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1부 문화 1장 가능성의 지평선 2장 문화의 세상 3장 해체와 기술과 변화 4장 계발과 창조 5장 제스처와 자세 2부 복음 6장 동산과 도시 쉬어 가는 이야기: 원시 역사 7장 가장 적은 민족 8장 문화 창조자 예수 9장 오순절부터 10장 요한계시록까지 11장 영광스러운 불가능 3부 소명 12장 왜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는가 13장 하나님의 흔적 14장 권력 15장 공동체 16장 은혜 후기: 작업실의 화가 / 감사의 글 / 주와 참고 문헌 |
|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다른 누군가와 이 책을 공유하길 바란다. 문화의 가장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측면은 나눔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광야로 홀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게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문화 속에 홀로 있지 않다. 나는 과거에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 나와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있다. 또한 내 뒤를 잇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는 그들의 가능성의 지평선을 옮길 것이다.
친구끼리 이 책을 읽고, 우정이라는 것을 서로 잘 맞는 개인 간의 교제일 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공부하고 일하고 즐기는 여러 공간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변화의 파트너십으로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들이 이 책을 읽고, 기술과 명성의 시대에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가족이 여전히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우리가 계발하고 창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근원적인 장소임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교회가 이 책을 읽고, 그 구성원들이 ‘기독교 전임 사역’에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각자 속한 문화의 장에서 항상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을 칭찬하는 대담한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란다. 분명한 문화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이 그들의 힘에 어떤 목적을 두고 계신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엄청난 계획이 있음을 발견하고, 또한 그들이 잊힌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의 중심에서 놀라운 결말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문화에 대한 책은 우리 자신에 대한 책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가 행하고 성취하는 일, 우리의 열망과 꿈과 계획에 대한 책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 문화가 결국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p.14~15 「서문」 중에서 우리의 자세는 점점 몸에 익어 무의식적으로 굳어진 상태, 즉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자세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을 때 우리 몸이 취하는 상태이며, 우리가 삶을 대하는 기본 태도다. 종종 우리 자세를 분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툴고 키만 커다란 십대였을 때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키를 좀 낮추려고 구부정한 자세를 취했다. 어머니가 지적해 주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상당히 노력한 끝에, 나는 좀더 표면으로 드러나는 자신감 있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살면서 꽤 많은 제스처를 사용할 것이다. 몸을 구부려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거나,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커다란 의자에 파묻혀 책을 읽어 줄 수도 있다. 또한 책장 꼭대기로 팔을 뻗어 책을 꺼낼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아내를 품에 안고, 운이 나쁘다면 어떤 가해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두 손을 번쩍 들지도 모른다. 이 모든 제스처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레퍼토리의 일부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한 제스처는 습관이 된다. 다시 말해, 제스처가 자세로 변한다.…나는 미국 그리스도인이 문화에 참여하는 각 단계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특정 문화 재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제스처는 시간이 흐르면서 각 문화의 상황과 환경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하는 자세가 될 수 있다. 비난, 비평, 모방, 소비와 같은 다양한 자세가 갖고 있는 힘?우리가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사용하는 이유?은 이런 반응이 특정한 때와 특정한 문화적 재화에 필요한 제스처라는 데 있다.… 문제는 비난, 비평, 소비, 모방과 같은 제스처가 아니다. 각각의 제스처는 특정 문화 재화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스처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지고, 우리가 문화에 반응할 때 떠올리는 유일한 방식이 되고, 세상을 향한 우리의 무의식적인 입장이 뚜렷이 각인되고, 그래서 결국 자세가 형성될 때 문제가 생긴다.… 내가 놓친 것은, 특질상 가장 성경적인 두 개의 자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자세 말이다. 창세기에 따르면, 그것들은 인간 역사가 시작될 때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첫 번째 조상처럼, 우리가 창조자이며 계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좀더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예술가이자 정원사이다. --- p.116~117, 120~112, 126 「5장 “제스처와 자세”」 중에서 문화를 창조하고 싶은가? 사랑의 마음으로 당신의 꿈을 격려하고 당신의 환상을 깨뜨릴 수 있는 작은 집단이나 공동체를 찾으라. 서로의 삶 가운데 있는 은혜를 기꺼이 확인하며, 각자가 어떤 은혜와 어떤 십자가를 지니고 있는지 함께 분별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을 만들라. 권력에 대한 거룩한 존경심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 거룩한 사람들을 찾으라. 교회 문 밖의 황량하고 놀라운 세상에서 소수의 협력자들을 찾으라. --- p.351~352 「16장 “은혜”」 중에서 |
|
인터뷰: 로리 스미스, Religion BookLine, 《퍼블리셔스 위클리》 2008년 5월 21일
PW: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다면? 크라우치: 문화가 어떻게 변하는지 생각해 보던 중에 맨 처음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 피터 버거 같은 사회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더 많은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문화 변혁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전략(예를 들면, 시위 같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 된다. 미국 문화는 물론 세계 어느 문화에서도 반드시 항의가 필요한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화를 바꿀 수 없다. 문화 분석도, 문화에서 손 떼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당신이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에야 비로소 문화를 바꿀 수 있다. PW: 문화란 예술가나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부모와 선생 등 누구라도 문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크라우치: 물론이다. 예술이나 사상, 정치만 문화가 아니다. 고속도로와 오믈렛, 칠리 요리와 토요일 밤 축구 경기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모두 문화에 속한다. 사람들은 예술만큼이나 이런 구체적인 문화 재화가 우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PW: 이 책에서 당신은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인가? 크라우치: 큰 전략만 선호하는 경향을 진단하고 바로잡고 싶었다. 거대 전략은 본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문화를 공부하면 겸손해진다. 우리가 앞으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보다 이미 문화가 우리를 바꾼 게 훨씬 더 많다. 그게 문화의 생리다. 그런 생각을 하면 스스로 위축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제대로 된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과연 복음이 형성한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복음은 사소한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취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중요성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PW: 문화가 단순히 중요하기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아주 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슨 의미인지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 크라우치: 문화는 하나님의 아이디어다. 문화는 부차적인 것도,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의도하신 창조와 계발 행위다. 문화는 동산 이야기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그 문화 이야기가 반복되며 끝을 맺는다. 하나님은 타락한 문화를 그저 감내하시거나 최대한 이용하시기만 하지 않는다. 문화는 하나님의 인류 창조 이야기에서 마지막 “가장 좋은” 창조 행위의 일부를 당당하게 차지한다. |
|
2009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북어워드 ‘기독교와 문화’ 부문 최우수작
2008년 《퍼블리셔스 위클리》 종교 부문 베스트 도서 2008년 《리더십》 골든 캐논 북어워드 우수작 2009년 로고스 북스토어 어워드 ‘기독교와 문화’ 부문 수상 2008년 《렐러번트》 선정 최고의 도서 10선 2008년 《아웃리치》 선정 우수 도서 기독교 문화관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 매김할 책 기독교와 문화는, 기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불러 왔다. 저자는 이처럼 거대하고 오래된 주제인 ‘문화’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시도하는 한편, 그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문화 참여 패턴이 비난(condemning)-비평(critiquing)-모방(copying)-무분별한 소비(consuming)로 이어진 점을 지적한다. 이런 자세로는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문화의 핵심 과제를 전혀 수행할 수 없기에 새로운 대안으로 계발(cultivating)과 창조(creating)를 제안한다. 특히, 기존의 기독교 문화 관련 서적들이 문화 전쟁과 비평에 집중했다면, 앤디 크라우치는 소극적이고 소모적인 싸움에서 벗어나 문화 창조라는 적극적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출간 직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다수의 출판 관련 잡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사실도 이 책의 가치를 말해 주는 한 가지 증거라 할 수 있다. 앤디 크라우치 특유의 필치와 캠퍼스/문화 사역자로서의 다양한 경험이 녹아든 이 책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기독교 문화관의 고전”으로 손색이 없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문화의 렌즈로 들여다 본 성경 이야기 이 책의 제2부에서는 새로운 이야기,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성경 이야기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읽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에덴동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 초대교회, 종말 이야기를 문화적 관점으로 다시 풀어낸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성경 이야기를 문화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함으로써 성경에 익숙한 독자들에게조차 아주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은 이와 같은 성경 이야기를 통해 문화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문화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문화 창조의 핵심 코드, 3:12:120의 원리 기독교에서 공동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문화 창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오늘날 향유하는 지속적인 문화 현상은 대부분 공동체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모든 문화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3:12:120의 원리”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구글이 세 사람으로 시작된 것처럼, 기독교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인에서 시작되어 열두 제자에게서 꽃을 피우고 120인의 제자에게로 확장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문화 재화를 보더라도 제작에 관여한 핵심 3인방에서 출발하여 12인과 120인의 동심원을 형성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저자는 문화 창조의 가장 기초 단위로 가정을 제시하면서, 문화와 달리 문화 창조의 측면에서는 소규모 집단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거대한 문화 재화라 하더라도 모든 문화 창조 행위는 절대적으로 작은 집단, 즉 3인에서 시작하기에 저자는 문화 창조를 꿈꾸는 모든 독자들에게 자기만의 3인을 찾으라고 격려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