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동학자료의 재검토
『동경대전』에 대한 기초적 연구 『최선생문집도원기서』와 그 이본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관련 자료 해제 『동학농민운동자료집성』 해제 동학농민혁명 관련 동학교단 측 자료의 검토 전남지방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 해제 장흥지방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 해제 천도교 호암수도원 소장 동학사료 용 경상도 상주 화북 동학 고문서 동학자료 『교남공적』 해제 정석진의 『난파유고』와 나주 지역 동학농민혁명 『일사』와 장흥·강진지방의 동학농민혁명 『동학추고』 해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 개관 동학농민혁명기 충청도 공주지역 농민군의 동향 조석헌의 『북접일기』와 충청도 서북부지역의 동학농민혁명 동학의 칼노래와 칼춤에 나타난 반침략적 성격 |
박맹수의 다른 상품
|
동학과 관련된 자료들은 대단히 다양하다. 그 다양한 자료들을 시기별로 구분해 보면, 동학이 창도되는 1860년부터 동학이 천도교로 개칭되는 1905년까지, 나아가서는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료들이 생산되고 있다. 주체별로 분류하면 동학자료는 크게 동학교문 측 자료, 관변 측 자료, 재야유림 측 자료, 일제 측 자료, 주한외국공사관 및 외국인 측 자료, 기타 자료로 나눌 수 있다. --- p.14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의 일대기와 함께 1870년대까지의 동학교문의 상황과 초기 동학 지도자들의 활동상을 담고 있는 『최선생문집도원기서崔先生文集道源記書』(이하 『도원기서』)가 해월 최시형 및 동학교인 강시원, 유시헌, 신시일 등에 의해 1879년 간행되었다. 그런데 ??도원기서??의 내용 중 전반부에 수록되어 있는 수운의 일대기 부분만을 필사한 여러 이본들도 현존하고 있다. --- p.63 이 글의 목적은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전후하여 새롭게 발굴된 동학교단 측 자료의 개요를 소개함으로써, 기존 연구에서 논쟁점이 되어 온 동학과 동학농민혁명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데 일조하기 위함이다. 글의 전개 순서는 첫째 새로 발굴된 동학교단사 자료에 대한 검토, 둘째 동학교단 측 또는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동학 지도자들에 의해 공포되었거나 발송된 통문 및 격문에 대한 검토, 셋째 농민군으로 참여한 동학 지도자 및 동학 교도, 일반 민중들이 남긴 수기 및 전기류에 대한 검토, 넷째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한 지 10여 년이 흐른 뒤 동학이 천도교로 개편되면서 천도교 측에 의하여 정리되었던 천도교 지방교구사 순으로 그 개요와 성격을 검토하고자 한다. --- p.105 장흥지방은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농민군의 저항이 치열했던 대표적인 지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농민군의 희생이 컸던 곳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장흥지방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사료들도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 p.137 발굴 자료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자료가 바로 『해월문집海月文集』이다. 이 자료는 가로 21㎝, 세로 24㎝ 크기의 한지 20장에 걸쳐 관련 내용이 순한문체로 쓰여 있다. 제목이 ‘해월문집’으로 되어 있어 얼핏 보기에는 동학 2세 교주 해월 최시형이 남긴 저작을 모은 것으로 짐작하기 쉬우나 내용은 그와 다르다. --- p.179 「교남공적嶠南公蹟」은 고종 8(1871, 辛未)년 3월 10일(陰) 경상도 영해寧海에서 이제발李濟發(李弼濟)·최경오崔景五(崔時亨)·강사원姜士元(姜時元=姜洙)·박영관朴永琯·김진균金震均·전인철全仁哲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영해작변寧海作變 관련자들을 체포하여 문초처벌問招處罰한 전말을 기록한 자료이다. --- p.199 천도교중앙총부의 표영삼 선생의 안내로 박기현의 후손 박윤안朴潤安 옹(前 康津 鄕校 典敎)과 면담할 수 있었다. 면담 과정에서 그간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박옹과의 면담을 통해 현재까지 복사본만 알려진 ??일사?? 원본을 박기현의 증손 박병채朴炳埰 씨(강진군 작천면 용상리 201)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 p.226 「동학추고東學推考」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부古阜3에 살았던 유생儒生 유양천柳暘川(1830-?)이란 인물이 붓으로 필사하여 남긴 『어록:예주합부語錄:藝珠合部』라는 책 끝부분에 실린 고부농민봉기 관련 기록이다. --- p.239 조석헌의 『북접일기』는 일찍이 1975년에 천도교의 이광순에 의해 소개된 적이 있었다.10 또한 앞에서 예로 든 바와 같이, 1996년에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제10권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접일기』 전반에 관한 내용을 심도 깊게 검토하여 소개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해제만 붙여 소개하는 데 그쳤다. 이 글에서는 기존 소개가 지닌 문제점에 유의하면서 ??북접일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 p.315 이 연구의 목적은 동학사상 속에는 창도 당시부터 반침략·반봉건적 지향이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중에서도 동학의 반침략적 지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칼노래(劍歌 또는 劍訣이라고도 함)’와 ‘칼춤(劍舞)’ 의식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 p.323 |
|
미완의 꿈, 동학
동학에 대한 관심은 1990년 대 들면서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그러나 2000년대를 보내는 이 시점에서 살펴보면 동학의 위상은 여전히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학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에 대한 명예회복이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학 계승 사업이 지역 축제와 결합하면서 정례 행사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지만, 동학이 꿈꾸던 세상이나 동학의 정신과 사상의 복권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팍팍해지고,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점증할수록 이미 오래 전에 낡은 문명의 파국을 예견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동학에 대한 관심은 필요불가결한 과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미 화석화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동학의 잠재적 가능성을 어떻게 현실화하느냐다. 역사는 사료로써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30여년 동안 동학을 연구하고, 전국에 흩어진 동학의 현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 땅 아래 묻힌 동학의 역사들을 발굴해 오고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건져올린 사료들에 대한 이력을 담아낸 연구서이다. 저자는 “역사는 사료로써 말한다”는 말로 이 책이 갖는 의의를 설명한다. 한때 흥행하던 동학에 대한 관심도 그러하지만 지금은 잦아진 동학열풍도 모두 동학에 대한 충분한 사료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상황일 뿐이므로,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동학사료의 재조명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엄정한 동학 연구, 동학 계승, 동학의 역사와 사상 현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은 여전히 유효한 미래의 전망 동학에 대한 관심이 잦아진 원인 가운데 한 축에는 그 용도가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오해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밝혀진 동학 사료--그들 중 많은 것은 이미 10년~20년 전에 드러난 사료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은 새로운 동학연구에 아직도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들을 토대로 다시 한번 동학을 조명하고, 그곳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다시 동학을 노래하다 이 책은 대중들을 위한 교양서라기보다는 연구자를 위한 안내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문제제기들을 주로 담고 있지만, 동학에 대한 관심을 갖는 분들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동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저서가기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