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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베어먹은 사과 한 알」
「스토커」 「폭소」 「설탕」 「풋고추」 「행복한 재앙」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 |
본명:권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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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특별한 느낌이 있니?"
내가 물었다. 성재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에 들뜬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푹 꺾었다. "넌 후회할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애란 걸 알고 있어." 그가 단정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다. 후회할 짓이란 도대체 무언가. 그가 말하는 그 '후회할 짓'을 나는 후회 없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곧 성재는 수줍은 듯 고백을 해왔다. "나는 널 좋아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눈을 감고 낮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난 널 지켜줄거야." 나는 무언가 맥이 빠지는 걸 느꼈다. 성재는 한숨을 쉬고 나서 진지하게 말했다. "난 지킬 수 있는 건 지키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 내가 원하는 건 진지한 남자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어쩌면 남자의 폭력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갑자기 병째 입에 대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촛불이 일렁거리더니 저절로 꺼져버렸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블라우스의 첫 단추로 손을 옮겨갔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성재는 새 양초에 불을 붙였다. 방 안이 다시 밝아지자 나는 결국 블라우스 단추를 끄르지 못하고 열이 오른 목만 쓰다듬다 손을 내려버렸다. --- p.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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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날 속이려들지 마. 보라구! 이 얼굴 좀 봐! 내 얼굴이 점점 요괴인간처럼 변해가는 게 안 보인단 말야? 난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구. 다들 내가 괴물이라는 걸 알면서 시침 떼고 있어. 사람들이 날 처치하려고 몰래 칼들을 숨기고 다니는 거 나, 다 알고 있어."
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다 대고 씹어뱉듯이 소리를 쳤다. "지랄 육갑 떨고 있네, 병신새끼! 나가!" 그러자 그는 고개를 푹 꺾고 나갔다. 잘 잠기지 않는 녹슨 수도꼭지에서 늘상 물이 새는 통에 귀퉁이 깨진 세면대 한쪽이 녹물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동생이 보고 있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또 하루가 주어졌다. 아, 녹슨 수도꼭지에서 새어나오는 녹물 같은 지겨운 시간. 거울 속의 노랗게 시들어가는 얼굴. 혐오스러웠다. 눈까풀이 싸아하게 매워지고 쳐다보던 거울이 부예진다.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모든 감정은 결국 누선을 자극한다. 나는 동생이 혹시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 pp. 14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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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시지프에게 답장을 보내려고 한다. 삶이란 건 숨이 막힐 정도로 아귀가 꼭 맞게 돌아가야 하는 바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굴렁대를 쥐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만의 굴렁쇠를 굴리다가 굴렁쇠를 놓치기도 하는 것. 놓쳐버린 굴렁쇠처럼 가끔은 삶이 주는 그런 우연성. 삶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의 의지를 배반하는 우스꽝스런 것일 수 있는지를 나른 그에게 말하고 싶은 걸까. 그가 답장을 열어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마지막 장면은 벨리코빅의 그림과는 달리 두 사람이 바다로 향한 방조제를 등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뛰지도 않을뿐더러, 그야말로 터벅터벅...... 두 손을 꼭 잡고서 말이다. 혹시 달빛에 어른대는 긴 그림자만은 바다 쪽으로 끌릴지도 모르겠다. 한데 아이는 계속 자기만 따라오는 달이 신기한지 싫증도 내지 않고 자꾸 고개를 뒤로 빼고 보름달을 쳐다본다. 어쩌면 잃어버린 동그란 굴렁쇠가 하늘에 걸렸다고 아이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p.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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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뱀장어 스튜」로 제2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평단의 주목을 받는 기대작가로 부상한 작가 권지예가 두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독자를 소설 속으로 빨아들이는 뛰어난 서사적 구성력과 세심한 관찰에서 이끌어낸 상상력 풍부한 이미지, 생동감 넘치는 경쾌한 문장력 등 권지예 소설의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작품들은 이 작가에게 쏟아지는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전작들에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에 담긴 가족사와 죽음의 문제를 끌어내어 이야기의 재료로 삼았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타인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면서 좀더 폭넓은 경험이 담긴, 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이를 "'죽은 혼령'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을 자신의 소설에 초대"하는 것으로, 곧 "초혼(招魂)에서 초인(招人)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과 극을 연결시켜 하나로 이어주는 뫼비우스의 띠, 그 극단을 잇는 소설 권지예 소설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속악한 욕망과 생에 대한 긍정을 얽고 꼬아 만든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자폐아인 어린 아들 때문에 가정이 해체될 위기를 맞게 된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하고 바다로 향하는 표제작 「폭소」에서, 말없이 아이를 보살피던 아내는 언젠가부터 성교중에 교성을 지르는 대신 '폭소'를 터뜨린다. 교성이 들어갈 자리를 대신하는 폭소는, 곧 삶의 무자비함에 대한 통곡인 동시에 온전한 삶에 대한 신랄한 조롱에 다름아니다. 스스로 타락하고자, 첫 경험을 위해 계획적으로 떠난 여행의 하룻밤이 어처구니없이 실패해버리는 순간(「풋고추」), 스토커에게 쫓기다 못한 주인공이 오히려 스토커 같은 짓을 하게 되는 순간(「스토커」), 삶의 격정적인 순간을 희구하는 간절한 욕망에 대해 말하던 작가가 찾아낸 것은 욕망과 뒤얽힌 삶의 아이러니컬한 국면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삶의 순간들이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등장하고 있는, 불구성을 지닌 인물들이 의미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베어먹은 사과 한 알」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용복이 각시, 「스토커」의 보험설계사의 귀머거리 남편,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에서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소연은 어찌 보면 순진하고, 또 어찌 보면 위악적인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은,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세상의 아이러니컬한 면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다. 이러한 권지예 소설의 특징은 중편 「행복한 재앙」에서 보다 정교하고 축약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개인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의 눈에 비친 환자와 병원, 그리고 보험회사간의 이전투구를 특유의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펼쳐 보인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환자들의 뒤얽힌 욕망과, 또 인물들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는 병원을 아이러니와 반전이 가득한 권지예적인 삶의 축도로 만들어놓고 있다. 역설과 모순이 가득 찬 이러한 세계에서 그러나 작가는 쉽게 절망하거나 긍정하지 않고 "행복한 재앙"을 발견해낸다. 재앙이지만 그것이 또한 행복이라는 역설적인 긍정의 태도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건강한 환자의 윤리학"이라 이름 붙이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희망인 동시에 우리가 작가 권지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전망이기도 할 것이다. 풋풋한 감성, 경쾌하게 질주하는 문장, 당차고 시원한 소설 독자를 상쾌하게 하는 풋풋한 감응능력, 눈썰미 있는 세심한 관찰, 가쁜 호흡의 속도감 있는 문장이 권지예 단편의 매력적인 특장이다. 의표를 찌르는 반전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구성의 묘는 소홀치 않은 작가의 수련을 증거하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선 소재의 반복성을 넘어서고 삶 경험의 무게를 곁들이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물 오른 젊은 작가의 당차고 시원한 지주에 박수를 보낸다.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과 교수) 권지예의 소설은 90년대 문학이 지나온 터널 끝에서 만나게 되는 눈부신 햇빛 같다. 그래서 더 밝게 보이고, 더 건강해 보인다. 90년대 문학의 키워드를 권태나 무기력, 실험과 엽기 등으로 파악했을 때 이를 다시 소설의 본령이나 기본으로 되구부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의 죽음 이후 주체를 다시 살리려는 움직임이 실감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권지예 소설의 '밝음'은 터널을 통과하기 이전의 밝음과는 전혀 다른 밝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권지예의 소설은 모든 소설들이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하고, 모든 소설들이 끝나는 곳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멈추는 정거장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정직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이 작가의 소설들은 그 자체로 양날의 칼이 되어 자신의 소설들을 헤집고 있다. --김미현(문학평론가) |