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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1. 스와니 강의 꿈 부끄러움의 냄새 낯선 풍경의 정겨움 스와니 강의 꿈 부부, 영원한 남남 잉어 목욕시키기 (...) 2. 아들에게 주는 편지 어떤 이민 한국 음식, 미국 음식 미국에서 옷 입기 한국 남편, 미국 남편 내가 사랑하는 나라 (...) 3. 한 자유인의 작은 세상 첫번째 환자 문학 작품과 의학 상식 의사면 다냐 내 문학을 바꾼 수련 의사 생활 팔려가는 아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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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깊은 부끄러움을 나는 죽은 사람들에게서 많이 본다. 어쩌면 이들이 혹시 생전에 베풀기에 인색했던 것인가, 아니면 화해를 청하지 않아서였나. 죽어 10년 이상, 오랜만에 세상의 공기를 대하는 죽은 이의 뼈와 갈색의 흙이 된 살을 만지면 멀리서 오는 비린내 같은 냄새가 난다. 부끄러움의 냄새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내 몸에서 나는 내 부끄러움의 냄새일까.
―「부끄러움의 냄새」 중에서 부검대 위에 묵묵히 누운 그 환자 친구의 몸을 열고 폐를, 심장을, 간을, 신장을 잘라 내어 사인을 본다고 다시 세밀하게 자르고 한정 없이 몸 주위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물로 씻어 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의사가 되려고 태연을 가장하던 그 수많은 날들. 〔……〕 신비한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소름 끼치게 느끼면서 이런 신선한 흥분을 날것 그대로 시로 쓰고 싶어서 안달을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 모국어도 없고 가까운 친구 하나도 없는 외국에서 일상의 외로움에 오금을 움츠리고 공포와 슬픔과 환희의 절정을 매일 오가면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내 의사 수련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확실한 물꼬였고 내 시의 본향이었다. ―「내 문학을 바꾼 수련 의사 생활」 중에서 새벽 두세시쯤 되었는지 사위는 무서우리만치 고요했지만 그간 친근해진 별밭을 올려다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 온몸을 가볍게 감싸는 온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에 내 키가 더 커진 것도 아닌데 별들이 이번에는 손에 잡힐 듯 더 가까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별을 향해 한 손을 올렸다. 다시 발끝으로 서서 팔을 뻗어 올리고 더 올렸다. 그때 나를 보며 미소 짓던 그 많은 별들이 갑자기 흐리게 떨려 보이면서 나를 향해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하늘의 어디를 보아도 별들이 모두 눈물을 머금고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 믿기 힘든 이 신비한 비밀의 시간〔……〕 그리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몇 줄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중에서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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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은,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의사가 겪는 격렬한 일상을 아름답고 따뜻한 서정으로 수용하여 맑은 지성과 세련된 언어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받아 온 대표적인 한국 현대 시인이며, 미국에서도 꾸준히 모국어에 의한 시작(詩作)에 정진함으로써 외국에서 한국 시를 심화시키는 귀감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시에 드러난 투명한 언어와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심도 있는 성찰성은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의 산문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진가를 발휘한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은 마종기의 시 세계를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귀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자의 특별한 시적 모티프들과, 모국을 떠나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그의 내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그의 문학 세계를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를 자세하게 더듬어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문제상들을 지적하는 그의 시적이고 일상적인 문장이 어떤 논설조의 문장보다도 더 힘 있게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독자들은 이 산문집을 통해 한 시인이 나직이 말을 거는 잊지 못할 충일의 순간들을 경험할 것이다. 마종기 시인의 시 제목을 딴 것이기도 한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스와니 강의 꿈’에는 마종기 시인의 폭넓은 개인사와 단상들이 실려 있다. 죽은 이를 바라보면서 맡아지는 부끄러움의 냄새, 낯선 풍경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의 토로, 외국 생활에 있어 건전한 취미 활동의 필요성, 매년 제야 때마다 은밀하게 외우는 성 프란체스코 기도문에 대한 회고, 친구 관계 · 부부 관계에 대한 통찰, 착함이란 것은 삶의 한 과정으로 우리 몸에 녹아 흐를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 어렸을 적 만났던 신기료장수 할아버지의 기도, 음악 듣기를 통해 풍요로워지는 삶의 정경들, 지식인의 예술 감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우연히 맞닥뜨린 목화밭이 자신에게 타일러 준 어두워지지 말라는 전언의 순간 들이 1부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더 쉽고 간단한 시를 쓰고 싶다고 고백한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제2부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는 1966년 마종기 시인이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생에 일어난 다양한 이야기들, 이민자로서의 소회와 감상이 기탄없이 펼쳐진다. 이민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지나간 개인사,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대한 성찰, 아들들을 따라 미국에 들어온 홀어머니의 이야기, 독일을 여행한 뒤 한국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전망한 이야기, 가까이서 경험한 9 · 11 테러 사건에 관한 이야기, 미국 인종주의 폭력의 심각성, 마라톤 선수 이봉주의 쾌거를 계기로 떠올리게 된 어린 시절 이야기, 기부 문화가 자리 잡혀 세워진 톨레도 미술관의 역사, 영어 상용화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진솔한 토로, 그리고 재미 교포로서 쓴 신년시들과 아들을 향해 띄우는 편지가 2부를 구성한다. 제3부 ‘한 자유인의 작은 세상’에는 외국 의사로서의 삶이 마종기 시인에게 열어 준 경험 세계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첫번째 환자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문학 작품과 의학 상식의 문제성 지적, 의사라는 직업의 허와 실에 대한 예리하고도 솔직한 고백, 자신의 문학을 바꾼 수련 의사 시절에 대한 자리 매김, 해외 입양아 문제와 닫힌 혈통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 비판, 아버지 마해송과 화가 장욱진 선생 그리고 미당 서정주, 황동규, 정현종에 대한 회고,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점에 대한 언급과 인간은 모두 형제인가라는 질문 제기, 의사 생활을 은퇴할 때의 심정을 토로한 이야기 들이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