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옮긴이 서문
한국어판 서문 서 론 1 의식적인 파리아 : 반역자이자 독립적 사상가 2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반유대주의 3 무국적 상태와 권리를 가질 권리 4 지옥으로의 하강 5 시온주의 ― 유대인 조국과 유대 국가 사이에서 6 ‘근대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 ― 혁명과 평의회 체제 7 근본악에서 악의 평범성으로 : 잉여성에서 무사유로 8 악, 사유 그리고 판단 9 맺는 말 ― 맹목과 통찰 참고문헌 찾아보기 |
金善郁
김선욱의 다른 상품
|
한나 아렌트, 세계애를 향한 위대한 정신의 여정
이 책은 한마디로 한나 아렌트의 ‘지적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렌트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주제들이 20세기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아렌트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그것을 ‘이해’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치열한 고투 속에서 나온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한나 아렌트의 가장 심오한 정치적 통찰들은 유대인 무국적자로서의 자기 경험에서 출발하여, 전체주의와 강제수용소의 공포와 대결하는 필생의 과정을 거쳐, 진정한 정치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인간의 조건』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거쳐 『정신의 삶』으로 이어지는 한 위대한 정신의 삶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한 사상가가 살아 있는 때는 그의 사상이 우리의 흥미를 끌어낼 때이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주제들을 해명하는 데 갖는 적합성을 우리가 발견할 때입니다. 우리가 테러리즘, 세계화, 종교적 광신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나 악의 새로운 얼굴들과 씨름할 때, 아렌트의 통찰은 항상 적합합니다. 그녀의 사상에 동의하건 않건 간에, 그녀는 아주 근본적인 주제들에 대해 우리의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아주 드문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J. 번스타인,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유럽 유대인의 두 가지 전통: 파브뉴와 파리아 사이에서 저자는 나치 전체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파국을 맞은 20세기 유럽 역사에 대한 탐구를 유대인 파리아(pariah, 국외자·불가촉천민)와 유대인 파브뉴(parvenu, 졸부)에 대한 아렌트 자신의 중요한 구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구분은 프랑스계 유대인 사상가 베르나르 라자르Bernard Lazare에게서 아렌트가 전유한 것으로서 그녀는 라헬 파른하겐(19세기 ‘베를린 살롱’의 여주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 독일계 유대인 동화 정책의 실패를 탐구하기 위한 개념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렌트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아렌트는 라헬 파른하겐의 전기를 쓰면서 사회와 정치, 즉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깨닫게 되는데, 이 구분은 이후 그녀의 모든 후속 작업의 중심 개념이 된다. 또한 파브뉴와 파리아의 구분, 특히 ‘의식적 파리아’라는 라자르 개념의 전용으로 인해 아렌트는 하이네, 라자르, 카프카, 채플린으로 이어지는 파리아 유대인의 ‘숨겨진 전통’을 발견하고 독립적인 사상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한다. 유대인 문제: 20세기 유럽 정치사를 들여다보는 프리즘 나치 독일이 권력을 장악하고 반유대주의적 테러가 본격화된 1933년 아렌트는 독일에서 도주하여 정치적 반유대주의의 최근 역사과 다양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유대 민족의 근대사를 반성하면서 그녀는 유럽 유대인들이 20세기에 닥친 사건들에 대하여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이유가 한 민족으로서 정치적 경험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렌트는 유대 민족이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자 한다면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유대인 해방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족 국가의 성격, 내재적 긴장, 소멸에 대한 아렌트의 최초의 생각들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부터 나왔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과 함께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시민권을 얻을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민족 국가 내부에 한정되었을 뿐, 유대인들이 정말 민족 국가에 속하는지는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여전히 의문시되었다. 이것을 아렌트는 국가와 민족의 내적 긴장으로 보고, 보편적 인권 개념에 내재한 근본적 모호성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민족 국가의 정치적 반유대주의는 결국 19세기 말에 이르러 훨씬 더 격렬하고 공격적인 형태의 초국가적인 정치적 반유대주의(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 전자는 나치 전체주의로 발전해 나갔고, 후자는 동유럽 유대인에 대한 학살, 포그롬으로 이어졌다)로 대체되었다. 나치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에서 치명적인 무기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초국가적인 정치적 반유대주의였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와 진정한 정치를 위한‘인간의 조건’ 193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에 머물며 시온주의 단체에서 일하던 아렌트는 유대인 정치의 실패와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유대 민족이 다른 억압받는 집단들과 연대하여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주창하였다. 유대 민족이 스스로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아렌트의 주장과, 혁명 정신이라는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 위한 나중의 시도(특히 『혁명론』에서 명확히 드러났던)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 무국적 유대인으로서의 자기 경험은 아렌트로 하여금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권리를 가질 권리’, 즉 나치가 유대인에게 인정하지 않았던 바로 그 권리인 ‘정치적 공동체에 속할 권리’임에 주목하게 하였고, 정치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또한 추상적인 인간 개념과 살아 있는 정치적 공동체 외부에서도 모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추상적 인권 개념에 대한 회의는 진정한 정치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로 이끌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적 지배가 어떻게 해서 모든 행위와 정치의 토대가 되는 조건인 인간의 복수성, 탄생성, 자발성 그리고 개별성을 파괴하는지 분석한다. 실질적으로 인간의 조건과 혁명론에서 다루어지는 행위, 자유, 공적 영역과 정치에 대한 아렌트 이해의 모든 요소는 나치 전체주의에 대한 연구에 함축되어 있고 그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시온주의와 함께, 그리고 시온주의를 넘어서: 이스라엘 민족 국가에 대한 비판 아렌트를 처음 시온주의로 이끌었던 것은 유대인 정치에 대한 관심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정치적 책임을 맡아야 하고 정치적 행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확신을 공유한 유일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시온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에서 나타난 수정주의적 경향들에 대해 비판하고 또 그로 인해 실망했다. 그녀는 아랍인-유대인 협력에 근거한 유대인 조국의 건설에 대해서는 찬성했지만, 유대인 주권 국가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민족 국가와 민족 주권 관념에 대한 아렌트의 전반적인 비판은 동료 시온주의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더욱 예리해졌다. 아렌트가 정치 공동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각들의 환원불가능성과 필요성, 그리고 의견들의 충돌을 평가하게 되었던 것 또한 이러한 논쟁 속에서였다. 직접적인 정치 행위에 참여한 자신의 생애 중 짧은 한 시기에 아렌트는 팔레스타인에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이중 민족 국가binational state를 만들자고 주장한 유다 마그네스Judah Magnes와 그의 단체인 이후드Ihud에 가담한다. 아렌트의 가장 독창적이고 중심적인 생각 중 하나는 ‘평의회 체제council system’에 관한 것이다. 그녀가 19세기 민족 국가와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본 것은 평의회들의 연방이다. 아렌트가 실패로 끝난 12일간의 헝가리 혁명에 대해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는 평의회가 다시 한 번 자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의회들의 지속적인 발생을 아렌트는 ‘근대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라고 불렀다. 평의회는 근대의 혁명 정신 ―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보물 ― 의 현시였다. 그러나 평의회 체제에 대한 아렌트의 생각이 아랍인-유대인 지역 연합 평의회라는 유대인 조국의 정치적 구조에 대한 그녀의 생각 속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아랍인-유대인 연합 국가의 실패와 이후 이스라엘의 건국이 불러올 파국에 대한 아렌트의 예견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예리함과 정확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근본악’에서 ‘악의 평범성’으로: 아이히만 논쟁과 ‘정신의 삶’ 1945년 아렌트는 “악에 관한 문제가 전후 유럽의 지적인 삶의 근본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썼다. 비록 유럽에서 이 문제에 몰두한 지식인은 거의 없었지만, 아렌트 자신에게는 정말로 ‘근본 문제’가 되었다. 우선 아렌트는 죽음의 수용소와 최종 해결책이라는 끔찍스러운 사건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는 가운데 절대악 혹은 근본악의 의미를 탐구한다(『전체주의의 기원』). 그러나 이 문제에 보다 본격적으로 집중하게 된 계기는 아이히만 재판이었다. 「뉴요커」의 기고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한 아렌트는 1년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를 출간하였고, 이 책은 격렬한 논쟁과 함께 이스라엘을 비롯한 유대인 공동체 측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촉발하였다. 그러나 아이히만 재판에서 아렌트가 보았다고 주장한 ‘악의 평범성’은 “악행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정한 사악함이나 병리학, 혹은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추적될 수 없는 것으로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이란 특별한 천박성일 뿐”인 ‘사실적 현상’에 대한 묘사였다. 20세기 전체주의가 만들어낸 이런 새로운 악에 대한 탐구는 이후 ‘정신의 삶’에 대한 연구의 주요 원천을 이루게 된다. 아렌트는 ‘괴물 같은 동기’ 없이 ‘괴물 같은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사유와 판단 속에서 인간이 행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