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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랑은 힘겨운 노동 가정이라는 강제 수용소 불륜의 미학 행복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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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랑은 영혼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신의 영혼이 빈 껍질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는 겁니다.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반대가 아닙니다. 비극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실패가 아닙니다. 비정상입니다. (물론 ‘정상 상태’라는 개념은 현재까지 고안된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 관리 도구의 하나입니다.) 진단은? 그것은 결국 무서운 현대적 질환인 ‘깊은 애정 관계에 대한 두려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력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사회적으로 격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 p.39, ‘사랑은 힘겨운 노동’ 중에서
나중에 씻겠다고 밥 먹은 그릇들을 쌓아두면 안 됩니다. 음료수를 병째 입에 대고 마셔도 안 됩니다. 빵가루가 떨어지면 바닥을 닦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닦아내야 합니다. 나중에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을 분위기에 안 맞게 비꼬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무심하게 생각하는 일에 적당히 화를 내서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자신을 ‘팔방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뭘 고친다면서 수리공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 책만 들면 말을 걸기 시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독서를 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그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는 맘대로 책을 읽지 못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앞에 있으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기분이 나쁘면 꼬박꼬박 이유를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는 안 됩니다. --- pp.117~128, ‘가정이라는 강제 수용소’ 중에서 당신은 자신에게도 가능하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던 감정에 굴복하게 됩니다. 욕망할 수도 있고 욕망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잠깐이어도 그것을 굉장히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새로움에 따른 전율이 옵니다. 하지만 정말로 당신을 밤새도록 전화통에 붙들어 매어놓는 것은 이전에는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충만함과 깊이가 있는 영혼 때문에 불꽃이 튀는 대화입니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서로를 탐색해나가면서 깊은 관계를 쌓아가는 대화입니다. 정말로 당신을 밤새도록 전화통에 붙들어 매어놓는 것은 매우 다른 새로운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건 바로 당신 자신이죠. 새로운 사랑은 환상적인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당신에게 거울처럼 비쳐줍니다.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둘 모두에게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집니다. --- p.184, ‘불륜의 미학’ 중에서 만약에 90년대의 미국 정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경향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갖고 있던 전통적인 차이의 붕괴였고, 또한 공직자들의 개인적인 생활이 이 기간 동안에 나라를 위해 한층 강화된 공동체적 가치를 받아들였다면, 클린턴 탄핵 재판은 논리상 당연하고도 아마 필요하기까지 했던 이런 두 가지 경향의 정점이자 완성이었을 것입니다. … 클린턴이 자기 국민들의 죄를 대신해서 고통 받기 위해 선출됐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즉, 미국이 여자와 불장난하는 남편을 선거에서 뽑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지요. 다 드러나서 숨길 게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런 다음에 심술궂게도 그 죗값을 물어 칼로 푹 찔러버렸습니다. 나라 전체에 피가 흐르는 의식을 벌여놓고 흥분된 감정에 싸여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관례대로, 혹은 화면으로 보여주는 검증의 논리에 충실하게 끝이 날카로운 말뚝을 휘두른 것은, 소름 끼치는 상품으로 그 희생물의 내장을 달라고 고함친 것은, 명백하게 정숙한 공화당 남녀 의원들이었습니다. --- pp.217~218, '행복을 찾아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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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외된 노동을 양산하는 이데올로기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사랑’은 놀이가 아닌 ‘노동’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동을 하며 오르가슴 달성을 위해 노동을 한다. 사랑 없는 영혼은 공허하고 사랑이 없으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며 사랑에 무감각하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위험한 상태에 이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편집증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위협들에 길길이 날뛰고 획일적인 행동에 통렬한 조롱을 보내는 포스트모던한 우리들이지만 유독 사랑 앞에선 너무도 쉽게 체제순응적 인간이 되곤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랑이고 누구를 위한 노동인가. 이 책의 저자가 그토록 위대하다는 사랑에서 마르크스의 ‘소외된 노동’을 발견한 이유다. ‘가정’이라는 강제 수용소 안에서 가정은 사랑이라는 강제 노역이 가장 당연시되는 공간이다. 가정은 사랑하지 않을 자유, 사랑하기를 멈출 자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자유, 한때 당신이 사랑을 서약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자유 등을 엄격히 구속한다. 엄청난 규제와 규칙으로 인간을 순화시키고 정서의 정체 상태, 욕망의 사멸 상태를 가져온다. 오직 파트너의 안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는 부차적인 위치로 떨어진다. (그렇다고 파트너가 안정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짜증과 불안의 상태에서 힘겨워할 뿐.) 저자는 놀랍게도 무려 열두 페이지에 걸쳐 ‘파트너와 커플로 함께 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어디 간다고 말하지 않고서 집을 떠나면 안 된다’부터 ‘파트너의 동의 없이 모험(이를테면 퇴직)을 감행하면 안 된다’까지 기혼자(혹은 연인관계에 있는 사람들)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폭소와 한숨을 동시에 내뱉게 될 것이다. 불륜, 절대권력에 대한 고립적 저항 따라서 저자는 사랑이라는 무소불위의 전횡에 맞서기로 한다. 사랑에 편집적으로 쏠려 있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아우라(aura)를 걷어내고자 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제도화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장 확실한 불복종은 다름 아닌 ‘불륜(adultery)’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인간은 한순간엔 이성을 좇다가 또 다른 순간엔 욕망을 좇는 분열된 자아를 가진 존재다. 사회화, 죄, 처벌 등에 떠밀려 아무리 순응적이 된 개인이라 하더라도 늘 현실원칙에 완전히 복속시킬 수 없는 환상과 소망에 시달린다. 한 가지 이상의 욕망을 갖는 일은 깊은 애정 관계를 맺은 현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큰 금기사항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불륜’은 그 모든 역사상의 이단아, 반란자, 범죄자 등처럼 사회조직의 균열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불합리한 권력과 위계질서를 폭로하는 기능을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리비도를 협애한 가정의 한계로, 그 쪼그라든 욕망의 세계로 억지로 우겨넣는 것이야말로 ‘자기배반’이 된다. 물론 저자가 불륜을 이상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TV 드라마가 정확히 지적하듯이, 불륜의 끝은 대부분 참담하다. 통제할 수 없는 일상, 감당할 수 없는 돌발사태 등으로 종국에는 사회적으로 추방당할 게 뻔하다. 또한 달콤할 것만 같던 불륜 역시 어느 순간 쌍방의 열정이 식으면서 결혼의 온갖 진부한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러한 관계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까닭은, ‘상식’이나 관례적 이로움의 이름으로 모든 변화를 처음부터 차단해버리는 억압적 기제가 우리사회에 늘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불륜·이혼율 증가…, 일부일처제는 지속 가능한가 우리사회의 불륜과 이혼의 증가는 일부일처제의 당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애초부터 영원한 사랑이나 백년해로와 같은 ‘미덕’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신화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 해야 할까?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독자는 누구나 양극단 사이에서 흔들릴 것이다. 그저 남들처럼 안정적인 수용소 안에서 지금의 무표정한 파트너와 기계적인 섹스를 지속할 것인가, 용기를 내어 불륜이라 불리는 행복의 열정을 택할 것인가. 물론 대부분의 독자는 영리하게도 전자를 택할 것이다. 저자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선동적인 글을 썼지만 그녀의 주된 의도는 일단 대화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그 누구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사랑이라는 전제권력의 모순과 억압에 대해 이제 한 마디쯤 던져도 될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택하든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사랑과 인간사에 대해 전에 없던 의심을 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