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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제1장 만주사변 후의 국제질서 모색과 일소불가침조약 제2장 만주사변 후의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외교 교섭 제3장 중동철도(中東?道) 매각문제와 동아시아 외교관계 제4장 중일전쟁의 발발과 국제관계 변화 제5장 일본 방공 외교의 전환과 제2차 세계대전 종장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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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던 일본은 유럽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에 영일동맹(英日同盟)을 근거로 참전을 결정하였다. 이후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자격으로 새롭게 탄생한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한편, 워싱턴체제와 부전조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책은 이렇게 국내의 경제발전과 국제협력으로 상징되던 1920년대의 일본이 왜 아시아 태평양전쟁에서 침략국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중국 동북지방에 ‘만주국’이라는 나라가 홀연히 등장한 것은 1932년 3월 1일이었다. 관동군이 군사적 침략의 결과 청조의 마지막 황제를 집정으로 내세워 건국하였으며, 소련·몽고·식민지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만주국은 만주족·한족·몽고족·일본인·조선인의 이른바 ‘5족 협화’에 의한 자발적 건국을 강조하였다. 개항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던 일본은 유럽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에 ‘영일동맹(英日同盟)’을 근거로 참전을 결정하였다. 이후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자격으로 새롭게 탄생한 국제연맹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한편, 워싱턴체제와 부전조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흔히 1920년대의 일본 외교를 ‘협조외교’라 부르는데 이 시기 일본 국내에서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로 상징되는 도시문화와 서민문화가 발전하였다. 이 책은 이렇게 국내의 경제발전과 국제협력으로 상징되던 1920년대의 일본이 왜 아시아 태평양전쟁에서 침략국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관동군이 단독으로 건국한 만주국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이후 일본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만주사변 당시의 수상이었던 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는 만주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관동군의 움직임에 대하여, 이를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지방정권으로 억제한다면 열강의 비난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사망하였고 관동군은 만주국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다음 내각의 수상 사이토 마코토(齋藤?)는 이미 만주국이 국가로서 건국 선언을 한 이상 일본이 정식으로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1932년 9월 일본의 만주국 승인과 더불어 만주국과 일본 대표는 ‘일만의정서(日滿議定書)’에 조인하였다. 이를 통해 만주국의 국방과 정치를 관동군이 장악하였고 각 부서의 실권은 차장인 일본인 관리가 담당하는 명실상부한 괴뢰국가로서의 성격을 드러내었다. 1930년대 이후의 일본 외교의 본질은 이 만주국이라는 존재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게 하려는 일본의 분투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경제 협력과 방공이라는 공동 목표를 내세워 만주국 승인을 얻고자 하였으며 만주국과 접경하는 소련을 상대로도 민주국 승인을 위한 교섭을 계속했다. 방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국제질서가 중국에 거부당하자 일본은 독일·이탈리아와 방공협정을 체결하면서, 유럽에서의 독일·이탈리아의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받으려는 지역주의적 국제질서를 선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 일본은 방공의 대상이었던 소련과도 협력하는 사국동맹을 구상함으로써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국제정세는 일본의 외교 구상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마침내 일본은 삼국동맹 체제 아래서 아시아 태평양전쟁의 패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격변의 시기를 배경으로 만주국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동아시아정책의 파탄과 그 내부에서 이뤄지는 외교 구상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