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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스물일곱 줄기로 내리고
그1, 그2, 그3 봄, 한 줌도 놓치기 아까운 볕 봄날, 광장에 핀 꽃, 꽃, 꽃 그해 봄날, 아버지 어머니의 종다리, 긴바지, 갈증 내 몸속에 핀 꽃 그냥 살았다 서울 탈출 소쩍새 울음소리 별은 하늘에 있는 것 영원히 오는 비는 없다 저 입술이 낯익다 발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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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방 안엔 문을 단단히 닫고 지켜야 할 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내 스물일곱 살의 나이조차 지킬 필요가 없는데 다른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래서 문은 항상 헐렁헐렁한 채 열려 있다. 언제나 열려 있기에 새삼스레 다시 열릴 것이 없다. 젖혀진 문을 힘껏 닫아보았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지킬 것이 없는 것은 만지는 대로 가만히 있다. 절대로 소리 내며 저항하지 않는다. --- p.15
걸핏하면 사람들은 무심한 세월이라 하며, 세월을 두고 어쩌고저쩌고 한다. 어쩌면 세월에 기대어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건 세월이 아니다. 무심하기론 세월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더하다 . 세월이 흐르든 말든 사람 사이의 끈을 놓치지만 않으면 무심하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서로 잡고 있던 그 끈을 놓치고 만다. 어쩌면 일부러 슬며시 놓아버리는지도 모른다. --- p.28 나는 고등학생 신입생 처지였지만 학교 가는 일보다 촛불 시위에 더 열심이었다. 광장은 나를 좁은 교실의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게 무엇인지 손에 확실히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광장은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광장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차츰 광장을 닮아갔다. --- p.80 결벽에 대한, 깨끗함에 대한 나의 강박증의 뿌리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이 맑지 않다는 걸 안 뒤로 더해진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며 이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나의 결벽 강박도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촛불 집회 같은 것에 열을 냈던 것을 다른 차원에서 보면 세상을 깨끗하게 바꾸고 싶은 열망이었는지도 모른다. --- p.106 나는 울음을 멈추고 그들의 울음소리를 다시 들었다. 뭔가 할 일이 있다고 느껴져서였다. 그렇다. 그들의 나이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나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나이를 세어보았다. 왜 이제야 그들의 나이를 세어볼 생각을 했을까? 친구니까 당연히? 동갑이니까 친구라서 당연히? 짧은치마는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하지 않던가? --- p.158 발등에 소쩍새 소리 한 가닥이 내려와 꽂혔다. 그 소리에 세상이 다시 휘청거리는 듯했다. 나는 몸의 중심을 바로잡으려고 덩달아 휘청거렸다. 같이 흔들림으로써 오히려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느끼고 휘청거린 것이다. 휘청거린 건 어쩌면 제대로 서 있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도 몰랐다. 잘 흔들려야 잘 서 있을 수 있다지 않은가. 그 순간, 저 소쩍새는 자신의 몸속에 몇 년 전의 일까지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 저렇게 슬피 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소리를 함부로 운다고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지금 소쩍새는 울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억이 울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같을 것이다. 기억 때문에 울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몇 년 전의 일들을 기억해낼 수 있고, 끄집어낸 기억 따라 꺼이꺼이 울 수 있을까? --- p.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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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어지고 희미해질지라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기억
현재를 살고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 그리고 어쩐지 낯익은 입술을 가진 ‘그녀’. 누구보다 뜨거운 봄날을 함께했던 그들이 십 년 만에 재회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어렴풋한 기억 속의 ‘그녀’와 그녀의 ‘입술’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은 청춘의 상처와 아픔을 첨예하게 그린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나’는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에 참여한다. 그 뒤 해마다 봄이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마음을 졸인다. 그의 부모가 광주 5.18을 겪은 것도 봄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수차례 들어온 광주의 봄날은 마치 주인공이 직접 겪은 일처럼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시대가 변해도 꼭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기존의 질서에 휩쓸리지 않으려 했던 주인공이 광장에 나가 촛불을 밝힌 지 십 년이 지났다. 스물일곱이면 젊은 기운으로 충만할 나이이다. 사회 속에서 힘차게 팔딱여야 할 청춘이 더욱 단단히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모습은 그해 봄날을 앓았던 청춘들의 상처와 아픔으로 읽힌다. 학생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그해 봄날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지금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스물일곱 살 청춘들의 아픔을 대신 새겨야 했던 작가 박상률의 이야기 열일곱 살, 그해 앓던 청춘들의 상처에 촛불을 밝히다 소설 속 청춘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떠밀려 나가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저마다 안고 있는 상처를 알아서 견디고 살아낸다. 작품 속에서 어른들이 이런 청춘들을 걱정하는 이유는 그들 또한 권력에 저항하던 청춘, 그래서 상처 받은 청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지만 그 고통은 ‘사회’ 안에서 치유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억하지 못하는 고통에서는 아픔을 느낄 수가 없다. 광주의 봄날처럼, 부패한 권력에 맞선 정당한 이들의 외침과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이 한편에서는 진부한 소재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처에 지친 주인공이 서울을 피해 들어간 산골의 ‘서울’슈퍼 이름이 말해주듯, 자본의 그림자와 욕망의 그림자는 우리를 질기게 따라다닌다. 상처로 얼룩진 봄날이 앞으로도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것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십대들의 세상과 시대를 앞서 살아간 이들의 세상이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그해 봄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촛불이 필요하다. 이 소설은 우리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의식을 밝히고, 이 세상의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만 보지 말고 의심하고 질문하고 저항하도록 하는 한 권의 든든한 촛불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