의 영광은 마귀를 멸하며 사는 것에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위한 싸움을 벌이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1-53).
믿음의 야성을 회복하려면 우리도 평탄한 안주를 벗어나 영적 싸움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거룩한 야성을 회복하라
거룩한 야성을 지닌 사람은 어떤 문제가 보이는 사람을 보고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냥 놓아둘 것인가? 말려야 한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멱살을 잡고라도 끌어내야 한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그냥 방치해두면 그 생활에 익숙해진다. 그들을 방치해둘 것인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건져내야 한다. 불난 집에서 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깨우는 것이 방해하는 것인가? 소리 질러야 한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물이라도 끼얹어야 한다.
익숙한 것이 복인가? 새벽에 자는 것이 익숙하다고 그냥 방치해둘 것인가? 아니다.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도록 깨워야 한다. 새벽을 깨우면 인생이 달라진다. 질적인 변화를 맛보게 된다. 그러므로 깨워야 한다. 세상을 깨워야 한다. 필요할 때는 ‘거룩한 간섭’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할 야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 시대를 살릴 영적 야성이 필요하다. 당신이 바로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 전병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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